민드레2022-06-07 16:11:40
지나온 과정에서 지나치지 않은 감정 속을 유영하다
영화 <매스> 리뷰
테이블에서 펼쳐지는 대화는 네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공간 자체의 긴장감과 대화가 동시에 펼쳐진다. 비극적인 사건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마주하는 두 부모의 조우 속,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책으로도 꼭 만나고 싶은 영화, 매스를 소개한다.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가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사건이 일어난 이유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이야기를 듣지만 폭발하는 감정을 온전히 누르기는 힘들었다.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 감정을 배제하지 않고 펼쳐지는 대화는 날카롭다고 생각했던 흐름을 유지한다. 숨 막히는 공간에서 더 숨 막히게 만드는 자리 배치는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약간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수많은 대사는 그들이 겪어 왔던 고통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시선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건네는 따뜻한 위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사람의 용서는 고통에 따라 끊임없이 고통받는 이들이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고통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기에 변하지 않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네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보이는 표정이나 시선,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감정이 더욱 극대화된다. 대사로 표현되는 감정들이 더 이상 만질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어떤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먹먹하다. 가해자의 부모이기 때문에 온전한 슬픔과 그리움을 표출할 수 없었던 가해자 부모의 표정이 떠오르며 그 감정이 커진다. 용서할 대상이 불명확한 이 상태에서 모두가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거칠 수는 없겠지만 계속 대화하고 또 대화하면서 이러한 과정을 나눠야 할 것이다.
화면이 검게 변해도 빛만큼은 사라지지 않는 모습에 영화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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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가 되지 못한 프롬 퀸
승자가 되지 못한 프롬 퀸
<피어 스트리트:프롬 퀸> 영화 후기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벌여놓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영화 속 대사이자 내가 영화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이렇게 만들고 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피어 스트리트 시리즈를 재밌게 보았기에 프롬 퀸이 나온다는 소식을 매우 기대했다. 심지어 티저 이미지가 아주 아름다웠고, 기괴하면서도 힙했다. 영화도 그럴 줄 알았다. 피어 스트리트는 통일된 요소와 장르를 각 시대별로 다루면서 재미를 준다. 특히 슬래셔와 스릴러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거기에 캐릭터들의 서사가 긴장감을 견디고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피어 스트리트"라는 이름을 단 이 영화는 그런 장점을 다 버린 영화이다.
탈락 후보 1. 긴장감 (연출)
1시간 30분 동안 지루했다. 슬래셔 영화를 보는데 지루했다. 리뷰를 쓰고 있는 글쓴이는 공포영화를 잘 보는 타입이 아니며, 혼자 보면 소리 없이 겁에 질리는 사람이다. 근데 이 영화는 그럴 필요도 없었고, 심심할 정도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첫 번째는 긴장감있는 연출이 없다. 그냥 피가 낭자할 뿐. 사운드 연출과 장면 연출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게 이 영화의 장르 특성이다. 그런데 연출이 아주아주 실망스러운 나머지 긴장감이 사라져 버렸다. 뻔할 대로 뻔한 연출로 어느 타이밍에 뭐가 날아올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악역이 연출감이 부족한 상태로 등장해서 "나오고 들어가고" 정도로 끝난다. 재빠르게 나와서 재빠르게 죽이고 퇴장한다. 두렵고 무섭지가 않다. 마지막에 강당으로 뛰어들 때는 바보 같기도 하다.
탈락 후보 2. 캐릭터
거기에 캐릭터 서사까지 빠졌다. 피어 스트리트의 장점은 캐릭터 서사를 깊이 있게 다뤘다는 것이다. 캐릭터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 프롬 퀸은 재밌는 프롬 파티 퀸 대회를 가지고 그 후보들을 빠르게 소비해 버렸다. 서사와 캐릭터가 생겨나기도 이전에 죽여버렸다. 허무할 수도 없다. 정도 안 쌓이고 알지도 못하니까 그냥 죽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주인공마저도 설명이 부족해서 이 프롬 파티에 대한 목표가 흐려진다. 한 편으로 끝낼 생각이라 줄이면서 빠진 건지 아니면 아예 고려도 안 하고 만든 건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지금 방식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탈락 후보 3. 스토리
캐릭터가 설명도 안 된 채로 이야기가 흘러가면 이야기도 무너진다. 1988년 셰이디 사이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프롬 퀸을 선정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들. 이 줄거리를 텐션있게 끌고 가려면 주인공이 프롬 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시청자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영화에서 너무 약하다. 주인공을 괴롭히던 그룹에게 복수하고 싶은 건지,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남자를 가지고 싶은 건지, 바뀌고 싶은 건지 모호하기만 하다. 그리고 배경이 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건은 대화로만 힌트가 주어진다. 이런 것은 오히려 흥미롭게 작동할 수 있었으나 다른 스토리가 연약해지며 함께 연약해졌다. 결말부로 가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건이 반전의 꽤 영향을 미치는데 그 힌트가 너무나도 미묘하다. 잘 숨겨서 안 보이는 느낌보다는 그냥 뭐가 없어서 안 보이는 느낌이다. 이런 장치들도 얕디얕아 스토리는 빗물로 만들어진 웅덩이만큼의 깊이를 가지게 되었다. 왜 피어스트리트를 달고 피어스트리트의 저주를 활용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왜 피어 스트리트라는 이름을 달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무엇도 닮은 구석이 없다. 셰이디사이드라는 지역 빼고는 없다.
최종 퀸. 포스터
이 영화에서 가장 잘난 부분은 포스터다. 포스터는 힙하고, 패러디를 적절히 써서 예쁘게 잘 뽑았다. 그 덕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과거의 영화들을 떠올리는 포스터와 각 캐릭터의 성격이나 파트너를 알 수 있는 적절한 정보도 담겨있다. 포스터는 화제가 되어 SNS에도 돌아다녔다. 영화와 관련된 유일한 승자는 포스터다.
이 영화 내에서 그나마 남는 게 있다면 배우들이다. 수재나 선 배우는 부족한 서사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매력적인 캐릭터다. 주인공은 미친 듯이 답답하니 수재나 선이 맡은 메건만이 영화의 희망이다. 오컬트가 가득한 영화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여서 더욱 그랬다. 배우가 연기를 잘 해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배우들은 다 괜찮았다.
한 줄 코멘트
피어 스트리트 3까지만 보는 자가 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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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신치 않고, 늘 의심할 지어다. 그 의심 속에서 성스러운 순수함만을 찾을 지어다.
우린 왜 '역설, 반골 기질, 평소와는 다름'이 담긴 예술을 좋아하는 것일까? 이는 '창의적'과는 또 다른 갈래의 영역인 것만 같다.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 우리가 그동안 지녀왔던 그 모든 관념들과는 상이해서 이해하는데,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들을 우린 유독 예술에서 만큼은 인정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우린 예술을 경외하고, 예술이라는 분야는 예술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범주라고 여기기에 그 독창성과 다름을 단순한 틀림이 아니라 비범함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 <콘클라베>는 종교 영화라는 정립된 장르에 정치적, 철학적 이분법론과 인간의 타락과 의심이 불러일으킨 고뇌 그리고 종교개혁을 연상케하는 플롯 등을 이용해 마치 종교 영화계의 이단아, 반골과 같은 모습을 띤다. 영화는 인트로의 베일을 벗은 순간부터 클로징의 막을 내릴 때까지 종교 영화의 장르적 자세를 항상 취하지만 추리, 미스테리한 일들의 연속을 더해갔고, 지속적으로 타락과 진솔의 사이를 오가는 모습, 의심과 확신의 불안정한 수평선 사이 고뇌하는 인물을 보여주면서 영화의 깊이감을 더해갔다.
필자의 경우, 삭막한 공간 속 긴장감을 극도로 느끼거나 불안한 심정을 스스로에게도 감출 수 없을 때면 스스로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일정치 못한 박자감의 숨소리는 나의 불안감을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그 불안감의 양을 증가시키면서 신체의 무리로까지 이어지게 한다. 작품을 제작한 감독은 이런 부분들을 경험한 것인지, 영화적으로 사용하면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적절하다는 점을 아는 것인지,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주인공 "로렌스"의 등을 비추면서 연신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들려준다. 이 점은 영화의 초반부뿐만 아니라 중후반부 "로렌스"가 고뇌에 빠져 선택의 길로에 서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을 때면 이따라 등장한다. 영화 <콘클라브>는 막을 내리기 직전까지도 이 긴장감과 고뇌, 착잡함의 냉랭한 공기를 걷지 않고, 이를 숨소리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OST로 아예 관객의 머리에 분위기를 각인시킨다.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웅장하면서 동시에 영화의 전반적인 테마를 잘 담아냈다고 생각하는 OST는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긴장감을 고조시켜야 하는 상황이면 어김없이 등장해, 소위 소름을 끼치게 한다. 물론 이런 점을 매우 반복하기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다 보면 곧 OST가 나오면서 갈등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걸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은 사실 작품의 단점이면서도 안정적인 구조, 본인들이 잘 해낸 부분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확신하지 말지어다. 항상 의심할지어다." 어쩌면 영화는 본 구절을 영상화한 작품인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누구나 종교인, 특히 교황과 그 교황이 될 후보 추기경들은 어떤 경우에도 항상 진실고, 거짓이 없으며, 종교인으로서의 사명을 다 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고, 필자의 경우에도 무교지만 그렇게 생각해왔었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 먼저 고정관념을 깬다. 교황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새로운 교황을 뽑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선거, '콘클라베'. 교황이라는 직위가 곧 권력의 중심이라 반드시 차지하고자 하는 사람, 교황의 직위를 책임감이라고 생각해 거부하려는 사람간의 갈등이 격돌하고, 교황의 직위를 통해 종교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전통과 신념을 보수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사람과 교황의 직위를 통해 시대적 흐름에 맞춰 종교를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의 관념들이 부딪혔다. 이 추기경은 좋은 사람이고, 교황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라 추천하였지만 교황의 직위를 쟁취하고자 했던 사람에게 돈을 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는, 의심이 확신이 되어가는 순간 영화는 고조로 다달아 주인공 "로렌스"와 보고 있는 관객 모두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
위 문단을 읽은 분들은 아마도 더욱 영화의 플롯에 의문을 가지실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렇게 혼란스럽고, 갈등 상황이 많아?'라고 질문을 하실 수 있겠지만, 실제로 영화는 한 시도 관객과 주인공을 갈등의 중심지에서 놓아주지 않는다. 이런 점이 더욱 잘 드러날 수 있는 데에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오는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콘클라베' 기간이기 때문에 바깥 상황과도, 외부의 그 어떠한 세력과도 만나서도, 연락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교황청을 모두 철폐하고, 모든 연락들을 끊은 상태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단 한 공간, 교황청만을 비춘다. 창문도 모두 닫히고, 문도 모두 막힌 채 바깥에서 무슨 소동이 일어나는 지도 알지 못한 채 한정된 공간 안에선 전쟁을 방불케하는 피튀기는 신경전이 오갔고, 영화는 그것만을 오로지 담아냈기에 그 서스펜스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또한 영화의 분위기와 혼란을 유지하기 위해 영화가 행한 방법은 바로 주인공 "로렌스"가 알아가는 만큼 관객도 똑같이 알아가게 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초반부와 중반부, 복도를 걷는 "로렌스"를 촬영할 때면 영화는 그의 등을 클로즈업하여 담아내는데, 이는 마치 관객과 "로렌스"를 일치시켜 그의 상황과 심리 상태에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는 데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영화는 굉장히 빈번하게 카메라의 수평 이동과 부감 숏을 활용해 "로렌스"를 비롯한 주 인물들 뿐만 아니라 교황청을 채우는 모든 추기경들을 한번에 담아낸다. 한정적인 공간을 모두 채우는 그 많은 추기경들의 숫자가 빚어낸 부감 숏은 마치 관객에게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사건의 중압감을 선사한다. 또한 수평 이동을 통해 '콘클라베'에서 투표하고 있는 추기경들의 표정을 모두 담아내는데, 확신했던 것들이 의심이 되어가고, 한 두 차례에서 끝났을 투표가 수 차례로 이어지면서 고도화된 심리전을 관객이 모두 경험할 수 있게 되면서 극의 흥미진진함을 더해갔다.
'콘클라베'가 끝나게 되면 모든 단장직을 내려놓겠다는 "로렌스". 기도가 약해졌다는 이유이다. 그가 왜 기도가 약해져 단장직을 내려놓겠다고 이야기하는지 영화는 생각해보라고 전한다. 아마도 영화는 그가 내려놓으려 했던 이유엔 종교의 타락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믿지 않았던 이들은 정말 생각만큼의 행동들을 했고, 믿었던 이마저 사실은 타락의 결에 속했었다. 어쩌면 종교의 장을 뽑는 것인 '콘클라베'는 언쟁이 지속될 수록 정치적 논파 간의 싸움으로 변해갔고,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갈등은 좀처럼 다시 꿰놓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영화는 이 의심과 혼돈만이 가득한 상황에 한 가지의 답을 내려준다. 그게 바로 "베니테스"였다. 의문만이 가득했던 그의 등장은 전 교황의 서명을 통해서 입증되었다. 그는 '콘클라베'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로렌스"에게 투표했다. 그럴 때마다 "로렌스"는 이를 거부했지만 끝까지 그는 신념을 지켰다. 외적인 소동으로 인해 교황청이 소란에 빠졌을 때 "베니테스"는 그 모든 정치적, 실리적 이득을 위한 언쟁과 투쟁들을 비난하며 나섰고, 이 지점에서 모든 추기경들이 그의 매력을 안 것인지 그 다음 투표 때 "베니테스"가 교황이 되어 "인노켄티우스 14세 교황"이 된다. 재밌는 건 영화는 마치 좋은 교황을 선정하게 되면 이 모든 혼란이 가실 것처럼 묘사하였지만, 오히려 모든 이들의 합이 맞춰져 뽑게된 새 교황의 투표 과정, 과정 속 추기경들의 표정 등을 보여주지 않고 굉장히 빠른 속도록 축약한다. 마치 그게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로렌스"는 좋은 인물을 교황직에 세운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발표만을 남겨놓고 대기하던 와중 하나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정체가 베일에 가려져 누구인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던, '콘클라베' 기간이라 외부와의 연락이 안 되어 더욱 궁금했던 그의 정체는 사실 생물학적 여자였던 것이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유전적으로 여자였지만 스스로가 여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남자로서 살아갔고, 정신적으로도 남자였던 것이다.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은 "로렌스"는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이에 "베니테스"는 과연 이 점이 문제가 되는지 물어본다. 대화를 마친 "로렌스"는 기도가 약해져 종교에 회의감을 품던 과거의 표정과는 달리 새로운 교황의 진실과 사실을 안 이후로 조금은 다른, 조금은 더 편안해진 표정을 지었고, 그렇게 영화의 막이 내린다.
어쩌면 영화는 마지막 갈등이 모두 해결되는 그 순간들까지도 관객에게 '의심을 풀면 안됩니다!'와 같은 말을 전하는 것 같았다. 결국 영화가 "베니테스"의 정체에 반전을 줌으로써 하고자 했던 이유는 단순히 성적 다양성이 종교에도 녹아들어져야 한다는 취지가 아닌 것 같다. 진실이 사실은 거짓이었고, 거짓이 거짓인 줄 몰랐고, 심지어 자신을 아꼈던 교황마저도 자신을 의심했었다는 그 모든 불신과 불안정함만이 존재했던 상황 속 찾아낸 진실, 진리마저도 의심해봐야함을, 의심의 결과 결국 찾은 진실에서 종교적, 인간적 순수함을 찾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 속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물어보는 것만 같다. 영화는 이에 대해 순수함이 중요하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론짓는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는 이런 모든 순간들에 의심을 더해가며 관객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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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아름다운 꿈일지라도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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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나비가 된 꿈을 꾸다 깨어나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하고 생각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하는데, 지금 내 삶도 누군가의 꿈 속이 아닐까 싶은 거다. 내가 꿈 속에서 수많은 인물들을 만들어내듯이.
어떤 삶은 자신의 의지대로 굴러가는 게 하나도 없다. 타인의 취향, 타인의 선택, 타인의 눈치. 온통 타인에게 기준을 맞추어 살아가야 할 때도 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았을 때, 사람들이 좋아하는 껍데기를 둘러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은 현실일까, 꿈일까. 자각이 없는 삶, 스스로가 이끌어가지 않는 삶을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차라리 아름다운 꿈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매트릭스>에서처럼 모피어스가 빨간약, 파란약을 건넸을 때, 무엇을 택할 것인가. 그냥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직시할 것인가.
<바닐라 스카이>는 어떤 면에서 <매트릭스>와 맥을 같이한다.
물론 <매트릭스> 세계관이 훨씬 복잡하고, 인류가 기계와의 싸움에서 지는 바람에 인류가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다르다.
뉴욕 출판계 거물의 아들 데이빗은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산다. 잘생긴 외모에, 아버지가 남긴 부에,
남들이 '드림 걸'이라고 부르는 여자가 그의 캐주얼한 섹스파트너이기까지.
매일 아침 '일어나(Wake up)'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난다.
데이빗의 생일파티에 수많은 인사들이 찾아와 데이빗의 생일을 축하한다.
그리고 바로 그날, 친구 브라이언이 데리고 온 여자 소피아에게 첫눈에 반한다.
선물을 위층 침실에 옮겨놓던 데이빗은 침대 위에서 누가 벗어놓은 빨간 드레스 하나를 집어드는데, 그 순간 파트너인 줄리가 알몸으로 나타난다.
데이빗은 줄리에게 '파티는 초대받은 사람만 오는 곳'이라고 말한다. 줄리를 초대한 적도 없고, 초대할 생각도 안 했다.
남들에게 관계를 밝히고 싶지 않은 것. 말하자면 줄리는 데이빗의 치부 같은 거다.
혹은 이렇게 생각해볼까. 좋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옆에 두면서, 줄리의 마음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면서 즐길 것만 즐기는.
줄리와의 관계가 꽤 오래되었고 줄리가 적극적으로 표현하는데도 정말 '캐주얼한' 관계라고밖에 생각하지 못했다면, 데이빗의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줄리는 드레스를 갈아입고 파티장으로 내려간다. 데이빗은 소피아에게 접근해서는, 줄리를 스토커라고 말한다. 도와달라고, 연기해달라고.
그렇게 데이빗은 소피아를 집까지 데려다 주게 되는데, 소피아의 집에서 다큐멘터리를 하나 본다.
냉동되었던 강아지가 해동되면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이라도 되는 것만 같다.
소피아는 그 다큐멘터리를 자주 본다고 한다. 둘은 서로 그림도 그려주고, 분위기가 좋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처럼.
밤을 꼬박 새고도 가뿐하게 출근길에 나선 데이빗 앞에 낯익은 차가 한 대 선다. 줄리의 차. 데이빗을 미행한 거다.
데이빗은 줄리의 차를 타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데이빗에게 배신감을 느낀 줄리는 자기의 행복은 데이빗과 같이 있는 거라며 울부짖다가 액셀을 밟는다. 그대로 줄리의 차는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줄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몇 번의 수술을 거쳤지만 데이빗의 얼굴은 회복되지 않는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고쳐보라고 해도, 아직 현대의학기술이 망가진 얼굴을 완벽하게 이전으로 복구시키지는 못한다(인과응보일까?).
시련에 빠져 숨어 지내던 데이빗은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소피아에게 찾아가고, 그날 저녁 바에서 소피아와 만나기로 한다.
아직 맨얼굴은 부끄럽고 병원에서 준 가면을 쓴 채로 나간다.
바에 가 보니 어쩐지 소피아와 브라이언이 가까워진 것 같고, 질투심에 눈이 멀어버린 데이빗은 데낄라를 연거푸 마시고 취한 채로 소피아의 집 근처에서 잠든다.
눈을 뜨니 소피아가 있고, 소피아의 지극한 사랑으로 얼굴이 원상태로 돌아오고, 너무 행복한 날을 보내는 데이빗.
하지만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소피아가 아닌 줄리가 옆에 있다.
줄리는 자꾸만 자기가 소피아라고 하는데, 줄리가 죽은 게 아니라 소피아와 바꿔치기 했다는 망상에 빠진 데이빗은 줄리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다 경찰에 붙잡히게 되고, 멕케이브에게 정신과 감정을 받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부터는 지난한 과정이다. 술집에서 한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남자는 데이빗에게 '당신은 이 세계의 신'이라고 말한다. 그 남자의 말처럼, 데이빗이 생각하는 대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다.
어느 날, 소피아가 보던 다큐멘터리에서 회사명을 보고 멕케이브와 함께 그 회사로 간다.
자, 이제 모든 것이 밝혀진다.
데이빗은 사후 냉동보관을 했고, 지금 이 모든 게 자각몽이라는 것.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거다.
바에서 나와 소피아의 집 앞에 쓰러져있었던 그날부터 소피아와의 사랑도, 얼굴이 말끔히 고쳐지는 기적도, 맥케이브와의 상담도 다 꿈이다.
데이빗의 소망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몰랐다면 그 세계의 신이 되어 영원한 젊음을 누리며 살아갔겠지만 다 꿈이라는 걸 알게 된 데이빗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만이 존재한다.
덮어두고 자신의 피조물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것인가, 150년이 지나버려 돈도 없고 사랑하는 소피아도 친구도 없는 세계에 홀로 던져질 것인가.
<매트릭스>의 네오는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빨간약을 먹었다. 데이빗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는 질문한다.
진짜 세상이 아닌 환상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며 살 것인지, 무자비한 현실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 것인지. 너무 아름다운 꿈일지라도 꿈은 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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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 <바닐라 스카이>는 모네의 그림에서 따왔다.
데이빗의 생일파티날, 그의 어머니가 구매했다는 모네의 <바닐라 스카이>를 잠시 언급한다.
그리고 데이빗이 깨어나기를 결심했을 때, 그의 뒤로 바닐라 스카이가 펼쳐진다. 환상과 이별하는 순간이다.
너무 아름다운 꿈일지라도 깨어나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바닐라 스카이>는 실존주의적이다.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의 남자주인공 시어도어 핀치가 '깨어있기'를 새기며 살아갔던 것처럼.
삶은 허무하고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고, 모두가 내 마음 같지도 않다.
남의 생각이 내 생각인지, 남의 기분이 내 기분인지 분간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회피하고 냉동실에 들어갈 게 아니라, 지독하고 아플 만큼 생생하게 깨어있음으로써 이토록 공허한 삶을 채워가야 할 뿐이다.
+ <바닐라 스카이>는 왓챠에서 볼 수 있다.
+ 톰 크루즈의 20년 전 미모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 멜로 눈빛의 정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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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4월의 반절이 벌써 지나갔네요.오늘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하니 유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또, 일교차가 매우 크다고 하니 감기도 조심하길 바라겠습니다!씨네픽과 함께 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의 개봉 주 주말의 관객 수'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NEW)▶ '신비한 동물' 시리즈 중 세 번째 시리즈인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호그와트'의 교장 선생님인 '덤블도어'의 젊은 시절을 다뤄 해리포터 팬들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4월 15일~17일) 관객 수 33만 737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7만 6218명을 돌파하였습니다.이번 주에도 많은 영화가 개봉 예정에 있지만,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이 1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줄거리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에 마법사들이 개입하게 되면서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의 힘이 급속도로 커진다. 덤블도어는 뉴트 스캐맨더에게 위대한 마법사 가문 후손, 마법학교의 유능한 교사, 머글 등으로 이루어진 팀에게 임무를 맡긴다. 이에 뉴트와 친구들은 머글과의 전쟁을 선포한 그린델왈드와 추종자들, 그의 위험한 신비한 동물들에 맞서 세상을 구할 거대한 전쟁에 나선다. 한편 전쟁의 위기가 최고조로 달한 상황 속에서 덤블도어는 더 이상 방관자로 머물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고, 서서히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데…2. <수퍼 소닉2> (▼1)▶호평을 받았던 <수퍼 소닉2>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의 개봉으로 1위에서 2위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주말 관객 수는 4월 8일 ~10일과 비교했을 때 약 40%가 하락했습니다.
주말 동안 (4월 15일~17일) 관객 수 6만 7207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0만 9596명을 돌파하였습니다.3. <모비우스> (▼1)▶<모비우스>는 개봉 후 한 주마다 한 단계씩 하락하여, 이번 주말에는
박스오피스 3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관객 수는 저번 주말보다 71%가 하락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4월 15일~17일) 관객 수 1만 811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6만 222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95회 예측 이벤트는 4월 2주 차 박스오피스(순위) 예측입니다. 한 주동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는데요.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4월 2주 차 박스오피스 순위의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먼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의 실제 관람객 연령과 성별에 따른 관람 추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아주 근소한 차이로 비율을 더 차지하고 있고, 20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주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건
20대 초반 남성(350,666명)과 30대 후반 남성(315,278명)이었습니다.
또한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18%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스텔라> (-)
▶ 박스오피스 중 유일한 한국 영화이자, 유일하게 저번 주말과 순위가 동일한
영화 <스텔라>가 4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4월 15일~17일) 관객 수 3만 927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만 878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앰뷸런스> (▼2)
▶ 배우들의 몰입감 높이는 연기력과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전개에 호평을 받은
영화 <앰뷸런스>가 5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4월 15일~17일) 관객 수 1만 1462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0만 824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Fantastic Beasts: The Secrets of Dumbledore>,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그리고 <Father Stu>가 주말 박스오피스에 새롭게 등극했습니다.
주말 동안(15일~17일) <Fantastic Beasts: The Secrets of Dumbledore> 북미 기준 주말 매출액 $43,000,000 (한화 약 528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누적 매출액은 동일합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4월 15일 ~ 2022년 4월 17일)1.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4300만 달러 (누적 4300만 달러)2. <수퍼 소닉2> 3000만 달러 (누적 1억 1961만 달러)3. <로스트 시티> 650만 달러 (누적 7857만 달러)4.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618만 달러 (누적 1769만 달러)5. <Father Stu> 570만 달러 (누적 802만 달러)...씨네픽의 4월 셋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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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그냥 판타지만은 아니다
<모털 엔진>은 원작이 있는 영화다. '견인 도시 연대기'라는 소설이고 총 4부작으로 책이 나눠져 있다. 그중 네 권의 책 중 첫 번째 책의 제목이 '모털 엔진'이다. 각색하기는 했지만 1권의 책의 내용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의 스토리가 너무 방대해서 네 권의 책의 중요 부분들을 추출해서 만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니 책을 빨리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영화를 보고 속편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서 압축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모털 엔진>의 모털, 혹은 모탈(mortal)은 '영원히 살 수 없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이 제목은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아우른다. 60분 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전쟁으로 인해(아마 핵전쟁일 것으로 보인다) 지구가 멸망한 후, 커다란 엔진으로 움직이는 견인 도시들이 서로 약탈을 일삼고, 땅에 고정해서 살기를 원하는 '반 견인 도시 주의자'들과 다시 전쟁하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감독인 '피터 잭슨'이 제작을 맡아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았다. 나 역시 공개된 예고편이 눈길을 사로잡아 많은 기대를 하면서 영화를 보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의 영상미(CG)는 좋았으나 기대를 너무 한 것인지 스토리 면에서는 실망감이 컸다. 아마 방대한 스토리를 128분 안에 녹여내려다 보니 개연성도 떨어지고, 공감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사건도 급하고, 러브라인도 급하고, 해결도 급했다. 이런 방식을 삼류라고 볼 수는 없지만 '아, 이렇게 되겠구나'라고 예상하면 그렇게 이뤄졌다. 역시 '왜'가 결여된 이야기는 공감을 얻기 힘든 것 같다. 아마 두 편 정도로 나눠서 제작했다면 더 탄탄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전반적인 세계관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60분 전쟁 이후 1천 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현재는 과거 혹은 고대가 된다. 견인 도시 '런던'의 박물관에 미니언즈 대형 피규어가 '미국의 동상'이 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정도의 미래에서 지금을 바라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사실 과거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탈핵과 방사능이다. 대학원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우리가 방사능 폐기물을 어디에 묻는다고 기록으로 남겼을 때 미래의 후손들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고대의 언어를 해석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미니언즈뿐만 아니라 토스터가 귀중한 유물인 세상에 현재 쓰는 언어가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은 낮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는 교수님의 저 말씀이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언어를 모두 해석하지 못한다. 그래서 학자들이 '추정'한다. <모털 엔진>에서도 그렇다. 그렇게 과학이 발전했지만 TV 영상 같은 화면을 만들어내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가 되어 있음에도 그 안에는 여전히 60분 전쟁의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부품을 구하러 다니는 존재들도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고대의 무기로 불리는 메두사를 다시 사용하는데 정말 마구 쏘아댄다. 만약에 빔을 맞은 땅이나 건물, 그 안에 핵폐기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영어로, 한글로, 다른 언어로 어디에 묻었다고 아무리 기록을 남긴다고 해도 짧으면 천년, 길면 몇만 년 뒤에나 반감기가 지나서 안정화가 되는 핵폐기물의 존재를 미래의 인간들이 알 수 있을까? 특히 걱정되는 것은 어디에 남겼다는 것은 해석했는데, 위험한 물질이라는 것을 해석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만약에 핵폐기물이 보관된 위치의 표시를 보물이나 메두사 같은 무기의 위치라고 생각하고 파헤치면 그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도 벽화 등의 기록을 남길 때 그 기록이 후손들에게 남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남겼을 텐데 우리는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상상하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핵으로 만든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쓰고 말면 그만이다. 하지만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의 폐기물을 감당해야 한다. 이런 막무가내 조상들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까?
움직이는 견인 도시와 반대로 과거처럼 땅에 정착해서 살아야 한다는 반 견인 도시 주의자들은 어느 산맥에 자리를 잡고 '샨 구오'라는 방벽 뒤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장벽이라고 불리는 것은 댐과 닮아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지각의 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예전 지구의 4개의 대륙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름도 그렇고 그 방벽은 '산샤댐'이 아닌가 싶었다. 거대한 세력을 피해서 숨은 곳이 댐 뒤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그만큼 물을 가두기 위해 인간이 얼마나 큰 힘을 쏟았는지 볼 수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왜 그렇게까지 했어야만 했을까?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전 지구적으로, 역사적으로 전쟁은 '땅'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것은 우리가 땅을 소유의 개념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고, 반 견인 도시 주의자들이 지향하는 것처럼 다시 한번 토지를 소유한다면 인간은 또다시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견인 도시가 있음에도 욕심을 내는 사람은 욕심을 내고 있지만 말이다. 과연 땅에 정착해서 사는 것이 정답일지는 우리 모두가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하는 영상은 늘 고민을 던져준다. 정말 먼 미래일지, 아니면 이제 곧 다가올 미래일지, 아니면 그 미래조차 없는 것은 아닐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다.
우리는 천년이 지나고 썩지 않는 과자를 먹으며 살고 있다. 우리의 현재의 삶의 행동들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기 전에 한 번씩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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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영우와 탑건이 대박을 친 이 여름에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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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 대박을 친 두 작품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영화 <탑건:매버릭>을 빼놓을 수 없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블록버스터는 대박행 티켓이겠으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는 생소하다.
우영우의 등장 이후로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진 듯하다. 얼마 전까지 자폐 스펙트럼, 자폐증이 관심을 끌 때는 자폐증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길에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많은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한 번도 없다고 대답하겠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무척 흔하다. 국내 발병율은 2% 정도라는데, 50명 중에 1명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말이다. 우리가 무작위로 만나는 50명의 사람 중 1명은 자폐증인데, 왜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을까. 그 사람들은 세상 밖에 안 나오기 때문이라는 걸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거리에 장애인이 없는 나라이다. 심지어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시위를 해야 하고, 그 시위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나라이다. 이동권 보장을 위해 시위하는 전장연 소속 장애인들은 비난받고, 드라마에 나오는 우영우는 신드롬을 일으키는 것이 제법 모순적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는 나의 이동동선을 방해하지 않고, 내 눈에 띄지 않으면서 착하고 불쌍한 장애인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대상화되고 물화되어 집밖에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존재. 드라마 속 권민우는 우영우 때문에 자기가 피해를 본다 생각하니 우영우를 공격한다.
그러므로 우영우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존재의 등장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는 50명 중 1명이 수면 위로 나온 것일 테다. 모두가 우영우에게 봄날의 햇살 같은 최수연 또는 회전문을 통과하기 위해 왈츠 스텝을 맞춰주는 이준호가 되면 좋겠지만, 나도 내가 '권모술수 권민우'가 아니라고 보장하지 못하겠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레인맨>의 주인공 찰리 배빗 역시 비슷했던 것 같다. 평소 사이가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교류도 전혀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죽으면서 남긴 3백만 달러의 유산을 하나도 물려받지 못하게 되자, 3백만 달러를 물려받은 사람을 찾게 된다. 바로 정신병원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형이, 아버지의 유산 3백만 달러를 몽땅 받게 되었는데 심지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기까지 하다니. 형 레이먼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형이 하는 말은 대부분 '1루수가 누구야'라는 콩트의 대사인데, 두 명이서 하는 말을 혼자서 끝없이 중얼거린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찰리는 형 몫으로 남겨진 유산을 반 나눠가질 생각으로 형을 데리고 LA로 간다. 형의 담당의에게 알리긴 했지만 몰래 데리고 나가는 것이니 납치에 가깝겠다. 찰리는 자동차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정이 영 좋지 못하다. 3백만 달러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쉬운대로 반이라도 있으면 숨통이 좀 트이는 상황이다. 그러니 형을 데려가 유산 상속에 대한 법정 다툼으로 자기 몫을 찾겠다는 생각이다.
찰리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자폐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거의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인 뷰익을 타고(정원의 장미도 유산으로 받긴 했다), 찰리와 레이먼드는 긴 여정을 떠난다. 비행기를 탔더라면 좋았겠지만 모든 비행기 사건사고를 외우는 레이 때문에 비행기도 타지 못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좁은 차와 모텔 안에서 레이먼드는 끝없이 '1루수가 누구야'를 중얼거리고, 규칙에 너무나 민감하고, 소리에도 너무너무 예민하다. 그렇다고 찰리와 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몇 시에는 TV쇼를 봐야 하고 몇 시에는 불을 끄고 무슨 요일에는 무엇을 먹고. 모든 게 정해져 있다. 팬케이크를 먹을 때 메이플 시럽이 미리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지 않으면 레이는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찰리도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다. 말이 통하지도 않고 대화도 안 된다. 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무것도 바뀌지도 않고 사람들은 레이를 보며 수군거린다.
구박데기 같지만, 사실 레이에게는 비범한 능력이 있다. 우영우가 법전을 통째로 외우는 것과 같이, 숫자를 외우고 계산하는 데는 천재인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이쑤시개가 246개라는 것을 단번에 알고, 복잡한 곱셈도 바로바로 출력된다.
돈 때문에 자폐증 형을 납치할 정도로 돈에 환장한 찰리의 머릿속에 전광석화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길로 찰리는 레이를 데리고 라스베이거스로 간다. 라스베이거스는 해가 지지 않는 곳이다. 도박장의 화려한 불빛들은 사람들에게 최면을 거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레이의 눈은 손바닥만한 이동식 TV에 고정되어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차 안에서도, 레이는 레이만의 세계에서 산다.
레이는 6벌의 카드를 모두 외워 찰리에게 큰 돈을 안겨준다. 마음에 드는 여자도 만난다. 권민우가 우영우에게 "우영우 변호사는 그런 거 모르나?"라고 물으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보는 것처럼, 찰리를 비롯한 사람들은 레이가 여자에게 호감을 느낄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레이도 똑같은 사람이기에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찰리는 레이와 여행(?)을 하며, 레이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고 알아간다. 사실 찰리는 자기 속얘기를 타인에게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아버지의 장례식 때, 에피소드 하나를 얘기하며 애인이 무서울 때 어떻게 했냐고 묻자 '무서울 때는 레인맨이 와서 노래를 불러줬다'고 했다. 레인맨은 찰리의 상상 친구.
어느 날, 찰리가 목욕을 하려고 욕조에 물을 받자 레이는 발작을 일으킨다. 아기가 뜨거운 물에 덴다는 이유였다. 찰리는 물에 안 데였다며 레이를 안심시키다 깨닫는다. 모두가 형의 존재를 비밀에 부친 게 아니라, 레이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무서울 때마다 노래를 불러준 사람은 상상 친구 레인맨이 아니라 형이었다. 레이는 찰리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월브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돈에만 환장하고 사람들과 대화도 못하는, 사람들을 이용할 생각뿐인 찰리는 괜찮은 이웃인가. 레이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만이 위험한가.
형제는 함께 지내며 서로를(정확히는 찰리가 레이를. 레이는 찰리에게 관심이 없다) 알아간다. 찰리는 이제 돈보다는 형과 같이 지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가 않다. 형은 치료가 필요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케이마트에서 파는 팬티를 입어야 한다고 몇날며칠 난리 브루스를 추는 레이에게 찰리는 "케이마트는 구려"라고 화를 냈다. 의사와 함께 월브룩으로 돌아가게 된 레이에게 의사가 케이마트에 가자고 하니, 레이는 대답한다. "케이마트는 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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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헤어진다. 이제 약간의 소통이 되는 것만 같던 마법같은 순간에 헤어진다. 농담도 하고 같이 웃기도 하고, 레이가 책에서 보고 외워버린 "1루수가 누구야" 콩트도 비디오테이프로 준비했는데, 형제는 헤어져야 한다.
기차를 탄 레이는 단 한 번도 찰리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결코 무지한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찰리는 외로워지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가족은 외롭다는 우영우 아빠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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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만의 연기와 톰 크루즈의 미모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한스 짐머의 음악과 1980년대 미국의 레트로한 영상미는 덤이다.
<레인맨>은 특수아상담을 연구하고 책도 쓰신 모 교수님 강의에서 추천받았던 영화이다. 교수님은 영화 속 레이의 모습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 꽤 비슷하다고 했다. <탑건>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박을 친 이 여름에, <레인맨>을 조심스럽게 영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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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웅 주연 필사의 추격 / 코믹 액션 / 범죄 수사극 / 아쉬움이 남는 후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필사의 추격"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엔드크레딧 나오면서 나옵니다. 가장 마지막에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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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저씨 명대사 모음
- BGM
Disappeared - With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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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싱크홀> 1차 예고편
사.상.초.유! 도심 속 초대형 재난 발생!
서울 입성과 함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가장 ‘동원(김성균)’
이사 첫날부터 프로 참견러 ‘만수’(차승원)와 사사건건 부딪힌다.
‘동원’은 자가취득을 기념하며 직장 동료들을 집들이에 초대하지만
행복한 단꿈도 잠시, 순식간에 빌라 전체가 땅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마주치기만 하면 투닥거리는 빌라 주민 ‘만수’와 ‘동원’
‘동원’의 집들이에 왔던 ‘김대리’(이광수)와 인턴사원 ‘은주’(김혜준)까지!
지하 500m 싱크홀 속으로 떨어진 이들은 과연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한 500m 정도는 떨어진 것 같아”
“우리… 나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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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행복의 나라> 파이널 예고편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 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