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3-02 09:39:02
<나이트 레이더스> 메시지만 강렬한 디스토피아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아네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2043년,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에는 새로운 제국을 세우려는 독재국가 에머슨이 들어선다. 거대한 새를 연상시키는 드론에 의해 감시받는 세상을 만든 가운데, 에머슨은 시민권이 없는 미성년자 모두를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아카데미로 끌고 간다. 그러나 에머슨의 통치를 따르지 않는 '니스카(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는 딸 '와시즈(브룩클린 르텍시에 하트)'와 함께 숲 속에서 유랑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와시즈가 큰 부상을 당하고, 약을 구하러 마을에 온 니스카는 도리어 병사들에게 와시즈를 빼앗기고 만다. 딸과 헤어진 후 슬픔에 잠긴 채 살아가던 니스카. 그러 그녀 앞에 마찬가지로 에머슨의 지배에 저항하는 토착민 크리 족 사람들이 나타나고, 니스카는 그들과 함께 딸을 되찾기 위한 반격에 나선다.
제7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제46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바 있는 <나이트 레이더스>는 다니스 고렛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고렛 감독은 <나이트 레이더스>의 출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토착민의 삶은 나날이 극심해지는 혐오와 차별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도 그간 제삼자에게 토착민의 이야기는 항상 신기하고, 민속적이고, 옛날이야기에 불과했다. 이에 현실에서 목소리를 내기 두려운 사람마저 목소리를 내게 하는 힘이 있는 SF 및 판타지와 같은 장르에 보편적인 역사이기도 한 토착민의 비극을 녹여내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이트 레이더스>는 세계 각지의 토착민, 원주민들이 겪은 구체적인 사건들을 한 데 모아 디스토피아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우선 다니스 고렛 감독 본인이 캐나다 사람인만큼 <나이트 레이더스>는 캐나다 역사 속 원주민들의 비극적인 경험을 스크린으로 불러온다. 작중 에머슨은 전쟁에서 패배한 이들에게 두 가지 차별정책을 시행하며, 이는 영화의 주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하나는 거대한 벽으로 대표되는 분리 정책이다. 에머슨 시민이 사는 곳과 비시민권자가 사는 곳을 철저히 나누고, 비시민권자에게는 드론을 통해 식량을 배급하면서 철저히 통제하려 든다. 이러한 에머슨의 통치 정책은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들에게 시행한 탄압과 강압적 동화 정책과 똑 닮아 있다. 과거 영국령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들의 땅을 강탈하고 그들을 보호 구역에 집어넣었다. 또 보호구역 내에 부실한 인프라를 설치하거나, 보호 구역에서 나오면 연금을 받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본래 유목민이던 이들에게 낯설고 고달픈 생활을 강제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의존하도록 만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에머슨 아카데미의 존재다. 에머슨 아카데미는 과거 캐나다 정부가 설립한 '레지덴셜 스쿨(Residential School)'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레지덴셜 스쿨은 반란과 분쟁의 빌미 근절하기 위해 같은 국가관과 동질성을 공유하도록 영국계 캐나다인의 가치관을 원주민들에게 주입하려는 목적으로 세원진 학교다. 이 학교들에서 원주민들은 영어식 이름으로 강제 개명되고, 영어만을 사용할 수 있었으머, 원주민 전통의상 착용을 금지당하고 백인들이 입는 양복, 양장 착용이 강제되었다. 이곳에서 어린 소년소녀들은 교사에게 자주 강간당하기도 했다. 결국 부모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사육되다시피 한 아이들은 가족애를 잃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원주민들의 가정과 사회를 더욱 빠르게 파멸로 이끌었다.
영화는 이처럼 레지덴셜 스쿨에서 자행된 악습들을 아카데미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서 묘사한다. 에머슨은 어린아이들에게 선진 교육을 통해 삶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하며 정체성을 약화시킨 뒤 철저히 국가에 충성하도록 강제한다. 곧 실제 역사적 사건이 와시즈가 아카데미 내에서 엘리자베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어머니 니스카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 아이들이 밤이면 기숙사에서 한 명씩 불려 나가 성폭행당하는 것,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젊은 아이들이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채 어머니에게 총구를 겨누는 장면으로 바뀌어 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딸을 구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침투하는 니스카의 모습에는 단순한 모성애를 넘어서는 의미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나이트 레이더스>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 족의 역사도 디스토피아 세계에 녹여내고 있다. 이는 본 작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토르: 라그나로크>와 <조조 래빗>의 감독을 맡은 바 있는 타이카 와이티티에 게 마오리족 피가 흐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중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드론의 존재가 단적인 예시다. 드론은 에머슨의 통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신무기로, 미등록 미성년자를 수색 및 추적하고, 전투용 내지는 식량 배급용으로도 활용된다. 이때 드론이 배급한 식량에 바이러스가 숨어 있었던 것은 유럽인들에 의해 새로운 전염병이 퍼져 나갔던 사례들과 오버랩된다.
이에 더해 드론의 존재는 유럽인의 등장과 동시에 당시 기준 최신 무기였던 머스킷 총이 뉴질랜드에 전래되고, 이 무기를 지닌 부족이 그렇지 못한 부족을 착취하고 노예로 만든 사건인 '머스킷 전쟁'이 마오리족 역사에 기록된 것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머스킷 전열 보병처럼 길게 늘어서서 일제히 총을 겨누어 화망을 형성한 채 접근해오는 에머슨 군인들과 빈약한 무장으로 맞서는 크리 족의 모습도 영국군과 마오리 족 사이에 펼쳐진 '마오리 전쟁'의 변형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영화 속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드론과 와시즈가 지닌 독특한 능력이 더해져 전투의 향배를 뒤바꾸게 되는 전개는 결국 19세기 당대 신무기인 머스킷에 의해 피로 얼룩졌던 역사를 영화적으로 치유하는 장면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목은 나다와 뉴질랜드 두 사례에 대해 여러 토착민들의 역사가 공유하는 보편성을 맛볼 수 있는 지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페인군이 침입한 멕시코나 남아메리카의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신무기나 새로운 전염병 때문에 유럽 이주민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사례는 지구 이곳저곳에 모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이한 지역의 공통된 역사적 사건들을 한 데 모은 <나이트 레이더스>의 조각보 같은 매력이 온전히 스크린에서 전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르 영화로서의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사실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루는 장르 영화인 관계로 <나이트 레이더스>에는 다른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유사함의 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고, 익숙한 설정과 전개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그러다 보니 시도 자체는 인상적이었던 영화의 메시지와 감흥도 모두 깎여버리고 만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대표작인 <아바타>와의 비교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아바타>의 경우에도 충격적이었던 시각 효과와 달리, 스토리적인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가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족의 구세주가 되어 인간의 침입을 막아낸다는 플롯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평면적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타>는 나비족의 역사와 사회, 내외적 갈등, 그리고 그들의 신과 구세주인 에이와와 토루크 막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주었고, 그 결과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강력한 몰입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나이트 레이더스>의 메시지와 전개 양측면에서 모두 중심이 되어야 할 크리 족의 이야기는 디테일이 부족하다. 그저 몇 마디의 대사와 설정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토착민 출신이지만 토착민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살아가던 니스카와 와시즈 모녀의 이야기와 만나는 순간에도 별다른 갈등 없이 흡수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한 곳에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작중 크리 족의 서사는 토착민 공동체로서의 특색이 살아나지 않는다. 단지 독재국가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세계에 반대하는 저항군이라는 익숙한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이는 <나이트 레이더스>가 결코 인상적인 장르영화는 아닌 이유다.
유사성과 진부함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 외의 한계도 있다. 스릴러 영화인데도 긴장감을 거의 불어넣지 못하는 식이다. 실제로 영화는 제목인 'Night Raiders'가 '밤의 침입자'라는 뜻인데도 불구하고 밤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에머슨 아카메디에 갇힌 와시즈를 구출하기 위한 니스카와 크리 족의 습격만 보더라도 작전의 중간 과정부터 아카데미에서 탈출하려는 과정에 이르는 세부 사항들이 지나치게 많이 생략되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해당 시퀀스는 클라이맥스로 고조되는 중간 다리로써 그 부조함을 숨기지 못한다. 그나마 숲에서 숨어 지내던 니스카 모녀와 그들을 습격한 드론 간의 짧은 전투가 세계관을 소개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뿐이다. 이처럼 <나이트 레이더스>는 뜻깊고 인상적인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실현하기에는 부족했던, 투박한 장르 영화로 남는 데 그치고 만다.
P(Poor, 형편없음)
어설픈 짜임새 때문에 빛이 바랜 역사적 비극의 영화적 위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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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제목은 김민정 시인의 시집인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를 차용하였습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97분 동안 영화관에 앉아, 나는 성 긍정이고 해방이고를 떠나 한국 사회를 생각했다. 애국자라서 나라 걱정을 한 게 아니고 이전까지의 영화들을 떠올렸다.
2008년에 우리나라에서도 성매매 남성을 다룬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비스티 보이즈>이다. 나는 아직도 하정우, 아니 재현의 대사 "사랑한다고 XXX아"를 잊을 수가 없다. 매일매일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살해, "왜 안 만나줘"라는 문장이 포함된 뉴스기사를 본다. 재현의 입을 빌려 이 사건들을 재언할 수 있다.
사랑에는 실로 다양한 모양이 있으나 거기에 폭력은 없어야 한다. 사랑과 폭력이 병기되는...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이, 좋아해서 괴롭히는 걸로 시작하여 자기를 왜 안 만나주냐며 좋아하는 여자를 죽이는 일이 매일매일 지겹도록 일어나는 현실 앞에서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를 보는 97분간 적잖이 심란했다. 영화를 납작하고 평면적으로 말하자면 성매수자와 성매매자가 네 번 만나는 이야기이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의 감독은 관객들이 "재미있고 섹시한 영화", "해방된 느낌", "자유" 등을 느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논외로 이제 대부분의 영화 제목이 번역되지 않아 통탄스럽다. 세상에는 굿 럭 투 유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텐데. 영어를 모르면 아파트도 못찾고, 가게에서 메뉴판도 제대로 못보고, 터미널에서 표 사기도 어려운 이 나라에서, 이제 영화도 못 보는 게 아닐지 심히 걱정된다).
등장인물은 딱 세 명이다. 호텔 카페 직원 베키는 10분도 등장하지 않으므로 두 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배경도 세 군데이다. 리오가 대기하고 있던 카페, 호텔룸 하나, 호텔 카페. 두 카페는 10분도 등장하지 않으므로 한 곳이라고 봐도 되겠다.
사각형의 작은 방 안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며, 이들은 밖에 나가 걷거나 음식을 먹거나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사회와 연결되지 않은 고립된 공간은 이 '판타지스러움'을 부연한다. 카메라가 담지 않고 관객이 궁금해하지 않을 노인의 나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판타지다.
판타지 속 세상이므로, 주인공들의 이름도 가짜다. 리오 그랜드를 기다리는 낸시는 초조하다. 구두도 갈아신고, 향수도 뿌리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리오 그랜드는 아일랜드 사람에 키도 크고 몸도 좋고 인물도 좋아 낸시는 그만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돈이면 최고! 돈 준다면 감옥살이도 오케이!인 시대에, 구매자는 판매자보다 당연하다는 듯이 우위에 선다. 그런데 낸시는 돈을 왕창 내놓고도 을이 된다. 남자, 그것도 자기가 구매한 성매매 남성의 시선마저도 신경쓴다. 성별이 반대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권력이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자본권력에서 우위에 선 낸시는 젠더권력에서는 열위에 위치한다. 한편, 자본권력 없는 리오는 젠더권력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이는 <비스티 보이즈>의 주인공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재현은 미선의 돈을 들고 튀고, 승우는 지원을 스토킹하다 죽인다. 힘은 누구에게 있는가.
여자의 몸은 자주 물화된다. 여자의 몸을 물건처럼 확대하고 축소하고 조각내는 행위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둔갑한다. 여러 감독들의 미장센들이 떠오르지만...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아무튼, 물화된 대상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평가받기 일쑤인데, 여자의 몸은 단골 소재다. 나노 단위로 쪼개고 쪼개가면서 평가받는다. 사회에 나가는 과정에서 어찌 되었든 1회 이상의 면접은 치르기 마련이다. 면접 자리가 몹시 불편하고 불안한 이유는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나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예쁘니 어떻니 하며 외모만을 평가하는 건 다소 촌스러운 행위다. 그렇지만 낸시는 은퇴한 종교학 선생이고 옛날 사람이니, 낸시가 젊었을 적에는 얼마나 더 작은 단위로 평가했겠나. 그렇기에 낸시는 자신이 없다. 젊었을 적부터 뱃살과 팔뚝살이 싫었고, 나이 든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리오는 '퍼스널 서비스' 제공이 직업이다. 영어로 말하면 좀 있어보이는가 싶지만, 고객의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는 성매매 남성이다. 넷플릭스 영화 <퍼펙트 데이트>의 밀실 버전이라고 보면 될까. 학생들에게 성매매에 관한 리포트를 쓰는 숙제도 내주었던 종교학 교사 낸시는 남편과 사별한 후 이제 자신만의 삶을 좀 살아보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자유로운 섹스인 듯하다.
안타깝게도 모 연구에 의하면 가장 오르가즘을 적게 느끼는 집단이 이성애자 여성이라고 한다(여원뉴스, 2018. 8. 7.). 그렇기에 이성애자 여성인 낸시가 평생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다는 말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한번 해보자 싶어 리오를 예약한 것.
첫 번째 만남은 대화, 두 번째는 도전. 세 번째는 갈등이다. 낸시는 세 번째 만남까지 특별히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데, 세 번째 만남에서의 갈등이 인상적이다. 낸시는 리오의 사적인 정보를 캐내고, 말 그대로 선을 넘는다. 이 정도로 친해지면 밖에서도 만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해보라고 종용하고, 당당하게 직업을 밝히라고까지.
리오는 선을 넘은 낸시에게 흥분하며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다. 간혹 이상한 어머니들이 있다. 남자들을 다 아들처럼 보는 어머니. 낸시의 아들은 차분하게 공부 잘하는 남자이고, 딸은 자유분방하게 사는 여자이다. 낸시는 아들이 지루하고, 딸은 골치아프다고 한다. 리오에게 자식들의 흉을 보면서 리오의 엄마는 리오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랑스러워할 거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결국 모든 갈등이 끝난 뒤, 호텔룸이 아닌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다음에야 낸시는 오르가즘을 경험한다. 그것도 스스로. 그리고 리오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한 뒤, 거울 앞에서 자신의 벗은 몸을 바라본다.
*
여성의 억압된 성을 해방하고자 하는 시도가 좋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관객에게 맡겨야 하겠다. 어쨌거나 모든 섹스가 좋은 호텔과 맛있는 술, 충분한 대화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사귀는 사이니까, 부부니까 의무적으로 맡겨놓은 것 찾듯이, 분위기도 멋도 없는(단적인 예로 장기연애 콘셉트로 유명한 유튜브 채널 같은) 그런 관계에서 만족하는 여성이 몇이나 될까 싶다.
성매매 여성의 삼라만상은 이미 소설과 영화와 그림과 기타 등등에서, 아니, 뉴스와 유흥가가 깔린 골목에서 너무도 자주 접했다. 이토록 개방적인 남성의 성 반대편에 이토록 폐쇄적인 여성의 성이 있다. 그리고 성에 개방적인(또는 개방적이지 않은) 여성을 지칭하는 저급한 언어들이 지천에 깔렸다. 그리고 여성 자체를 지칭하는 수많은 멸칭들이 널리고 널렸다. 여자들이여. 이제 유교걸이라는 히잡은 저리 벗어두고 만족하고 오르가즘을 느끼며 살자, 했다가 걸레가 날아오는 그 징그러운 말들을 얼마나 듣게 될까.
서두에서 이 영화를 '성매수자와 성매매자가 네 번 만나는 이야기'라고 하였는데, 영화에서 아무리 좋은 마무리를 지었든 간에 나는 성매매에는 끝까지 반대한다. 마무리는 'Love yourself'로. 타인의 시선과 인정이라는 렌즈를 박살내버리자.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2022)
Good luck to you, Leo Grande
감독 : 소피 하이드
출연 : 엠마 톰슨, 다릴 맥코맥
상영시간 : 97분
*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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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의 마지막 일주일, 그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6★/10★
영화 〈더 웨일〉, 그중에서도 주연을 맡은 브렌든 프레이저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1999년에 첫 개봉해 2008년까지 세 편이나 이어진 〈미이라〉 시리즈에서 주연을 맡으며 훤칠한 외모와 액션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액션신을 촬영하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이혼 후 거액의 위자료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장이었던 필립 버크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생긴 PTSD로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가 합성하여 제작한, 넋이 나간 표정과 충혈되고 눈물이 고인 눈의 그의 사진은 ‘모든 걸 포기한 남자’라는 이름의 밈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요컨대 브렌든 프레이저는 새로운 돌파, 즉 ‘구원’의 계기가 필요했다.
그런 그가 〈더 웨일〉에서 찰리 역을 맡았다. 찰리는 대학에서 에세이 과목을 지도하는 강사다. 그는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진행하는데 화면을 켠 학생들과 달리 홀로 카메라를 켜지 않는다. 찰리가 272킬로그램의 거구이기 때문이다. 살이 너무 많이 쪄서 보조 기구 없이는 걸을 수도 없는 찰리는 자신의 모습이 역겹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카메라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강의 시간에 검은 화면만 띄워놓는다.
찰리와 그의 삶이 이렇게 망가진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결혼해 엘리라는 이름의 딸을 낳고 키우던 중 딸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가족을 떠났다. 동성 제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딸 역시 사랑했지만 그 당시의 찰리에게는 연인과의 사랑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모든 걸 버리고 선택한 애인은 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찰리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죄책감, 불안, 수치, 좌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찰리는 이를 달래기 위해 미친 듯이 먹었다. 영화에는 섭식 장애로서의 폭식증과 그 위태로운 과정‧결과를 적확하게 포착한 장면이 종종 나온다. 폭식할수록 몸 상태는 안 좋아지고, 그러면 폭식을 초래한 부정적인 감정은 더 증폭된다. 이는 또다시 폭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찰리는 이 악순환을 멈출 수 없다. 그에게 폭식은 당장에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 괴로움을 즉각적으로 달래줄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찰리의 몸 상태는 일주일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상태까지 악화된다. 찰리의 생애 마지막 일주일. 이는 그가 구원받을 마지막 기회다.
학교에서 낙제될 위기인 딸 엘리가 찾아오는 건 바로 이때다. 아빠인 찰리를 유독 잘 따랐던 그녀는 버림받았다는 상처로 괴로워했고, 지금은 엄마조차 ‘악’이라 부를 정도로 까칠하고 반항적인 청소년으로 자랐다. 찰리는 그런 엘리에게 손을 내민다. 과거의 잘못을 만회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지금 그가 사랑하는 딸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찰리의 죽은 연인의 동생이자 물심양면으로 찰리를 돌보고 간호하는 리즈, 종말론과 구원의 메시지를 선교하는 청년 토마스의 서사가 더해진다. 찰리, 엘리, 리즈, 토마스는 모두 나름의 이유로 삶의 끝자락으로 내몰린 사람들, 즉 누구보다도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서로밖에 없다.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갖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상태의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를 구원하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이 네 사람은 서로 간의 뒤얽힘에서 무언가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이처럼 〈더 웨일〉은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구원의 길을 집요하게 질문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에세이 강사인 찰리가 늘 강조하던 ‘진실성’에서 찾고자 한다. 그러나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아픔을 놀랍도록 섬세하고 강렬하게 풀어내던 영화는 구원의 내용에서는 그만큼의 성취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물론 구원의 문제에는 당연히 명확한 답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왜 구원이 어려운지, 무엇이 구원을 가로막는지를 질문할 수는 있다. 영화의 결말, 찰리는 끝내 구원에 도달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갈구한 구원이 과연 찰리와 그 주변인 모두를 보듬을 만큼, 찰리가 환희에 젖은 표정을 지을 만큼, 무엇보다 영화에서 찰리가 내내 강조한 ‘진실성’을 온전히 담아낼 만큼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더 웨일〉은 감동적인 영화다. 생의 막다른 길에 몰려 절망하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환기하고, 그런 사람들끼리도 희망과 구원의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의 서사와 영화의 서사가 묘하게 포개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쩌면 위로와 희망의 불씨를 전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구원은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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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의 로맨스
최근 개봉한 영화 <괴물>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을 행복이라고 부르는 거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행복을 더 많이 가진 것일까? 6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를 차지한 핀란드에서 따끈한 로맨스 영화가 훌쩍 날아왔다.
제7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자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많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자, 프롤레타리아 3부작(천국의 그림자, 아리엘, 성냥공장 소녀), 핀란드 3부작(어둠은 걷히고, 과거가 없는 남자, 황혼의 빛)으로 잘 알려진 핀란드 거장 '아키 키우리스마키' 감독의 신작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12월 20일 개봉 전, 시사회로 먼저 만나고 왔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
감독 : 아키 카우리스마키 / 출연 : 알마 포이스티, 주시 바타넨
개봉 : 2023. 12. 20 (국내) / 러닝타임 : 80분
수입/배급 : 찬란
IMDB 7.6/ 10, 로튼토마토 지수 98%_
Before Movie
사랑은 선율을 타고, 사랑은 비를 타고 그리고 이제 낙엽까지 타고 온단다. 포스터만 봐도 늦가을, 초겨울 냄새가 가득하다. 그저 겨울맞춤 로맨스 영화라기에는 어딘가 살짝 눈빛이 부족하기도 하고, 눈이 펑펑 쏟아지지도 않고 낭만적인 트리도 없다. 이 로맨스, 어딘가 범상치 않다.
이번 시사회가 특별했던 이유는 한국, 핀란드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함께 진행되기 때문인데, 굿즈로 <사랑은 낙엽은 타고>의 포스터와 포토카드는 물론, 핀란드의 아름다운 오로라를 담은 엽서와 자일리톨의 고향 핀란드답게 자일리톨 껌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센스 최고)
그리고 상영 전에는 주한 핀란드 대사 페카 멧초 님의 무대인사도 함께 진행되면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주연배우 주시 바타넨과도 친분이 있다고 하시는데 더불어 가족, 지인 분도 함께 오셔서 관람해서 더욱 의미가 깊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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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Movie
헬싱키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매일 무료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 안사와 홀라파. 외로워 보이지만, 그 외로움마저 사치라는 듯, 사랑이라는 낭만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이 당장 하루를 먹고살기도 바쁘다.
그런 두 사람은 어느 날 동네 바에서 만나 눈길을 주고받게 된다. 힐끗힐끗, 본 듯 안 본 듯 밀고 당기며 오가는 서로의 시선 속에서, 첫 만남부터 두 사람은 이끌린 듯하다.
"그럼 또 만날까요? 근데 이름도 모르네요” “다음에 알려줄게요” 서로의 이름도, 주소도 알지 못한 채 홀라파는 유일하게 받아 적은 안사의 전화번호마저 잃어버린다.
그렇게 운명의 장난처럼 계속 엇갈리는 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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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학생도 아닌 호화스러운 재벌도 아닌 잘 나가는 인플루언서도 아니다.
이 로맨스의 중심은 바로 핀란드 노동자들이다.
구직과 해고, 술과 담배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온통 회색빛으로 가득한 두 사람은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어 보인다.
영화 초반에는 이게 로맨스 영화가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극히 현실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렇게 뻔하게만 굴러갈 것 같던 그들의 인생에 예측 불가한 바람이 불게 되는데, 바로 사랑이다.
6년 연속 행복한 나라 1위의 로맨스라고 하기에는 웃음기 하나 없는 무덤덤한 주인공들. 거기다 아재개그 뺨치는 건조한 현실 콩트로 가득 차 있고, 냉소적인 웃음이 스며들어 있다. 어쩌면 츤데레 로맨스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추운 사막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것에서부터 이 영화는 시작된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사랑의 이미지, 위계질서 등 사랑을 해야만 마땅한 모든 편견들을 완전히 부순다.
화사한 벚꽃 같은, 반짝이고 울창한 나무가 아니라 엉성한 가지만 남은 나무랄지라도.
시들어가는 낙엽 같은 인생이랄지도 우리 모두는 사랑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벚꽃은 소리 없이 날릴지라도, 소리 없이 밟히더라도, 낙엽은 밟으면 소리가 난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삶의 동력에 대한 근본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기도 하다.
집에 2인용 식기 하나 없던 안사가 요리하고 대접하게 만들고, 술에 찌들어 사는 홀라파가 술을 끊게 만든 것. 모두가 인생의 무료함을 노래할 때, 인생의 새로움을 보게 하는 것.
나를 바뀌게 한 너, 누군가를 바뀌게 하는 힘. 사랑의 진정한 본질을 과하지 않게 질리지 않게, 담백하게 듬뿍 담아냈다.
회색 빛이었던 헬싱키의 하늘이 사랑의 붓으로 칠해지는 모습은 덤덤하고 미미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래서 조금의 빛이라도 더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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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Movie
그저 바람에 스쳐가는 낙엽인 줄 알았으나 나에게 떨어진 낙엽이었다.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사랑임을 깨닫는 안사의 미소가 계속 맴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행복을 더 많이 가진 것이 아닌 당연히 가진 것뿐이다.
눈이 내려야만, 반지가 있어야만, 화려한 옷이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어야만 할까? 더 행복하지도 덜 행복하지도 않은, 이것이 진정한 로맨스 아닐까. 삶의 본질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핀란드 빈티지 로맨스.
* 해당 시사회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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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어쩌면 나만 섬인가봐
* 제목은 타블로의 노래 <airbag>에서 인용
절해고도(A Lonely Island in the Distant Sea)
감독 : 김미영
상영시간 : 110분
시놉시스 : 20대 때 청년조각상을 받았지만 지금은 인테리어 업자로 살아가는 40대 이혼남 윤철에게 10대 딸이 있다. 미술가로 장래가 촉망되던 딸이 어느 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겠다고 한다. 윤철도 한때 예술가로 성공하지 못하면 신부나 스님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윤철은 자신이 꿈만 꾸고 가지 못한 길을 딸이 가는 것 같아 인생을 도둑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우스갯소리로 예술하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한다. 소위 대박이 터지기 전까지 생활의 궁곤함은 차치하고, 기질적인 예민함과 높은 이상, 비대한 자의식이 가까운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일 거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것이라 장점도 았다. 예민한 사람들이 가진 다정함과 배려심, 감각적인 표현과 시선 같은 것들, 먹고 사는 문제나 돈 벌 궁리 말고 다른 이야기들을 밤새워 할 수 있다는 새로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전공자이기 때문이다.
<절해고도>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 혹은 작업하는 사람의 이야기, 예술과 재능과 운에 대한 이야기다. 먼 바다에 있는 외로운 섬, 한때는 유배지를 절해고도라 불렀다.
너무 멀리 있어서 눈에 보이지만 다다를 수는 없는 섬이 있다. 그런 섬을 상상해보자. 먼 바다 끝에 보물섬이 있다.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헤엄을 쳐도 닿지를 않고 배를 타고 갈 수도 없다. 그 섬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미 거기에 있다. 어쩌면 그 섬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20대에 청년조각상을 한 번 받은 후에 그렇다할 작업물 없이 인테리어 업자로 살아가는 윤철에게 현업 조각가의 꿈은 먼 바다의 섬 같다. 한때 자기보다 못했던 후배도 개인전을 여는데,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아버지와 딸은 거푸집에서 찍어낸 듯 닮기도 한다.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야구선수 이대호의 딸도 그렇고 윤철의 딸 지나도 그렇다.
지나는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종종 그렇듯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된다. 하필이면 질투는 경쟁자들보다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한다. 때로는 가족이, 때로는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가.
같이 그림을 그리던 친구가 남긴 '쓰레기'라는 댓글은 예술하는 19세 청소년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의 무게를 지닌다. 지나는 예술가이므로 자기 감정을 학교 블라인드에다가 표현해놓고 학교를 떠난다. 그림이 너무 잔혹했기 때문에 학교 선생은 지나의 부모를 호출한다.
학교에서 선생을 만나고 돌아온 윤철은 지나에게 '그림에 재능있기가 쉽지 않다'는 말만 주구장창 한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고 스님이 되겠다는 지나를 보며 한때 자기도 종교에 귀의하고 싶었던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금우스님의 말처럼, 윤철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지나는 윤철이 멀리서 보기만 해야 했던 그 섬에서 태어난 아이다.
지나는 머리를 깎고 '행자 도맹'이 된다. 이제 윤철과 지나의 관계는 부녀에서 행자-거사의 관계로 바뀐다. 이들은 남남처럼 서로 존대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윤철은 더 이상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지 않고 국숫집을 꾸린다. 술도 팔지 않는 국숫집이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열고 국수를 삶는 일은 행자의 수행과 다름없다. 이 부녀는 요원한 섬을 꿈꾸며 허우적거리는 대신 고독한 수행자가 되는 방식을 택한다.
절해고도는 유배지의 다른 이름이었다. 컨테이너 작업장에 스스로를 유폐하는 삶과 시장으로 나가 국수를 삶는 삶 중 어느 쪽이 폐쇄적인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윤철은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쪽에 가깝다. 이전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에 끼지 못해 좌절감과 자격지심으로 괴로웠다면 이제는 잘 맞는 옷을 찾아 입은 셈이다.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러빙 하이스미스>라는 제목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된다. 영화 <캐롤>과 <리플리>의 원작으로 유명하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민음사, 2009)>라는 제목의 단편집이 있는데, 러닝타임 내내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했다.
김미영 감독은 영화에서 '관계를 통한 성장'에 방점을 찍었으나 윤철과 매우 긴밀한 관계였던 영지(강경현 분)의 존재는 이 텍스트와 어울리지 않아 생략했다. 관계보다는 작업하는(만드는) 인간으로서의 윤철에게 더 집중했다. 나는 윤철과 비슷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지나는 윤철에게 "평생 그렇게 살"라고 가시돋힌 말을 던진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 자리를 찾아갔을 때, 마침내 윤철도 자기 자리와 할 일을 찾았으므로 절해고도 같은 유배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평생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다르게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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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2년 8월 27일 | 16:00 - 17:50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
2022년 8월 29일 | 19:30 - 21:20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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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8월 3주 개봉영화!
놉
NOPE , 2022
영화 "놉"은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기묘한 현상을 그린 작픔으로
북미 개봉과 동시에 폭발적인 입소문을 자랑하며 박스오피스 1위 달성했습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것’에 대한 공포심과 호기심!
은 올여름 그가 전할 메시지와 함께 관객들을 새로운 장르의 세계로 강렬하게 흡입 시킬 예정입니다
다니엘 칼루야가 '겟 아웃' 이후로 조던 필 감독과 다시 함께했는데요
그가 맡은 OJ 헤이우드는 말수는 적지만 기품 있는 행동을 하며 영화의 정신적인 중심을 맡습니다
또한 '미나리', '버닝'의 스티븐 연도 이번 작품에 함께했습니다
그가 맡은 '리키 주프 박'은 어린 시절 할리우드에서 아역 스타로 유명세를 얻고
지금은 자신이 출연한 작품의 본인 캐릭터 이름을 딴 ‘주피터 파크’를 운영하고 있는걸로 나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한 조던 필 유니버스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더 커진 스케일!
다양한 해석과 해설로 영화 세계를 뒤덮는
추천영화 "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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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증 남자와 관종 여자의 잘못된 만남?
관음과 관종. SNS 중독 시대를 살아가면서 두 단어가 지니는 부정적 무게감은 더 커지고 있다. 뉴스 등 미디어를 통해 두 단어로 촉발된 범죄 등 SNS의 폐해는 더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사회관계망에 의존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SNS는 시간 낭비다”라는 명언을 남긴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말은 이제 무용지물. 이를 반영하듯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SNS 중독 시대 속 병든 관음증 남자와 관종 여자의 잘못된 만남(?)을 그리고 있다. 과연 이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직업은 공인중개사 취미는 남의 일상 훔쳐보기. 심각한 관음증에 빠진 구정태(변요한)는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 부동산 매물을 맡긴 이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 사소한 물건을 가져오기까지 한다. 심지어 외딴 창고에 그 물건을 전시해 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레이더망에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가 걸려든다. 편의점 소시지를 먹으며, 샐러드 이미지를 SNS에 올리는 소라의 모습을 본 정태는 반은 호기심, 반은 팬심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이런 노력(?)에 하늘도 감동한 걸까? 집을 내놓기 위해 구정태의 공인중개사를 찾은 한소라는 고맙게도 그에게 키를 맡긴다. 더 활발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구정태. 하지만 여느 날처럼 소라의 집에 몰래 들어간 그는 흉기에 찔린 채 누워있는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관음과 관종이 만연한 SNS 중독 시대의 병든 남과 여. 이들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스릴러 <그녀는 죽었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 더 나아가 시선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 강력해지는 권력의 폐해를 미스터리 장르로 보여준다. 정태가 소라의 실제 모습을 보기 위해 몰래 따라다니거나, 집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하는 등의 이상한 고군분투를 하는 것처럼, 관객 또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감독이 만든 미스터리에 ‘좋아요’를 누르며 동참한다. 특히 소라의 시신을 본 이후 정태를 향한 협박과 이름 모를 범인의 출현 등 과연 진범은 누구인지 영화는 이 미스터리를 계속 지켜보게 한다.
시선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만큼, 영화는 정태의 시선만이 아닌 소라의 시선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퍼즐은 소라의 이야기가 보인 후에 맞춰진다.
정상인이라 보기 힘든(정작 극 중 본인들은 정상이라 생각하는) 두 주인공은 각각 전, 후반부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재미있는 건 각자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변론이 점점 궤변처럼 느껴지고, 자기합리화의 최대치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SNS 게시물 내 작위적 연출과 멋스러운 필터로 보이지 않던 오리저널 이미지가 명확히 보이고, 자칫 죄의 무게가 한 쪽으로 치우쳐지는 것을 미연의 방지한다. 여기에 감독은 오영주 형사(이엘)를 통해 윤리와 법에 입각한 시선을 관개에게 부여하며, 최대한 두 캐릭터를 미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다만, 장르에 입각한 연출이 강하다 보니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 활용도와 추리 과정에 대한 디테일은 아쉬움을 남긴다. SNS의 부정적 측면에 집중해 익명성에 기댄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려고 했다는 감독의 의도에 맞춰 두 주인공이 전사는 깊이 있게 그려지진 않는다. 이는 전사로 인해 이들을 행위 자체가 용인되는 걸 미연에 방지하려는 연출이라고 이해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캐릭터를 표면적으로만 보게 되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병적인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정태 보단 소라가 불우한 가정사 등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또한 빈약해 보인다.
다행히 이 단점은 변요한, 신혜선의 연기가 채운다.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급변하는 상황에 맞게 두 얼굴의 모습을 연기로 잘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변요한은 관음증으로 너무나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다 그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소라는 소셜미디어와 현실의 모습, 결이 다른 내외면의 모습을 빠르고 긴장감 있게 보여준다. 이들의 모습 자체가 소셜미디어 세상 속 사람들의 표상까지는 아니지만 어두운 단면을 잘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한다.
관음을 소재로 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이 개봉한 지 70년이 흘렀지만, <그녀가 죽었다>가 개봉하는 걸 보면,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외한다면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관음의 포로인 셈이다. 영화 자체가 남의 삶을 보는 행위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보는 것은 물론, 소셜미디어에 이 영화를 보고 단평을 올리는 이들은 아마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관음 자체가 문제라기 보단 그 지나친 행위 자체와 도덕과 윤리의 기준선을 모호하게 하는 자기 합리화가 문제다. 인간이라면 사회 구성원이라면 이 기준선을 잘 지켜야 한다. <그녀가 죽었다>의 마지막 장면의 두 주인공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사진제공: 콘텐츠 지오
평점: 3.0 / 5.0
한줄평: SNS 중독 시대가 낳은 병든 이들의 웃지 못할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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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시리즈 속 모든 상징과 철학 뽀개기 #02 | 매트릭스 인문학 리뷰 |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 매트릭스4 리뷰 | 매트릭스4 해석 | 매트릭스 리저렉션 해석 |
?《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리뷰 / 매트릭스4 리저렉션 리뷰
《매트릭스 1~3》 인문학 결말포함 영화리뷰 #2
*후속영상
#1 [네오는 테스형♪] https://youtu.be/gckW2TYRFMc
#3 [빨간 옷의 여자] https://youtu.be/X_fQcoytk70
#4 [오라클은 악마다?] https://youtu.be/fLgWf7NWkn8
#5 [스미스는 왜 졌을까] https://youtu.be/Uas0KZDCQec
*추천영상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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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 오브 더 데드」 넷플릭스 제작비 1,000억원의 좀비영화ㅣ새벽의 저주 결말포함 영화리뷰ㅣ저스티스 리그 잭 스나이더컷ㅣ넷플릭스 오리지널ㅣ건데ㅣ
? "아미 오브 더 데드(2021, 넷플릭스Netflix)" 예고편 분석
"새벽의 저주(2004)" 영화리뷰 결말포함-영화 정보
장르: 액션, 공포, 범죄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잭 스나이더, 조비 해롤드, 셰이 해튼
제작: 웨슬리 콜러, 데보라 스나이더, 잭 스나이더
출연: 데이브 바티스타, 엘라 퍼넬 외
촬영: 잭 스나이더
음악: 정키 XL
촬영 기간: 2019년 7월 15일 ~ 2019년 10월 20일
제작사: 미국 국기 스톤 쿼리
배급사: 넷플릭스
공개일: 넷플릭스 2021년 5월 21일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2시간 11분
제작비: 9,000만 달러
독점 스트리밍: 넷플릭스 N아이콘 (넷플릭스)- 잭 스나이더의 첫 장편 영화 촬영 감독 데뷔작
- 새벽의 저주 정보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제임스 건, 조지 로메로
출연: 사라 폴리, 빙 레임스, 케빈 지거스 등
장르: 공포, 스릴러, 액션- 조지 A. 로메로의 1978년작 동명 좀비 영화 리메이크작
- 시체들의 새벽
#아미오브더데드 #새벽의저주 #넷플릭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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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토르 : 러브 앤 썬더> 메인 예고편
얘들아, 팝콘 준비했지?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주의 한 바이킹이야 토르 오딘슨..." [토르: 러브 앤 썬더] 메인 예고편 대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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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웬디> 메인 예고편
‘피터팬’ 탄생 110주년 기념,
새로운 주인공, 새로운 시각의 All New ‘피터팬’!기찻길 옆,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는
내면에 차오르는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매일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가 나타나고
‘웬디’와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 ‘제임스’를 이끌고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어린이로 살 수 있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