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2-02-12 10:51:23
문법의 파괴가 언제나 혁신은 아니지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리뷰

구파도 감독의 신작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를 좀 더 깊게 감상하려면, 이 영화를 두 계보의 연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구파도의 필모그래피다. 그는 청춘의 질감을 포착할 줄 아는 감독이다.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비롯해 그가 각본을 쓴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는, 첫사랑의 경험을 대만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하 로코물) 특유의 장르적 문법과 결합한 영화다. 한편, B급 괴수물 〈몬몬몬 몬스터〉는 전혀 다른 느낌의 청춘물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로코물 주인공과는 정반대에 있는 ‘왕따’ 학생으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상처만 받은 청춘이다. 요컨대, 구파도는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혹은 가장 참혹한 순간을 (로코물이든 괴수물이든) 장르적으로 풀어내는 데 재능이 보여온 감독이다.
구파도를 이해하는 또 다른 계보는 장르 영화의 문법, 그중에서도 대만 로코물의 문법에 보다 집중했을 때 드러난다. 특유의 과장된 연출로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비롯해, 프렝키 첸 감독의 〈나의 소녀시대〉, 〈장난스런 키스〉 등은 국내에서 꽤 관심을 받은 영화들이다.

대만 로코물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로코물이 더 이상 주류 장르가 아니라는 상황을 그 첫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로코물의 ‘위기’는 로코물의 주 소비층이었던 2030 여성이 페미니즘 의식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성애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묘사하는 로코물에 회의를 품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로코물이 소소한 화제는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과거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신드롬을 일으킬 수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대만 로코물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주류가 될 순 없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소비층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로서 대만 로코물의 장르적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로코물의 시대적 위기와 이를 돌파해내는 방식은 영화 내부의 표현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여름날 우리〉를 비롯한 대만 로코물뿐만 아니라 한국의 로코물(〈피끓는 청춘〉, 〈너의 결혼식〉 등) 역시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로코물은 아니지만 화제를 모았던 대만 멜로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국의 〈건축학 개론〉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다루는 이들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이 과거인 이유는 양국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는 80년대 후반, 대만에서는 90년대 초반에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이에 사람들의 관심은 ‘체제’, ‘정의’와 같은 거창한 것들에서 일상으로 옮겨왔다. 사랑은 일상의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확인하게끔 해주는 최상의 소재다. 즉, 퍽퍽한 삶을 영위하기 바빠 사랑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시대적 조건과 맞물려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과거를 추억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소비함으로써, 과거의 아름다움을 척박한 현재로 연장시키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 영화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로 돌아와 보자. 이 영화는 귀신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두 계보(청춘 영화‧로코물)의 연장에 있다. 하지만 결이 조금 다른 지점도 있다. 이 영화는 대만 로코물의 문법을 ‘위반’한다. 기존 대만 로코물은 다소 과하게 느껴질 정도의 연출로 사랑을 판타지‘처럼’ 그려낸 데 반해, 이 영화는 아예 대놓고 판타지를 표방함으로써 대만 로코물의 장르적 성취를 스스로 허물어버린다. 사람들이 대만 로코물에 기대하는 건 이제 더는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랑을 ‘현실’에서 펼친다는 점인데, 영화의 무대를 아예 판타지로 바꿔버림으로써 대만 로코물 특유의 ‘비현실적 현실감’이 사라진 것이다. 사랑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있을 때는 성취 가능한 것처럼 보여 몰입할 수 있지만, 아예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면 오히려 공허한 현실을 환기해버리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요컨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패착은 판타지‘같은’ 영화를 바라던 관객에게 ‘대놓고’ 판타지를 표방했다는 데 있다. 저승세계의 시각적 구현과 저승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다 보니 대만 로코물의 기본이 훼손된 것이다. 이 영화는 ‘창조적 파괴’라기에는 저승세계의 비주얼과 역할이 어딘가 밋밋하고, 대만 로코물의 문법에서도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문법의 파괴가 언제나 혁신인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싶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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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달다, 달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기는 초콜릿은 카카오 농도나 첨가되는 재료의 종류에 따라 달콤한 맛부터 씁쓸한 맛, 짭조름한 맛 등 다양한 맛을 지니고 있다. 영화 '웡카'는 한 입만 먹어도 살이 찔 것 같은 치명적인 단맛을 내뿜는다.
'웡카'는 소설가 로알드 달이 집필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 작품이자 서브 주인공 윌리 웡카(티모시 샬라메)의 과거사를 다룬다. 2005년 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아닌 1971년작 동명 영화의 세계관을 토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술사이자 초콜릿 메이커인 윌리 웡카는 자신만의 초콜릿 가게를 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도시에 입성한다. 자신만의 특별한 레시피로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초콜릿을 만들 자신은 있었으나, 도시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스크러빗 부인(올리비아 콜먼)에게 속아 낡은 여인숙에 묵다가 일꾼으로 전락했고, 마법 초콜릿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으나 초콜릿 카르텔 3인방의 견제 속에 고난의 연속. 심지어 웡카의 초콜릿을 훔쳐가는 움파룸파(휴 그랜트)까지 등장해 과연 초콜릿 No.1이 되려는 그의 꿈이 이뤄질 수 있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사실 '웡카'의 서사는 전형적인 권성징악형+성장 구조로 되어 있어 특별히 신선하거나 새로운 것은 없다. 대신 '웡카' 메가폰을 잡은 폴 킹 감독이 전작인 '패딩턴' 시리즈에서 선보였던 따뜻한 가족영화스러운 연출을 이번 작품에서도 선보이고 있어 저 연령층까지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웡카를 비롯해 주변 인물들, 심지어 영화 속 악당들까지 사랑스럽다. 스크러빗과 블리처(톰 데이비스) 콤비, 악랄한데 2% 부족한 듯한 초콜릿 카르텔 3인방은 저마다 매력을 뽐낸다. 특히 움파룸파를 연기한 휴 그랜트는 '웡카'의 최강 신스틸러다. 주황색 피부에 초록색 머리를 한 45㎝ 요정으로 분장한 그의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기 충분하다.
물론 '웡카'에서 티모시 샬라메를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반짝반짝 빛났기 때문이다. 그는 진 와일더(1971년), 조니 뎁(2005년)에 이어 웡카를 맡으면서 뮤지컬 영화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가창력, 춤, 연기 3요소를 소화해 글로벌 스타다운 면모를 드러낸다. 순수하면서도 선량한, 불굴의 의지로 가득 찬 주인공으로 극 전체를 끌고 나간다.
명곡 'Pure Imagination(완벽한 상상)'을 필두로 경쾌하고 달달한 노래들과 화려한 군무, 통통 튀는 CG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두둥실 초코' 맛을 선사해 기분 좋게 만든다. 너무나도 달달한 '웡카'의 초콜릿 맛에 취해 기분 좋게 귀가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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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고 돌아 마음을 노란빛으로 물들이는 행복과 마주한다.
1977년, 일본의 야마다 요지 감독은 홋카이도를 풍경으로 한 로드무비, <행복의 노란 손수건>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그해 지구 반대편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미지와의 조우>로 우주를 떠다녔다. 할리우드에서 우주선이 날아다닐 때, 한적한 홋카이도에서는 빨간 차 한 대가 달달달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던 것이다. 그 시대의 고뇌와 청춘의 방황을 담은 이 영화가 자그마치 50년의 세월을 건너 2025년 한국의 극장에 걸렸다. 그렇다면 50년이 지난 지금, 현시대의 관객은 <행복의 노란 손수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행복의 노란 손수건>은 21세기의 시점으로 바라보기에 불편한 요소들이 많다. 일단 주연 중 한 명인 킨야의 캐릭터성 자체가 ‘변태’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 그러하다. 킨야는 영화의 시작부터 직장에서 쫓겨나 무능력한 상태로 차를 한 대 뽑는다. 차를 뽑은 이유는 단순히 여자를 꼬시기 위함이다. 이런 목표 의식에 알맞게도 킨야는 홋카이도에 가는 길, 그리고 홋카이도에 도착한 이후 마주한 모든 여성에게 작업을 건다. 그때 넘어온 아케미는 킨야와 여행하는 과정 속 몇 번이나 성추행을 당하고, 심지어 성폭행 직전까지 다다른다. 분명한 거절에도 계속 들이대는 킨야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유머를 형성했다는 점, 유사쿠를 영원히 기다리는 미츠에의 수동적인 여성성 등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불편한 요소들이 이 영화에는 분명 존재한다.
또한 미츠에의 남편인 유사쿠는 영화의 진짜 주연이라고 볼 수 있는 역할인데 범죄자다. 유사쿠에게는 정당 방위적인 사유가 있지도 않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 생활을 하지도 않는다. 물론 기다리던 아이의 유산이라는 촉발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술에 취한 채 취객과 시비가 붙어 취객을 마구잡이로 때려죽인 무뢰한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언뜻 유사쿠는 호전적이고 마초적인 성격으로 킨야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선지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못하고, 자신을 기다리는 부인에게도 돌아갈 자신이 없는 겁쟁이다. 영화는 그런 유사쿠에게 멋대로 면죄부를 선사한다. 이로써 범죄자 미화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우리는 시대적 차이를 인지하되, 그것에 매몰되진 말아야 한다. 영화의 한 가지 요소일 뿐인 스토리에 묶여 영화의 진가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야마다 요지는 킨야를 결코 미화하지는 않는다. 킨야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는 게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해야겠지만, 영화 속 킨야는 항상 벌을 받는다. 불순한 의도를 품을 때마다 킨야는 넘어진다. 나막신이 벗겨지고, 턱에 걸려 넘어지고, 게에 찔리기도 하고, 차에 끼어 자빠지기도 한다. 유사쿠도 그러하다. 유사쿠에게 행복은 불확실하고도 먼 이야기다. 집으로 돌아가기를 몇 번이고 고사한다. 죄책감과 후회스러운 그의 마음은 영화의 중반부부터 관객에게 지겨울 정도로 전달된다. 그렇다면 <행복의 노란 손수건>이 가진 진가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진가를 관객이 함께할 수 있는 시시콜콜한 여정이라고 보았다. 삶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다. 관객은 영화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갑작스럽게 마주한다. 그들의 일평생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무작정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 행복만 담겨있지는 않다. 차가 도랑에 빠지기도 하고, 좋은 잠자리를 구하지 못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길에 시비가 붙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일 때문에 따뜻한 가족을 만나기도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터놓기도 하고,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과 끈끈해지기도 한다. 길을 떠날 적 홀로 자리하던 외딴 벚나무는 어느새 무리를 지어 일행을 반긴다. 오직 마지막 엔딩을 위해서 달려왔다고 볼 수 있을만큼 아름답게 펄럭이는 장대한 노란 물결은 이들을 섬세하게 위로한다. 그제야 우리는 방황해도 괜찮다고 말하게 된다. 돌고 돌아 마음을 노란빛으로 물들이는 행복을 마주하게 된다.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행복의 노란 손수건> 시사회에 참석한 뒤 작성하게 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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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을 내밀 용기와 그 손을 맞잡을 다정
수능이 끝난 후 코끝에 맴돌던 쨍한 공기는 내게 냄새처럼 기억되곤 한다. 계절의 냄새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난 그날의 공기로 이제 ‘진짜’ 겨울이 왔음을 느낀다. 수험장을 나서던 순간 코끝이 찡했던 건 찬 바람 때문인지, 내 학창 시절이 끝났다는 허무함 때문인진 모를 일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수시를 준비했기 때문에 수능은 사실 내게 그리 중요한 시험은 아니었다. 수시 원서를 모두 작성하고 수능을 기다리던 그 애매한 3개월 동안,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월플라워>만큼은 그 시기에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마음은 친한 친구의 ‘너의 바탕화면에 나오는 영화가 궁금하다’는 한 마디로 금세 무너지고 말았다. (학창 시절 내내 나의 노트북 바탕화면은 월플라워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월플라워>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어쩌다 보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나 확실한 건 가끔 내가 초라하고 작아질 때 속으로 떠올리는 대사 중 하나가 ‘We accept the love we think deserve’가 되었다는 것. 그렇게 마음속에 묻어두고 다시 보게 된 이 영화는 새삼 충격적이었다. ‘이게 10대들의 이야기라고…? 역시 미국은 좀 다르다’라는 시시한 생각들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든 생각은 결국 용기와 사랑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주인공 ‘찰리’의 인생을 뒤바꾼 ‘패트릭’, '샘'과의 만남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았다. 홀로 팝콘을 들고 경기를 보러 갈 용기, 옆자리 친구에게 한 마디 걸어볼 용기로 시작되었다. 누구나 시작은 두렵다. 그 시작에 결국 끝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는 더 두렵다. 그러나 그래도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용기 없이는 아무것도 변할 수가 없다. 어쩌면 <월플라워>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건 나 역시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았고, 덕분에 20대의 시작을 조금은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도전이 좌절되고, 사랑에 실패하고, 친구가 떠나가며, 믿음이 배신당하는 아픈 사건의 연속이다. 그래도 주인공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용기 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듬고,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발버둥 친다.
“In this moment, I swear. We are infinite.” 10대의 끝자락. 이 대사의 모든 단어를 꼭꼭 씹어 삼켜 내 것으로 만들겠노라 다짐했다. 순간에 충실할 것. 우리의 무한함을 단언할 것. 비록 현실이 가끔 따갑고 아릴지라도 결국엔 그 시간도 흐르고 지난다. 버거운 하루에도 내일이라는 다음이 다행스럽게 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버텨낸 시간이 나에게 좋은 흔적으로 남기를 바라며 오늘도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 용기와 누군가의 손을 맞잡아 줄 다정이 충분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을 읽을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설 모든 청춘들 앞에 무한한 도전과 반짝이는 기쁨이 함께하길, 가끔 찾아오는 아픔을 담대하게 마주할 용기가 함께하길 바란다.
Editor.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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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에스트로의 추락과 캔슬 컬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 클래식계의 스타답게 그녀는 인터뷰와 줄리어드 특강, 새 음반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예전에 함께 일했던 젊은 지휘자 '크리스타(실비아 플로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타르. 그녀는 크리스타의 구직을 방해하는 메일을 보냈던 자기 행적을 떠올리며 메일을 지우는 등 증거를 없애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 번 불붙은 불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고, 가족으로서도 지휘자로서도 타르의 커리어는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TAR 타르>,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겨냥하다
관객은 여러 관점에서 예술을 즐긴다. 보이고 들리는 작품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 현실의 맥락 안에서 작품을 이해하기도 한다. 작가의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방법이다. 한 작품으로부터 작가의 경험이나 사상, 의도 등을 찾아내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정신과 의사였던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되었다. 첫 교향곡이 실패한 후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던 라흐마니노프를 그가 치료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사는 음울한 분위기로 시작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평온해졌다가 이내 벅차오르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그런데 이처럼 예술 작품을 작가와의 관계 안에서 이해하려다 보면 한 가지 딜레마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바로 작가의 도덕성이다. '예술 작품이 작가의 세계관을 표현한다면, 예술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작가의 도덕성과 예술의 가치를 별개로 볼 수는 없는 걸까?'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작가와 작품은 자유로울 수 없다. 아동 성범죄자인 로만 폴란스키가 세자르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 성매수 전과가 있는 한 중년 배우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할 때, 마약 범죄 전과가 있는 가수가 음원을 휩쓸었을 때. 그때마다 이들의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고 소비할지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을 맡은 <TAR 타르>는 이 논쟁의 한복판을 겨냥하는 영화다. 토드 필드 감독은 사생활이 폭로된 여성 마에스트로, 리디아 타르의 추락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음악가로서 타르의 성취와, 지위, 예술적 견해를 차분히 보여준 후 그녀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추악한 모습을 하나씩 들춰 보인다. 이를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캔슬 컬처(cancel culture)'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유명인 혹은 공인이 논쟁이 될 만한 언행을 했을 때, 그의 지위나 직업을 박탈하려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지 고민할 기회를 준다.
당당한 마에스트로, 리디아 타르(TAR)의 예술
우선 <TAR 타르>는 리디아 타르라는 가상의 인물을 가능한 세밀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정보량이 굉장히 많은 초반부의 대담 장면은 그녀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5번째로 EGOT을 달성한 사람이라는 설명, 레너드 번스타인의 제자라던가 하는 등 실존하는 인물, 시상식, 사건 등이 난무한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따로 있다. 타르의 예술관이다. 그녀는 확고하다. 그녀에게 음악은 단지 악보에 적힌 기호를 살려내는 방식의 문제다. 그렇기에 무대 위의 시간이 시작될 때, 시간을 어떻게 통제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어지는 대담도 다르지 않다. 여성으로서 일궈낸 업적이 대단하다며 '마에스트라'라고 불려야 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여성이라는 프레임으로 자기를 바라볼 필요가 없다고. 그러면서도 청중을 웃길 수 있는 위트도 잃지 않는다. 그 덕분에 타르는 강단 있는 예술가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셀럽처럼 보인다.
타르의 예술관은 줄리어드 음대 특강 장면에서 더 자세히 드러난다. 타르는 한 학생을 타깃으로 여러 질문을 하며 작곡가의 개인적인 성향과 음악 작품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한 퀴어 학생이 바흐의 성적 지향이나 여러 논란 때문에 그의 음악을 듣지도 않고 연주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녀는 다소 거친 말을 섞어 가며 자기 예술관을 설파한다. 그녀에게 음악은, 그리고 예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음악은 지휘자나 작곡가, 연주가의 사상, 성 정체성이나 인종과는 관계가 없다. 악보에는 작가가 의도한 음악적 성취만이 적혀 있으며, 그 아름다움을 정해진 시간 안에 온전히 끄집어내기만 하면 된다. 앞선 인터뷰 장면과 함께 놓고 보면 타르는 개인의 도덕적 문제나 정치적 견해에 예술이 영향받을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타르는 자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이 강의실을 나가도 신경 쓰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그녀의 예술관에 고의적으로 도전하며, 그녀의 몰락을 유도한다.
쥐(RAT)처럼 숨어 있던 그녀의 이중성
타르의 몰락은 대외적인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이중성이 드러나며 시작된다. 깨어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악몽처럼 숨어 있던 타르의 오점은 가족, 직장인, 스승, 세 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 우선 타르는 가족으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저버린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서트마스터인 바이올리니스트 '샤론(니나 호스)'과 함께 딸을 양육하는 타르. 초반부만 해도 타르는 가족을 아끼는 부모이자 배우자였다. 학교가 끝난 딸을 데리러 가고, 학교에서 딸을 괴롭히는 학생에게 당장 그만두라고 섬뜩한 경고를 남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에 새롭게 합류한 '올가(소피 카우어)'를 만나고, 연심을 품으면서 타르는 점차 가족으로부터 멀어진다. 배우자이자, 조력자이고, 동승자인 샤론을 존중하지 않는 일도 잦아진다. 그녀는 오케스트라 운영에 대한 샤론의 조언을 무시한다. 자기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샤론이 제지하는데도 난폭 운전을 한다. 심지어 샤론 몰래 올가와 시간을 보내기까지 한다.
한편,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로서 타르는 독선적이다. 팬데믹 이후 필하모닉의 새로운 음반 녹음을 준비하면서 그녀는 타인의, 다른 의견을 수용할 줄 모른다. 부지휘자를 마음대로 해고하는 게 대표적이다. 또 부지휘자 자리가 공석이 되자, 타르는 자기 비서이자 젊은 지휘자인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에게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희망을 흘린다. 하지만 정작 프란체스카가 지원서를 내자 타르는 주변의 추천도 무시한 채 그녀를 뽑지 않았다. 이에 프란체스카는 사표를 낸 뒤 잠적해 버린다. 또 스승으로서도 타르는 낙제다. 재능 있는 지휘자로 일전에 타르 밑에서 일했던 크리스타. 타르는 크리스타가 자기를 떠나자, 그녀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메일을 다른 오케스트라 관계자에게 보내 그녀의 취업을 막는다. 계속되는 방해 공작에 지친 크리스타가 자살을 택하자 불똥이 튈까 우려해 증거물인 메일을 급하게 삭제하는 비겁한 모습까지도 보인다.
타르의 이중성은 크리스타의 부모가 딸의 죽음이 그녀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줄리어드 특강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유색인종 퀴어 학생에게 폭언을 하였으며 그 학생이 분노하여 수업 중간에 퇴장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 영상으로 인해 크리스타의 자살과 연계된 타르의 혐의가 더욱 크게 공론화된다. 그녀의 뉴욕 북토크 현장에서 규탄 시위가 열릴 정도로. 결국 그녀는 필하모닉 지휘자 자리에서 쫓겨나다. 현재에도 동전의 양면처럼 지속되는 과거 때문에 그녀는 순식간에 몰락해 버린다. 마치 마치 음악 안에서 과거와 현재가 한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만날 수 있다는 타르의 인터뷰처럼.
예술(ART)은 어떻게 소비되어야 하는가
흥미롭게도 <TAR 타르>는 권위적이고 성공지향적인 착취자이면서도 트라우마와 나약함을 숨기고 있는 타르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면서도, 그녀를 단적으로 긍정하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다. 의도적으로 타르의 과거를 보여주지 않거나, 추상적인 꿈 장면으로 대신해 버리면서 관객의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한 회색지대를 펼쳐 놓는다. 영화의 모든 사건을 오직 타르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삼자가 보기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행동들도 그녀의 눈을 통하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한 사건의 더 내밀한 맥락과 상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줄리어드 강의 동영상이 유포된 게 대표적이다. 강의 중 타르의 언행은 분명 권위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폭로 영상 자체는 편집되고 조작된 것이 분명하다. 영화는 이러한 회색지대 속에서 관객에게 타르를 판단해 보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TAR 타르>의 태도는 주인공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타르를 소개하고, 개인적인 추문으로 인해 그녀의 경력이 무너지는 과정은 근래 뜨거운 이슈인 '캔슬 컬처'의 딜레마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캔슬 컬처가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만 인식하려는 경향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영화가 비행기에서 반쯤 엎드려 있는 타르를 직접 비추는 대신, 타르를 찍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비추면서 시작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세상을 일관된 질서로 손쉽게 인식하려는 편향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작가나 제작자가 물의를 일으키면, 그들의 작품을 부정해 버리는 게 가장 간단한 판결이므로.
그러나 늘 그렇듯이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만 봐도 그렇다. 안길호 피디가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드라마는 여전히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캔슬 컬처의 주장과 달리, 현실에서 예술 작품과 예술가의 관계가 무 자르듯 잘리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이는 <TAR 타르>가 의도적으로 회색지대를 만들어 낸 이유라 할 수 있다. 영화는 관객이 스스로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려 한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를, 그간 너무 쉽게 단정 지었던 것은 아닌지. 편견과 흑백 세계관 속에서, 예술 작품의 의미와 메시지를 가볍게 취소해 버린 것은 아닌지. <TAR 타르>는 타르의 음악이, 그녀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가 여전히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지닐지 고민하게 만든다.
질문을 질문으로만 남겨두었더라면
하지만 마지막 장면 때문에 <TAR 타르>의 의도는 퇴색된다. 자기가 공연과 연주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타르. 그녀는 이제 필리핀의 작은 마을에서 영화 장면이 나오는 스크린에 맞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자기 예술관과는 정반대인, 비루한 오케스트라를 맡아서. 그런데 타르의 얼굴은 예상과 달리 생기 넘친다. 그 모든 사건과 추문에도 불구하고, 그저 음악을 느끼고 음악에 동화되면 그만이라는 듯 보인다.
이 결말은 마치 <TAR 타르>가 캔슬컬처에 대해 토론하기보다는 성급히 답을 내놓는 것처럼 느껴진다. 타르가 몰락한 여러 이유들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예술에 대한 작가의 순수성만이 중요하고, 타르의 몰락은 그녀의 예술이 침해받은 결과라고 영화는 결론을 내린 듯하다. 타르 본인의 악행, 오케스트라와 재단을 둘러싼 권력 다툼, 놀라울 만큼 빠른 캔슬 컬처 등의 다양한 이슈가 제대로 조명될 기회는 너무 쉽게 포기한다. 손님들의 지명을 받기 위해 부동자세로 대기하는 여성 마사지사를 보면서 자기 행동이 추악했다는 사실을 타르가 깨닫는 장면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의 결론에 힘을 보태기 위한 편의적인 전개라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영화의 끝에는 케이트 블란쳇만 남는다. 자신감 넘치는 마에스트로가 추락하면서 내적으로 붕괴되는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자기중심을 잃은 상황에서도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스스로를 더 뜨거운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인물상을 놀라울 정도로 잘 표현했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양자경 대신 여우주연상을 받았더라도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을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TAR 타르>의 성급한 선택이 끝내 아쉬운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A(Acceptable, 무난한)
메시지가 해석을 침해하지 않는 절제의 미덕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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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과 달라 소외된 모든 이들에게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거북목이 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자세가 비틀어져 있다고 했다. 복숭아뼈와 맞지도 않은 바지 총장이 신경쓰였다. 난 아래를 내려다 보는것이 습관이었다. 용돈을 한푼 두푼 모아 샀던 스탠스미스 기름이 반질반질했다. 아. 오늘은 애들이랑 피시방 갔었지. 구토가 심하게 올라와서 나 먼저 집에 오는 길이었다. 학교 근처에 벛꽃이 폈다. 난 내가 나온 초등학교 근처 중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친구들이라면 아주 좋아했던 내가 먼 동네에 와서 이러고 있다는게 슬프기도 했다. 애들이랑은 사이가 멀어져 보기가 힘들다. 아니 사실 나는 휴대전화도 없어서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오다가다 만나면 잘지내니 인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애들이랑 멀어져갔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거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것 같다. 난 버스를 타서 미술학원으로 갔다. 엠피쓰리 이어폰이 있어 심심하진 않았다.
난 오늘도 그렇게 집에 왔다. 이어폰이 에어팟이 됐고, 무거운 책이 가득하던 책가방에는 신입생부터 고대하던 맥북이 있다. 누군가에게 연락이 와도 답장을 안할때가 많고, 사실 먼저 하기에도 할 말이 없다. 주위에 누군가가 있으면 있는거겠지. 난 관계맺기에 서툰 사람이 맞는것 같다. 한동안은 부당한 따돌림에 나를 숨기고 싶어서 나를 속여왔지만 이제는 그냥 그런대로 흘러두는게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좋게 말하면 엉뚱함이고 나쁘게 말하면 나밖에 모르는 소통방식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다.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사가 있다. 솔직히 세상과는 어울린 적 없어. 누군가의 대단한 인생 멘토라도 되거나 좋은 친구와 동생인 양 하지만 나는 어쩌면 루저에 가까운 인간일지도 모른다.
<문라이트>는 흑인, 동성애자, 학교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3부작 영화다. <라라랜드>와 함께 이 해에 열렸던 시상식이란 시상식은 모두 휩쓸었다. 이에 대한 이유가 소수자와 약자를 중심으로 한 영화라서는 아닐거다. 작품이 갖는 장점이야 아주 많다. 흑인 피부 질감에 대한 표현, 멘토 후안과 그의 여자친구 및 주인공 어머니에 대한 연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명대사까지. 이 영화가 주요 시상식에 이름이 오르락 내리락했던 이유는 분명하고, 그 중 내가 생각하는 건 확실하다. 이야기의 전달 방식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이 전달방식은 소수자인 주인공의 처지가 왜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대표적으로 1부에서 후안과 어머니가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어머니는 후안에게 '당신이 내 아들 키울꺼야?'라고 묻는다. 후안은 째려본다. 어머니는 '너는 그래서 나에게 약 계속 팔거야?'라고 반문한다. 샤이론의 삶이 어떤지 이 장면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따돌림으로 마음을 닫았던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멘토를 만나지만 그가 우리 어머니에게 마약을 팔던 마약상이었다. 설득력이 있는 우연이다. 샤이론의 외로움을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왜? 이런 상황은 주인공에게만 있거든. 샤이론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기댈 곳이 없어진 셈이다. 감독은 이렇게 일대기를 주르륵 나열하는것이 아닌, 성장하는 과정의 단면만을 보여주어 주인공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주인공이 첫사랑에게 받은 상처와도 연결된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던 주인공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방황하다 앞과 비슷한 방식으로 상처를 입는다. 영화는 이렇게 사건을 서술하며 주인공이 겪을 외로움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한다. 보다보면 분명해진다. 주인공은 남들과 달라서 자주 넘어진 사람이었다.
감독은 이렇게 삶에서 상처를 받은 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됐을지를 우리에게 추측하게 할 뿐이다. 이런 연출의 의도는 분명하다. 영화가 일대기를 연속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삶의 변곡점이 되는 사건들로 데려가 함께 관찰한다. 이 후의 모습은 관객이 직간접적으로 만들어온 인생관에 비추어 추측할 뿐이다. 이 외의 경우가 딱 한게 있다. 엔딩 직전에 두 주인공이 만나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남들처럼 살다가 삶을 놓쳤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서 두 주인공이 선택한 답은 서로의 진심을 터놓는 것이다. 각자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면서 말이다. 사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영화는 주인공의 대사 한마디로 그들의 미래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답을 보여준다. 난 이게 감독이 주는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리틀과 같이 남들과 달라 마음의 문을 닫았던 이들을 밤바다 아래로 초대해 파란 빛으로 위로하는 셈이다. 이것은 엔딩신에 있는 사람이 '리틀'이라는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리틀은 주인공이 상처받기 전의 내면세계다. 감독은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남들과 달랐기에 아팠던 이들을 하나로 공감해주고 있다. 난 이래서 이 영화를 좋아한다. 난 게이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다. 대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서툴렀고, 미안해도 미안하다고 똑바로 못했다. 누군가에겐 상처줬던 내 자신을 혼내면서도 이해해주는 영화가 이 <문라이트>라고 생각했다.
4월 20일까지 이 작품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난 이 영화를 다들 한번 쯤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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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2월 셋째 주 씨네랩 홈시네마 추천작 3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2022년 2월 셋째 주 씨네랩이 추천하는 홈 시네마 추천작 3편을 소개드리겠습니다. :)
이번 주는 특별히 2월 16일 개봉한 <리코리쉬 피자>를 연출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전작들을 추천드리고자 합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여러분들 모두 잘 알다시피
연출한 모든 작품들이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 중의 한명인데요.
물론 그가 연출한 영화들이 난해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들도 많지만
전세계 영화계에서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팬임을 밝히고 있죠!
그럼 오늘도 씨네랩이 작품을 선정 및 추천하는 이유와
간단한 작품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홈시네마작을 시청하면서
오늘 하루도 영화로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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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왓챠 <펀치 드렁크 러브>
영화 - 멜로/로맨스ㅣ95분
- 콘텐츠 소개 :
7명이나 되는 누나들한테 들들 볶이며 자란 배리(아담 샌들러). 비행 마일리지를 경품으로 준다는 푸딩을 사모으는 것이 유일한 낙인 그는 어느 날 아침 거리에 내동댕이 쳐진 낡은 풍금을 발견하곤 사무실에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바로 그날, 뜻하지 않게 신비로운 여인 레나(에밀리 왓슨)를 만나게 된다.
오래 전부터 당신을 사랑해 왔다고, 당신과 키스하고 싶다고 말하는 레나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는 배리. 하지만 일생에 단 한번 올까 말까한 가슴벅찬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다름아닌 외로움에 지쳐 폰 섹스를 걸었다가 알게 된 악덕업체 일당, 일명 “매트리스 맨”. 배리와 레나가 꿈결 같은 하와이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아주 특별한(?) 손님들이 그들을 기다리는데...- 선정 및 추천 이유 :
제5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펀치 드렁크'의 사전적 정의는 복싱선수와 같이 뇌에 많은 충격과 손상을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뇌세포손상증입니다. 무섭고 치명적인 병이지만 뒤의 단어 '사랑'을 수식할 때 역설적이게도 로맨틱적입니다. 그만큼 치명적이고 정신을 못차릴정도의 사랑이라는 뜻으로 느껴지니 말입니다.
주인공 '배리 이건'은 7명이나 되는 누나들에 둘러쌓인 엄청난 강박 증세의 소유자입니다. 겉보기에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한번씩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증폭되어 레스토랑의 화장실을 부수거나 유리창을 깨부수는등의 기이한 행동을 벌이는 인물입니다. 어느 날 배리는 레나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방해되는 것들로부터 초인적인 사랑의 힘? 을 발휘하게 됩니다.
여느 드라마보다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드라마처럼 느껴집니다. 완벽하지 않은 이들이 너무나 완벽한 사랑을 펼쳐내는 과정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제목처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사랑에 흠뻑 빠진 이들의 감정은을 볼 수 있는 즐거움, 연출 천재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아름다운 미쟝센과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인 '배리'와 '레나'의 독특한 재밌는 사랑을 경험해보시길 바랍니다. :)
2. 왓챠 <부기 나이트>
영화 - 드라마 ㅣ155분
- 콘텐츠 소개 : 1970년대 말, 이소룡과 셰릴 티그로의 사진으로 벽면을 도배하고, 스타를 꿈꾸는 17세 청년 에디 아담스는 고등학교마저 중퇴하고 나이트에서 접시닦이로 일하고 있다. 별볼일 없는 인생이지만, 그에겐 '빅 스타'의 희망과 짭짤한 부수입까지도 챙겨주는 특별한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33센티'를 자랑하는 비정상적인 성기였다. 포르노 영화업계의 대부격인 포르노 영화 감독 '잭 호너'는 그의 파트너 앰버와 함께 소문의 진상을 확인코자 나이트를 찾는다. 에디를 본 순간, 잭은 함께 일할 것을 권하지만 그는 선뜻 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별한 물건을 썩히지 말라는 잭의 한마디로, 에디는 포르노 배우 '더크 디글러'로서의 화려한 포르노 인생을 시작한다.
- 선정 및 추천 이유 :
제32회 전미비평가협회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수상작.
제62회 뉴욕비평가협회상 남우조연상 수상작
제55회 골든글로브시상식 남우조연상 수상작
제10회 시카고비평가협회상 남우조연상 수상작
제23회 LA비평가협회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신인상 수상작
엄청난 수상경력이 증명해주듯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최고 작품 중의 하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극 중 배경이 되는 1970~1980년대의 미국 포르노 산업를 소재로 하는만큼 거부감이나 자극적인 선정성 등의 반감 이슈도 있지만 소위 '섹스'를 말하는 영화는 결코 아닌데요.
포르노 산업에서 일하는 관계되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여러가지 인간 군상과 인간의 희노애락, 흥망성쇠를 느끼게 되고 깊고 철학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 다양한 캐릭터들마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그들의 인생을 바라봅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력, 연기의 힘을 본다면 계속 넋을 놓고 지켜보게 되는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또한 폴 토마스 앤더슨의 빼어난 연출력과 당시의 유행했던 곡들로 구성된 영화 속의 음악들도 <부기 나이트>의 추천 포인트로 꼽고 싶습니다.
3. 왓챠 <리노의 도박사>
영화 - 범죄,드라마, 스릴러 ㅣ 95분
- 콘텐츠 소개 : 화려한 도시 리노, 그곳의 한적한 식당앞에 한 남자가 초점없는 눈빛으로 앉아 있다. 그의 이름은 존(John: 존 C, 라일리 분)는 도박으로 얼마 안되는 재산을 모두 날렸다. 그에게 한 노신사가 온다. 그는 존에게 커피와 담배를 제공하고 그의 얘기를 들어준 후 믿기지 않는 제의를 한다. 노신사 시드니(Sydney: 필립 베이커 할 분)와 함께 존은 시내로 들어온다. 도박의 도시 리노. 이곳 카지노에 도착하자 시드니는 존에게 50불을 준 뒤 돈 따는 방법을 알려준다. 놀랍게도 시드니의 말이 그대로 적중하자 존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깨끗한 방에서 편안한 밤을 맞게 되는데..
- 선정 및 추천 이유 :
제23회 LA비평가협회상 신인상 수상작.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초기 연출작입니다. 전형적인 범죄드라마, 스릴러 영화는 결이 조금 다르거나 약하지만 범죄드라마라고 분류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 또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물들을 세심하게 묘사해내는 특징이 있는 영화인데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초기작부터 이렇게 영화를 정말 만들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특히 초기 영화에 대부분 출연한 배우 필립 베이커 홀, 존 C.라일리 등의 연기는 물론 기네스 팰트로, 사무엘 L. 잭슨의 예전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는 영화입니다. 전체적으로 쓸쓸한 분위기의 영화, 그리고 현실적인 폴 토마스 앤더슨의 감독의 영화를 보고싶다면 영화 <리노의 도박사>를 추천드립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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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분석영상 :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영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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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드 가이즈 2> 메인 예고편
배드 가이즈 2 - 7월 30일 극장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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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틱> 메인 예고편
비행기 추락 사고 이후, 북극에 조난된 ‘오버가드(매즈 미켈슨)’.
그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전을 치고, 북극의 지형을 조사하고,
송어를 잡고, 죽은 동료의 무덤에 가서 인사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추락한 헬기 속 생존자를 발견한다.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이대로 구조를 기다릴 수는 없고,
자칫 이동하면 함께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홀로 지내면서 잊고 있었던 생명의 온기.
그녀를 살리기 위해, 지도 한 장에 의지한 채 임시 기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속 선택의 순간…
살리기 위해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