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2-02-04 21:59:47
‘정치’가 변질시킨 두 사람의 관계
-<킹메이커>(2022)
정치는 세상을 바꾼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직접 정치를 하려고 선거에 나선다. 선거에 당선되어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드는데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 주변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들 모두가 진심으로 정치인을 위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모든 사람의 진심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모여드는 모든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가 되기는 어렵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정치는 그래서 외롭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을 지키려 애쓴다. 가까운 가족부터 친구까지 진짜 자신을 생각해주는 존재들은 정치라는 것을 떼어놓고 봤을 때도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이 온갖 어려움과 외로움 속에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건, 이들이 주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나 주변의 친구들은 정치적인 의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의견을 내놓으며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때론 다른 정치적인 견해로 인해 서로 거리를 두며 멀어지게 되기도 한다. 결국 그들을 멀어지게 하는 건 그들이 가진 정치적인 생각과 해석들이다.
정치인 운범과 조력자 창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킹메이커>
영화 <킹메이커>는 정치인 운범(설경구)과 조력자 창대(이선균)의 이야기를 담는다. 운범은 몇 번의 선거에 실패하다 사무실에 찾아와 조력자가 되고자 하는 창대와 만난다. 창대는 운범에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실제로 그 방법은 운범을 선거에서 이기게 만든다. 영화는 초반에 창대의 선거 전략을 영상으로 보여주게 되는데 아주 기발한 방법이지만 마음 한편에 불편함이 느껴지는 방법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느끼는 그 불편한 마음을 운범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정치는 대체적으로 불쾌한 것이다. 그 불쾌함은 그동안 정치인들의 행태가 만들었다. 선거 전에 이야기했던 여러 공약들은 당선 후 지켜지지 않고 어물쩍 폐기되어 버린다. 그리고 다음 선거 때 다시 들고 와 이번에는 해내야 할 공약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치적 노림수들이 이제는 많이 알려져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될 여지가 생겼다. 영화 속 창대의 선거 전략들은 그런 정치적 노림수가 들어가 있는 것들이다. 이 방법에는 일반 국민을 교묘히 속이면서 여론 몰이를 하는 전략도 포함되어 있다. 비록 그것이 상대 정당의 전략을 그대로 되치는 방법이었다고 하지만 정당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운범은 창대를 한동안 중용하지 않는다. 그러다 다음 당내 선거에 창대를 불러 결국 선거에서 승리하지만 그가 썼던 정치적 모략은 실제 대통령 선거에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이용당하고 나쁜 이미지를 만든다. 이용하는 수단이 좋은지 나쁜지는 ‘승리’라는 큰 목표 앞에서 판단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정치인들은 그저 승리하기 위해 어떤 수단들을 쓴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제대로 먹혀 승리로 이어지게 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런 나쁜 면이 악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판단은 모든 것이 행해지고 난 이후에 평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창대 같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기면 그것이 정당화된다는 논리가 없어지지 않게 된다.
씁쓸하게 만드는 운범과 창대의 관계
이 영화를 보며 씁쓸해지는 건, 꽤 오랜 시간 이어질 것 같던 운범과 창대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이 두 사람이 가진 이상은 비슷한 듯 보였고, 이들의 전략이 성공했을 때 오래도록 계속될 것만 같았다. 비록 정치판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그 둘은 잘 맞는 친구였다. 서로의 생각과 전략은 달랐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선거의 결과들은 훌륭했고, 그건 정치적 경쟁자들에게도 위협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창대가 가진 전략의 불편함은 운범과 창대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영화 속 어떤 사건이 그들을 갈라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이 가진 정치적 과정과 방법이 너무 다른 것이 실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맨 마지막 몇 년이 지난 후에 한 식당에서 운범과 창대가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운범은 활짝 웃지만 창대는 그렇게 크게 웃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이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서로 과거와 같은 가까운 관계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는 두 사람은 그저 예전처럼 밥한 숟가락을 뜨면서 대화를 하고는 그대로 돌아선다. 혼자 남겨진 창대의 모습에서 외로움이 그대로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도, 마지막 장면도 창대의 모습이 화면에 담긴다. 정치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혼자 남겨진 창대의 모습은 정치라는 혼탁한 영역에서 아주 영민하고 똑똑한 전략가였지만 결국 외로움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어서 씁쓸해진다.
운범이 하고자 하는 정치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외롭지 않았을까. 영화는 그것에 대한 답을 명확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는 관객들은 이 영화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엄창록 씨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운범이 하고자 하는 정치가 무엇이었는지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적을 통해서 대충이나마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운범은 창대의 나쁜 선거 전략을 활용하지 않고도 정치인으로서 성공했고 크든 작든 자신의 정치를 펼쳤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그의 삶의 어떤 부분에는 그만의 외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정치인이 그렇듯.
‘정치란 무언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영화 <킹메이커>에는 정치와 친구, 그리고 배신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진다. 운범과 창대의 이야기를 가만히 보다 보면 결국 정치라는 것이 무언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우정과 관계가 흥미진진하게 담길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연기 덕이 컸다. 운범을 연기한 배우 설경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연설의 모습과 목소리 톤을 그대로 보여주며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창대를 맡은 배우 이선균은 부드럽지만 교묘한 선거 술수를 가지고 있었던 선거 전략가 역할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다른 조연 배우들도 눈에 띄는데, 박 비서 역을 맡은 배우 김성오와 이실장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은 평소에 연기했던 발성과 다른 톤으로 연기하고 있어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은 2017년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이 영화 만의 팬덤을 가지고 있다. 크게 관객을 모은 건 아니었지만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계속해서 재개봉시키면서 좋은 반응을 보여줬었다. 이번 <킹메이커>에서는 좀 더 안정적이고 세련된 연출로 찬찬히 두 인물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좀 더 촘촘해졌고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에도 어렵지 않아 이전 연출작보다 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킹메이커>는 두 인물의 이상과 그 이상으로 가기 위한 방법이 충돌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이 두 인물의 우정도 같이 담겨있다. 정치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영역에서 만났던 두 인물의 궤적이 영화에 잘 담겨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인물의 감정 모두를 다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영화다. 대선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 시기에 정치란 과연 무엇이고, 어떤 방법이 옳은 방법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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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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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하지만 아름다운 꿈, 영화를 사랑한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20년대 할리우드. 무성 영화의 스타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의 저택에서는 화려한 파티가 벌어진다. 파티는 난잡하다. 그러나 매혹적이다. 영화에 출연하거나, 영화를 찍고 싶거나,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으로 가득하다. 멕시코에서 막 LA에 입성한 '매니(디에고 칼바)'와 스타가 될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찬 '넬리(마고 로비)'도 다르지 않다. 우연히 만나 영화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촬영의 세계에 발을 딛는다. 그렇게 꿈을 이루고 스타가 되는 것도 잠시. 유성 영화가 등장하면서 세 주인공은 각자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꿈을 버리고 살아가거나, 꿈을 이룬 채 퇴장하거나.
<바빌론>으로 돌아온 꿈과 현실의 마술사, 데이미언 셔젤
<위플래쉬>, <라라랜드>, <퍼스트맨>으로 연이은 성공을 거둔 데이미언 셔젤 감독. 사실 그의 특징을 콕 집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의 작품은 매번 장르도, 분위기도, 소재도, 연출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음악 영화 전문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전기 영화를 찍었다. 빠른 편집과 몰아치는 연출이 장점인 줄 알았더니 담담하고 느릿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도 증명해 보였다.
그렇지만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그의 특징을 하나 찾을 수 있다. 데이미언 셔젤은 언제나 꿈과 현실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이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의 주인공은 가족, 사랑, 일상, 주변인의 관계를 포기한 채 꿈을 좇거나, 반대로 꿈을 포기해야 한다. 둘 모두를 갖는 해피엔딩은 없다. 인상적인 엔딩 장면들 이면에 늘 냉혹함이 깃들어 있는 이유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꿈과 현실의 매개체는 늘 매혹적이다. 현실을 잊게 하고, 찰나의 순간이라도 꿈을 이루어주기에. 꿈을 잊고 현실을 살더라도 단 한 순간 동안은 아름다웠던 꿈속으로 되돌아갈 문을 열어 주기에. 그래서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했던 그 열정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다. 재즈와 뮤지컬, 그리고 달이 아름다운 것처럼.
1920년대 후반과 30년대 초반의 할리우드, 무성 영화의 시대가 끝나고 유성 영화의 전성기가 도래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바빌론>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꿈'을 쟁취하기 위해 할리우드에 모인 사람들이 벌이는 이 역동적인 이야기는 셔젤 감독의 이전 작품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주제를 담은 매개체가 영화이고, 무대가 할리우드일 뿐이다. 하지만 바로 '영화'라는 꿈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바빌론>은 더욱 특별하다. 영화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 가득하기에 셔젤의 작품 중 가장 야심 차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설령 이전 필모그래피에 비해 길고 거칠며 덜 정돈된 인상이 가득하더라도.
할리우드, 추하고 난잡한 꿈의 공장
<바빌론>의 오프닝만 봐도 셔젤의 야심이 느껴진다. 잭 콘래드의 파티는 마치 배즈 루어먼 감독의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파티를 보는 듯하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재즈 연주만큼 화려하고 정신없고 난잡하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술을 들이켜고, 마약을 빤다. 소파 위, 테이블 위, 계단 아래에서 정신없이 섹스한다. 누군가는 어이없이 죽고, 또 누군가는 다음 영화에 캐스팅되기 위해 영화 제작자에게 추파를 던진다. 언제 터져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넘쳐 나는 자극 속에서 사람들은 마비되어 간다.
30여 분간 이어진 오프닝 다음에 등장한 영화 촬영 현장도 파티 못지않은 아수라장이다. 파티에서 갑작스럽게 캐스팅된 넬리의 촬영장은 무슨 영화를 찍는지 알기 어렵다. 서부 시대 선술집 옆에는 아무런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시대와 공간을 재현한 세트장이 즐비하다. 아무 준비 없이 촬영에 투입된 넬리가 기대 이상의 눈물 연기를 선보이자 영화감독은 즉석에서 시나리오와 콘티를 수정해 가며 촬영하기 바쁘다. 바로 뒤 촬영장에서 불이 나 모두가 대피하는 와중에도.
한편, 에픽 영화를 촬영하는 잭의 촬영장은 유혈이 낭자하다. 대규모 전투 시퀀스에 참여한 엑스트라는 창에 찔리고, 마차나 말굽에 짓밟힌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케스트라는 해당 장면에 맞는 곡을 연주하고 감독은 필요한 카메라를 찾느라 정신이 없다. 대기실에서 촬영 순서를 기다리는 잭은 지루함에 지쳐 술을 진탕 마시기 시작한다. 마침내 잭의 순서가 찾아왔을 때, 술에 취한 주연 배우는 촬영장까지 걸어가지도 못한다. 한편 영화감독의 수중에는 카메라가 없다.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에 매니가 카메라를 대여해 오자 간신히 그날 촬영을 끝마친다. 밤이 찾아오면 그들은 촬영장에서의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또다시 술과 마약과 섹스에 빠져든다. 또 아침 해가 뜨면 또다시 새벽부터 촬영하러 나선다. 얼핏 보기에 1920년대의 할리우드는 추잡하고 흉하다.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게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빠져나올 수 없는 영화의 아름다움
하지만 정신을 쏙 빼놓는 <바빌론>의 오프닝과 초반부는 마냥 저속하지 않다. 파티와 촬영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꿈'이다. 매니는 영화계에서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하다. 자신감으로 가득한 넬리는 기회만 준다면 스타가 될 수 있다며 파티장을 자기 무대로 만든다. 잭 역시 할리우드의 톱스타로서 지금처럼 화려한 삶을 계속해서 누리고자 한다. 파티 음악을 담당하는 색소폰 연주자 '시드니(조반 아데포)' 역시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는 꿈에 부풀어 있다. 이처럼 꿈들이 모여 열망을 분출하기에 더럽고 추잡하고 혼란스러운 이 파티는 사랑스럽다.
촬영장도 다르지 않다. 촬영 장비는 항상 망가지고, 사람은 죽어 나간다. 지금이라면 난리가 날 사건 사고가 쏟아지는데도 사람들은 매일매일 영화를 찍기 위해 모인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코끼리 똥을 맞으면서도 기어코 코끼리를 잭의 파티장에 데려가기 위해 애쓰는 매니처럼, 그들은 영화 촬영장을 떠나지 않는다.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 여배우의 춤과 눈물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만취한 할리우드의 스타가 하루의 마지막 태양 빛을 배경으로 운명적인 서사시를 완성하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 혼돈의 끝에서 마주한 한순간의 절정을 찍을 때 찾아오는 황홀경을 붙잡기 위해서. 그렇기에 모든 영화 촬영장도 파티만큼이나 아름답다.
실제로 꿈이 없는 파티와 촬영장은 추하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또 한 번의 파티 장면만 봐도 오프닝 파티와는 묘하게 다르다. 여전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지만, 차이점이 있다. 이 피티에는 꿈이 없다. 무성 영화의 스타로 등극한 넬리와 잭, 그리고 잭의 매니저로 영화계에 입성한 매니에게는 꿈이 없다. 유성 영화가 등장하자 그들은 촬영장 안팎에서 불안에 떤다. 과연 자기가 여전히 스타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또 영화계에서 종사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녹음 스튜디오가 갖춰진 새로운 촬영장의 모습도 아름답지 않다. 사람이 죽는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다르지 않으나, 배우와 스태프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촬영할 만한 매력이나 보람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파티는 불안함을 떨쳐내기 위한 공간이자 시간일 뿐이다. 그래서 꿈을 잃은 이들은 코앞의 자극에만 심취한다. 이제 그들의 놀이는 아름답지 않다.
추잡함까지 사랑하게 만드는 맹목적인 사랑, 영화
이처럼 <바빌론>은 1920년대 영화 산업의 명암을 가리지 않은 채 보여준다. 동시에 영화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치부를 알면서도 계속해서 사랑한다. 달리 말해 영화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을 고백한다. 사막에서 시작한 할리우드를 건물 가득한 도시로 키워낸 열정은 물론, 그 열정이 선을 넘어버린 광기도 함께 사랑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바빌론>은 신선하다. 할리우드는 가끔 자기 역사를 미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지름길을 가지 않기 때문이다. 즉, 단순한 연애편지가 아닌 애증의 편지라서 특별하다.
영화는 이 맹목적인 사랑을 매니의 눈빛에 담아낸다. 카메라는 그가 영화와 눈이 맞는 순간을 포착한다. 첫 번째 순간은 잭의 파티 장면이다. 막 LA에 온 매니는 온갖 잡일을 한다. 파티에 서프라이즈로 등장시킬 코끼리를 데려오고, 술과 마약을 배달하며, 대리운전을 한다. 그러던 중 매니는 넬리를 본다. 입장을 거부당하던 그녀를 몰래 파티장에 넣어주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둘 다 열렬히 영화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넬리가 파티의 무대를 휘어잡고,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곧장 캐스팅 제의를 받는 걸 본다. 그렇게 그는 넬리와 사랑에 빠진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영화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두 번째 순간은 멕시코로 탈출하기 전 우연히 들린 파티 장면이다. 영화 제작자가 된 매니는 여러 문제로 꼬여 버린 넬리의 커리어를 되살리려 한다. 그러나 도박에 빠진 넬리는 이미 '제임스 맥케이(토비 맥과이어)'가 이끄는 LA 지역 갱들과 문제를 겪고 있다. 넬리를 도와주던 매니 역시 자연히 그들과 갈등을 겪고, 끝내 그들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갱을 피해 도망치던 매니와 넬리는 이동 중 작은 마을에서 열린 파티에 우연히 참석하고, 파티를 촬영하는 카메라 앞에서 함께 춤을 춘다. 바로 이때 그는 다시 영화의 매력에 빠진다. 영화의 추잡함을 온몸으로 체감했고 넬리와 영화가 인생에서 피해야 할 골칫거리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는 이번에도 영화에게 함락당한다. 이 두 장면만 보더라도 영화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온몸을 던져 사랑해서 진정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셔젤 감독의 작품답게 <바빌론> 속 사랑도 현실 앞에서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무성 영화의 사람들인 세 주인공 앞에 유성 영화가 등장하고,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가 새로운 시대에 발굴된 신흥 스타를 비춘다면, <바빌론>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걷는 이들을 그려낸 셈이다. 톱스타였던 잭은 미숙한 목소리 연기 때문에 이제 관객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와 몇십 년간 같이 일해온 에이전시는 그에게 더 이상 흥행 작품의 배역을 맡기지 않는다. 라이징 스타였던 넬리의 커리어도 순식간에 꺾인다. 허스키하고 거친 게 매력인 그녀의 목소리가 유성 영화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리우드의 체계가 잡혀간 것도 그녀에게는 독이다. 거칠고 야생적인 넬리의 성격은 사교 파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음악 영화 제작자로 이름을 알린 매니도 끝내 현실의 벽에 부닥친다. 그는 넬리의 커리어를 살리려다가 본인 경력도 끝날 위기에 처한다.
그들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자기 꿈을 지킨 채 찬란히 부서지든가, 현실을 인정하고 꿈을 내려놓든가. 세 주인공은 제각기 달리 선택한다. 잭은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고 판단한다. 더 추해지기 전에 스스로 자기 시간을 끝낸다. 넬리는 잭과 비슷한, 한편으로는 그녀다운 선택을 한다. 함께 도망치자는 매니의 제안을 거부한다. 처음 등장할 때처럼 춤을 추면서 거리 저편으로 사라진다. 매니는 도망치기 직전 갱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다. 그러더니 영화라는 꿈을 포기한다. 할리우드를 떠나 평범히 살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선택을 응원하고 또 위로한다. 온몸을 던져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라는 꿈을 꾼 이들의 마지막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잭에게 그의 시대가 끝난다고 알려준 기자 '엘리노어(진 스마트)'의 대사에 모든 게 함축되어 있다. 그녀는 잭이 "천사와 유령들과 함께 영원을 누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온몸을 던져 영화를 만든 넬리와 매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영상과 이름으로 살아남은 채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새로운 관객과 친구가 될 것이므로.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다시 한번 매니의 눈에 주목한다. 시간이 흘러 LA로 돌아온 매니는 극장에서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본다. 작중 등장인물인 리나 라몬트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유성 영화 시대에 전성기가 끝나버린 여배우를 보며 넬리와 무성 영화의 전성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내 경탄에 가득 찬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동시에 영화를 보면서 자기가 사랑했던 대상이 넬리라는 인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넬리를 담아낸, 꿈과도 같았던 영화의 한 장면에 매료됐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동시에 자기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자기처럼 한순간의 장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고생했고, 고생할 사람들이 있다는 걸 영화를 보며 배운다. 기차가 들어오는 장면부터 이크란을 타고 제이크 설리가 하늘을 나는 순간까지. 자기가 몸담았던 할리우드는 달라졌어도, 할리우드는 계속된다는 걸 직감한다. 멸망한 후에도 시대에 따라 아름답고 위대한 나라와 도시를 지칭하는 표현이 되어 살아남았던 바빌론처럼.
영화를 사랑하게 만들다
이 모든 사랑 고백은 데이미안 셔젤이 직접 실천했기에 더 인상적이다. 사실 <바빌론>은 <위플래쉬>나 <라라랜드>, 심지어 <퍼스트맨>에 비해서도 대중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일단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지나치게 길다. 파티 장면이나 몇몇 에피소드는 단축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몇몇 캐릭터도 생략할 수 있다. 그러나 셔젤은 그러지 않았다. 자기 비전을 전부 스크린으로 옮겼다. 애초에 이 영화를 제작하자고 배급사를 설득할 만한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 전작들을 만들었다고 했던 만큼, 타협하지 않았다. 모든 영화와 영화계 종사자들을 향한 찬가를 온전히 들려준다. 하지만 그렇기에 <바빌론>의 메시지는 강력하다. 영화를 향한 애정, 심지어 할리우드의 부끄러운 과거까지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설령 이전 필모그래피에 비해 길고 거칠며 덜 정돈된 인상이 가득하더라도.
감독의 장점과 배우들의 조화는 화룡점정이다.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은 여전하다. 넬리와 매니의 주제곡이나 잭의 주제곡은 미세하게 변주되면서 반복된다. 그때마다 필요한 감정을 기가 막히게 자아낸다. <라라랜드>에서 'City of stars'가 반복되지만, 들을 때마다 인상이 다른 것과 유사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더 말할 게 없다. 특히 마고 로비가 눈에 띈다. 마치 할리우드의 얼굴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도 그랬지만, 그 시대의 할리우드를 또 한 번 생생하게 표현한다. 관객과 함께 광란의 20년대를 헤쳐 나가는 디에고 칼바의 신선한 페이스도, 작품 전반적으로 중후함과 위트를 불어넣는 브래드 피트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달리 말해 <바빌론>은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영화다. 설령 팬데믹을 비롯해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와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인생과 꿈 사이에서 영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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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빛으로 일렁거리는 호러의 역사를 읽다
14일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감 좋은 형사 리(마이카 먼로)다. 30년간 풀지 못했던 미제사건이 있다. 희생자들은 모두 가족이었다. 수사를 해도 오리무중에 빠지는 연쇄 살인사건. FBI는 능력 있는 형사 리를 파견했다. 사건에 대해 듣는 리. 사건 파일들을 읽어보기 시작한다. 왠지 익숙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런 사건에 내가 연관될 리는 없다. 상사 카터(블레어 언더우드)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범인의 정체를 추리하는 리. 적지 않은 단서. 일가족이 살해됐다는 점과 살해 현장에 ‘롱 레그스’라는 편지가 있었다는 점 말고는 힌트 얻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실체에 다가가는 리. 리는 잔혹한 심연 속으로 또각또각 걸어 나간다.
놀라운 집중력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촬영이다. 이 영화에서 피사체를 촬영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프레임 안 대상을 한가운데에 넣고 가로가 넓은 비율로 찍는다. 혹은 대상을 눈높이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마치 누가 지켜보는 것처럼 촬영하는데, 찍고자 하는 대상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마치 대상을 옆에서 본 것처럼 오른쪽/왼쪽으로 살짝 틀어진 얼굴을 보여준다.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영화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특별하다. 가령 과거 회상 장면에서 주인공 어머니가 특정 행동을 할 때 장면을 보면 고의적으로 화면의 대부분을 안 보이게 처리했다. 행위가 일어나는 부분은 멀리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특정 장면에서는 시점 쇼트(인물의 시선을 보여주는 방식)를 써도 큰 문제가 없는데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가 나온다. 전적으로 영화가 ‘누군가가 지켜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셈이다. 이렇게 인공적으로라도 강조한 구도 때문에 이 영화가 가진 이상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이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면 영화 포스터에 등장하는 ‘모든 프레임이 악몽이다’라는 특징이 이렇게 구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영화의 법칙을 카메라 구도로 구현한 영화는 예외를 둠으로서 그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영화의 카메라가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깔고 정면으로 인물을 보여주는 샷이 등장하기는 한다. 언제?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 처음으로 등장할 때다. 이 물건이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떤 존재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 누구와 눈 마주치지 않지만 영화 화자와 동격으로 놓이는 존재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영화가 촬영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렇게 전체와 나머지라는 연출은 영화가 핵심으로 삼고 있는 모티브다. 중반부 이후부터 등장하는 특정 캐릭터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감에서 도드라지는 비주얼을 가진 인물이다. 주인공의 설정에서도 이 ‘전체와 나머지’라는 테마를 읽을 수 있다. 사건의 힌트가 되는 짧은 머리의 캐릭터도 영화가 이야기의 구도를 짠 방식을 읽을 수 있는 연출이다.
느릿느릿한 서스펜스
영화 롱 레그스는 시각적인 연출 못지않게 템포와 리듬의 중요성이 돋보인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세상 느릿느릿한 템포로 진행되는데, 이는 멀리서 관조하는 인물의 시선을 구현함으로써 영화의 주제를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관객에게 사건을 서서히 보여주는 연출 방식 덕분에 빌런의 악행이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피한다. 오히려 이 모든 과정을 가감 없이 다루겠다는 감독의 주제의식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이다. 이런 자극적인 모습과 의도적으로 거리 두는 연출이 어느 시점을 넘어서 직접적으로 변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영화의 주제와 인물의 내면을 심도 있게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처럼 느린 템포에는 단점도 따른다. 특히 영화에서 사운드를 통한 연출이 때로는 다소 무리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기이한 이미지로 긴장감을 형성하던 영화가 갑작스러운 큰 소리로 관객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점은 영화의 깊이가 옅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이 영화가 잘 짜인 이야기 같으면서도 갑자기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리니 관람을 그렇게 친절하게 만드는 요소는 아닌 듯하다. 또한, 초중반부의 느릿한 전개로 인해 이야기에 몰입하기 어려운 관객들도 많을 수 있으며 지루하다고 느낄 여지도 충분하다.
장르의 역사를 그대로
<롱 레그스>는 호러 장르의 역사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는 아리 애스터의 <유전>이었다. 특히 특히 1부와 2부의 연출 방식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부분이 그렇다. 이 미세한 변화는 영화 안에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했는데, 이야기의 구성은 다르게 가져가되 본질적인 건 비슷하게 전개해 감독의 창의성이 돋보였다. 또한, 최근 할리우드 공포 영화들이 즐겨 사용하는 기괴한 이미지를 이 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롱 레그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여러 작품의 흔적을 담아내어 관객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다가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물론 이 <롱 레그스>가 단순히 과거의 이미지들만 차용하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는 느린 템포에도 불구하고 정말 서슬 퍼런 장면을 보여준다. 글쓴이는 후반부의 모든 장면이 굉장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레퍼런스를 과하게 담으려 한 탓인지, 후반부에 영화의 톤과 어긋나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 대사는 꼭 필요했던 것 같다. ‘혹시?’싶은 의구심이 드는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대사는 지나치게 길고 본래 흐름과도 어울리지 않아, ‘이 대사가 없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가 주는 불안함과 긴장감의 리듬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장황해지면서 몰입을 방해하는 장면이었다.
압도적인 니콜라스 케이지
이 영화에 대한 글쓴이의 총평은 ‘좋은 영화지만 지루하다고 느낄 여지가 다분하다’라는 점이다. 모든 장면을 인위적으로 비틀어 기이한 플롯을 만들었지만 이 이유로 템포가 느려 지루하다고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관객들 입장에서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충분하다고 해도 글쓴이가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요소가 있다. 바로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다. 케이지는 장르적인 연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캐릭터의 비주얼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스크린을 장악했다. 이 연기 하나만으로도 관객에게 압박감을 선사할 영화가 <롱 레그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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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그 사이에 끼어 손을 드는 행동이 행동하는 것보다 더 주목받는 순간
‘플란다스의 개’는 동화처럼 따뜻하지도, 감동스럽지도 않은 퍽퍽한 빵같은 영화다. 부끄럽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내면을 감독의 손을 통해 기꺼이 드러내고 불편하지만 직면해야할 문제들을 나열한다. 분명 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개를 위하는 사람보다는 나를 위해 개를 이용하는 사람들만 등장한다. 시간 강사 윤주, 부랑자와 경비원, 현남, 그리고 금방 다시 강아지를 산 집주인들까지.
시간강사 윤주는 시시각각으로 밀리는 상황에 스트레스가 가득한데, 계속 들려오는 개소리에 더욱 화가나 진원지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끝내 찾지 못한 윤주는 옆집 문 앞의 강아지를 발견하고 납치해서 지하실에 가둬 버렸다. 한편, 아파트 경비실에서 경리일을 하던 현남에게 어떤 꼬마가 다가와 삔돌이를 찾는 전단지를 가져와 도장을 부탁하고 현남은 아파트 내부에 강아지 전단지를 붙인다. 동창회에 참석한 윤주는 1500만원이라는 숫자에 착잡하기만 하다. 잠든 와이프의 배를 보며 술주정을 하던 윤주는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소리의 진원지를 드디어 발견함과 동시에 자신이 없애버린 강아지는 짖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하실로 가서 강아지를 찾아봤지만 사라진 강아지와 무서운 이야기가 그를 밖으로 내쫓는다. 마침내 찾아낸 강아지를 던져버린 윤주는 그 장면을 목격한 현남에게 뒤쫓기고 현남은 그 장면을 목격하여 윤주를 쫓지만 갑자기 열려버린 문에 잡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잔잔하던 영화의 흐름에 갑작스런 추격이 불어닥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소리의 진원지를 제거한 윤주는 와이프 은실이 데려온 푸들, 순자에 더욱 괴롭다. 짙은 연기가 지나가고 행방불명된 순자를 찾기 위해 전단을 붙이는 윤주의 모습과 초반의 현남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산을 장미와 함께 올라가던 현남의 뒷모습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다가 돌아보는 현남에 눈이 번쩍 뜨였다. 돌아보는 현남이 거울을 꺼내곤 햇빛을 반사해 나의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 놓곤 한 곳을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든다. 방심하던 순간 드러나는 나의 표정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비춰지고 있지만 이 거리에서는 볼 수 없었다.
풋풋함이 가득하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발견한 무기력한 인물들의 웃음을 볼수는 없었지만 얼떨결에 지나가는 일상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저 자신이 주목 받기를 바랐던 현남은 선의를 건넸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다가오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그림자 안에서 움직였던 윤주와 경비원은 이득을 얻었다. 분노가 자연스레 자신보다 힘이 약한 이에게 이어지지만 그저 종이 한 장에 건넬 수 있는 돈이 여기에는 없고 저기에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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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 글로브 수상 트로피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골든 글로브 수상 트로피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난 2월 28일(북미 기준), 화면 속 일시적인 끊김과 어색한 수상 소감으로 가득한 밤 아래, 사챠 바론 코헨과 정이삭 그리고 클리오 자오 등 많은 감독들이 골든 글로브를 수상했다. 올해 주목할 만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수상자가 호명되고, 무대까지 긴 걸음을 걸어가 트로피를 수상하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상식 현장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수상자들은 언제쯤 주최 측인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이하 HFPA)로부터 트로피를 수여받을 수 있을까?
출처 : GoldenGlobes
이에 관해 HFPA의 대변인은, 수상자 전원에게 연락해 “코로나 예방 수칙에 문제가 없도록 하여 트로피를 안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영화 배우와 제작자들에게 전달될 골든 글로브 트로피는 이름 각인 작업이 진행중이다. HFPA는 “COVID-19 전염병을 둘러싼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있고 가능한 모든 일을 신속하게 완료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일부 수상팀은 트로피와 관련하여 이메일로 문의를 했지만 여전히 답장이나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작 예술 에미상(Creative Arts Emmy Awards)은 작년 9월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됐는데, 수상자들 중 몇 명은 몇 주가 지나서야 트로피를 받았으며 심지어는 2021년 1월이 되어서도 받지 못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출처 : BBC
수상자가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장소인 비버리 힐튼(Beverly Hilton) 호텔 무대에 서서 가족, 친구 그리고 홍보 담당자에게 감사를 전하는 모습은, 그들 사이에 개인적인 친분만 있는 것이 아닌 문화적으로도 관련이 있을 수 있어 많은 영화 팬들이 유튜브를 통해 재감상을 하기도 한다.
바론 코헨은 수상 소감에서 “모두 백인으로 구성된 HFPA에 감사드립니다.(Thank you to the all-white Hollywood Foreign Press)”고 말하며, HFPA 회원 중에 흑인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시상식을 앞두고 LA타임즈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투표권을 갖는 87명의 현역 HEPA 회원 중 흑인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문제가 된 논란이 다시 한번 부각되기도 했으나, 잠옷 차림으로 시상식에 참가한 조디 포스터의 모습 등 여태껏 보지 못한 장면들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재감상 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출처 : Los Angeles Times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진행하고 HFPA 측에서 트로피를 전달하는 방식은, 아직 진행되지 않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미국 배우 종합상(SAG),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Critics Choice Awards) 그리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OSCAR)과 에미상(Emmy Awards)에게 있어 많은 영감을 주었을 테니, 우리는 앞으로 더 흥미로워질 시상식들을 즐기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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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 보이는 인간을 비판하는 속 보이는 영화
한 모델 인플루언서 커플이 크루즈 여행을 협찬받는다. 이 크루즈 여행에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이 탑 승한다. 그리고 이들을 서비스해야 하는 직원들도 함께 탑승한다. 그렇게 배는 떴는데, 선장이 참 비협조적이다. 안에서 뭘 하는지 두문불출하다가 선장 주최 만찬에도 간신히 얼굴을 비친다. 선장의 상태가 이러한데, 이 크루즈 여행은 제대로 끝날 수 있을까? 상류층의 위선 뿐만 아니라 계급 사회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이번 영화 꽤나 흥미롭다.
1. 권력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계급
크루즈에는 다양한 부자들이 탑승한다. 비료를 팔아 부를 이룬 한 가족, 수류탄 등의 무기를 팔아 부자가 된 부부, 게임을 개발해 팔아넘겨 수익을 내는 IT 종사자 등 하나같이 돈이 많고 성공한 만큼 각자만의 허풍들도 다양하다. 영화가 크루즈를 배경으로 삼은 데는 이유가 있다. 크루즈에는 권력 관계가 돈으로 정해지기에 명확하고 심플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그들의 권력인 돈을 무기 삼아 직원들을 쥐락펴락한다. 그래서 직원들은 고객이 원하면 물놀이도 서슴없이 해야 한다. 그 물놀이를 시킨 고객의 의도는 이왕 즐기는 거 고생하는 직원들까지 함께 즐기자는 선의였을 지 모르지만 직원들에겐 그저 당황스러운 요구였을 뿐이니 상류층들이 선의라는 명목으로 하층민들을 부려대는 사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돈을 권력 삼아 자신들의 체면 지키기에 여념이 없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부족함은 더 배가되고 천박함만 강조될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큰 반전이 존재한다. 선장이 이 크루즈의 최고 빌런이라면 빌런인데, 이 선장은 날씨가 제일 안 좋은 날에 선장 주최 만찬을 개최해 사정없이 흔들리는 배 안에서 저녁을 대접한다. 배멀미를 참아내지 못한 승객들은 여기저기 토를 해대며 체면을 제대로 구겨버린다. 배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화장실의 오물이 역류해 배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 선장이란 놈은 갈수록 가관이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난 사회주의자 코스프레를 하며 한 승객과 명언 배틀이나 하고 있다. 승객들은 오물을 뒤집어 쓰고, 구명 조끼 입고 벌벌 떨고 있는데, 선장은 사회 안에서 자신보다 더 윗계급인 승객들을 비꼬는 많은 명언들을 지껄인다.
이 선장이 하는 말들이 결국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보는데, 이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그는 위인들의 명언을 읊는 선장을 보여주며 세계 속 부의 분배의 불평등함부터 자본가들의 위선, 천박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구절들을 그저 직접적으로 관객들에게 오픈해버린다. 너무 직접적이고 신랄해서 오히려 더 웃기다.
2. 계급의 뒤바뀜
여차저차해서 배가 침몰하고 생존자들은 한 무인도에 모인다. 그 곳에서는 속세의 계급이 의미가 없다. 생존 능력이 곧 권력이다. 그에 따라 가장 하층민인 노동자 애비게일이 권력자가 되어 모계 사회를 형성한다. 그녀만의 통치룰을 만들어 그녀만의 왕국을 만든다.
사회에서 돈이 얼마가 있었든 고기하나 낚지 못하는 무능한 남성들은 그녀에게 길들여진다. 크루즈에서는 여유로운 척 잘난척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찾을 수 없고 말이다. 하지만 점점 그녀의 통치는 독재가 되어 젊은 모델 커플을 분탕질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중간중간 등 사회적으로 이슈되는 문제들이 간혹 등장한다. 페미니즘의 모순도 등장하는데, 권력의 주류인 남자를 조종하면서 이득을 보는 일부 여자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이 뒤바뀐 이후, 페미니즘을 악용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그 젊은 남자 모델에게서 보인다. 결국 페미니즘도 여자냐 남자냐를 따지기 앞서 불평등을 겪는 매 순간 권력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따지는게 가장 먼저가 아닐까 생각한다. 단순히 성별기준으로 싸우면 답이 안나온다.
하지만 권력이란 맛보면 끊을 수 없는 것이라서 에비게일은 점점 자신이 이룩한 권력에 취한다. 권력이 없는 자들은 기득권층의 혜택이 불만스러우면서도 은근히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에비게일이 보여준다. 권력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고 누가 갖고 있든 권력은 누구든 변하게 한다. 결국 권력은 있으면 좋긴 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은 필요악인지도 모른다.
3. 속이 다보여서 더웃긴 코미디
이 영화의 매력은 피라미드 제일 위쪽에 있는 사람들을 대놓고 아래로 끌어내려 모욕하며 통쾌함을 선사하는 매력으로 초반을 이끌어니간다. 하지만 중후반부으로 갈수록 권력의 기준이 바뀌고 그 권력에 적응해나가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사회 속에서의 돈은 그저 종이쪼가리일 뿐인 무인도에서 인간은 그저 가장 약하면서 가장 강한 척하는 찌질한 존재라는 점을 부각한다. 아내가 죽었는데 보석이나 가져가고 있는 남편이나 여자친구의 끼부림을 비판하다가도 자신이 생존해야할 순간에 결국 자신의 끼부림으로 살아남는 한 남자까지 감독은 이 영화에 온갖 찌질한 인간상은 모아놨다. 선장이 제일 솔직하다면 솔직하긴 한데, 마치 감독의 말을 내레이션하기 위해 배치된 캐릭터같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인간의 찌질함을 나열한 다큐멘터리라면, 선장은 이들을 해설하는 내레이터인 것이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가 너무 직접적으로 전해져 신랄했고, 신랄하니 더 웃겼다.
아, 그 배의 총매니저 역할의 여배우의 연기가 인상에 많이 남았는데, 이 세상에서 제일 흔하게 보이는 유형의 위선자여서였을까. 남의 권력을 방패삼아 자신의 권력인 양 휘두르고, 권력이 바뀌면 그 쪽으로 휘릭 갈아타기도 잘하는 처세술의 달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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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고 보는 소지섭 투자 예술영화들
한국 영화계를 다채롭게 해주는 예술, 독립 영화들.
그 중심에는 소지섭 배우가 있는데요.
작품성이 높은 해외작품에 자비를 들여
수입 배급해오는것으로 유명하죠.
벌써 작품수가 30편이 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소지섭의 회사 51k에서 공동제공을 맡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가 오는 5월 15일
개봉합니다.
제 79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전설적인 사진작가 낸 골딘의 삶, 예술, 투쟁, 그리고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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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에서 만난 타노스와 콜렉터 #7
환몽(幻夢) CINE 리뷰 7화_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Sicario, 2015) 리뷰
**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의 후속작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가 개봉했습니다. 숨 막히도록 건조하게 설계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 세계관이 그만큼 인상 깊었다는 의미겠지요.
기념하여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조금 깊게 이야기 해봤습니다!
(공교롭게도 멕시코라는 땅에서 어벤져스의 타노스와 가오갤의 콜렉터의 조우네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 특징!
- 정의를 위한 악이란?
- CIA와 FBI 이야기
- 아쉬운 점
- 우리가 꼽은 명장면
- 환줄평 / 몽줄평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보고나서 마구 생각하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시카리오 #시카리오암살자의도시 #드니빌뇌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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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흥신소-라떼극장] '반칙왕'에 텔XX비가 나온다고?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01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에서 발견한 소중한 기억들
2000년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3위에 빛나는 영화
'반칙왕'과 함께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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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티저 예고편
《폭싹 속았수다》, 3월 7일 넷플릭스에서 시청하세요: https://www.netflix.com/title/81681535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넷플릭스 시리즈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3월 7일부터 4주간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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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아틀라스> 공식 예고편
실력은 뛰어나지만 염세적인 데이터 분석가 아틀라스 셰퍼드(제니퍼 로페즈). AI를 극도로 불신하는 그녀가 비밀스러운 과거를 공유한 로봇 반역자를 체포하는 임무에 합류한다. 그러나 곧이어 계획이 틀어져 버리고, 이제 아틀라스는 AI로부터 인류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 AI를 믿는 수밖에 없다. 《아틀라스》, 5월 24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