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5-12 21:08:52
화려한 도시 사이에 삭막한 외로움이 따스한 사랑으로 스며든다
파리, 13구 리뷰
규정할 수 없는 마음이 외로움 사이에 표류하다 빠져드는 마음을 인정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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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가뭄이 온다면 이런 모습일까. 서로를 향한 사랑의 수치는 숫자처럼 딱 떨어지는 모습이 아니라서 그 주변을 맴돌며 가벼우며 자극적인 형태의 사랑으로 나타난다.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는 오해와 착각, 그리고 공허함은 사랑에 대한 이상과 현실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에밀리,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는 카미유, 사랑에 치이고 또 치였던 노라, 자신을 대상화하는 앰버 스위트.
이어진 듯 이어지지 않은 이들은 순서가 바뀐 형태로 사랑을 알아가며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것 조금씩 번져가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다. 새로움과 강렬한 자극을 원하면서도 끊임없이 낡은 것을 찾는 모습을 통해 나뉘어 있는 듯하면서도 묶인 듯한 우리를 발견한다. 색채는 끝끝내 돌아오지 않고 흔들리는 모습도 그대로지만, 흑백으로도 또렷이 남아있는 그 감정들과 이야기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의 욕망을 드러내어 노라, 에밀리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나뉘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동떨어지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되면서 멀었던 이야기들이 가까워진다. 화려한 도시 속, 같은 건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의 삭막함이 드러나는 파리 13구. 그곳에서 살아가지만, 그냥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저마다의 삶의 방식과 사랑의 방식을 가진 네 남녀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삶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꽤 인상적이다.
품을수록 외로운 형태의 사랑은 기존에 그려왔던 사랑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한가지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 사랑은 욕망의 이름으로 그려져 에밀리와 카미유와 겪는 갈등을 가져오기도 한다. 어떤 사랑의 형태에 손을 들어주지 않고 그들의 사랑이 펼쳐지고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지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 느껴진다. 관계에 대한 평가가 아닌 이해로 다가가는 모습이 다소 따스하다. 그 누구보다 화려한 도시, 파리라는 흑백으로 가려 도시에서 어떤 로망을 펼치기보다는 어디서든 펼쳐질 수 있는 사랑의 이야기를 평이하게 그려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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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그리 서둘러 덮으려 하시었소
어렸을 때 한국식 제사를 지낸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현관문을 조금 열어두어야 돌아가신 분들이 들어와 제삿밥을 먹는다는 것을. 영화에 나오는 서양 귀신은 투명한 데다 발이 없거나 벽을 통과해 다니는데, 한국 귀신은 참 예의가 바르다. 문을 열어주어야 집에 들어온다. 그것은 완전한 비물질화 된 서양 귀신과, 완전히 물질화된 일본 요괴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한다.
묘를 파한다는 의미의 <파묘>는 이렇게 한국인이라면 어릴 적부터 몸으로 체험하고 들어왔던 이야기들이지만, 그것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 영화로 실체화된 카타르시스는 상당하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마주하고 보니 정말 독특하다.
한국인의 재미있는 특징은 굉장히 여러 가지 종교가 비교적 탈없이 잘 어울려 산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나 인도처럼 서로 다른 여러 종교의 기념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 놓았다. 한국은 대종교의 개천절, 불교의 부처님 오신 날, 기독교의 성탄절이 다 법정공휴일이다. 양력의 새해 첫날도 휴일이고 음력 설도 휴일이다. 한국의 전통 달력은 태양태음력이라서 해는 음력으로 계산하지만 24 절기는 양력이다. 띠는 절기를 따지는 것이므로 1월 1일이나 음력설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입춘에 바뀐다. 또, 국기에는 동양철학인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과 괘를 넣었다. 태극과 팔괘는 주역에서 온 것으로, 조선의 성리학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한국의 민속신앙은 여러 종교를 혼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민족의 사상과 철학은 이처럼 많은 것이 혼재되어 있다.
한민족의 민속학, 민속종교
무당과 음양오행과 풍수. 이 세 가지가 같이 있는 모습은 우리에겐 너무나 친숙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조금씩 다르다.
무당은 한반도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신내림을 받아 굿을 하는 사람과 그 신앙을 말한다. 제례의 방식이나 섬기는 신, 교리등이 무당과 교파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주변에 들어온 것들을 모두 흡수하는 성격을 가진다. 삼국시대부터 불교와 도교 영향을 받아 불교에 등장하는 신들을 섬긴 지 오래되어서, 용어가 불교 도교와 많이 겹친다. 근래에는 예수를 섬기거나 맥아더 장군을 모시는 곳도 있다. 무당 자체의 정해진 교리가 없다 보니 타 종교의 경전과 철학을 끌어다 혼합한다. 중세시대에 음양오행이나 사주팔자를 보는 주역 등은 당시엔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이었지만, 무당들은 그것마저 신점을 보는 데에 이용한다.
오행은 말 그대로 화, 수, 목, 금, 토 다섯 가지 기운이 서로 상생과 상극을 이루며 우주를 이룬다고 하는, 우주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오행은 4원소설과 다르게 실재하는 물 불 흙을 이야기한다기보다, 그런 방식의 기운을 말한다. 이것의 관계도를 보면 마치 다섯 개로 하는 가위바위보 같기도 하다. 누구는 누구를 이기고, 누구는 누구를 만들고, 누구는 누구를 도와주고, 누구는 누구를 약하게 한다는 식이다. 원래 주역은 오행이 만들어지기 이전 학문이라서 음양만 있고 오행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후대에 주역과 오행이 합쳐져 음양오행이 되고 사주에도 오행 해석이 들어가게 되었다.
풍수 역시 한반도에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민속학이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동아시아 전체에 퍼져있는 학문이지만, 종교의 영역이라기보단 고대과학에 더 가깝다. 풍수는 원래 음양오행이 아니라 땅의 맥과 혈을 중요시하고 바람과 물과 땅의 흐름과 기운을 살펴 명당을 찾는 학문이고, 중간에 음양오행을 받아들였다. 음양오행은 형상이 아니라 기운을 말하는 것이지만, 풍수에서는 실제 사물과 대치시켜 거꾸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풍수에도 여러 학파가 있고 거기에 따라 오행을 받아들이고 아니고의 차이도 있다. 하지만 조선의 풍수는 음양오행을 받아들인 음택풍수가 주류였다. 한민족은 특히 풍수를 중요시해서, 삼국시대부터 불교의 스님들이 국가적인 명당자리를 골라주곤 했다. 풍수를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이라 여겼기에 고려의 불교도, 무당과 불교를 미신이라 여기던 조선의 성리학도 풍수를 믿었다. 후대에 가서는 풍수가 너무 땅을 비싸게 사고파는데 악용되자 미신이라며 배척하는 학자들이 많아졌지만.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이런 민속학, 민속종교가 서로 공유하는 '음양오행'으로 연결시켜,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흥미롭고 힘을 가진 영화적 소재로 재탄생시켰다. 그러나 <파묘>가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히 소재의 디테일함이나 완성도 있는 연출이 아니다. 바로 메시지가 다른 오컬트 영화와 남다르기 때문이다.
장재현 감독의 세계
심령, 귀신, 요괴, 악마 등 종교나 민간신앙, 신비주의를 다룬 오컬트 콘텐츠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것들의 대부분은 그 종교를 겉핥기식으로 소재를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 장재현 감독은 종교의 이야기를 할 때, 내용 자체에 그 종교의 가르침이 깊이 스며들도록 만든다.
한국 고전문학 중에 <구운몽>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구운몽>을 짧게 줄이면 '팔선녀의 꿈을 꾸고 돌아와서 아 x발 꿈'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내용이 아니라 <구운몽> 자체가 읽고 이해하면 불교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야기 경전이다. 꿈을 꾼 성진에게 스승인 육관대사는 그럼 지금 현실은 꿈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지금도 누군가의 꿈일 수 있고, 그 꿈은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일 수 있다. 그것이 윤회이며 공이다. 그 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해탈하는 것이다. 성진은 팔선녀와 노닐던 것이 꿈이고, 꿈에서 깬 지금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이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팔선녀 판타지를 섞어만든 불교 경전과도 같다.
장재현 감독은 이전부터 종교의 교리에 주목했다. <검은 사제들>은 가톨릭 중에서 신비주의 단체라고 여겨지던 장미십자회를 다룬다. 가톨릭은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이다. 거기에 주인공 최준호 아가토는 어릴 적 여동생이 개에게 물려 죽을 때, 도망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가톨릭 교리에는 인간이 가진 원죄를 중요시하고, 그래서 미사시간에도 '내 탓이오'라며 가슴을 치는 의식을 한다. 최준호는 그 죄책감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악마는 자신의 가장 약한 곳을 건드린다. 악마와 싸우려면 온전히 자신을 신에게 바쳐야 한다. <검은 사제들>은 내용 자체가 하나의 천주교 경전과 다를 바 없다.
<사바하>역시 마찬가지다. 불교를 다루지만 그중 주술과 신비주의 교리를 가진 밀교를 소재로 하고 있다. 밀교는 오랜 시간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비법을 통해 바로 깨달음을 얻고 성불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세 가지란 수인, 진언, 만다라다. 수인은 손으로 신비한 힘을 가진 동작을 하는 걸 말하고, 진언은 신비한 힘을 가진 주문을 말하며 만다라는 수행을 위해 그려진 도형을 말한다. 작중에는 수인과 진언이 등장해 밀교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쌍둥이이나 쌍둥이가 아니고, 쌍둥이가 아니지만 쌍둥이인 존재들이 서로 얽혀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을 드러낸다. 불이(不二)는 부처와 중생, 선과 악, 나와 네가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불교는 이 지점에서 기독교와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과연 무엇이 절대악인지 모호해진다. 선이라 믿었던 것이 악이고, 악이라 믿었던 것이 선이다. 혹은, 다시 또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파묘>는 민속학과 민속종교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파묘>에서는 그 민족의 정신과 삶, 얼에 대해 다룬다.
조상의 한
LA에 사는 돈 많은 박지용(김재철)의 가족 남자들이 시름시름 앓고, 환각과 환청을 듣고 정신착란에 시달린다. 무당 이화림(김고은)은 법사 윤봉길(이도현)과 함께 미국까지 건너가 그 진상을 파악해 본다. 그리고 조상의 묘의 터가 좋지 않아서 노하신 거라는 묫바람이라고 결론짓고 사람을 모은다. 김상덕(최민식)은 이화림과 종종 일을 같이하는 의열 장의사의 지관(풍수사)이다. 개신교 장로인 고영근(유해진)과 같이 장의사를 한다.
김상덕은 자리를 알아볼 때 흙 맛을 본다. 영화 처음에 나오는 파묘를 한 곳에서 그는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향긋~하다"라는 말을 한다. 오행에서 흙은 사행을 화합하고 중화시키므로, 그 맛이 달고 냄새가 향긋하다고 한다. 그러나 박지용이 의뢰한 묘에 갔을 때, 그는 흙 맛을 보더니 쓴 것을 맛본 듯 퉤 뱉어버린다.
조선은 고려의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국가의 기반으로 삼았다. 성리학은 유교에서 나온 철학으로, 기본적으로 사후세계에 대한 것들은 '알 수 없다' 즉 불가지론의 성향을 띠고 있다. 따라서 불교나 도교를 포함한 모든 귀신이 나오는 종교와 믿음을 미신으로 간주했다. 그렇다면 유교에서의 제사는 어떤 의미인가? 제사는 살아있는 자손들이, 죽은 조상에게 갖추는 효의 개념인 것이다. 그래서 바티칸에서도 그 특별한 개념을 나중에서야 이해하고,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제사 지내는 것을 허용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그것이 조상님을 섬기는 것으로 변질되었다고 여겨,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즉, 원래 유교의 제사는 귀신이 와서 밥을 먹고 조상님이 나에게 길흉화복을 미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에 도교와 민간신앙 등이 합쳐지고, 신분제도가 폐지된 후 너도 나도 좋은 가문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제사가 화려해졌다. 유교의 제사가 자연스럽게 '조상님이 나에게 길흉화복을 미친다'로 흘러가게 된 것은 한민족 사회가 가족중심의 사회이고, 부모가 살아생전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대살굿과 파묘를 하고, 관을 꺼내고 나서 사고로 인해 관뚜껑이 열렸다. 거기서 무언가 험한 것, 한이 서린 조상의 영이 나오게 된다. 관에서 빠져나온 영은 LA에 있는 자신의 아들을 찾아가 창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창문을 열어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귀신이라니, 지극히 한국적이다. 그런데 그 영이 집에 들어와서 처음 하는 것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박지용의 가족들은 그 묘의 주인, 박지용의 할아버지에 대해 철저히 감추려고 하는 느낌이다.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고, 관을 열지도 말라고 한다. 이렇게 할아버지에 대해 감추려고 했다면, 당연히 제사는 한 번도 드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할아버지는 백 년 가까이 제삿밥을 먹지 못했으니, 그 배고픔과 한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 한은 자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된다. 박지용은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의문의 말을 남긴 채 죽는다.
끊어진 허리
"경로를 이탈하여 재검색합니다"라는 내비게이션의 음성을 기점으로, 영화는 허리가 끊긴 듯 완전히 앞뒤가 나눠진다.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생각하면, 앞 이야기는 그것을 여는 포문이었을 뿐이다. 앞부분의 분위기가 너무 괜찮았기에 뒤로 이어지는 부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장재현 감독이 그간 만들어왔던 영화들을 생각할 때, 민속종교와 민속학을 주제로 하는 영화의 내용은 그 민족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우에 의해서 범의 허리가 끊긴 이야기.
여우는 중국 한국 일본에서 '구미호'라는 간을 빼먹는 요괴로 유명하다. 특히 일본에서 최고로 무서운 요괴 중 하나가 하쿠멘콘모우큐비노 키츠네(白面金毛九尾の狐: 백면금모구미호)이고, 후지타 카츠히로의 만화 <요괴소년 호야(우시오와 토라)>의 최종보스 요괴인 백면인도 그것을 모티브로 했다. 여우가 일본어로 키츠네인데, 키츠네 -> 기순애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말은 여러 가지 층위로 해석할 수 있다. 범은 일본에는 살지 않았으나 조선에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일본에게 있어서 범은 조선을 상징했다. 일제는 조선을 점령하자 각종 동물들을 마구잡이로 잡았는데, 그중 호랑이도 있었다. 호랑이는 결국 한반도에서 멸종했다.
일제가 패망한 후, 원래는 일본이 4 대국에 의해 분단될 처지였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을 서방세력과 소련이 나눠 점령함으로써 독일이 당장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한 것과 같은 운명에 놓여있었다. 포츠담 회담에서는 원래 일본을 미국, 영국, 소련, 중국 4개국이 분할통치할 계획이었으나, 중국은 자신들의 국가도 분할되어 버린 마당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한반도만 분할통치를 받게 되었다. 거기엔 패망이 짙던 일본이 1945년에 원폭을 맞고도 항복을 미루고 미뤄 소련이 일주일 참전하게 해서, 콩고물을 얻어가게 한 일본의 책임이 있다. 일본은 소련을 중재자로 해 미국과 강화 협상을 하려 한 것이다. 소련과 미국이 땅을 나눠가지게 된다면 일본보다는 더 동북쪽으로 나아간 한반도를 분할하는 게 미국에도 유리했다. 결국 한반도가 분할통치를 받게 돼,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은 셈이다.
영화에서는 그 말을 풍수지리상으로 해석해 일제가 한반도 곳곳에 쇠말뚝을 박은 이야기를 하고, 또 그것의 99.9%가 거짓이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쇠말뚝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실제로 그런 말뚝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일본이 풍수지리를 그렇게 잘 알지 못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기순애라 불리는 일본의 음양사 무라야마 준지는 실존인물인 무라야마 지쥰을 모티브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라야마 지쥰은 일제 당시 조선의 민속학과 민속신앙을 집대성한 인물로, <조선의 풍수>, <조선의 무격>이라는 책을 냈고 이 책은 현재도 서점에서 팔고 있다. 그만큼 일본은 조선의 민속학에 대해서 잘 알았다. 조선총독부를 경복궁 문을 헐고 그 자리에 지은 것은 풍수를 잘 믿는 조선인들의 기를 꺾으려는 통치방식이라 볼 수 있다. 쇠말뚝이 실재하느냐 아니냐 보다도, 그것이 박혀있다는 낭설이 퍼지면 그것 자체가 풍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더 나아간 해석을 하자면, 쇠말뚝은 진짜 쇠말뚝이 아니라 일제가 한국에 남기고 간 여러 사회적 문화적 잔재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 해방 후 친일파의 득세, 사회에 전반적으로 심해진 가부장제와 군대문화 등이다. 그것들은 지금까지도 한국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그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것으로,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진 제국주의식 군대문화를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말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영화 속에선 실제로 일어났다.
험한 것
가짜 이야기를 파냄으로써 진짜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친일을 했다는 박 씨 집안. 그는 기순애라는 스님이 점지해 준 곳에 묻혔다. 그 무덤에는 오로지 경도 위도의 방위만 쓰여있었다. 박지용의 고모는 기순애가 무라야마 준지라는 일본 음양사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왜 아버지가 그런 악지에 묻혔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일본에 충성했으니 부귀영화를 누리게 한 것이 아니라, 무라야마 준지는 그 충성심을 이용해 험한 것을 서둘러 가리는 뚜껑 정도로 그 무덤을 썼다.
일본의 요괴들은 한국의 영과는 다르게 원념으로 가득 차있으며, 실체가 있는 요괴들이다. 영만 상대하던 무당과 지관은 당연히 그 실존의 공포를 마주하곤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아마 500년 전, 일본을 무시하다가 엄청난 일본 군대의 실체 마주한 조선인들이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거짓이 진짜가 된다. 환상이 실제가 된다. 영이 요괴가 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없다고 믿었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극한의 절망과 공포가 아닐까? 그리고 그 실체는 세키가하라에서 죽고 불멸의 존재가 된 오니(도깨비)였다. 도깨비는 불이다. 오행에서 불은 쓴맛이 난다. 그러므로 그 무덤의 땅은 향긋하지 않았고, 일꾼을 동티나게 만든 일본요괴인 사람얼굴을 가진 뱀 - 누레온나가 살고 있던 것이다. 그 오니가 세키가하라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의 장수였고, "북으로!"라는 외침으로 볼 때 임진왜란에 참전했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박지용 할아버지의 무덤을 파냈을 때, 이순신이 그려진 100원을 김상덕이 그 안에 던져 넣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요괴의 몸에 칼을 넣는 주술로 오니 자체를 쇠말뚝으로 만들어버린 그 기괴함은 거대한 오니의 실체만큼이나 섬뜩하다. 그 민속종교의 모습은 그 민족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한국의 조상귀는 박지용의 할아버지처럼 자손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이화림의 할머니처럼 자손을 지켜주기도 한다. 일본의 요괴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쟁하다 죽은 장수로 만들어진 오니는 다이묘에 대한 충성과 북쪽으로 진군하며 모두 죽이려는 원만 남아있다. 일본과 한국의 귀신은 물성도 다를 뿐 아니라 감정도 다르고 주술의 방식 자체가 다르다. 대체 이것을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나무와 쇠
일본과 한국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음양오행이다. 한국과 일본만이 요일 이름으로 음양오행을 쓰고 있다. 김상덕과 이화림은 처음부터 겪어보지 못한 험한 것들을 상대하기 위해, 풍수와 무속을 음양오행적으로 섞고 변형시켜 대응해 왔다.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강하다. 따라서 음양사는 한국에 저주를 내리기 위해 풍수를 이용했다. 오행에 의하면 한국은 목의 기운을 가진다. 장의사 앞의 나무, LA의 박지용 집 앞의 나무, 박지용 할아버지가 있는 산의 나무, 보국사의 다듬지 않은 원목기둥이 중요하게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목과 상극인 것은 쇠다. 쇠는 목을 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땅에 쇠를 박아 넣는 것이 풍수적으로 상극의 행위다. 또한 목은 오장육부로 따지면 간에 해당한다. 오니가 여우에 의해 만들어졌다곤 하지만 인간의 간을 빼먹는 것은 또 그렇게 딱 맞아떨어진다.
이화림의 할머니가 오니를 막아서지만 그것도 잠시, 오니는 도깨비불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오른다. 김상덕은 자신의 앞으로 떨어진 도깨비불, 오니를 마주한다. 이때 이화림은 무엇이든 해보려고 준비해 온 말피를 쏟아붓는다. 사실 한국 도깨비가 말피를 싫어하기 때문에 부은 것이었다. 오니는 도깨비와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다. 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니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그것을 본 김상덕은 일본의 요괴는 음양오행이 실체화된 것이라 판단하고, 원래는 기운을 뜻하는 음양오행을 말 그대로 실체로 해석해 대응한다.
말피가 물이기 때문에 상극인 불, 오니를 죽이고 있다. 물과 나무는 상생으로, 나무를 강하게 만든다. 또한 상모에 의하면 강해진 나무를 쇠는 자를 수 없다. 실제로 물을 먹어 단단해진 나무는 쇠도 자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오행 상극 개념에 오류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건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화된 존재의 오행을 따져야 한다. 존재하는 요괴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가. 풍수에서 오행을 이용할 때도, 풍수는 실제 물과 나무와 흙을 보는 것이므로 오행의 상극과 반대로 해석하는 부분들도 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나무는 한국을 상징한다. 불과 검에 대항하는 피에 젖은 나무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일본과 한국의 모습을 상징한다. 일본은 500년 전 포와 검으로 조선을 쳐들어왔지만, 백성들은 의병을 일으켜 피에 젖은 손으로 7년 동안 나라를 지켜냈다. 100년 전 일제가 쳐들어와서 결국 조선을 자신들의 나라로 만들었을 때도, 독립운동가들은 자주독립을 외치며 피를 흘리고 죽어갔다. 결국 오니를 피에 젖은 나무로 때려잡는 김상덕의 모습은,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짓밟아도 절대 굴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이다. 쇠로 나무를 자른다고 할지라도, 그 피는 나무를 단단하게 만들고 결국 쇠를 이겨낼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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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사 앞에 그려진 문양을 보고, 김상덕은 "풍수 문양이 절 이름에 그려져 있어서 의아했다"라고 한다. 그 문양은 바로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나오는 태극문양이다. 그 태극 문양은 성리학에서 받아들여, 성리학의 이기론과 음양을 설명하는 도상으로 많이 쓰였다. 조선의 어기로 쓰인 태극팔괘도의 태극문양도 바로 이 주돈이의 태극문양이다. 딱히 상징하는 문양이 없던 풍수에서는 음양을 상징하는 이 태극문양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불교는 음양오행 사상이 아니라 다른 상징하는 문양들이 많기 때문에, 주돈이의 태극을 쓴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불교에서 성리학을 상징하는 태극문양을 쓸 리가 없으므로. 사실 알고 보니 그곳은 절이긴 했지만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풍수 때문에 쓰기도 했겠지만, 보국사라는 이름과 역할을 생각해 보면 조선의 태극문양을 쓴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에 '반일'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이 영화가 풍수, 음양오행을 소재로 한 것을 상기해 보면, '일본은 절대악이니 배척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음양오행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이 없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우주를 이루는 기운이다. 우리의 땅을 유린한 일본의 세력이 있기 때문에 맞서 싸운 것이다. 한국이 목이라고 했지만, 사실 일본도 목이다. 오행으로 생각하면 일본과 우리는 형제와도 같고 바로 옆에서 서로 상생하며 나아가야 할 존재이고, 그 오행을 깨트린 일본의 침략세력을 견제하고 조화롭게 되돌려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그 상생을 깨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칼을 나무에 꽂아놨을까. 보이는 칼이라면 파내고 뽑으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칼은 파낼 수도 없다. 보이지 않는 칼을 지키는 묘도 많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지만, 굿을 하다 자꾸 오니가 떠오르는 이화림처럼 순간순간 더 섬뜩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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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느끼는 상실감과 후회
시놉시스
예분은 손녀인 수정을 물가에서 사고로 잃게 되어 하루 종일 수색 탐지기로 죽은 손녀의 물건들을 건지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녀인 수정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예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1년 동안이나 긴 세월을 물가에서만 맴돈다.
오늘은 예분이 손녀 수정의 장례식을 치르는 날인데 조문객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옥임이 찾아와 예분에게 말을 걸며 그 때 사건을 회상시키는데...
손녀인 수정은 강가에서 래프팅을 하다가 죽게 되었다. 그 사건을 목격한 예분에게는 자신한테 닥친 일이 큰 미스터리가 되어 수색 탐지기를 써서 사고 현장에서 손녀가 가졌던 물건을 찾기 위해 애쓴다.
아마도 가까운 지인이나 친척의 죽음을 목격하면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 것 같다. 죽음의 공포는 누구에게 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강가에서 놀다 죽은 어린아이의 시체를 보며 슬퍼하는 부모의 모습이 예분에게 다시 큰 트라우마를 회상하게 만드는데 자신이 강가에서 수색 탐지기로 손녀인 수정의 물건을 찾다가 공사장 인부들과 시비가 붙고 경찰들한테도 이제 그만 잊으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손녀의 시신을 찾을 수도 없었고 유품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고 그런 죽은 손녀를 지키지 못한 한이 예분에게는 큰 미련으로 남겨졌을 것이다.
그 죽음의 단서는 사실 죽은 수정의 친구였던 지윤에게 있었는데 지윤은 수정을 이끌고 래프팅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며 자신은 수영을 잘한 수정을 부러워했다. 지윤은 집에만 가면 보이는 환각과 환청 때문에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는데 자신의 아버지는 도박 빚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고
자신을 키워주던 할머니인 옥임조차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 이후로 자신이 속한 수영부에서도 부진한 실력을 보여주게 된다.
과연 이 영화가 보여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필자가 보기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생기는 상실감과 죄책감인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등장인물인 예분과 지윤은 소중한 걸 잃어본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둘의 상처는 자신의 내면을 파괴해버리기까지 한다.
결국 후회는 돌이킬 수가 없기에 집착으로 번져나간다.
이걸 막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기에 힘이 드는 것이다.
상실감은 커다란 죄책감을 만든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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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법의 파괴가 언제나 혁신은 아니지
구파도 감독의 신작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를 좀 더 깊게 감상하려면, 이 영화를 두 계보의 연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구파도의 필모그래피다. 그는 청춘의 질감을 포착할 줄 아는 감독이다.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비롯해 그가 각본을 쓴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는, 첫사랑의 경험을 대만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하 로코물) 특유의 장르적 문법과 결합한 영화다. 한편, B급 괴수물 〈몬몬몬 몬스터〉는 전혀 다른 느낌의 청춘물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로코물 주인공과는 정반대에 있는 ‘왕따’ 학생으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상처만 받은 청춘이다. 요컨대, 구파도는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혹은 가장 참혹한 순간을 (로코물이든 괴수물이든) 장르적으로 풀어내는 데 재능이 보여온 감독이다.
구파도를 이해하는 또 다른 계보는 장르 영화의 문법, 그중에서도 대만 로코물의 문법에 보다 집중했을 때 드러난다. 특유의 과장된 연출로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비롯해, 프렝키 첸 감독의 〈나의 소녀시대〉, 〈장난스런 키스〉 등은 국내에서 꽤 관심을 받은 영화들이다.
대만 로코물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로코물이 더 이상 주류 장르가 아니라는 상황을 그 첫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로코물의 ‘위기’는 로코물의 주 소비층이었던 2030 여성이 페미니즘 의식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성애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묘사하는 로코물에 회의를 품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로코물이 소소한 화제는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과거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신드롬을 일으킬 수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대만 로코물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주류가 될 순 없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소비층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로서 대만 로코물의 장르적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로코물의 시대적 위기와 이를 돌파해내는 방식은 영화 내부의 표현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여름날 우리〉를 비롯한 대만 로코물뿐만 아니라 한국의 로코물(〈피끓는 청춘〉, 〈너의 결혼식〉 등) 역시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로코물은 아니지만 화제를 모았던 대만 멜로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국의 〈건축학 개론〉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다루는 이들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이 과거인 이유는 양국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는 80년대 후반, 대만에서는 90년대 초반에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이에 사람들의 관심은 ‘체제’, ‘정의’와 같은 거창한 것들에서 일상으로 옮겨왔다. 사랑은 일상의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확인하게끔 해주는 최상의 소재다. 즉, 퍽퍽한 삶을 영위하기 바빠 사랑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시대적 조건과 맞물려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과거를 추억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소비함으로써, 과거의 아름다움을 척박한 현재로 연장시키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 영화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로 돌아와 보자. 이 영화는 귀신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두 계보(청춘 영화‧로코물)의 연장에 있다. 하지만 결이 조금 다른 지점도 있다. 이 영화는 대만 로코물의 문법을 ‘위반’한다. 기존 대만 로코물은 다소 과하게 느껴질 정도의 연출로 사랑을 판타지‘처럼’ 그려낸 데 반해, 이 영화는 아예 대놓고 판타지를 표방함으로써 대만 로코물의 장르적 성취를 스스로 허물어버린다. 사람들이 대만 로코물에 기대하는 건 이제 더는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랑을 ‘현실’에서 펼친다는 점인데, 영화의 무대를 아예 판타지로 바꿔버림으로써 대만 로코물 특유의 ‘비현실적 현실감’이 사라진 것이다. 사랑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있을 때는 성취 가능한 것처럼 보여 몰입할 수 있지만, 아예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면 오히려 공허한 현실을 환기해버리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요컨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패착은 판타지‘같은’ 영화를 바라던 관객에게 ‘대놓고’ 판타지를 표방했다는 데 있다. 저승세계의 시각적 구현과 저승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다 보니 대만 로코물의 기본이 훼손된 것이다. 이 영화는 ‘창조적 파괴’라기에는 저승세계의 비주얼과 역할이 어딘가 밋밋하고, 대만 로코물의 문법에서도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문법의 파괴가 언제나 혁신인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싶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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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수히 생산되는 '나' 속에서 진정한 내 이름을 찾기.
자본과 번호, 이름과 사랑
퇴근하고 잔뜩 지친 몸을 이끌어 지하철에 오른다. 각자의 온도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의 뜨끈한 등과 어깨를 꾹, 꾹 밀며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 본다. 한 정거장 지나자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순간, 당신의 눈이 드물게 번쩍 빛난다. 그러나 옆에서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던 중년 여자가 당신보다 훨씬 빠르게 엉덩이를 붙여버린다. 당신은 미간을 팍 구기고 다시 고개를 숙여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다. 유해한 도파민이니, 뇌세포를 파괴한다느니의 말들은 쓸모없다. 무의미한 작은 직사각형의 세상으로 당신은 있는 힘껏 오늘로부터 도망친다.
결국, 21 정거장 내내 서서 온 당신은 길거리에서도 핸드폰에 눈을 떼지 않는다. 아무리 편한 운동화를 신어도 언덕을 오르는 종아리는 풍선처럼 부풀어 터질 것만 같다. 당신은 길고도 긴 여정 끝에 엘리베이터를 타 버튼을 누르다가 무심코 거울 속 자신과 마주한다. 그 속의 사람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당신의 자리가 아닌) 당신의 자리를 뺏은 중년 여자와 얼굴이 겹쳐지면서, 핸드폰으로 겨우 외면했던 질문이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내가 원래 이런 표정이었나?"
나는 정말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름 모를 여자와 비슷하게 생긴 거울 속 나는 몇 번째 '나'일까?
블랙 코미디 + SF + 우화의 공식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지독히 사실적이면서도 어쩐지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블랙 코미디 + 우화' 공식으로 성공한 작품을 말하자면 당연히 <기생충>(2019)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자본과 계급으로 분명하게 나뉜 두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 속이 울렁거리면서도 어쩐지 헛웃음이 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폭싹 젖는 감각이 생생한 동시에 몽롱한 동화 같으니 말이다. 한국 SF 장르와 봉준호 감독 세계관에 한 획을 그은 <설국열차>(2013)도 디스토파이 세계관에서 아주 긴 열차 칸으로 나뉜 계급 이야기다. 위와 아래, 앞과 뒤. 뒤집으면 언제든 서로가 될 수 있는 구조. 그는 열과 행의 이미지로 끊임없이 자본주의에 잠식된 현재와 미래를 그리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그의 대표적인 크리처 무비인 <괴물>(2006)과 <옥자>(2017)도 전체적인 세계관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빠질 수 없다. 이렇게 계승한 블랙 코미디 + SF + 우화로 더욱 견고해진 봉준호 감독의 작가 주의 세계관을 통해 <미키 17>(2025)이 세상에 나왔다.
<미키 17>은 지구가 멸망을 앞둔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배경이다.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자고 주장하는 이들과 망가진 지구를 어떻게든 고쳐서 쓰자 주장하는 정당의 대립이 이루어지는 혼란함 속에서, 친구 '티모'와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해 거액의 빚을 진 주인공 '미키'는 빚쟁이를 피해 지구를 떠나려고 한다. 얍삽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티모와 달리 자존감도 낮고 기술도 없었던 미키는 어떻게든 영토 개척 프로젝트 우주선에 탑승하기 위해 모두가 기피하는 '익스펜더블'에 지원한다. 접수를 받는 직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지원서를 제대로 읽었는지 몇 번이나 물어봤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익스펜더블은 진짜 '극한 직업'이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모두 미키를 앞세운다. 우주선을 고치는 줄 알았더니 사실 방사능 실험이었고 끔찍한 고통 속에서 어떻게 몸이 망가지는지 설명해줘야 한다. 4년의 항해 끝에 도착한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있을 수도 있으니, 당연히 미키가 먼저 땅을 밟고 있는 힘껏 공기를 마신다. 그리고 피를 토한다.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몇 번이고 죽음은 미키'들' 덕분에 다른 요원들도 마음껏 차가운 입김을 볼 수 있게 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사랑은 꽃핀다. 주변 사람들의 무시와 일상에 도사리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미키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나샤'의 사랑이다. 미키는 어떤 상황에서도 늘 곁을 지켜주는 나샤를 사랑하면서도, 최고의 요원인 그녀가 왜 하찮은 자신을 사랑하는지 의문을 품으며 그녀를 내조한다.
그날도 17번째 미키는 추락사로 몸이 반토막이 나 죽었어야 했는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얼떨결에 살아남아 지나가던 티모에게 구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티모는 떨어진 무기만 챙기고 다친 그를 향해 재수 없는 질문만 툭 던진다.
"죽는 건 어떤 느낌이야?"
그렇게 덩그러니 남은 미키는 행성의 주인인 '크리퍼'에게 잡아 먹히며 최후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크리퍼는 잡아먹긴커녕 미키를 질질 끌고 가 얼음 동굴 밖으로 내보낸다. 크리퍼가 자신을 눈밭에 던져 얼려 죽일 작정이라고 생각한 미키 추위에 떨며 힘겹게 함선으로 돌아온다. 잔뜩 지친 몸을 침대에 내던지는 순간, 어떤 인기척에 이상함을 느끼고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또 다른 자신, 미키 '18'과 마주한다.
복제의 사이클
'익스펜더블'은 사뭇 다른 원작과 영화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의 '복제 인간'과 다른 점은 미키가 자신이 익스펜더블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징그럽고 코믹한 정치인 마샬 부부의 영토 개척지 정책의 핵심은 좋은 유전자로만 구성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몇 번이나 복제된 미키는 불량품에 불과하다. 나샤와 카이, 과학자 도로시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도 미키가 느낄 고통과 죽음을 경시한다. 죽음에 대한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 누구도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살피지 않는다. '그게 네 쓸모고 직업이야.'라는 폭력적인 말 한 마디면 미키마저도 고개를 끄덕이니까. 과학자와 의료진도 처음엔 프린팅 되는 몸을 잘 받아줬지만, 나중에는 바닥으로 꼴사납게 떨어져 구겨진 몸에 주사 바늘을 꽂을 뿐이다.
시체, 쓰레기 등 자본과 사회의 찌꺼기는 모두 '사이클러'에 던진다. 용광로처럼 생긴 사이클러는 단순히 쓰레기를 소각하는 게 아닌, 단백질을 다시 분해하고 재생산해서 다음 미키를 만들어내고 선원들의 식사가 된다. 익스펜더블이 아닌 인물들도 자기도 모르게 이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셈이다. 미키는 끊임없이 소각되고 다시 출력되며, 권력에 의해 멸시받는 노동자들의 응집된 몸이 된다.
꼭 프린터기에 들어가야만 복제 인간의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마샬 부부는 특히 우수한 가임기 여자 요원들에게 관심이 많다. 그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원대한 계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궁, 아니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샬 부부를 향한 카이의 날카로운 질문처럼 그들에게 여성은 다른 의미의 '인간' 프린터다. 인류 번식과 자신들의 부를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를 출산할, 인간이지만 프린터의 역할을 해줄 존재들인 것이다. 그래서 크리퍼와 인간의 첫 대면에서 미키가 아닌 제니퍼가 죽었을 때 추악한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카이와 제니퍼가 연인 사이인 줄도 모르고, 여성이라면 당연히 남성과 결합해 아이를 생산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거란 편견도 끼얹으며 말이다.
다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일파 마샬은 이상하리만치 '소스'에 집착한다. 살아있는 베이비 크리퍼의 꼬리를 잘라 바로 믹서기에 갈아버리는 장면은 경악스럽다. 굳이 손가락에 찍어 맛을 보라고 권유하고, 배양육인지도 모르고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는 미키에게 메인 디쉬가 아닌 소스 맛이 어떤지 묻는다. 이렇듯 소스는 일파가 강력하게 표현하는 권력의 상징이자 일개 노동자들과 자신의 차이다. 효율을 위해 정해진 칼로리 안에서 구역질 나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닌, 맛과 건강을 추구하고 음미하는 삶이 최고의 권력인 것이다. 미키를 공개적으로 무시하긴 하지만, 마샬 부부의 눈에는 다른 노동자들도 비슷하다. 노동자 1, 노동자 2, 비위를 잘 맞추는 노동자, 말을 안 듣는 노동자. 선원들은 자신들을 미키와 달리 분명한 이름과 존엄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겠지만, 부부의 시선에선 언제든 대체 가능하고 휴지 조각 같은 존재들일뿐이다. 생존을 인질로 잡고 있는 자본의 힘이 있는 한 사이클러는 무엇보다 뜨겁고 부지런히 권력을 위해 움직인다.
인간보다 나은 크리퍼
’Creepy’에서 유래된 이름인 ‘크리퍼‘는 마마 크리퍼를 중심으로 완전한 공동체 생활을 한다. 인간의 시선에선 낯선 외형이 두렵고 징그럽긴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니플하임에 마음대로 정착해 들쑤시고 다니는 인간이야 말로 외계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 이름도 꽤 무례하게 느껴진다.) 애초에 크리퍼들은 인간을 잡아먹는 생명체도 아니었고, 유일한 친구인 티모마저 외면한 위험에 빠진 미키를 구해준다. 미키는 크리퍼의 의도를 완전히 오해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나샤는 '크리퍼가 구해줬다'라고 정확하게 짚어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2000)를 본 사람들이라면 크리퍼를 보자마자 ‘오무’가 떠올랐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 나라와 나라의 대립을 그린 영화로 주인공 ‘나우시카’가 전쟁을 멈추기 위해 오무 무리들과 소통하는 장면은 미키가 통역기를 사용해 크리퍼에게 곧 가스가 살포될 테니 도망치라고 알리는 장면과 비슷하다. 크리퍼가 본격적으로 서사에 등장하는 시점부터 영화는 어쩐지 애니메이션처럼 보인다. 이러한 지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장르 믹싱 기법이 눈에 띈다.
크리퍼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소통하며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미키의 이름도 잡혀있는 베이비 크리퍼 ‘조코’를 통해서 들었을 것이다. 마마 크리퍼는 외형이 똑같은 두 베이비 크리퍼의 이름을 정확히 구분한다. 죽은 아이는 ‘로코’, 잡혀 있는 아이는 ‘조코’. 마마 크리퍼를 중심으로 하나의 정신을 공유하지만, 그들은 명확하게 각자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으며 공동체가 힘을 합쳐 움직여야 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잘 알고 있다. 외형도 전부 다르고 고유한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치환되는 인간들이, 정작 동료가 위험에 빠진 순간 힘을 합치는 이들은 지극히 소수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아마 미키가 크리퍼였다면 마마 크리퍼는 단순히 그의 이름에 번호를 붙여 구분하는 단순하고도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익스펜더블이라는 비윤리적인 직업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더 앞서 삶의 터전인 행성을 그렇게 오염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역사를 넘나들며 과학적,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으니 당연한 대가라는 말은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받은 만큼만 되갚고, 선의를 보이는 이에게는 관용을 베푸는 태도. 이러한 크리퍼의 자세에서 우리는 진작 갖추어야 할 인간성을 배운다.
나를 마주하기
영화는 미키 ‘17’과 미키 ‘18’이 대면하면서 본격적인 위기에 닥친다. 미키 18은 지금까지 누적된 미키의 정보를 다운로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키 17과 완전히 반대의 성격이다. 뭐만 하면 죽여버린고 말하며 높은 폭력성을 띄고, 대책 없이 충동적이며, 엄청 밝힌다. 17은 자신을 가차 없이 죽이려는 18과 몸싸움을 하면서 나샤에게 전해 들었던 지금까지의 미키와는 차원이 다른 녀석이라는 걸 실감한다.
시간을 앞당겨 익스펜더블이 윤리적 논란에 휩싸였을 때로 돌아가본다. 악용하는 사람이 생길 거라고 주장하자마자 한 미친 과학자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위해 '멀티플'을 만들어 노숙자를 죽인다. 둘도 아니고 셋이나 만들어 무고한 이들을 잔인하게 죽인 사건을 계기로, 익스펜더블은 공식적으로 지구 안에서 시행이 금지되며 멀티플은 중범죄가 된다.
다시 돌아와 미키 18을 죽이려고 나름 노력해 보는 미키 17의 눈을 보자. '또 다른 나'와 처음 마주한 그는 이제 곧 세상에서 사라지고 죽을 거란 공포와 자신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다는 놀라움, 혼란 등에 빠져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 채 몸이 반쯤 사이클러 속에 들어간다. 반면, 미키 18은 17에 대한 확실한 반감이 있다. 거울을 보듯 겁에 질린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모습에 17은 더 혼란스럽다.
비슷하지만 미세한 차이점이 있는 얼굴로 나란히 서있는 둘의 모습은 마치 자아 분열의 가시화된 것 같다. 얼음 동굴에서 무심코 쓰레기를 버리듯 던진 티모의 질문은, 실험쥐처럼 수없이 이용당하는 미키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자기 방어와 누적된 폭력성을 발현시킬 트리거로 작용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미키 17이 처음으로 욕하고 분노하는 존재가 18이라는 점이다. 처세술에 강하고 얍삽한 티모를 비꼬는 발언은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부당함을 주장하거나 무례함에 대응한 적 없던 미키 17은 나샤에게 접근하는 또 다른 '나'를 향해 화를 참지 못한다. 심지어 마샬 부부와의 만찬에서 입에 올리지도 못할 끔찍한 고통과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7이 씩씩 거리는 대상은 다름 아닌 18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호기심에 빨간 버튼을 눌러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미키는 죄책감에 모든 우선순위에서 자신을 제외한다. 17의 이러한 위축된 태도는 18의 화를 키운다. 만찬에 초대해 놓고 실험 중인 배양육을 먹인 것도 모자라, 타인의 목숨보다 카펫이 소중한 부부에게 뭐라고 하고 나왔냐는 질문에 17은 작은 목소리로 답한다.
"저녁 식사 감사하다고... 하고 나왔어."
그런 수모를 겪고도 감사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냐고 불같이 화를 낸 18은 당장이라도 케네스를 죽이겠다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정말 그를 향해 망설임 없이 총구를 겨눈다. 폭발하는 공격성이 온전히 '나'를 지키기 위해 표출될 때, 관객은 17을 향한 18의 반감이 애증이었음을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미키 18은 17과 대치하던 중 티모를 보자마자 사이클러에 던져 죽이려 든다. 비록 분열된 두 사람이지만 미키가 처음으로 자신을 지키려고 시도한 순간이었다.
내가 너라서 알 수 있는 열등감과 자기혐오, 그리고 트라우마. 빨간 버튼 따위로 사고가 날 만큼 자동차를 엉망으로 만든 회사 잘못이라는 18의 말은 평생 미키가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그는 무모하고 폭력적인 또라이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용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뻔해도, 결국 우리를 구하는 건 사랑
서로 으르렁 거리는 17과 18 사이에서 혼자 신난 사람은 다름 아닌 연인 '나샤'다. 지금껏 다양한 미키를 봐온 나샤는 정반대 성격의 두 미키를 보며 굉장히 흥분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신날 수 있냐는 미키 17의 질문에 그녀는 '반대 상황이라면 너도 나처럼 좋아할걸?'하고 가볍게 받아친다. 멀티플인걸 숨겨줄 테니 미키를 나누자는 카이의 말에는 불같이 화를 낸다. 16이든 17이든 18이든, 나샤에게 미키는 오로지 단 한 명이니까.
나샤는 엉뚱한 면이 있지만, 인정받은 소수 정예 엘리트 요원으로서 단단한 내면과 외면을 갖춘 인물이다. 미키는 다방면에서 월등한 그녀가 대체 왜 가장 낮은 계급인 자신과 사랑을 나누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바이러스와 각종 실험으로 죽어가는 미키를 두고 볼 수 없던 그녀는 직접 진공복을 입고 실험 캡슐 안으로 들어간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자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서 희생하는 자를 돌본다.
베이비 크리퍼를 구하기 위해 몸이 묶인 채 이로 밧줄을 잡은 나샤는 미키에게 신호를 받고 'C3' 전략을 펼친다. C3는 아기를 안는 것 같은 자세로, 미키와 나샤의 섹스 체위 중 하나이다. 칼로리마저 철저히 계산하고 먹어야 하는 우주선 안에서 섹스는 가장 비효율적인 에너지 활동이다. 마샬 부부는 생존을 빌미로 니플하임에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섹스를 금지시키지만, 그들은 장난으로 체위를 그려가며 계속 몸을 겹친다. 나샤가 미키의 전략으로 베이비 크리퍼를 구해 눈밭을 달리는 장면은, 그들의 섹스가 결여된 존중과 냉소적 자본주의로 만들어진 노동과 권력보다 더 가치 있음을 증명한다.
케네스와 대치하던 18은 기어코 죽음의 순간을 마주한다. 그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은 케네스는 그런 감정이야 말로 인간성의 증거라고 자극한다. 그러나 미키 18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나샤와 함께 서 있는 미키 17을 보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줄 사랑이야말로 지금 모두에게 필요한 본성이라는 것을. 뒤에 붙는 거지 같은 숫자 따위는 집어치우고 미키 '반스'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 그들을 괴롭혔던 동그란 버튼을 꾹 누른다.
거대한 스케일의 SF 영화로 봉준호 감독은 사랑을 말한다. 너무 큰 서사와 화제성에 비해 작은 주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만 더 고민해 보자. 사랑이 조금 뻔하긴 해도, 작았던 적은 없다. 우리는 언제부터 나를 사랑하는 것도, 너를 사랑하는 것도 식상한 말처럼 느껴져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나? 무수한 호칭에 짓눌려 더미 속에 묻혀버린 내 이름을 건져 먼지를 툭툭 털어주고, 어쩐지 낯선 내 얼굴도 한 번 바라보자. 그리고 힘이 남는다면 아끼는 이들의 이름도 찾아 숫자는 치워버리고 광이 나게 닦아보자. 미키와 나샤, 크리퍼의 사랑으로 우리는 그 가치를 배웠으니까.
무수히 생산되는 '나' 속에서 진정한 내 이름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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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 보기 좋은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이제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된다고 하는데요...!!
더운 날에는 밖으로 나가기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무더위로 인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을 위해 영화를 추천 드리려고 합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영화와 함께 여름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여름에 보기 좋은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무스탕: 랄리의 여름
Mustang, 2015
ⓒ 네이버 영화
synopsis
터키의 한 외딴 마을에서 평화롭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다섯 자매. 달콤한 첫사랑 진행 중인 첫째 소냐, 둘째 특유의 우직하고 묵묵한 성격을 지닌 셀마, 소녀 감성 넘치는 에체, 착하고 순종적인 누르, 다혈질이지만 정 많고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랄리까지, 나이는 제각각이지만 친구처럼 편하고 서로의 우애는 가득하다. 하지만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에서의 남자아이들과 함께 물장난한 것이 구설에 오르게 되고 그 이후 외출 금지 및 홈스쿨, 그리고 갑작스러운 맞선이 시작된다. 천국 같았던 집은 감옥이 되고, 갑작스러운 결혼으로 자매들이 생이별하게 되는 위기가 찾아오지만, 집안 어른들 몰래 빠져나가 함께 관람하는 축구 경기의 짜릿함, 첫째 소냐의 뜨거운 첫사랑, 그리고 랄리의 자유를 향한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랄리와 소녀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가장 아름답고 뜨거운 여름이 시작된다.
cine pick!
칸국제영화제 및 베니스영화제 초청 및 수상을 받고, 로튼 토마토 신선도 97%를 달성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영화 <무스탕: 랄리의 여름>. 영화는 신예 감독인 데니즈 겜즈 에르구벤 감독의 장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진정성 넘치는 이야기와 섬세한 연출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 2017
ⓒ 네이버 영화
synopsis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건너편 ‘매직 캐슬’에 사는 귀여운 6살 꼬마 ‘무니’와 친구들의
디즈니월드 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cine pick!
거장 감독 션 베이커 특유의 섬세한 연출, 아이들의 놀라운 연기력, 그리고 동화같은
따뜻한 색감까지 더해지며 영화 매체부터 관객들까지 모두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보희와 녹양
A Boy and Sungreen,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모든 것이 두렵고 어려운 소심한 중학생 보희와, 두려운 것 하나 없는 씩씩하고 당찬 녹양.
한날한시에 태어난 둘도 없는 단짝★절친★베프. 보희와 녹양의 좌충우돌 모험이 시작된다!cine pick!
10대 청소년들의 성장 모험담을 담은 영화 <보희와 녹양>. '싱그럽다'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영화의 색감과 이들의 이야기. 밝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며, 지금 이 계절에 보면
딱 좋을 영화이다.
코다
CODA,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이는데…cine pick!
선댄스 영화제 역대 최초 US 드라마틱 부문 4관왕을 석권했으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코다>. <원 데이> 에밀리아 존스와 <싱 스트리트> 퍼디아 윌시-필로 그리고 <라라랜드>
음악 감독 '마리우스 드 브리스'가 참여해 기대를 높인 작품이다.
여름날 우리
My Love,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너에게 풍덩 빠져버렸던 17살의 여름. 너를 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21살의 여름.
그리고 몇 번의 여름이 지나고 다시 만난 너, 이젠 놓치지 않을 거야.cine pick!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여름날 우리>는 중국에서 개봉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누적 수익 약 7억 위안(한화 약 1,400억 원)을 달성했다. 또한 국내에 공개된 예고편의
누적 조회수가 약 100만 회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견니'로 국내에서 인기를 끈 허광한과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내공을 다진 장약남이 출연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썸머 필름을 타고!
It's a Symmer Film, 2020
ⓒ 네이버 영화
synopsis
시대극 찐팬으로 영화 감독을 꿈꾸는 고교생 ‘맨발’.
영화 동아리에서 자신이 기획한 <무사의 청춘>이 탈락되자
직접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절친 ‘킥보드’, ‘블루 하와이’와 드림팀을 결성한다.
우연히 극장에서 만난 미래에서 온 의문의 소년 ‘린타로’를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한 ‘맨발’은
꿈에 그리던 촬영을 시작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지는데…cine pick!
일본 영화제에서 온라인으로 상영을 제공한 <썸머필름을 타고!>는 한국에서 화제를 모았고,
적극적인 개봉 요청에 공식으로 한국에서 개봉하게 되었다. 매력적인 캐릭터, 청춘 그 자체인
스토리, 그리고 청량한 색감까지! 단순한 청춘 영화가 아닌 다양하고 또 깊은 메시지를 담은 영화이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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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년 기다린 값을 하긴 했던 <아바타> 후속작
그 후
누군가가 "제이크! 잘 지내고 있어?"라고 묻는다면 그는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난 현재. 반인불수의 몸이었던 제이크 설리. 지금은 나비족의 몸을 얻어 살고 있다. 인류와의 전투가 있었다. 쉽지 않게 이긴 설리. 설리는 같은 전투 파트너였던 네이티리와 함께 가족을 이뤘다. 아이는 세 명이나 낳았다.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아이들 말고 부부에겐 두 자녀가 더 있다. 이 두 명의 아이들은 입양아들이다. 한 명은 '키리'다. 키리는 1편에서 사망한 그레이스 박사의 딸이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른 아이는 '스파이더'다. 이 아이는 나비족이 아니다. 엄연히 인간인 스파이더. 인류와 나비족 간의 전투가 끝나고 몇몇 과학자들은 판도라에 남았었다. 원래라면 판도라에서 지구로 돌아가야 했던 아이지만 나이가 너무 어렸던 탓에 나비족과 함께 살았던 아이. 그 아이도 어느덧 커서 나비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두 명의 부모에 다섯 명의 자녀라.. 쉽지 않다. 만약 2022년의 대한민국이었다면 애국자로 칭송받아 마땅했을 것이다. 난이도가 높은 육아 생활. 한 명만 낳아 길러도 어려운 걸 다섯 명 씩이나 감당하고 있으니 일상이 어지럽지 않을 수가 없다. 토루크 막토로서 외부 세력의 침략에 대응하는 설리. 이번에 설리와 군인들은 RDA의 보급 수송 열차를 약탈하는 일을 맡고 있다. 망을 봐야 하는 설리의 두 아들 로아크와 네테이얌은 아버지의 명을 안 듣고 군사작전에 참여한다.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 두 아들. 아버지는 아들을 크게 혼낸다. 근데 이 두 아들에게 위축된다는 것은 아예 모르는 이야기다. 어딘가로 향하는 설리와 네이티리의 아이들. 1편에서 인류와 나비족이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온갖 시체들이 보이는 것 같다. 울창한 숲, 출구는 물의 길처럼 안 보이는 것 같다. 서성이는 아이들. 아이들은 저 멀리에서 모르는 얼굴의 아바타들을 확인한다. 쟤들 뭐야? 처음 보는 얼굴들 같았다. 아니. 그 낯선 아바타들은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 너는 설리의 아이들이군."
현장 로케이션 힘들었을 듯
13년을 기다려온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13년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12년이 된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선거를 3번 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인간은 이 긴 시간 동안 영화를 내지 않았다. 만약 어떤 영화감독이 있다고 치자. 한 영화가 나오고 13년 후에 다음 작품이 나온다고 해보자. 그럼 그 사람을 영화감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마 투자받는 것도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카메론 할아버지는 창작자의 이름값과 시리즈의 파워 하나 믿고 차기작을 발표했다. 이 긴 시간 동안 뭘 했어?
제임스 카메론은 이 시간 동안 세계관을 구상하고 CG 이미지를 뽑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이 <아바타 : 물의 길>은 긴 시간을 희생한 만큼의 가치가 있다. 글쓴이가 영화를 보다 보면 이 극의 각본을 어떻게 설정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의 이야기를 먼저 그린 후 세계관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후자를 먼저 만든 다음 줄거리를 짠 느낌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영화는 물 샐 틈이 없다. '이런 것도 짰어?' 싶은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하는 제의식, 나비족이 타고 날아다니는 동물, 판도라에 사는 다른 이주민, 그 외에도 어떤 행사든 빼곡히 차있는 디테일까지. SF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 세계관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관객을 설득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감독은 이해라도 한 듯이 긴 시간을 압축시킨 설득력을 구현한다. 영화의 자그마한 소재 하나하나가 다 판도라 행성, 내지는 나비족의 오리지널리티가 살아 있어 작품의 리얼리티성을 부여한다. 어디서 본 것들인데 묘하게 변주한 느낌이 탁월했다.
이 세계관의 디테일을 살리는 방식 중 하나는 때깔이다. 어마어마하다. 아마 내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이미 찜해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두 곳의 공간 세팅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바로 숲과 바다라는 것이다. 첫 번째 '숲'이라는 공간은 이미 전작에서 볼 수 있다. 거기서 놀랍던 이미지가 그대로 보인다. 그대로 보인다고 해서 뭔가 신선함이 부족하지는 않다. 극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숲' 신은 아이들이랑 행복한 일상을 즐기는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제주에 살다 보면 곶자왈이라는 곳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글쓴이는 제주 원주민이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더 곶자왈 같은 숲 묘사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시각화는 굉장히 중요하다. 당연하다. SF 영화니까. 초반부 스타트가 어색하면 극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극 한 시간을 할애하는 숲 세팅에서 이야기를 이끌 수 있었던 건 이 시각화의 힘이다. 후술 하겠지만 극 전개에서 이 숲에서의 사건 전개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영화의 집중력을 이끄는 건 이 덕이다. 나머지 두 시간을 할애하는 바다 묘사는 영화의 최고 강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바다와 육지에서 사람을 보는 관점은 다른 것이 필연적이다. 이 바다에 사는 생물들도 신선해야 한다. 그런데 아예 없는 걸 갖고 오기에는 사람의 뇌로 감당할 수 없다. 이 지점을 살짝씩 변주한 창작자적 재능이 어마어마하다. 빛이 들어가는 방식도 신선하다. 어디에서는 그림자가 들고. 어디에선 빛이 굴절되는 것 같고.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디테일해서 실제로 카메라를 갖고 찍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후반부에 근 1시간을 할애하는 액션 시퀀스도 대단하다. 이 배에서 일어나는 액션을 잘 보다 보면 전작과 본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액션에 다 때려 박았다. 판도라의 동물들 나오고. 바다 생물로 빌런들 무찌르고. 화살, 총, 전투기 나오고. 여러 명이 구상해서 만들 상상력의 총합체를 이야기의 전개에 이질감 없이 잘 보여줬다. 이걸 구체적으로 다 구현했다고? 의 생각으로 영화를 봐도 지루하지 않을 듯하다. 진짜 카메라 들고 가서 해외 로케 안에서 찍은 것 같다.
해양 덕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이다. <터미네이터 2>, <피라냐 2>, <에이리언 2>부터 시작해서 <타이타닉>까지 글쓴이 같은 90년대생에게 이 사람의 영화를 한 번도 안 들어보기는 불가능하다. 제임스 카메론은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한 가지의 덕후 기질을 키워냈다. 바로 해양생물 덕후라는 것이다. <피라냐 2>는 제목만 봐도 바다라는 공간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타이타닉>은 배가 바다에 빠지는 이야기다. <어비스> 역시 바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 영화다. 심지어 <딥 씨 챌린지>라는 바다 다큐멘터리도 만든 적이 있다. 영화 잘 만드는 사람으로 이름값을 하면서 해양 생태계에 대한 덕후력을 뽐내는 제임스 카메론. 그의 러닝타임에서 바다를 꾸준히 볼 수 있을 만큼 영화 곳곳에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피라냐'를 연상케 하는 동물에게 쫓기는 부분이 있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 동물이 피라냐와 닮았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글쓴이는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쫓고 쫓기는 동물을 구현하는 방식은 그 시절 <죠스>와 <피라냐>를 위시로 한 호러 영화의 냄새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다. 또 극에서 배가 후반부에 나온다. 이 배에서 극의 액션신이 이뤄진다. 이 배는 한 번 전복된다. 이불 덮고 그 안에서 싸우는 게 아닌 이상 액션의 속성이라고 하는 것이 주변에 상처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 그 바다에 빠지고 난 다음의 인물들의 모습은 <타이타닉>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이 액션도 묘하게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생각나는 부분이 있다. 또 나비족의 근본적인 세팅 자체가 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형태랑 좀 비슷하지 않았나? 싶었다. 또 사실상 영화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크리쳐도 그가 해왔던 영화 <에일리언 2>의 기본 바탕과도 비슷하다. 이렇게 제임스 카메론은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그의 작가적 특성을 빼곡하게 삽입했다.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 작품만의 시그니처가 된 셈이다.
품이 넓은 이야기
영화의 강점으로 이야기를 뽑고 싶다. 일단 글쓴이는 1편의 이야기가 나름의 깊이를 갖고 있는 소재와 전개 방식을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2009년에 개봉한 이 영화. 이야기 구상을 그전부터 했을 테니 10여 년 전에 구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2022년 12월 이 영화를 다시 돌아보면 전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 몇 개가 생각나게 한다. 일단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엄연히 설리는 인간으로 우선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극에서 인간인 설리 / 아바타인 설리 두 차이점을 연출로 내내 조명한다. 당연히 '어떤 측면이 진정한 인간에 가까운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뭐 이런 인간 실존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문제를 다룬 연출도 곳곳이 보인다. 우선 쿼리치 대령에게서 반지성주의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또 코로나19를 대응했던 어떤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난다. 또 얼마 전에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있었던 복제인간에 관한 문제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몇 년 전 역시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가?'와 '원주민과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이 영화를 통해 할 수 있다. 감독이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이야기를 짜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소재들은 인간사에서 클래식한 소재긴 하다. 그러나 이를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은 작가 제임스 카메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의 통찰력을 새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편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가지고 왔다. 일단 영화에서 두 공간적 세팅은 숲과 바다다. 이 두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손가락의 개수다. 원래 나비족이라 함은 손가락이 네 개여야 한다. 그런데 제이크의 아이들은 5개다. 5개라서 아이들은 다른 나비족들에게 놀림받는다. 우리는 인간이다. 손가락이 5개다. 어? 손가락이 5개라서 놀림받는다고? 이는 관객인 우리 역시 저 판도라에 가면 놀림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관점을 옮기는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우리 현대사회에서 누군가에 대한 혐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혐오는 우리와 다른 지점을 바탕으로 일어난다. 극에서 주류가 비주류를 대하는 방식 역시 이 혐오와 비슷한 방식이다. 간단하지만 내실이 있는 비유를 든 셈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잣대를 만드는 것이,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이 옳은가?를 물은 것이다. 이를 위해서 숲의 종족과 바다 종족이 아주 살짝 다른 피부색으로 세팅했다는 것, 빌런 쪽인 쿼리치 대령이 어떻게 변했는가? 에 대한 것이 이에 대한 근거로 쓰이기도 했다. 이 비유는 해양생물 '툴쿤'을 어떻게 캐릭터들이 바라보는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또 네이티리가 스파이더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에 대해서도 닿아있다. 이렇게 영화에서 끊임없이 소수자와 혐오, 차이와 배척이라는 소재를 곳곳이 새겨놓은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창의성이 돋보인다.
이렇게 사회드라마적인 소재를 잘 넣은 영화지만 가장 근본적인 주제는 '가족영화'다. 이 가족의 구성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아버지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이다. 그러나 오리지널 한 나비족이라고 볼 수 없다. 근원이 인간이니까. 어머니 네이티리는 나비족이다. 두 아들과 하나의 딸은 혼혈 가족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다른 두 아이들의 친부모는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아니다. 아들 스파이더는 그냥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인데도 자기를 나비족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딸 키리는 어머니가 그레이스 박사다. 어머니, 아버지의 피가 단 조금도 섞이지 않았다. 영화가 이 가족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유대감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보면 영화의 핵심소재를 튼튼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끌고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족영화의 특징을 살렸기 때문에 좀 애매해진 부분이 있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영화는 공간적 배경을 한 번 옮긴다.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가는데, 여기서 이 인물들의 선택지에 대해서 근거가 부족했던 것은 아쉽다. 이 영화 자체의 내적으로 근거가 부족하지만 딱히 1편에서도 인물의 선택이유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또 스파이더와 키리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도 아쉽다. 스파이더는 후반부의 어떤 행보를 위해 거의 모든 인물의 행동이 기능적으로 사용된 부분이 있다. 단순히 그 인물과 그런 관계였다고 해서 그의 모든 일이 합리화가 된다면 좀 어색한 부분이 많다. 차라리 생사고락의 위기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키리와 관련한 부분은 후반부에 시리즈를 펼치기 위해서 이렇게 설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느껴지는 예수의 모티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던 절대자의 존재까지 시리즈라는 이유로 끝마무리 짓지 못한 인물의 완성도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역시 이 키리도 물이 생명의 근원지라는 은유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능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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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되면 과장 부장 사장과 직급 떼고 붙을 수 있는 바이러스?가 있다고?? '메이헴'
흥해라 이 영화
메이헴 (2017)
- 좀비처럼 일만하던 직장인으로 가득한 회사에 분노 바이러스가 퍼지고 상사의 무시와 부당한 요구에도 꾹 참던 직원들이 분노를 폭발시키기 시작하는데...Walking Dead 아니고 Working Dead
좀비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침투로 시작된 사내배틀로얄무비 이 영화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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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플러스 한국 출시 확정!! 주토피아2도 제작 확정!? ?❤️? 열일하는 디즈니와 닉와일드 성우 정재헌 그리고 주토피아 이야기 | 씨네마사지?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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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
꿀보이스 정재헌 성우님과 함께하는 주토피아 리뷰 두번째 시간!
출연
황보 라이언 정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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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티탄> 메인 예고편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뇌에 티타늄을 심고 살아가던 여성이 기이한 욕망에 사로잡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다 10년 전 실종된 아들을 찾던 슬픈 아버지와 조우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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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빌리 홀리데이> 메인 예고편
팝 보컬의 예술을 영원히 바꿔 놓은 재즈의 초상 '빌리 홀리데이' 무대 위에선 모두의 박수를 받는 '레이디 데이' 였지만 무대 아래에선 시대의 폭력과 광기에 끝없이 시달렸다. 도망칠 곳 없이 어둠으로 내몰린 삶 속에서도 그녀가 포기할 수 없었던 두 가지 세상을 위한 단 하나의 노래, 그녀를 위한 단 하나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