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2-02-04 21:59:47
‘정치’가 변질시킨 두 사람의 관계
-<킹메이커>(2022)
정치는 세상을 바꾼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직접 정치를 하려고 선거에 나선다. 선거에 당선되어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드는데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 주변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들 모두가 진심으로 정치인을 위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모든 사람의 진심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모여드는 모든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가 되기는 어렵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정치는 그래서 외롭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을 지키려 애쓴다. 가까운 가족부터 친구까지 진짜 자신을 생각해주는 존재들은 정치라는 것을 떼어놓고 봤을 때도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이 온갖 어려움과 외로움 속에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건, 이들이 주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나 주변의 친구들은 정치적인 의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의견을 내놓으며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때론 다른 정치적인 견해로 인해 서로 거리를 두며 멀어지게 되기도 한다. 결국 그들을 멀어지게 하는 건 그들이 가진 정치적인 생각과 해석들이다.
정치인 운범과 조력자 창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킹메이커>
영화 <킹메이커>는 정치인 운범(설경구)과 조력자 창대(이선균)의 이야기를 담는다. 운범은 몇 번의 선거에 실패하다 사무실에 찾아와 조력자가 되고자 하는 창대와 만난다. 창대는 운범에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실제로 그 방법은 운범을 선거에서 이기게 만든다. 영화는 초반에 창대의 선거 전략을 영상으로 보여주게 되는데 아주 기발한 방법이지만 마음 한편에 불편함이 느껴지는 방법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느끼는 그 불편한 마음을 운범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정치는 대체적으로 불쾌한 것이다. 그 불쾌함은 그동안 정치인들의 행태가 만들었다. 선거 전에 이야기했던 여러 공약들은 당선 후 지켜지지 않고 어물쩍 폐기되어 버린다. 그리고 다음 선거 때 다시 들고 와 이번에는 해내야 할 공약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치적 노림수들이 이제는 많이 알려져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될 여지가 생겼다. 영화 속 창대의 선거 전략들은 그런 정치적 노림수가 들어가 있는 것들이다. 이 방법에는 일반 국민을 교묘히 속이면서 여론 몰이를 하는 전략도 포함되어 있다. 비록 그것이 상대 정당의 전략을 그대로 되치는 방법이었다고 하지만 정당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운범은 창대를 한동안 중용하지 않는다. 그러다 다음 당내 선거에 창대를 불러 결국 선거에서 승리하지만 그가 썼던 정치적 모략은 실제 대통령 선거에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이용당하고 나쁜 이미지를 만든다. 이용하는 수단이 좋은지 나쁜지는 ‘승리’라는 큰 목표 앞에서 판단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정치인들은 그저 승리하기 위해 어떤 수단들을 쓴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제대로 먹혀 승리로 이어지게 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런 나쁜 면이 악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판단은 모든 것이 행해지고 난 이후에 평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창대 같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기면 그것이 정당화된다는 논리가 없어지지 않게 된다.
씁쓸하게 만드는 운범과 창대의 관계
이 영화를 보며 씁쓸해지는 건, 꽤 오랜 시간 이어질 것 같던 운범과 창대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이 두 사람이 가진 이상은 비슷한 듯 보였고, 이들의 전략이 성공했을 때 오래도록 계속될 것만 같았다. 비록 정치판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그 둘은 잘 맞는 친구였다. 서로의 생각과 전략은 달랐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선거의 결과들은 훌륭했고, 그건 정치적 경쟁자들에게도 위협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창대가 가진 전략의 불편함은 운범과 창대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영화 속 어떤 사건이 그들을 갈라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이 가진 정치적 과정과 방법이 너무 다른 것이 실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맨 마지막 몇 년이 지난 후에 한 식당에서 운범과 창대가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운범은 활짝 웃지만 창대는 그렇게 크게 웃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이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서로 과거와 같은 가까운 관계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는 두 사람은 그저 예전처럼 밥한 숟가락을 뜨면서 대화를 하고는 그대로 돌아선다. 혼자 남겨진 창대의 모습에서 외로움이 그대로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도, 마지막 장면도 창대의 모습이 화면에 담긴다. 정치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혼자 남겨진 창대의 모습은 정치라는 혼탁한 영역에서 아주 영민하고 똑똑한 전략가였지만 결국 외로움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어서 씁쓸해진다.
운범이 하고자 하는 정치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외롭지 않았을까. 영화는 그것에 대한 답을 명확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는 관객들은 이 영화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엄창록 씨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운범이 하고자 하는 정치가 무엇이었는지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적을 통해서 대충이나마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운범은 창대의 나쁜 선거 전략을 활용하지 않고도 정치인으로서 성공했고 크든 작든 자신의 정치를 펼쳤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그의 삶의 어떤 부분에는 그만의 외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정치인이 그렇듯.
‘정치란 무언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영화 <킹메이커>에는 정치와 친구, 그리고 배신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진다. 운범과 창대의 이야기를 가만히 보다 보면 결국 정치라는 것이 무언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우정과 관계가 흥미진진하게 담길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연기 덕이 컸다. 운범을 연기한 배우 설경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연설의 모습과 목소리 톤을 그대로 보여주며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창대를 맡은 배우 이선균은 부드럽지만 교묘한 선거 술수를 가지고 있었던 선거 전략가 역할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다른 조연 배우들도 눈에 띄는데, 박 비서 역을 맡은 배우 김성오와 이실장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은 평소에 연기했던 발성과 다른 톤으로 연기하고 있어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은 2017년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이 영화 만의 팬덤을 가지고 있다. 크게 관객을 모은 건 아니었지만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계속해서 재개봉시키면서 좋은 반응을 보여줬었다. 이번 <킹메이커>에서는 좀 더 안정적이고 세련된 연출로 찬찬히 두 인물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좀 더 촘촘해졌고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에도 어렵지 않아 이전 연출작보다 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킹메이커>는 두 인물의 이상과 그 이상으로 가기 위한 방법이 충돌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이 두 인물의 우정도 같이 담겨있다. 정치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영역에서 만났던 두 인물의 궤적이 영화에 잘 담겨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인물의 감정 모두를 다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영화다. 대선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 시기에 정치란 과연 무엇이고, 어떤 방법이 옳은 방법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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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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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불한당>,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불한당>과 <무뢰한>의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고품격(?) 막장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두고 누군가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불륜이 선빵이면 그 정도는 해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농담조로 말하자 상대방은 부부, 아니 인간관계에서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냐고 진지한 답을 내어놓았다. 동감하며 답했다. 맞다. 그런 메세지는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믿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짓인지를. 안 믿고 있다가 믿을 만한 사람이란 걸 확인하는 게, 믿었다가 못 믿을 놈이란 걸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데 말이다. 그런 인생의 교훈을 일찍 깨달아서 도움이 되었겠다는 말에 웃으며 답했다. 아뇨, 알면서도 당했다고. 이번은 다르겠지. 이 사람은 다르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결국 결과가 똑같았다고. 알면서 당하면 진짜 바보인데. 안 그런가?
현수 曰 "(어휴) 촌스러워요"
<불한당>은 촌스러운 듯하면서 까리하다.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빨간 스포츠카 같은 영화다. 맛깔나는 대사나 장면도 많다. 다년간의 드라마와 영화 학습으로 쌓인 우리의 기대와 예지력을 조금씩 벗어난다. 처음부터 생선 눈이 무서워서 회를 못 먹는다는 둥, 사람 눈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을 죽이냐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 최후의 만찬처럼 회를 사주고 머리에 총알을 박질 않나, 사람 죽이는 건 안 무서운데 여전히 생선 눈은 무섭다고 깻잎을 덮질 않나. 그러다간 또 푼수 떼기처럼 허세를 부리다가 삼촌에게 얻어맞고 차에 가서 훌쩍거린다. 그 눈물이 어찌나 새롭게 느껴지던지. 덩치가 작은 현수가 덩치 큰 수감자와 뺨 때리기를 하면서 주먹을 쓰는 반칙을 하면서도 당당하고, 재호는 그걸 보며 '혁신적인 또라이'라며 마음에 들어하기도 한다. 그런 현수에게 열광하는 당신도 두말할 것 없이 압도적인 또라이 아니겠어.
숨겨둔 카드를 빨리 보여준다. 아니, 벌써? 살짝 당황스럽지만 별로 걱정되진 않았다. 재호는 현수가 위장 경찰인 걸 일찌감치 알고 있고, 현수는 심지어 순진무구한 얼굴로 "형, 나 경찰이야"라고 자백을 한다. 이쯤 되면 누구나 알아차리게 된다. 무간도 같은 언더커버 전개가 아닐 거라는 것. 실제로 영화는 나쁜 놈인 건 둘째치고 등장인물들이 어지간히 또라이들이다. 이상하게 순정파 같은 또라이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실 재밌어서 도와준 거 같기도 하고
재호와 현수의 영화이다. 좀 더 치자면 재호와 현수, 병갑과 천 팀장이 남는다. 현수의 행동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차피 재호는 잘해야 미끼 혹은 돌다리다. 검거해야 할 타켓 중 일부에 불과했다. 어지간해선 칼을 가지고 재호를 얼마나 다치게 할 수 있을까 싶은데 기를 쓰고 그렇게 말리고선 대신 다친다. 재호를 구하지 않았어도, 다치지 않았어도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있진 않았을까. 목숨은 어머니 말씀처럼 박애주의적인 입장에서 구할 수도 있다 쳐도 교도소에서 남은 기간 동안 모든 힘을 다시 찾을 수 있게까지 해준 게 제법 과하게 느껴졌다. 목적을 위해 마음을 얻는 일이 이렇게 정성이 가득한 일이었나 싶었다. 재호에게 든든한 믿음을 얻으려는 전략이었을까, 그 사이에 진심이 있었던 걸까.
게임 끝나버렸는데요
재호가 왜 현수를 아까워하고 아꼈는지는 분명하다. 고아원부터 함께한 병갑과는 다르다. 병갑은 무조건적으로 재호를 좋아하고 무해하다. 하지만 그라고 뒤통수를 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재호는 늘 뒤통수를 조심하라고, 뒤를 돌아보며 살라 하지 않았나. 병갑이 현수를 꼬마 새끼, 짭새 새끼라며 부르며 질투하고, 회장 자리에 앉아보면서 히히덕거리는 순진한 힘에 대한 로망은 빤히 보이니까 괜찮다. 병갑이 정말 재호를 아끼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던 건 삼촌이 재호를 죽이려고 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놀라지 않았을 때였다. 별스럽지 않게 면회를 와선 뒤늦게 삼촌이 널 죽이려고 했다며 재호의 뒤통수에 대고 말하는 장면. 아, 이래서 병갑이와는 안 되겠구나 했다. 만약 재호가 잘못됐어도 지금처럼 침착할 수 있었을까. 훌쩍거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현수가 재호의 뒤통수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병갑은 늘 한 박자 늦고 어딘가 빈틈이 있다. 재호는 병갑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야속하게도 마음이 수평을 이루는 사이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병갑의 마음이 재호보다 훨씬 깊고 무거운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나 상황이냐, 앞통수냐 뒤통수냐
<불한당>은 내게 믿음에 관한 영화다. 그 안에 사랑이 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무뢰한> 이후에 믿음의 씁쓸한 얼굴이 떠오르는 영화다.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누구나 뒤통수를 칠 수 있다. 신뢰가 필요하다는 말은 역으로 현재 세상의 기본값이 거짓말과 뒤통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뢰한>은 <불한당>과 비교하면 그나마 해피엔딩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비참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재곤과 해경은 살아있다. 둘 중 어느 누구도 서로를 완전히 믿진 못했다. 재곤은 해경을 속일 힘과 집요함이 있었고 혜경은 속일 수는 있지만 끝까지 모질지 못했다. 그에게 칼을 꽂아도 치명상에 이르지 못한다. 재곤은 혜경을 찾아가 변명도 하고 믿음을 저버린 걸 나름의 방식대로 속죄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게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다. 해경의 복수는 바들바들 떨면서 그에게 칼을 꽂는 것이고, 재곤의 속죄는 그 칼을 그대로 맞고서도 그녀의 새해 복을 챙기는 것이다.
그러나 <불한당>은 다르다. 현수와 재호는 둘 다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다. 인정사정없이 칼을 꽂고 목을 조르고, 얼굴을 뭉개고 총을 쏜다. 재호의 배신은 순순히 넘어가기 힘들다.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은 건드리는 게 아니지 않나. 재호가 현수를 감는 방법을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다. 하나뿐인 어머니를 아끼는 현수를 알고도 완전히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려면 어머니의 죽음쯤은 감수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오열하는 현수를 보던 재호의 얼떨떨한 표정이 인상 깊다. 마치 "그렇게까지 괴롭고 슬퍼할 일인가" 싶으면서 약간은 잘못했나 싶은 표정.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죽음으로 현수가 심지어 신분을 드러내는, 평생 재호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믿음을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비밀과 속내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게, 가족을 그렇게 아낄 수 있다는 게 재호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재호의 마음도, 어깨도 무거워진다. 우리만 생각한 건 아니었겠지. 그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그 생각.
이렇게 어려운 건 현수 네가 처음이야
재호는 착실히 판을 짜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서 원하는 것들을 이뤘다. 수많은 사람들이 곁에 왔다 가면서 세워놓은 방법이었다. 이제 현수도 곁에 있고 고병철 회장도 사라졌다. 살기 위한 일이었을 뿐 지겹고 피로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현수에게는 마지막까지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수의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다른 게 분명한데도, 주변의 공기도 날씨도 다른데도 함정에 걸어 들어갔다. 병갑을 직접 명패로 때려죽이면서도 현수가 복수를 하고 있구나, 내 손으로 복수를 하게 하는구나 했을 것이다.
묘하게 밉고 묘하게 미워할 수 없다
재호의 병 주고 약 주고(어머니는 돌아가시게 하곤 장례식 비용과 마무리는 도와주는) 식의 행동을 알게 된 후, 현수는 재호를 이상하게도 많이 배려해 준다. 일찌감치 어머니를 죽인 사실을 얘기해서 자신을 죽일 기회도 주고, 경찰들로부터 피할 수 있게 작전을 모조리 바꿔버린다. 재호 역시 자기 한 몸 지키기 바쁜 와중에도 현수가 곤경에 처하자 다가와서 도와주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재호를 천 팀장이 차로 받아버릴 때는 순간 이 영화의 악역이 천 팀장이었나 싶게 느껴질 정도다. 하긴, 천 팀장이 제일 못된 사람은 아니지만 제일 야멸찬 사람이긴 하다. 모든 걸 알고도 원하는 걸 위해서만 움직이는 사람. 죄책감 같은 건 스스로 괴롭기만 하고 당하는 놈이 바보라고 하더니 그럼 이제 누가 바보인가. 얼마나 악역인지는 재호의 웃음소리 뒤에 현수가 천 팀장에게 박아 넣은 총알 소리를 세어보자.
현수가 될 수도 있었지
재호와 현수를 보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안타까워진다. 재호가 현수의 어머니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아니 현수가 원하는 대로 감방으로 입학하지 않고 취직을 했다면, 재호가 오세안 무역 사람이 아니고 현수가 경찰이 아니었다면, 재호가 가족애라는 걸 공감하거나 현수가 좀 더 솔직하지 않았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다. 현수가 바라던 대로 취직을 했다면 회를 먹으면서 영화 시작과 동시에 머리에 총알이 박혔을 것이고 오열하면서 홀로 남은 쪽은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 재호가 현수의 어머니를 알뜰히 챙겨줬다면 어머니를 핑계로 현수를 움직이게 했던 천 팀장이 무슨 짓을 했을지도 알 수 없다. 만약 뭔가 달라졌다고 해도 결과가 과연 안타깝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다.
처음에는 현수 입장에서 재호를 원망했다. 하고많은 방법 중에 꼭 어머니를 죽이는 방법이었어야 했을까. 좀 더 솔직할 순 없었을까.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으면 너를 죽였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 번도 누굴 믿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말이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를 믿는다고 말할 때마다 괴로웠다고도. 천 팀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이야기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을 입도 이해는 간다. 경찰인 걸 속이는 것과 어머니를 죽였다는 점을 속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말했다 하더라도 현수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재호가 밝히는 순간 현수는 세상에 홀로 버려지게 된다. 차라리 끝까지 몰랐으면 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영화를 보고 나선, 현수에게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과연 현수가 재호의 숨을 끊었을까 싶었다. 총도 맞고 차에도 치어 치여 움직이지도 못하는 재호의 고통을 줄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는 끈질기니까 살아남을 순 있겠지만 어차피 이젠 함께할 수가 없다. 현수와 재호는 정말 모든 걸 그만두고 버리고 떠날 용기는 없었다. 재호가 다시 감방에 잡아넣는다고 치면 지난날처럼 감방을 주무르며 지낼 수 있을까. 또 나온다 한들 다시 이 일에서 손을 뗄 수 있을까. 현수는 이 일을 계기로 경찰을 그만둘 수 있을까. 현수는 모든 것을 재호에게로 돌린다. 이 모든 상황도, 사람들도, 시간도. 사람들도 역시 상황을 믿을 테니까. 재호의 손에 쥐여준 그 총을 믿을 테니까.
마지막 장면의 현수의 표정은 춥다. 늦은 후회와 밀려오는 공포와 두려움에 허여멀건 하게 질려있다. 굳이 손으로 재호의 숨통을 막을 필요가 있었을까. 여태까지 잠입을 위해 때리고 죽였던 수많은 사람들과 재호는 다르다. 의미가 생기고 믿어버리게 됐다. 차라리 그가 알아서 고통받도록 그대로 두었다면 적어도 죽음은 현수의 탓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죽이고 믿음을 저버린 복수는 현수를 스스로 세상에 홀로 버려진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현수가 재호를 덮었던 손을 늦지 않게 놓아버리고 뒤도 돌아버리지 않고 걸어갔으면 어땠을까. 그 빨간 스포츠카가 비어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들이마시는 재호의 숨은 인셉션의 팽이처럼 마지막 숨인지 계속되는 숨인지 알 수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영화는 불한당이고, 나쁜 놈들의 세상이다. 현수는 재호를 죽게 함으로써 불한당이 되고, 재호의 마음을 이해한 채로 살아가게 됐다.
여담이지만 <무뢰한>에서 목적을 위해 믿음을 뒤로했던 형사 재곤은 <열혈 사제>에 가서는 신부가 되어 "너에게 말한다. 77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역대급으로 성장한 인내심과 믿음을 보여주었다. <불한당>의 피와 눈물, 배신감과 불안, 슬픔과 두려움에 젖은 경찰 현수는 재호와의 사이에서 용서가 물 건너가 버린 게 마음 아프기도 하다. 인생이 그런 걸지도 모른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용서를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내 안에 살아있던 그 사람을 죽은 사람처럼 사라지게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것이다. 언제 봤다고 대뜸 자기라고 부를 때였는지, 처진 어깨로 등 뒤에 칼이 있는지도 모르고 감방 복도를 걸어갈 때였는지, 출세하기 한참 전에 낡아빠진 사무실에 데려가 사람을 믿지 못하는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을 때인지, 알면서도 자기가 불러들인 죽을 자리로 들어오는 초연함 때문인지, 혹은 언제든 총을 쏠 수 있던 사람이 자신 앞에서는 결국 총을 제대로 겨누지도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인지. 다만 현수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차마 총을 쏘지 못하고, 손을 떼지 못하는 그 순간에 여실히. 그 마음이 미안함 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어둠 속에서 느낀 모든 것들이 날이 밝아오면서 밀려올 때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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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꾹꾹 삼키는 것이 아닌
'스왈로우'는 이식증을 다루는 영화이다. 주인공 헌터는 결혼을 하고 집에서 홀로 지내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압정, 구슬, 배터리 등을 삼키는 이식증 현상이 나타난다. 남편과 시부모님은 헌터가 걱정되어 돕고자 상담도 권유해보지만 헌터는 오히려 더 크고 뾰족한 물건들을 삼킨다. 헌터는 상담사와 얘기하면서 자신이 여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하나씩 얘기하며, 후반에는 영화의 터닝포인트, 강간범인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 대화한다. 마지막에는 임신 중절 약을 먹으면서 화장실에서 나오는 연출로 마무리된다.
사실 영화를 처음에 봤을 때는 헌터가 물건 하나하나 삼킬 때 마다 마음도 몸도 너무나 아팠다. 내가 직접 그 물건들을 먹는 마냥 영화 보면서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헌터가 괴로워하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이어폰을 빼면서 조금씩 넘기기도 했다. 사실 영화에서는 헌터가 왜 이렇게 물건들을 삼키고 이런 행동들을 하는지 자세히 이유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마지막까지 봐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도 있었고 과연 내가 생각한 게 맞는 걸까 싶은 의문도 들어 블로그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이해하고 `스왈로우`란 퍼즐을 하나씩 맞춰 나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시어머니가 헌터에게 건네준 책에, "Everyday, try to do something unexpected. Push yourself to try new things."가 헌터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처음에 봤을 때도 `설마 이 구절 하나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도고?`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이식증이란 질환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기도 해서 소재가 흥미롭기도 하고 제목처럼 `스왈로우`, 삼키다란 행위를 통해 사람의 심리를 표현한 점이 신선했다. 여기에 영화에서 나오는 장소별 색채 대비와 더불어 영화 포스터만 봐도 느낄 수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통해 영화가 한층 더 다채로워진 것 같아 인상 깊게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아픔이나 비밀이 있을 것이다. 누구한테는 에겡? 저게? 싶은 점 마저 타인에게는 큰 상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감정들을 잘 추스르고 극복하고, 힘듦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그 굴레에 빠질 수는 없을 테니까. 꼭 혼자 씨름하면서 그 상황을 직접 대면하여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옆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솔직하게 자기 생각과 감정을 보여주면서 꼬인 실을 하나씩 풀어가도 된다.
누구도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삼키기보다는 뱉는, 꾹꾹 쌓기만 하는 것이 아닌 소신 있게 용기 있게 외치고 지적하는 행동을 통해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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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는 있지만 내용이 없던 액션 영화, 악인전
2019년 칸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악인전>. 그래서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고, 마동석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잘 살렸을까 설마 그대로 이용하진 않았겠지,,, 기대반 우려반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우려가 현실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악인전> 시놉시스
영화 <악인전>은 조직 보스와 강력반 형사,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이들의 공통의 목표를 위해 손잡는 흥미로운 설정에서 시작한다. 중부권을 장악한 조직의 보스 장동수가 접촉사고를 가장해 접근한 남자 K에게 공격을 당한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상대를 공격한 K는 사라지고, 졸지에 피해자가 된 조직 보스 장동수는 분노로 들끓는다. 연쇄살인을 확신하고 홀로 사건을 추적하던 강력계 형사 정태석은 또 다른 검거 대상이었던 장동수와 손을 잡는다. 그와 연쇄살인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이자 증거였기 때문이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악인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내용보다 스타일 중심의 영화
영화 <악인전>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배우들의 캐릭터를 믿고 스토리의 탄탄함 없이 극을 밀고 나가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현대사회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한다. 내용보다 스타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고 흐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뭔가 이번 작품을 통해서 마동석 배우의 이미지가 굉장히 소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작품들에서 가장 나쁜 역으로, 그리고 힘도 가장 많이 쓰는 역으로 나왔지만 액션의 종합선물세트를 딱 주고 이제는 다 똑같은 연기로 보인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연쇄살인마 K의 사연은?
영화 <악인전>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연쇄살인마 K 강경호의 이야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강경호가 뭔가 그냥 사이코패스로 미친사람인 것으로 결정을 내려놓고 원래부터 그런사람이니 사람을 죽인거다. 이렇게 몰고가서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연출이 강경호를 쫓는 과정에서 강경호의 가족 사진도 보여줘서 무슨 사연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떡밥들은 회수가 다 되지 않고, 그저 사이코패스라는 결정을 내려놓고 몰아가는 것 같아서 캐릭터가 너무 단편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액션신만큼은 끝내줬다
안타깝거나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액션신은 실로 괜찮았다. 마동석의 캐릭터를 잘 활용했고, 김무열 역시 액션신을 잘 소화했다. 다른 영화에서 다 한 번씩 봤던 장면들이었지만 그래도 영화 <악인전>에서 튀는 장면없이 잘 묻어났던 것 같다. 다만 스토리 전개가 갑자기 차에 치어서 그렇게 잘 싸우던 장동수가 송장처럼 누워있고, 갑자기 장동수가 형사를 도와주면서 법정 증언을 하고 거의 감독 하고 싶은 거 다해! 이런 느낌으로 후루룩 끝나버려서 당황스러웠지만 액션은 재밌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영화 <악인전>은 기대를 하고 본 작품이었지만 시간과 돈을 들일만큼의 작품은 아니었다. 킬링타임용으로 적당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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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새벽은 반드시 찾아온다" 미야케 쇼 감독 <새벽의 모든> 개막작 관람 후기
[JIFF 데일리] "새벽은 반드시 찾아온다" 미야케 쇼 감독 <새벽의 모든>
개막작 관람 후기
<새벽의 모든>,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개막작>
제목 : 새벽의 모든 (All the Long Nights)
감독 : 미야케 쇼
각본 : 미야케 쇼, 와다 키요토
원작 : 세오 마이코 - <새벽의 모든> 소설
주연 : 마츠쿠라 호쿠토 (야모조에 타카토시 역) /카미시라이시 모네(후지사와 미사 역)
시놉시스 :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후지사와는 PMS(월경전증후군)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고, 구리타 과학이라는 작은 회사에 입사한다. 또 다른 신입 사원 야마조에, 알고 보니 그 또한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동병상련을 느낀 야마조에와 후지사와는 서로 도우며 마음의 상처들을 점차 치유한다.
OVERVIEW
쉽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왜 이 영화가 그 많은 경쟁을 뚫고 한 도시의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이해했습니다. 본 상영에 앞서 ‘미야케 쇼’ 감독님이 무대에 올라와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그중에 인상적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Q. 관객분들이 어떻게 이 영화를 관람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미야케 쇼’ 감독님 A. 이미 사회자분께서 영화를 멋지게 설명해 주셔서 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영화가 개막작에 선정돼 감사하고, 영화를 멋지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공황장애와 PMS(월경전증후군)를 앓고 있다. 둘은 처음에는 남들을 신경 쓰고 자신들만의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그것들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순수해진다. 감독인 나도 함께 점점 자유롭고 순수해졌다. (내용 중 일부 발췌)
감독님은 두 주인공,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한 번 더 설명하셨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하게 어려서부터 남들의 시선과 관심에 유독 집중한다. 내게 부족한 것은 더욱 단점으로 보이며, 내가 가진 장점과 스타일은 일반적인 트렌드에 뭉게지기 일수다. 인기 없던 남학생이 밴드부를 만들더니 공연장에 서서 묵묵히 노래하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와는 친하지 않았지만 기존 인기 많은 밴드와 동등한 자리에 서 있었다. 관객석에선 야유나 하품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여전히 그 친구의 무대가 인기 많은 기존 밴드보다 기억에 남았다. 감독님 인터뷰를 들으며,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장애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해졌다.
약은 소용없다
영화는 주인공 ‘후지사와(배우 카미시라이시 모네)’의 자기소개 같은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난 어떤 인간으로 인식될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에게 질린다.’ 등 남들에게 표현하지 않는 자신만의 어둠을 설명한다. 장대비 속에서 옆으로 쓰러지는 주인공을 보며 PMS(월경전증후군)의 고통과 불안함을 보여준다. 제아무리 약을 먹지만 효과는 전혀 없어 보인다. 약효가 없다는 점은 두 주인공이 가진 공통점 중 하나다. ‘야마조에(배우 마츠무라 호쿠토)’는 공황장애와 함께 대인기피증 같은 모습을 처음부터 보여준다. 예민함이 아니라 모든 것들에 대한 무미건조한, 시니컬한 태도로 일상을 보낸다. 그도 우울증 약을 복용하지만 일순간 발작이나 흥분을 저하할 뿐 완쾌는 없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약은 답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가 이야기하는 진짜 치료제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영화를 관람하시는 분들이라면 인류의 ‘만병통치약’이 무엇인지 찾아보셨으면 좋겠다.
탄산수를 마시다
PMS를 앓는 ‘후지사와’는 자신이 언제 또 주변 사람들에게 분노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장 동료들에게 과자나 빵을 선물하며 두터운 신뢰를 쌓으려 노력합니다. 주변 사람을 잘 챙겨주는 상냥한 성격이죠. 반대로 공황장애를 앓는 ‘야마조에‘는 남들의 시선은 물론, 자신에 대한 평가나 주변 사람의 행동과 질문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과자를 나눠주는 선량함은 그에겐 쓸데없는 배려로 보일 뿐입니다. 둘의 접점은 ‘탄산수’입니다. ‘야마조에’가 탄산수 병뚜껑을 여는 소리가 ‘후지사와’의 신경을 건든 것이죠. 탄산수는 그의 답답한 삶과 고뇌를 투영한 음료입니다. 누군가에게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그와 달리 탄산수는 청량하고 목을 간질이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니까요. 그런 탄산수도 다른 누군가에겐 괴로운 소음공해가 되기도 합니다. 둘의 만남은 탄산수 하나로 처음부터 어긋나 보입니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야마조에’가 탄산수를 마시는 장면은 확연히 줄어듭니다. 이와 함께 둘의 갈등도 점점 사라지죠. 탄산은 갈증을 해소해 주고, 솔직함과 다정함은 두려움을 줄여주는 것이죠.
어른들은 알고 계신다
남녀 주인공 주변에는 항상 나이 많은 어른들이 함께합니다. 영화가 흥미진진했던 이유는 단순히 장애를 앓고 있는 청춘 세대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서 좋았습니다. 둘을 돌보고 지켜주는 이해심 넘치는 어른들도 제각각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죠. 누군가는 동생을, 누군가는 누나를, 남편을 일찍 떠나 보낸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이죠. 그들이 보기에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상처를 가진 존재이자 자신들을 투영한 매개체인 것이죠. 시니컬한 ’야마조에‘는 영화 초반, 그런 어른들을 지적하고 삶을 재미없게 산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그가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을 갖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야마조에‘의 작은 변화도 빠르게 캐치하고 웃어주며 칭찬하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은 아픔을 숨기고 사는 그늘 진 꽃들이 밝게 피기 까지를 기다려줍니다. 영화를 보시며 주변인들의 태도와 반응에도 집중해 보시죠!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거야
내리막길은 가속도가 붙으면 더욱 빨리 떨어집니다. 오르막길은 점점 많은 힘을 내야지만 올라갈 수 있죠. 두 주인공에게도 영화는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의 모습을 계속해서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 합니다. 삶은 내리막은 자동, 오르막은 수동인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햇볕이 따뜻한 지 알기 위해서는 창문을 열고, 자전거에 올라타 당당히 바람을 맞아야 합니다. 현장 분위기나 촬영 기법이 굉장히 겨울 감성을 자극합니다. 그렇지만 굉장히 따뜻한 응원을 품고 있죠.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어쩌면 오르막을 오르는 상대에게 웃어 보는 영화였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 기쁜 날도, 슬픈 날도 반드시 끝난다. 그리고 새로운 새벽이 찾아 온다.“
영화 속에는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진짜 치료를 받는 장면은 어둠 속에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야마조에‘가 직장 동료에게 붕어빵을 선물하는 모습을, ’후지사와‘가 다시 일어나 준비할 수 있었던 모습을! 영화를 관람하시고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1) 양선생 개막식 방문기 링크
2) 양선생 인스타그램 링크
2024.05.01.19:30 전주시 한국문화의소리전당 모악당(001)
2024.05.02 13:30 CGV 전주고사 3관(120)
2024.05.05 10:30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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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필요한 이야기.
거대한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이야기도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가끔 우리가 진정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멜로무비>는 사랑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감독 김무비와 영화를 사랑하는 고겸, 작곡가 홍시준과 영화 시나리오 작가 손주아 등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은 서로 사랑으로 이어져있다. 연인 간 사랑, 형제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그리고 영화에 대한 사랑까지.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얼마나 빛나는지 보여준다. 특히, 영화를 사랑하던 무비의 아버지와 영화를 사랑하는 고겸의 눈빛은 영화를 볼 때 항상 빛나고 있다. 단순히 약 2시간 동안 상영되는 가상의 비디오일지라도 이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행복과 존경,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멜로무비에는 흔한 악역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인물들만이 나올 뿐.
많은 작품이 주인공을 방해하는 자극적인 악역을 등장시켜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막아서는 존재는 그 어떤 악역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이 내면 속 가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들, 어두운 감정들이 장애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장애물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현실 속 우리의 삶에도 영화 같은 거창한 악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우리를 막아서는 악역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기에 <멜로무비>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경험한 이야기를 풀어내니까.
<멜로무비>는 모든 인물들이 잔잔하다.
그러나 잔잔한 인물들은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소리 지르고 통곡하고 그 어떤 거센 감정들보다도 오히려 잔잔한 듯 떨리는 감정이 마음에 더 깊이 와닿기도 한다. 특히, 고겸은 항상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눈물을 참는다. 눈물을 꾹 참지만 그 탓에 흔들리는 목소리는 오히려 그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었다. 이런 인물들의 잔잔함을 극대화시켜주는 장치가 있다. 바로 나레이션이다. 가끔은 인물의 대사로도 표현해낼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그럴 때, 나레이션은 어렵지 않게 인물의 감정을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냥 대화하듯 툭 던져지는 나레이션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물과 더 가까워지게 만든다. 각자의 인물이 어떤 서사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에게만 들려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앞으로 전개될 인물의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에는 “영화 같다”는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내가 생각하는 <멜로무비>에 대한 한 마디 정의도 이와 같다. “영화 같다”
사람들과 함께 모여 영화도 보고, 천장이 뚫린 차에서 바람도 맞는 각각의 장면들은 모두 낭만적인 영화 같았다. 아름다운 색감과 풍경, 이에 더해지는 음악은 가슴을 뛰게 만든는 한 편의 영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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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믿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줄거리
독립해서 살고 있던 알리아는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의지할 가족이라곤 동생인 아벨과 부모님이 유산으로 남겨주신 저택뿐. 알리아는 아벨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벨은 이곳에 어떤 존재들이 있다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들었던 아벨은 알리아가 자신을 믿지 못하자 영매인 윈두 부인에게 데려간다. 윈두 부인은 알리아가 제3의 눈을 뜰 수 있게 만들어주지만, 알리아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며 아벨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날, 병원에 간 알리아는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에게만 말을 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감상 포인트
1. 공포영화 만렙이라면 코웃음 나오고 쪼렙에게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수준이다.
2. 의외로 귀신보다는 잔인한 장면이 더 보기 힘든 영화다.
3. 속편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라 끝내면서 2편 예고가 있다.
감상평
솔직히 공포를 기대하고 보면 별로인 영화. 너무 호러를 많이 봐서 그런가, 이젠 귀신 분장에도 면역이 생겼나 보다. 사실 이 영화가 분장이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분장뿐만 아니라 CG도 막눈인 내가 봐도 티가 나고, 전개되는 내용이나 캐릭터가 좀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다. 전체적으로 어디 한 군데도 딱히 콕 집어서 칭찬하기가 애매하다. 그렇다고 눈알 튀어나올 만큼 놀라운 반전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고... 아니, 너무 티가 나잖아요ㅋㅋㅋ 진짜 ㅋㅋㅋ
같이 보던 동생이 "아니, 왜 여러 나라 공포 영화 섞어서 만드냐고." 이러는데 정말 공감 갔다. 한국, 태국, 일본, 미국 공포영화가 번갈아가면서 생각이 난다.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스쳐 지나가긴 하지만 나는 가끔 이런 사람들이 싫어하는 영화들을 재밌게 보는 편이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사실상 영화가 진짜 시작되는 시점이 영화가 시작되고 50분 뒤다. 앞에서 설명한 줄거리가 다 지나가고 나서야 본론임. 사실 집에 살고 있는 귀신들을 처리하는 것이 두 자매에게 주어진 숙제인데, 이 귀신들에게 뭔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대저택, 다리를 절뚝거리는 아빠 귀신, 식칼 들고 다니는 엄마 귀신, 사람 쫓아다니는 아들 귀신, 그리고 오래전부터 일했던 정원사... 아니, 이건 뭐 내용 다 알려준 거나 다름없잖수? 진짜 이 이상은 말 안 해도 무슨 내용인지 이미 스포일러 다 한 거나 다름없다고 본다.
귀신들은 정원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알리아의 몸으로 들어가고 결국 정원사를 죽인다. 그 과정에서 귀신들은 아벨의 몸으로 옮겨가고 지옥으로 끌려간 아벨의 영혼을 되찾기 위해 알리아는 지옥에 스스로 걸어간다. 하지만 여기에서 알게 된 반전은 남친인 다빈이 사실 영혼이었다는 것. 알리아는 아벨을 찾아 데려오고, 다빈과 알리아는 뜨거운 포옹과 함께 이별한다.
"집은 두 가지를 뜻해. 네 몸과 너희가 사는 집."
윈두부인은 귀신들이 뭘 원하는지 알려준다. 예전부터 살아있는 인간의 몸을 탐하는 귀신들의 이야기는 많았다. 대부분 그들을 이겨내는 방법은 믿음과 사랑이다. 자매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귀신과 함께 싸워서 서로를 지키기로 마음먹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또 영화가 완전 맥락 없지는 않다. 어쨌건 확실한 목표가 있고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가긴 하니까.
가족 귀신은 알리아의 몸에 들어가 자신들을 죽인 정원사를 똑같이 죽인다. 악을 악으로 대갚음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독한 악순환이라고 영화에서는 말한다. 복수심과 증오심에 시달려 남에게 해를 가한 영혼은 결코 천국에 갈 수 없고 지옥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도 좀... 무책임해 보인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 같은데 앞에 전개한 내용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믿음과 사랑과 희생에 대한 소재를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 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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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시 만큼 미친 꿀잼! 미국에서 리메이크 확정된 마동석 조폭영화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악인전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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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낫아웃> 메인 예고편
고교 야구부 유망주 광호는 프로야구 드래프트 선발에서 탈락한다.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대학 진학을 원하는 광호.
하지만 광호의 선택은 동료들과 보이지 않는 갈등을 만들고,
기댈 곳이 없어진 광호는 친구 민철과 함께 가짜 휘발유를 판매하는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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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키라> 메인 예고편
네오 도쿄가 또 한번 폭발한다! 미래를 예언한 혁신적인 명작 애니메이션! #아키라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