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2-01-29 12:34:58
허울을 쫓은 대가
하우스 오브 구찌 리뷰
한 밝고 명랑한 여자가 한 파티에서 재벌을 만난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 이름, 구찌, 마우리치오 구찌. 그 때부터 평범한 서민 여자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한다. 돈이 눈이 멀어 시작한 유혹은 탐욕이 되고, 그 탐욕은 결국 그녀를 잡아먹어 버린다.
1. 배우진들의 연기가 살린,
사실 이 영화의 내용은 익히 알려진 실화 기반이기 때문에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두 예상이 가능하다. 캐릭터의 설정이 살짝 바뀔 수 있지만 결국 파트리치아의 탐욕이 한 가문을 망쳤다는 메인 플롯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였는지 내용에 대한 기대치는 크게 없었다. 예상가능한 선에서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는지 배우진들의 연기가 굉장히 잘 보이는 효과는 있었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각자의 몫을 하고 있었다. 집안의 간섭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마우리치오의 욕망, 파트리치아는 구찌라는 가문의 후광을 방패삼아 신분상승을 하고싶은 욕망, 알도는 자신이 일궈온 구찌 제국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서라면 불법이라도 저지를 만큼의 추진력,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알도 아들의 욕망까지 각자의 욕망이 개성적으로 잘 드러난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된 스토리지만 각 인물들의 캐릭터가 선명하게 그려진 점이 좋았다. 혹자는 실제 스토리와 동떨어지는 면모도 없지 않다고 하지만 실제 스토리 속 캐릭터와 영화화가 되었을 때의 캐릭터는 차이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거슬리는 부분은 아니었다.
2. 관계를 망친 건 쌍방과실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을 하곤 하지만 그전에 사랑의 대상이 물건인지, 사람인지 구분을 지어야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는 호르몬적 착각에 빠져 자신이 이 사람에게 전부를 바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트리치아는 마우리치오를 사랑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녀는 마우리치오의 배경과 돈을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마우리치오는 그저 피해자이기만 할까. 아니다. 그는 그가 가진 배경의 힘을 무시한 나머지 자신에게 평범한 사랑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아둔했다. 순수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난 아무것도 몰라요, 파트리치아가 다 그런거예요.'식의 태도는 그의 멍청함을 더 부각시킬 뿐이었다. 순수함으로 포장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결국 그도 아둔한 인간일 뿐이었다. 여자에게 휘둘렸다가 사치에 휘감긴 그런 나약하기만 한 인간말이다.
3. 자신을 모르고, 통제하지 못한 대가
구찌 가는 선량한 척했지만 결국 모두가 조금씩은 악인이었다. 파트리치아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악인이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선을 넘어서 제일 나쁜 사람 같아 보였지만 사실 모든 인간들이 도긴개긴으로 보였다.
결국 세상은 학생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 착한 사람이 호구되는 요즘 세상에서 오히려 나쁜 것=똑똑함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파트리치아도 한 때 자신이 속한 바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여우같은, 똑똑한 여자였지만 가속페달을 장착하지는 못했다. 자신이 갈 수 있는 위치설정이 아닌, 자신이 가고 싶은 위치를 설정해 주변인을 갈아넣고, 맘대로 안되자, 문제가 되는 대상을 제거할 수단으로 살인을 선택하는 것은 갈데까지 가겠다는 의지표명이기 때문이다.
영리하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멍청하다고 당하고만 사는 것도 아니다. 딱 파트리치아와 마우리치오 두 커플이 그랬다. 어쩌면 그들은 환상 호흡을 자랑한 환장의 커플이었는지도 모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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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너머의 언어로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지 말의 외형만을 익히는 일이 아니라, 다른 층위의 세계관을 맛보는 일이 아닐까. 프랑스어를 배우면 자동차, 달, 바다는 여성이 되고 비행기, 해, 땅은 남성이 된다. 모국어가 한국어인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낯설게도, 사물에 성별을 붙여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어를 배우기 이전과 이후의 관념은 은근하게 달라진다.
한편 일본어를 배우면 존댓말의 형태는 두 갈래로 번져간다.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와 상대를 높이는 존경어. 우리말에서도 ‘나’를 ‘저’로 부르는 등 낮춤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동사를 3개씩 외우는 일이 힘든 건 둘째치고 마음이 갑갑하다. 결재 도장까지 깍듯하게 상사 이름 쪽으로 기울여 찍는 문화를 얼핏 느낀다.
언어는 사회성과 역사성을 갖기에, 쓰는 사람들에 의해 규정되고 변형되기 마련이다. 언어의 층위는 그렇게 오랜 시간의 마디마디가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한 인물이 시간과 성별을 뛰어넘어 존재한 400년의 시간을 담아낸 영화 <올란도>는 그 모양을 잘 보여준다.
영화는 자못 간단한 구조로 보인다. 한 젊은 귀족 올란도가 여왕에게 찬사를 보낸 후, 여왕이 저택과 함께 내려준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말라’는 말이 고스란히 이루어졌다. 영화에 담긴 400년의 시간은 연극 막처럼 명확한 텍스트 제목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타이틀은 올란도의 삶에서 주요 화두가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올란도를 둘러싼 세상의 언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자.
영화가 시작되면 수직적인 관계를 고스란히 담아낸 언어들이 눈에 띈다. 여왕이 올란도의 아버지에게 “그대의 것은 이미 내 것이었다”라고 말할 때도 그렇지만, 올란도를 지칭하는 말은 모두 소유격이 도드라진다. “내 아들, 수족, 마스코트”이자 “나의 승리”. 변하지도, 병들지도, 늙지도 말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그래서였을까? 이 말은 단지 물리 법칙을 어겨서 이상해 보일 뿐, 말도 안 되는 명령들이 ‘까라면 까야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현실과 그렇게 다르지도 않다.
이 수직성은 훗날 러시아 대사의 딸 사샤를 사랑하게 된 올란도에게서도 보인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너는 내 것”이라는 말에 사샤의 주권은 들어있지 않다. 사샤를 만나기 전 약혼했던 상대가 올란도의 “배신”을 탓할 때는 “남자는 자기 마음을 따를 줄 알아야 한다”라고 가뿐하게 넘겼으나, 얼음이 녹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고 분명하게 피력했던 사샤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여자a woman가 배신했다”라고 한다. 고유명사였던 사샤는 일반명사가, 수많은 여자 중 하나가 된다. 소유도 박탈도 올란도의 의지로만 이루어졌다.
훗날 올란도에게 청혼하는 해리와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재현된다. 여왕이 했던 “집을 주겠다”는 말이나 “내가 곧 영국이고 너는 내 것”이라는 말. 올란도가 했던 “I’m offering my hand”라는 말. 해리뿐이 아니다. 남성 귀족들의 대화는 허세와 과시, 권위로 꽉 차 의미나 감정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다리가 아프다는 말을 들어도 공감과 위로는 없고, 과학이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저 성별에 비유한다. 폄하하고 재단하며,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수직적 우위를 점하고자 끊임없이 재배치를 꾀하는 대화다.
이러한 세상에서, 올란도는 소통의 가능성을 간직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과 공명할 수 있었다. 러시아어에서 프랑스어로,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언어를 바꾸며 사샤가 소통을 모색할 때 “그냥 영어를 더 크게 말했”던 대부분의 귀족과 달리, 올란도는 사샤와 프랑스어로 대화하며 둘만의 공간을 만든다. 사랑이 끝난 후 잠에 빠졌다가 새로운 챕터로 나아갈 때도 마찬가지다. 시를 탐구하고, 정치의 세계로 나아가 향한 오스만 제국에서도 아랍어 인사말을 익혀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올란도가 간직하고 있던 소통의 가능성은 전쟁을 겪으며 뜻밖에도 성별 전환이라는 방식으로 발아한다. 쓰러져 죽어가는 이를 “적”으로 규정하는 해리와 달리 올란도는 그냥 죽어가는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은 균열의 조짐이다. 피아의 위치와 높이가 ‘명징하게 직조’되어 있는 세상의 균열. 아기 울음소리와 비명 같은 고통의 소리들 사이, 전쟁이 낸 균열 사이로 걸어가며, 올란도는 이제 또 다른 언어의 세계로 건너간다.
먼지가 축복처럼 빛나며 내리고, 물과 볕이 얼굴을 적시는 모습은 마치 세례라도 받는 모양 같다. 프랑스어로, 아랍어로 타인과 계속 대화를 시도해왔던 올란도는 이제 전쟁과 지배의 언어를 버렸다. 그때 여성이 되었다는 점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책 제목을 떠올리게 한다. 단지 성별만 다른,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평소 큰일이 있었을 때처럼 7일 간 자고 일어난 점도 같다. 그러나 이제 사회가 그를 다르게 대한다. 올란도는 언어의 수직선에서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끊임없는 도전을 받는다. 그 도전을 피하는 길은 남편, 아들처럼 사회가 정한 우산 아래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종용을 받는다. 이에 올란도는 자기 자신으로 굳게 서는 방법으로 응전한다. 설령 자신과 닮아 있고 이해의 구석이 있는 셜머딘이 상대라 해도, 올란도는 타인의 일부가 되길 택하지 않는다.
그 무엇의 곁에도 머물지 않고, 올란도는 계속해서 박차고 달린다. 그가 박차고 달리는 것은 과거에 버리고 온, 전쟁과 지배의 언어다. 미로 같은 정원을, 안갯속 들판을 계속 달리며 그는 새로운 세상으로, 새로운 언어의 세계로 나아간다. 영화의 초입부터 불을 든 사람들의 반대 방향으로 걷고 뛰고 있었던 그는, 이제는 임신한 몸으로 전쟁의 포화 속을 달린다. 전쟁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시기의 힌트조차 주지 않는다. 이건 보통 전쟁이 사용하는 언어와는 반대 방식이다.
전쟁은 전쟁만을 명시한다. 보불 전쟁이라든지 펠로폰네소스 전쟁 같은 식으로 승자와 패자를 딱 잘라 명시하고, 뒤켠에 있던 민간인과 피해자들의 기록은 남기지 않는다. 그렇게 모두를 익명성에 가두고 만다. 이 영화는 넘어지면서도 포화를 뚫고 가는 올란도만을 오롯이 비추고, 역으로 전쟁을 익명성에 가둔다. 이는 올란도의 달리기와 나란한 방향이다.
그렇게 영화 <올란도>는 시간을 따라 촘촘히 배치한-사회성과 역사성을 가진- 지배의 언어를 역방향 달리기로 틀어버린다. 억압적인 층위 안에서 유린되어 온 언어의 사필귀정을 꾀하는 시도다. 동시에 이 시도는 자체로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임을 명확히 한다. 출판사에 건넨 두툼한 원고 더미가, 딸의 손에 들려 있는 카메라가 그 방향성을 드러낸다.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소통의 수단으로만 기능하던 언어는 소통을 풍성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 예술의 경지로 나아간다. 거기서 생명은 피어난다. “더 이상 운명에 붙들리지 않”고, “삶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대사는 그래서 유의미하다.
오토바이 사이드카에 딸을 태우고, 한때 자신의 것이었던 저택에 유유히 걸어 들어서는 올란도의 모습. 그 걸음은 딱딱한 액자 프레임에 갇힌 초상화와는 달리 분명하게 살아있다. 초상화 바깥의 인간 올란도의 얼굴. 남자의 얼굴도 여자의 얼굴도 아닌, 천사의 노래 가사처럼 “인간의 얼굴”이었다. 딸이 손에 든 카메라 속의 천사. 400년을 살아온 이는 앞으로도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않”을 테고, 언어도 그러할 것이다. 발화와 문자 그 너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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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추천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내일 드디어 대한민국 대표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을 하는데요!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정상적으로 개최됐으며, 그동안중단되었던 프로그램도 모두 재개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티켓 예매는 이미 진행되었지만, 현장 예매도 가능하니
오늘 씨네랩에서 추천하는 작품 외 다른 작품들도 한번 살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추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문 앞에 두고 벨 x (2022)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큰맘 먹고 마련한 중고 자전거를 끌고 배달 일에 나선 지호는 어느 밤 우연찮은 배달 실수로 동분서주하게 된다. 일을 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지는 역설적인 날. 골목 어귀마다 배달 라이더와 마주칠 수 있는 시대에 어딘지 익숙한 상황, 있을 법한 일들이 펼쳐진다.CINE PICK!
독립영화를 시작으로 상업영화 그리고 드라마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있는 이주영 배우의 감독으로서 첫 번째 연출작인만큼 많은 이들에게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나의 작은 나라 (2022)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도쿄에 인접한 사이타마현에 사는 17세 쿠르드인 소녀 사랴는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하여 다른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청춘을 보내왔다. 하지만 가족의 난민 신청이 인정받지 못하고, 아버지가 입국관리국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CINE PICK!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끄는 회사인 분부쿠에 소속된 가와와다 에마의 상업 장편 데뷔작이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초청되어 엠네스티 국제심사위원 특별언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에브리씽 윌 비 오케이 (2021)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동물들의 영화관이 열리고 스크린에는 인류의 역사가 펼쳐진다. 히틀러, 베트남전, 원폭, 나치수용소, 내전, 학살 등 인간이 자행한 비극의 역사를 관람한 동물들은 거기서 무얼 배울 것인가? <에브리씽 윌 비 오케이>에서 리티 판은 동물들이 권력을 쥐게 된 세상을 상상한다.CINE PICK!
동물이 권력을 쥐게 되는 세상을 스톱모션으로 담아낸 영화이다. 화면 분할, 내레이션 등을 통해
독특한 감독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칼렛 (2022)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어느 날 한 마법사가 훗날 줄리엣이 하늘을 나는 주홍 돛을 단 배에 납치될 거라는 예언을 하고, 줄리엣은 이 예언을 굳게 믿으면서 왕자를 기다린다.CINE PICK!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은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작품으로 칸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감독 특유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디셈버 (2022)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7년 전, 고등학생이던 딸이 친구의 손에 살해당했다. 딸을 잃은 부모는 이혼하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된 채 남은 삶을 분노와 슬픔에 빠져 보낸다. 어느 날, 살인을 저질렀던 딸의 친구가 주어진 형량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낸다. 아버지는 지금은 재혼한 어머니를 만나 딸을 죽인 살인자를 사회로 복귀시켜서는 안 된다고 설득한다. 둘은 법정에서 딸을 죽인 살인자와 대면한다.CINE PICK!
스틸샷 속 배우의 눈빛이 강렬해 영화에 대한 궁금증 불러일으킨다. 청소년 범죄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전작에 이어 구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6명의 등장인물 (2022)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긴장감이 감도는 영화 세트. 호러영화를 촬영하려는 감독(마리오 마우러)은 무척이나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제멋대로인 배우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와중에 갑작스럽게 정체불명의 여섯 명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죽은 작가가 남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CINE PICK!
태국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이탈리아의 극작가 루이지 피난델로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을 각색한 작품이다.
슬픔의 삼각형 (2022)
ⓒ 온피프엔
SYNOPSIS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모델 커플이 탑승한 호화 크루즈가 좌초되면서 무인도에 남겨진 사람들의 생존기CINE PICK!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자,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두 번째 황금종려상이다.
초현실적인 코미디를 그린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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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필리아> - '햄릿의 여인이 아닌 오필리아의 진짜 이야기'
오필리아 (Ophelia)
개봉일 :2021.07.14 (한국 기준)
감독 : 클레어 맥카시
출연 : 데이지 리들리, 조지 맥케이, 나오미 왓츠, 클라이브 오웬, 톰 펠튼, 데본 테렐
'햄릿의 여인이 아닌 오필리아의 진짜 이야기'
2020년 2월, 기생충과 1917이 아카데미에서 경합을 벌였던, 어느덧 1년 반쯤이 지난 그때. 영화관에서 1917을 보고 ‘조지 맥케이’에게 홀라당 빠져버려 그의 필모를 샅샅이 훑던 중, 이 영화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정식 수입이 진행되지 않아 매일 사진만.. 보며 “조지.. 너무 예쁘다....” 하고 눈물만 줄줄 흘렸던 나날들을 지나 드디어 <오필리아>가 한국에 정식 개봉했다.
마치 유화로 그린 명화를 보듯 아름다운 숲의 풍경과 시대극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려 주는 의상과 세트장, 그리고 <스타워즈 시리즈>의 데이지 리들리, <위아영>, <버드맨>, <멀홀랜드 드라이브>등 굵직한 작품을 남긴 나오미 왓츠, <1917>로 스타덤에 오른 조지 맥케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톰 펠튼 등 화려한 출연진까지. 조지 맥케이를 좋아하는 나의 사심을 제외하고도 <오필리아>를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필리아>의 개봉을 기다리며 이 이야기가 어떻게 각색되었는지 비교해보기 위해 최근에 ‘햄릿’ 원작도 다시 감상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고전 희곡 ‘햄릿’. 나는 지금껏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햄릿이라 생각했다. 아버지를 잃은 햄릿의 복수심과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과 고뇌, 오필리아를 향했던 사랑과 그녀를 잃은 슬픔. 대부분 햄릿의 감정을 중심에 놓고 이 작품을 해석했고 그의 심리적 갈등에 집중했었다.
<오필리아>라는 제목부터 감이 오겠지만, 이 영화는 햄릿이 아닌 ‘오필리아’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여기서 오필리아는 닥쳐온 슬픔에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흘리는 여인이 아닌 누구보다 당돌한 여인이다. 자신의 인생을 누구보다 천국과 지옥을 자주 목격한 인생이라고 칭하는 그녀가 이제 오래된 역사가 되어버린 잃어버린 왕국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말하려 한다.
이 영화엔 사랑에 빠져도 되는지 갈등하거나 슬픔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미쳐버리고 마는 연약한 비련의 여주인공은 없다. <오필리아>는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한 여인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와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오필리아>에는 햄릿이 아닌 그날의 오필리아가 있다. 칼이 아닌 꽃을 들었지만 누구보다 강하고 올곧은 그녀가 있다. 햄릿에서의 오필리아는 햄릿의 여인이지만 <오필리아>에선 다르다.
오필리아 시놉시스
현명함과 자유로움을 지닌 오필리아는 왕비 거트루드의 총애를 받아 왕실의 시녀가 된다. 왕실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오필리아에게 첫눈에 반한 왕자 햄릿은 운명적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의 격차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은 위기를 맞는다.
선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국은 혼란에 빠지고, 오필리아는 이 사건의 배후에 커다란 음모가 감춰져 있음을 알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난 그 누구보다 자주 천국과 지옥을 목격했어요.
사랑에 빠진 순간의 천국과 잃어버린 왕국의 지옥을 모두 목격한 여인 오필리아. 그녀는 역사가 되어버린 왕국의 중심에서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읊어낸다. 복수와 욕망, 실연과 피로 점칠 되어 결국 파멸해버린 한 왕국에서 분노와 복수심이 아닌 희망 한 줌을 건져 나온 그녀는 지금은 사라진 인물들을 떠올린다.
오필리아는 당돌하고 눈에 띄는 어린아이였다. 평민 출신이지만 온갖 노력으로 왕의 고문관 자리를 꽤 찬 폴로니어스의 여재. 폴로니어스의 유일한 보석. 거트루드 왕비는 꾀죄죄한 얼굴로 힘차게 왕과 귀족들의 앞으로 튀어나온 오필리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시녀로 키우기로 결정한다.
수녀원에서 자라 항상 다른 여자들에게 쪼였던 거트루드와 평민 출신 주제에 왕비의 총애를 받는다며 시녀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오필리아. 시녀들은 보석 대신 꽃을 머리에 꽂은 오필리아를 놀리고 무시하지만 오필리아는 포기하거나 달아나는 대신 항상 자리를 지키며 진심으로 거트루드를 보필한다. 거트루드는 그런 오필리아를 더욱 특별하게 느낀다.
든든한 왕과 사람을 보살필 줄 아는 왕비. 전쟁에 힘을 쏟긴 했지만, 폭력적이지 않았던 왕과 왕비가 통치하는 왕국은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이 평화는 한순간의 욕망과 복수심으로 인해 망쳐지고 만다.
오직 저만이 그 사실을 잊지 못하겠죠.
“오랫동안 숨겨온 욕망을 여인에게 쏟아부었다.” 거트루드 왕비가 즐겨읽던 책의 한 구절이다. 클로디어스는 왕이 되기 위해 형을 독살하고 거트루드를 유혹한다. 전쟁에만 힘을 쓰던 왕에게 지쳐있던 거트루드는 바보 같은 사랑에 눈이 멀어 클로디어스에게 왕위를 넘긴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뒤늦게 왕국으로 돌아온 햄릿은 왕의 의자 앞에 서서 클로디어스를 내려다보며 분노를 쏟아내지만 이미 옮겨간 왕관의 힘에 밀려 바닥으로 내려와 무릎을 꿇는다.
왕국의 비극은 클로디어스의 욕망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왕의 힘이라는 것이, 눈이 먼 사랑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노라.
클로디어스의 욕망이 비극의 시작이었다면 비극을 가속화 시킨 건 복수심과 사랑이었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거트루드, 클로디어스, 햄릿과 레어티즈, 그리고 메틸다는 서로에게 독과 칼을 겨눈다. 클로디어스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오필리아와 햄릿의 존재를 없애고 싶어 하고, 클로디어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던 햄릿은 오필리아와 레어티즈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를 찌른다. 아버지를 잃은 레어티즈는 복수를 위해 햄릿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클로디어스에게 배신을 당한 치료사 메틸다는 진실을 알고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사랑은 왕권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강했다. 클로디어스에게 눈이 먼 사랑을 한 거트루드,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계급을 내려놓겠다고 다짐한 햄릿,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한 오필리아.
오필리아와 햄릿은 진실되게 서로를 사랑했으나 왕자와 평민이라는 계급 때문에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다. 햄릿은 오랜 시간 오필리아의 머리끈을 간직했고 자신의 반지와 함께 오필리아의 머리끈을 돌려준다. 자신의 온 마음을 담은 물건을 돌려주며 햄릿은 오필리아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햄릿과 오필리아가 함께 보낸 시간은 빈틈없이 아름답고 푸르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드는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이 사랑이 더 애틋하고 아름답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깨어질 거란 걸 알기에 더 오래 붙잡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내가 궁금한 건 사랑이 어디 있냐는 거야
진짜 사랑은 어디 있는 걸까. 사람의 몸은 온갖 장기와 지방, 근육으로 가득 차있는데 사랑이 들어갈 틈은 어디에 있는 걸까. 사랑과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복수심으로 불타던 왕국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서로 사랑했다고 믿었던 클로디어스에게 버려진 메틸다와 그에게 이용당한 거트루드. 사랑과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복수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 햄릿.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 햄릿은 복수심이 담긴 독에 중독되어 죽고 만다. 클로디어스는 왕, 햄릿, 메틸다의 복수를 담은 거트루드의 칼에 죽었고, 햄릿은 폴로니어스의 복수를 담은 레어티즈의 독 묻은 칼에 죽었고, 거트루드는 메틸다의 독약을 마시고 죽는다. 사랑에 배신당한 이의 분노가 가득 담겨있었던 어두운색의 독약은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오필리아는 햄릿과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햄릿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그가 물에 빠져 죽지 않길 바라며 독약을 마셨고, 햄릿의 복수를 말리려 했지만 결국 비극으로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데는 실패한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총명하고 용기 있는 여인이었다. 진짜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직접 노를 저어 나아가던 오필리아의 이야기가 다소 낯설기도 하고 햄릿의 존재감이 아쉽기도 했지만 딱 현시대에 알맞은 각색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유도 모른 채 슬퍼하다 물에 빠져 죽은 비련의 오필리아와 이별한 새로운 오필리아의 이야기엔 깊은 비극을 비집고 나온 희망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었다.
햄릿에서의 오필리아는 슬픔에 미쳐버려 연못에 빠져 죽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오필리아는 선왕의 음모를 눈치채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독약을 먹고 연못에 뛰어드는 엄청난 결단력을 보여준다. 왕국 인물 중 유일하게 복수심이란 감정에 빠지지 않은 지혜로운 그녀는 무너진 왕국에서 홀로 살아남는다.
원작에선 ‘연못에 빠져 죽은 여인’으로 끝나버렸던 그녀는 사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새로운 삶을 이어나간다. 햄릿과 뭇 남성 인물들의 복수심에 가려져 지금껏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오필리아’의 진짜 이야기는 "그대도 언젠가는 당신만의 이야기를 하게 되겠죠."라는 그녀의 한마디와 함께 마무리된다. 나는 이 한마디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누군가를 향한 위로와 응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적 편견과 넘지 못할 선 앞에서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도 언젠가 오필리아처럼 ‘나의 진짜 이야기’를 알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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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E1, 블랙핑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블랙핑크 : 세상을 밝혀라'을 봤다.
한국의 대중가요에서 특히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세계로 퍼져나가는 음악을 K-POP으로 부른다. 많은 아이돌 그룹이 세계 순회공연을 다니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BTS와 블랙핑크가 단연 돋보인다.
나는 아이돌, 아이돌 그룹에 거의 관심이 없다. 내가 '꼰대'이라서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음악 취향과 음악성이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지금도 항상 듣는 음악이 2NE1이다.
투애니원은 이미 공식 해체한 그룹이다. 그룹 리더인 '박봄'도 이제 30대 중반이 되었으니, 이들도 나이 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투애니원의 음악이 참 좋다. 여느 걸그룹과 확실하게 다른 음악, 음악 자체가 일단 좋고, 멤버 네 명 - 박봄, 산드라박, 씨엘, 민지 - 의 개성도 뚜렷하고, 노래, 춤, 의상 모두 훌륭하다.
투애니원이 처음 등장할 때를 기억한다. 그때가 데뷔였다는 건 몰랐지만, 2009년, 아내와 영화를 보러 코엑스에 있는 메가박스에 가서 영화관 자리에 앉아 있었고, 곧이어 광고가 나왔다. 그 광고 가운데, 빅뱅과 네 명의 여성 그룹이 나왔고, 이들이 부른 노래는 '롤리팝'이었다. 나는 그 광고가 투애니원의 데뷔곡인지 몰랐지만, 매우 감각적이고 인상 깊은 노래여서 지금도 좋아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투애니원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듣게 되었다. 투애니원의 노래는 강렬하고 통쾌하다. 여성 아이돌 그룹 가운데서 거의 유일하게 '걸크러시' 모습을 보여주었고, 네 명의 보컬과 춤은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었다.
투애니원은 7년 동안 활발하게 활동했고, 지금은 각자 따로 활동하지만, 다시 뭉칠 가능성도 있다고 들었다. 지금 유튜브의 '투애니원 공식 계정'에는 구독자가 꾸준히 늘고 있고, 이들의 음악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나 역시 '2NE1'의 팬이다.
블랙핑크의 등장은 투애니원보다 더 화려하고 완벽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들이 연습생 때부터 데뷔, 데뷔 이후의 월드투어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사람들이 말하듯 블랙핑크는 '2NE1'의 '럭셔리 버전'이라고 봐도 좋겠다. 같은 YG 소속이고, 2NE1의 음악을 프로듀싱한 '테디'가 블랙핑크의 음악도 프로듀싱했다는 점에서, 블랙핑크는 2NE1의 유전자를 거의 그대로 복제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들이 연습생 시절에는 함께 연습하던 동료들이 20-30명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탈락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결국 지금의 블랙핑크 네 명 - 지수, 제니, 로제, 리사 - 이 남았다. 이들의 가창력과 안무는 당연히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미모도 빼놓을 수 없는데, 노래, 춤, 외모까지 완벽하게 갖춘 아이돌 그룹 가운데 블랙핑크는 단연 톱이라고 생각한다.
블랙핑크가 보여주는 성과는 정말 대단하다. 2NE1도 훌륭했고, 여전히 훌륭하지만, 블랙핑크는 선배인 2NE1의 어깨 위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지금 세계를 주름잡는 K-POP의 물결을 타면서 블랙핑크는 실력과 함께 운도 좋은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2NE1이 '걸크러시'의 모습을 조금 더 강하게 드러냈다면, 블랙핑크는 화려하고 '럭셔리'한 컨셉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힘 있는 춤과 도도함, 강렬한 사운드와 화려한 안무는 팬들을 매혹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2NE1과 블랙핑크의 음악은 매우 비슷하다. 강렬한 비트를 배경으로 깔고, 네 명으로 구성된 멤버, 메인 보컬, 서브 보컬, 메인 힙합, 메인 안무를 담당하는 멤버가 있고, 격렬하면서 힘찬 안무, 네 명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당당하고 자신 있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 등, 프로듀서가 같고, 지향하는 음악이 일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블랙핑크는 2NE1의 모습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킨 걸그룹이다.
블랙핑크는 아이돌 걸그룹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기록은 모두 '세계 최초'이자 '세계 최고'들이다. 한국의 대중음악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건 기분 좋고 자부심을 가질 일이다. 한국의 예술가들이 이제는 세계를 향해 더 활발하고,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가능성이 앞으로도 꾸준히 확대될 것을 기대한다.
2NE1, 블랙핑크 - 2
블랙핑크가 만들고 있는 놀라운 기록들은 분명 긍정적이다. 한국 대중가요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그로 인한 유무형의 자산이 확대, 확산하고 있는 건 분명 우리나라에게도 좋은 현상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다.
2NE1이나 블랙핑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연예산업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한, 기획사와 아이돌, 걸(보이)그룹의 소비, 성상품화 등에 관한 문제 의식이다.
'기획사'로 불리는 연예 기획회사는 아이돌 뿐 아니라 연예인들과 계약을 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업무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회사를 말한다. 연예 기획사는 장르에 따라 구분되는 특징이 있어서, 가수들만 관리하거나, 영화배우만 관리하는 방식으로 특화되어 있다. 대형 기획사는 장르에 관계 없이 가수, 배우, 탤런트, 개그맨 등과 계약을 맺기도 한다.
대중연예인이 이름 있는 기획사에 소속된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형 기획사에 유명 연예인이 많이 소속되어 있으면, 기획사의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명 연예인이 기획사를 먹여 살기기도 한다. 작은 기획사에 소속한 무명 연예인이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되고, 많은 돈을 벌면 작은 기획사는 스타가 된 연예인 한 명의 힘으로 성장해 중형, 대형 기획사로 성장할 수 있다.
연예기획 사업은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투기적 성향을 갖는다. 연예인이 되려는 사람은 많지만, 이들 가운데 스타가 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설령 유명한 연예인이 된다 해도 아이돌, 아이돌 그룹의 경우, 활동 기간이 길지 않아 연예기획사는 아이돌(그룹)이라는 상품을 최대한 활용하게 된다.
모든 자본주의의 상품이 그렇듯, '아이돌' 역시 하나의 '상품'이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상품도 있지만, 특수한 방식으로 생산하는 상품도 있다. 공장에서 만드는 상품은 노동자의 '노동'이 투입되면서 잉여가치가 생산된다. 즉, 노동자의 노동이 잉여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반면 연예산업은 노동자의 역할이 사라지는 대신 - 기획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당연하고 - 연예인은 그 자신이 '상품'이 된다는 점에서 특수한 형태의 '상품'이다. 기획사는 자신이 고용한 특수한 형태의 노동자에게 투자한다. 기획사는 건물, 토지, 돈을 가지고 있으며 이 자산을 바탕으로 자신의 '상품'이 될만한 대상을 찾는 것이다.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은 특수한 형태의 노동자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임금을 받으며 일하지 않지만,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연극, 연기를 하거나 공연을 하면 그에 대한 일정한 대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자신이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노동자다.
이들이 '특수한 형태의 노동자'인 이유는, 자신의 재능으로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건물주), 부르주아가 될 확률이 다른 노동자보다 높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되고픈 청소년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들 가운데 스타가 될 확률은 0.1%도 안 된다. 그렇기에 더욱 '스타'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것이다.
기획사(자본)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품에 투자해야 하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이들은 재능 있는 청소년을 발굴해서 혹독한 연습생 과정을 거쳐 데뷔시키는데, 이 과정이 짧게는 몇달이지만 길게는 십년도 걸리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통 2-3년에서 5-6년 사이에 연습생 과정을 마치고 솔로 또는 그룹으로 데뷔하는데, 데뷔부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고, 그들의 노래가 많이 팔리고, 아이돌(그룹)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는 또 시간이 필요하다.
기획사는 자신의 '상품'인 아이돌(그룹)을 대중에게 알리려고 다양한 방식의 홍보, 마케팅, 로비를 펼친다.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하고, 유튜브 채널을 만들며, 오프라인의 다양한 행사-대학, 잔치, 지역 등-에 출연해 얼굴과 이름, 노래를 알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뉴페이스 '상품'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연예기획사의 요구와 주문에 따라 일정을 소화한다.
기획사에서는 새로운 상품이 충분히 '판매'될 것인지 빨리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판매'는 방송출연, 음반(디지털 포함) 판매, 대중의 소구력, 인지도, 각종 행사 스케줄의 종류와 양 등을 말한다. 즉, 기획사가 아이돌(그룹)에 투자한 총비용와 이윤을 합한 매출 이상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하면 아이돌(그룹)은 계속 활동할 수 있으며, '스타'가 될 확률이 높다.
반면 기획사의 예상보다 반응이 낮은 아이돌(그룹)은 일찍 폐기해 지출을 가능한 적게 만든다. 기획사는 '상품(아이돌(그룹))'은 꾸준히 만들고 있으므로, 상품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미련없이 폐기한다. 오로지 자본의 논리만이 '연예 시장'에서 통용되는 건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돌'은 인간으로의 존엄과 권리가 종종 침해당하게 된다. 단적으로 기획사와 아이돌 사이의 계약조건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져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고, '갑'인 기획사의 의도를 '을'인 개인이 반박하거나 항의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럼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불공정한 계약과 처우,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연예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성공했을 때 받는 결과가 극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연예시장이나 스포츠시장은 그런 점에서 같다. 자신의 재능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혹독한 반면, 성공 가능성은 낮고, 성공하지 못하면 아무런 대가가 없지만, 일단 성공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부와 명예를 누리기 때문이다.
연예 시장에서 기획사의 역할은 재능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시장의 상황에서 자본을 투입해 홍보, 마케팅을 동원해 성공하는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재능만 있다고 성공하지 못하는 연예시장에서 홍보와 마케팅은 결국 자본을 대량으로 투입해야 하고, 자본의 규모에 비례해 아이돌(그룹)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진다.
아이돌(그룹) 가운데 여성이 많은 이유는 가부장 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남성 중심,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늘 '대상화'된다. 여성은 '사회적 소수자'이면서 '사회적 약자'이기에 남성보다 더 많이 '성적'으로 소비되는 대상이 된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비율로 '성 상품'으로 판매되는데, 이것은 가부장,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안정된 직업이나 직장의 자리를 남성들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불공정, 불평등한 구조가 원인이다. 즉, 여성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성'을 판매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는 것이 사회적 불평등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해야 하고, 성 착취와 성별 불평등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성의 '성 상품화'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여성도 나타난다. '성'을 상품화 하는 것이 평범한 노동을 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편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판단한 일부 여성은, 체제의 한계 - 가부장제, 남성 우월주의 사회 - 를 빠르게 인정하고, 그 체제 안에서 순응하며 자신의 재능이나 '성'을 상품으로 판매하려는 전략을 세운다.
연예기획사에 수많은 청소년이 몰려드는 것도 이런 이유와 맞물려 있다. '스타'로서의 성공과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다는 장미빛 미래와 자신의 재능을 상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 이런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의 논리,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등이 결합해 연예 시장은 더욱 경쟁이 치열해진다.
아이돌(그룹), 특히 여성 아이돌(그룹)의 경우, 그들의 노래와 춤이 경쟁적으로 선정성을 띄는 것은 명백히 자본의 논리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남성 아이돌도 어느 정도 선정적이긴 해도, 그들이 '남성'이라서 '성적대상화'는 여성 아이돌에 비해 덜 하다.
여성 아이돌(그룹)은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는데, 이것을 남성 아이돌(그룹)과 비교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남성 아이돌(그룹)도 옷을 벗고 맨몸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드문 경우고, 여성 아이돌(그룹)은 거의 예외 없이 짧은 치마, 짧은 바지, 배와 배꼽이 보이는 짧은 옷, 속옷처럼 보이는 바지와 상의를 입고 노래하고 춤춘다.
이 현상은 두 가지 이유가 변증법적으로 결합한 결과인데, 연예기획사에서는 여성 아이돌(그룹)을 '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가장 보기 좋은 디자인으로 만든다. 그것은 기본이 되는 노래와 춤을 제외하면, 외모, 화려하고 개성 있는 의상, 대중의 선망과 욕망을 자극하는 패션과 화장, 이미지 메이킹을 만들어간다. 여기에 아이돌 자신도 연예인으로 성공하고픈 욕망과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한 노력, 선망의 대상이 되려는 의지,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는 압력 등의 기제를 통해 스스로 몸을 드러내게 된다. 즉, 아이돌의 노출은 기획사의 이윤추구를 위한 목적, 대중의 욕망, 아이돌 자신의 욕망을 위한 의지가 결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쯤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발적 성매매', '자발적 성상품화'에 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 우리 모두(여성과 남성)는 이 문제에 대해 속고 있거나 무지하기 때문에, 본질을 모른 채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 걸 볼 수 있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섹스, 임신, 출산에 있어서 여성 스스로 주체적으로 판단, 결정하는 걸 말한다. 즉, 외부의 힘에 의해 압력을 받아서는 안 되며, 법과 제도에 의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호받아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자신의 '성'을 외력(폭력)에 의해 유린당할 수 있으므로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사회에도 있다.
반면, '자발적 성매매'나 '자발적 성상품화'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의미도 다를 뿐 아니라, 본질에서 매우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떤 여성이 스스로 몸을 노출할 권리는 있다. 또한 자기의 '성'을 판매할 권리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오로지 여성 자신의 판단과 결정인지는 사회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2천년 전,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 있다고 알려졌다. 즉, 체제를 불문하고 여성이 '성'을 판매한 것을 두고 여성은 자신의 '성'을 파는 것을 좋아하고, '성'을 팔아서 쉽게 돈을 번다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무지한 발언이다.
여성이 '성'을 팔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부장제, 남성우월주의 사회가 되면서 여성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차별당하면서 발생한 불평등에 원인이 있다. 이 차별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농사를 지으면서부터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인류가 집단생활을 시작하고, 가축을 기르며, 정착해서 안정적 거주지를 확보하고, 농산물의 수확을 통해 잉여생산물이 발생했다는 걸 뜻한다.
잉여생산물은 필연적으로 계급의 발생으로 이어지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뉜 집단은 생산성이 높아지고, 잉여생산물이 늘어나면서 집단화, 도시화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소유물은 남성이 차지하고,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 관계 또는 피착취 관계로 전락한다.
이런 양상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욱 첨예하고 격렬하게 드러나는데, 자본주의는 자본이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해서 이윤을 확대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질서에서 소외된 여성은 자본주의에서 소외와 착취라는 이중의 고통 속에 놓이게 된다.
여성의 인권과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며, 남성에게 소외당하는 존재이고, 자본에 착취당하는 노동자이면서, 남성 우월의 불평등 구조에 억눌린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성'을 판매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오로지 여성의 주체적 결정인가는 의문이다. 사회 속 여성, 특히 가부장, 남성우월주의,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거대한 바위에 짓눌린 여성이 선택하는 결정이 '주체적'일 수 있을까. 여성은 태어나 자라면서 자기도 모르게 남성의 세계관을 주입당하고, 남성의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훈련을 받는다. 그것이 여성의 잘못은 아니지만, 여성이 불평등의 피해자라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곡된 결론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남성도 '성'을 판매하기는 한다. 여성과 마찬가지 이유로. 그것은 쉽고 빠르게 돈을 벌려는 목적이다. 즉 남성이나 여성이 '성'을 파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압력에 의한 행위이며,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없는, 개인을 착취하는 구조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자발적 성상품화' 역시 같은 구조를 갖는다. 스스로 자기의 성을 상품화한다고 생각하는 개인은, 자기의 선택과 결정으로, 주체적 행위를 한다고 믿지만, 자신의 능력과 개성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성상품화는 거의 모두 사회적(자본) 압력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단지 개인은 자신의 욕망과 사회적(자본) 압력을 구분하기 어렵고, 그 둘의 이해가 상충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선택으로 여길 뿐이다.
많은 아이돌(그룹)이 노출이 많은 의상으로 무대에 서서 선정적인 춤을 추는 것은, 그들 자신의 의지라기 보다는 사회적(자본) 압력, 대중의 욕망, 그리고 그 압력과 욕망에 조응하는 아이돌 개인의 욕망과 자기최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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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라기 월드 4 | 미래로의 쇄신 대신 전통의 되풀이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룡들이 '쥬라기 월드'를 탈출한 뒤 5년이 지나자, 공룡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빠르게 식는다. 달라진 환경과 공기로 인해 공룡들이 적도 인근에만 정착했기 때문. 그러나 '파커-제닉스 제약회사'는 여전히 공룡에게 주목한다. 육지, 하늘, 바다를 지배하는 가장 거대한 공룡들의 DNA를 이용하면 심장병을 치료할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이에 파커-제닉스 소속의 '마틴 크렙스'(루퍼트 프렌드)는 미 해병대 특수작전부대 출신 용병 ‘조라‘(스칼렛 요한슨)에게 공룡들이 남아있는 적도 인근의 세인트 휴버트 섬으로 가는 원정대를 이끌어달라고 부탁한다. 고민 끝에 제의를 수락한 조라는 옛 동료이자 선장인 '킨케이드'(마허샬라 알리), 고생물학자 ‘헨리 박사’(조나단 베일리) 등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 폐쇄된 쥬라기 공원의 연구소와 함께 그 섬에 감춰진 진실은 모르는 채로.
퇴보해 버린 새로운 시작
<쥬라기 공원> 삼부작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특히 <쥬라기 공원>이 보여준 충격적인 시각효과는 그 자체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눈만 즐거운 작품도 아니었다. 유전 공학과 생명 과학 기술의 가능성을 조명하면서도 자본주의와 결합한 비윤리적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시각효과로 구현해 내며 SF 영화의 정수를 보여줬다.
하지만 공룡들도 이제는 서서히 생명력을 잃고 있다. 후속 시리즈인 <쥬라기 월드> 삼부작만 해도 개봉할 때마다 흥행 성적이 3억 달러씩 우하향했다. "사람들이 더 이상 공룡에 열광하지 않는다"라는 대사가 영화 안팎을 모두 대변하는 셈이다. 더 화려한 블록버스터에 비해 매력을 잃은 공룡 영화는 결국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이하 <쥬라기 월드 3>)이 <쥬라기 공원>의 주역들을 복귀시켰듯이 과거의 영광에 의존해야 했다.
따라서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하 <쥬라기 월드 4>)은 부제에 걸맞게 시리즈가 앞으로도 존속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해야 했다. 이는 <고질라>(2014)로 할리우드 괴수물을 되살려냈던 가렛 에드워즈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긴 이유이자, 기대한 바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지는 했다. 퇴보한 주제 의식과 편의적인 서사로 채워진 각본 앞에서는 백약이 무효하기 때문이다.
선지가 두 개뿐인 시험
유전공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거대 기업들에 대한 비판. 돈과 명예를 좇아 경쟁적으로 발전할 뿐 자기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대 과학에 대한 경고. 인간이 자연을 제어한다는 것은 카오스 효과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통찰.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 모든 메시지는 결국 한 가지 딜레마로 귀결된다. “복원된 공룡은 하나의 생명인가, 아니면 거대 자본이 투입된 자산인가?”
<쥬라기 월드 4>도 마찬가지다.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한 조라 일행이 모사사우스를 눈앞에 둔 순간, 영화는 그들을 선택의 기로에 세운다. 대서양 횡단 중 배가 뒤집힌 '델가도 가족'의 조난 메시지가 세인트 휴버트 섬 정반대 방향에서 잡힌 것. 즉, 섬은 시험장이고, 조난한 가족은 출제 문제이며, 출제 의도는 조라 일행의 양심과 윤리관을 시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결정해야 한다. 돈과 생명 중 무엇을 먼저 챙길 것인가?
세 주인공은 제각기 답을 내놓는다. 그중 두 명의 입장은 확고하다. 헨리 박사는 사람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채취한 공룡 혈액도 파커-제닉스 제약회사에 넘길 게 아니라 연구 및 공익 목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고생물학자다운 선택이다. 크렙스도 망설이지 않고 답을 찍는다. 파커-제닉스 제약회사의 대리자인 그는 거액이 걸린 공룡 혈액을 채취하는 임무가 우선이니 다에 조난자들을 태워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시리즈의 전통을 잇는 정답
그에 반해 조라는 그 둘 사이에서 표류한다. 그녀의 본래 가치관은 크렙스와 비슷하다. 약속된 돈만 주면, 도덕과 법을 신경 쓰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용병답다. 그러나 새로운 임무 도중에 조라는 내적으로 깊이 갈등한다. 그녀는 돈만을 쫓다가 다른 가치를 수없이 놓쳤고, 그로 인해 PTSD에 시달리니까. 바로 직전 임무 도중에 동료를 눈앞에서 잃었고, 다른 작전에 투입된 사이에는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장례식도 놓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라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쥬라기 월드 4>는 돈만을 쫓던 그녀가 어떤 이유로 생명 존중이라는 정답을 찾게 되는지 그 과정을 는 작품이나 다름없다. 그 중심에는 옛 동료 킨케이드와 헨리 박사가 있다. 돈을 아 용병 생활을 했지만, 아들도 잃고 아내와도 이혼한 킨케이드는 자기 경험을 살려 그녀에게 충고한다. 돈이 아닌 가치를 추구할 때 비로소 삶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헨리는 돈만으로 그녀의 트라우마를 고칠 수는 없다면서 아픔을 승화할 다른 길을 제시한다. 파커-제닉스 제약회사에 혈액 샘플을 넘기면 소수의 사람만 이득을 보는 고가의 치료제가 개발되겠지만, 그녀가 샘플을 오픈 소스로 공개하면 그녀의 어머니처럼 고통받던 더 많은 이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옛 동료와 새 동료의 조언과 설득 끝엔 조라는 <쥬라기 공원>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답, 돈보다 중요한 생명이라는 정답을 찍는다.
전통을 반복할 뿐인 정답
문제는 조라의 정답이 반복일 뿐, 쇄신은 될 수 없다는 것. 30여 년간 이어진 전통은 유지해도 시리즈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주제 의식이나 소재, 방향성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편인 <쥬라기 월드 3>보다도 퇴보했기 때문이다. 그간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인간 중심적 관점을 견지했다. 다른 생명을 조작하고 생태계에 개입한 대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만의 몫이었다.
<쥬라기 월드 3>는 달랐다. 벨로시랩터 '블루'는 제약회사 바이오신에게 납치당한 새끼 '베타'를 구하기 위해 친구인 '오웬'(크리스 프랫)을 이용한다. 그는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베타를 되찾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블루에게 그러겠다고 약속한다. 이 장면은 공룡들이 전 세계에 퍼진 이상, 인간이 지구의 유일한 주체는 아니며 비인간 존재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관점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쥬라기 월드 3>의 시도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그 일환으로 등장시켰던 메뚜기의 존재감이 공룡을 압도한 나머지 '메뚜기 월드'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쥬라기 월드 3>라는 실험은 시리즈의 근본적 변화를 추동할 수도 있었다. 공룡을 공포의 존재나 테마파크의 볼거리로만 소비하지 않고, 공룡에게 인간과 동등한 지위를 선사하거나 그들을 이야기의 주체로 끌고 오는 식으로.
하지만 <쥬라기 월드 4>는 전작의 변화를 계승하거나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생태적으로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의 믿음을 비판하는 헨리 박사의 대사 몇 줄이 전부일 뿐이다. 그보다는 시리즈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선에서 만족한다. 이처럼 30여 년 전의 담론에만 의존하는 이상, <쥬라기 월드 4>로부터 시리즈의 활력이나 미래를 낙관할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편의적이고 얄팍한 도구의 향연
안정적이고 검증된 흥행 공식만 찾는 태도는 각본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쥬라기 월드 4>는 메시지와 볼거리를 구분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조라 일행이 전자를 맡는다면, 델가도 가족은 후자를 담당하는 식이다. 델가도 가족은 티라노사우루스나 뮤타돈 같은 공룡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조라 일행은 특정한 윤리적 입장과 가치를 평면적으로 대변하는 졸일 뿐이다.
그 결과 인상적인 캐릭터를 찾아보기 어렵다. 섬에 도착한 이후로 델가도 가족은 없어도 전개에 문제가 없고, 헨리 박사와 크렙스도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내적 갈등을 겪는 조라, 동료들을 하나씩 잃으며 애통해하는 킨케이드가 그나마 예외일 뿐이다. 공룡도 철저히 도구적으로 활용된다. 티라노사우스와 새로운 돌연변이 공룡 모두 블록버스터다운 스케일의 볼거리를 선사하는 역할만 맡고 퇴장한다.
공룡들로부터 메시지나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쥬라기 공원에 제공될 예정이었던 기괴한 모습의 돌연변이 공룡도 단지 '이중 교배 실험의 실패작'이라고만 언급될 뿐, 과학 기술 윤리와 관련된 담론으로 나아가는 계기는 되지 못한다. 이에 더해 공룡과 인간 주인공 간의 유대도 없고, 공룡들에게 특별히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전반적으로 휘발성이 강하다. 중간중간 놀라운 순간은 있다. 조라 일행이 티타노사우루스를 마주했을 때는 주인공도 관객도 모두 경탄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룡들이 한순간의 볼거리로 소비되는 이상, 이 감정에는 말초적인 자극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자연히 이를 계기로 돈보다 공룡이나 생명의 가치를 더 무겁게 여기게 된 조라의 변화도 다소 얄팍해 보여서 이해는 하나 공감하기는 어려워진다.
눈은 즐겁다
한 번 허점을 노출한 각본은 연쇄적으로 문제를 드러낸다. 우선 작위적인 장면이 많다. 위기를 만들려고 등장인물들의 실수를 일부러 유도하기 때문이다. 굳이 디스토르투스 렉스의 실험실 출입구 앞에서 버려진 초코바 포장지가 연구소를 마비시키고, 그 틈에 공룡이 탈출하는 오프닝이 대표적이다. <쥬라기 월드>에서 사람들의 심리까지 역이용해서 우리에서 탈출한 인도미누스 렉스에 비하면 지나치게 허술해 보인다.
억지로 위기를 만들었다 해도 긴장감이 고조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구성 때문이다. 배우의 명성, 인물의 나이와 역할 등을 고려하면 생존 여부가 너무 명확하고, 실제로 영화는 예상으로부터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더 다양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상황도 살리지 못한다. 수심이 깊은 강이나 사람 키보다 수풀 속에서 공룡이나 다른 생명체를 갑자기 등장시키는 식의 기회가 있지만,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술적인 탁월함은 인상적이다. 특히 공룡들에게 쫓기다가 안전해졌다고 생각한 캐릭터가 한숨 쉬고 공룡에게 잡아먹히는 연출과 편집 덕분에 서스펜스는 비교적 꾸준히 유지된다. 그 덕분에 해변가에서는 스피노사우루스에게, 절벽에서는 케찰코아틀루스에게, 강가에서는 티라노사우스에게 습격당하는 장면 모두 상당한 긴장감과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묘사도 적나라해서 잡아먹히는 순간의 충격과 공포도 극대화된다.
다른 영화들을 오마주한 액션 장면도 인상적이다. 모사사우스의 신체 일부만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쌓다가 기습적으로 그 전모를 드러내는 연출은 <고질라>가 고질라의 전체 모습을 마지막 순간에야 보여주면서 시각적 충격을 극대화한 연출과 유사하다. <쥬라기 공원>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랩터와의 주방 추격전도 장소만 편의점으로 바꿔서 오마주 한다.
최소한의 블록버스터
그렇기에 <쥬라기 월드 4>는 최소한의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다. 각본의 짜임새는 실망스럽다. 매력적인 캐릭터도 없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공룡의 활약도 많지 않다. 그 와중에도 가렛 에드워즈는 관객들을 쫄깃하게 애태우면서 꼭 필요한 재미만큼은 가까스로 지켜냈다.
하지만 그렇기에 <쥬라기 월드 4>는 실패한 작품이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부제에 걸맞은 메시지도, 다음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 비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쥬라기 월드'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4번째 작품인데도 길을 못 찾은 채 헤매고 전작으로부터도 퇴보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 크다.
그러다 보니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시리즈처럼 한순간 관객의 외면을 받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설령 당장의 흥행 성적은 기대 이상이더라도, 만듦새를 봤을 때 그 추세가 다음 시리즈에도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Acceptable 무난함
최소한의 재미로도 못 가리는 매캐한 진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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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심과 순수 사이 공룡보다 더 위험한 건 인간이었다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더 편리한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그만큼 환경은 파괴되고 오염은 가까워졌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와 기업들이 대책을 세우지만, 그 속도는 자연을 회복시키기엔 너무 더디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통제하려 한다. 동물을 가두고, 보기 좋은 풍경을 만들어 인간의 흥미를 만족시키려는 태도는 여전하다. 자연을 인위적인 방식으로 꾸며놓고, 그 위에서 인간은 여전히 우월감을 느끼려 한다.
<쥬라기 공원>과 <쥬라기 월드> 시리즈는 늘 인간의 오만함과 탐욕을 경고해왔다. 이번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그 흐름을 따르면서도, 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공룡이야말로 이번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이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섬에서 살아남은 그들은 이제, 인간의 세계와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 충돌을 통해 묻는다. 과연 우리가 정말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가.
[첫 번째 감정] 조라의 욕심
조라(스칼렛 요한슨)는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제약회사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 한 번만이라는 말과 함께, 엄청난 돈이 제시되자 다시 그 일에 발을 들인다. 그 선택은 결코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는 평생 험한 일을 해온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만 성공하면, 이 고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절실함이 있었다.
조라는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의 내면엔 욕심이 있지만 그 욕심은 본능에 가깝다. 살아남고 싶고, 더는 힘든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 바로 그를 이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나름의 당위성을 갖는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던컨(마허샬라 알리)과 그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단지 이 일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시 평범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이들이 간과한 것이다. 그들이 벌이는 일이 공룡에게 얼마나 해로운지, 자연의 법칙을 얼마나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그들은 이전의 재앙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고,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인간의 욕심이 늘 그렇듯, 선의와 본능 사이에서 균형을 잃는 순간, 파국은 곧 찾아온다.
[두 번째 감정] 마틴의 추악함
마틴(루퍼트 프렌드)은 이 영화에서 제약회사의 실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탐험대를 이끌며 공룡 서식지로 들어가고, 어떤 윤리적 고민도 없이 생태계를 무너뜨린다. 그의 목적은 명확하다. 약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손에 넣는 것. 하지만 그 약이 정말 인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막대한 수익을 위한 것인지는 애매하다. 그는 인간 중심적이고, 자연을 도구로 여긴다.
마틴은 조라와의 결정적 차이점을 드러낸다. 조라는 인간으로서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틴은 그런 감정조차 없다. 그는 방해되는 인물이 생기면 무참히 제거하고,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의 선택은 윤리가 아닌 계산이고, 생명보다 수익을 우선시한다.
이런 마틴의 모습은 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우리 역시 과거에 수많은 의약품과 기술을 개발하면서 자연을 파괴해왔고, 그 대가를 아직 치르고 있다. 영화는 마틴을 통해 말한다. 누군가는 결국 돈 앞에서 본성을 드러내며, 그런 탐욕이 결국 인간의 몰락을 이끈다는 사실을. 괴물 공룡이 등장하는 순간보다, 마틴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무감각한 표정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세 번째 감정] 헨리의 순수함
헨리 박사(조나단 베일리)는 이 시리즈의 본래 정신을 계승하는 인물이다. 그는 원작의 알란 그랜트 박사의 제자로 등장하며, 공룡을 생명체 그대로 존중하려는 과학자다. 그는 공룡을 단순한 데이터나 실험체로 보지 않고, 경이로운 생명으로 바라본다. 공룡의 생태계를 파괴해서는 안 되며, 설령 그들을 통해 약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해도, 그것은 인류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의 생각은 조라에게조차 처음에는 너무 이상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공룡과 직접 마주한 순간, 조라 역시 헨리의 시선을 이해하게 된다. 헨리는 공룡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 존재 자체에 감탄하고, 그 안에서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본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는 여러 번 반복되며 피로감이 쌓였지만,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계속되는 이유는 헨리 같은 인물의 철학 덕분일지도 모른다. 자연은 가능한 한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걸 깨뜨린 것은 인간이지만, 그걸 다시 지킬 수 있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끊임없이 희망을 말한다.
공룡은 무죄, 인간의 욕심이 유죄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사람의 욕심이나 실수만을 비판하지 않는다. 영화 속 제약회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며, 탐욕이 조직화되고 정당화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자연을 파괴하면서도 인류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명을 거래하는 방식은 익숙할 만큼 현실적이다. 약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그 약조차 일부만이 접근할 수 있는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의료의 불평등, 그리고 기술과 자본이 자연을 소유하려는 태도까지 날카롭게 비추고 있다. 결국 공룡보다 더 위험한 건 인간이고, 그 인간을 움직이는 건 시스템화된 욕망일지도 모른다.
다른 무엇보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공룡을 보는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이번 편은 특히 공포적 요소와 추격전을 강조하며 <쥬라기 공원1, 2>와 <쥬라기 공원3>의 스타일을 적절히 섞었다. 이야기 구조는 익숙하지만, 시리즈의 핵심이었던 긴장감은 확실히 되살아났다. 그래서인지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첫 주 전 세계 흥행은 3억 달러를 넘겼고, 공룡 이야기는 또다시 새로운 시리즈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고질라>에서 보여준 괴수 연출의 감각을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공룡이 등장하는 타이밍, 위압적인 장면 연출, 공포와 박진감의 균형이 훌륭하다. 무엇보다 <쥬라기 공원 1, 2>의 각본을 썼던 데이비드 코엡이 이번에도 참여해, 시리즈의 감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스칼렛 요한슨은 조라라는 인물의 갈등과 감정을 절제되면서도 힘 있게 표현해냈다. 마허샬라 알리는 묵직한 존재감으로 균형을 잡아주고, 배우들의 연기가 이야기의 무게를 지탱해준다. 마지막 돌연변이 실험체 공룡의 등장은 다소 과한 설정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손색없는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잡았다.
공룡은 여전히 아이들과 가족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그저 공룡은 멋지다를 넘어서 우리는 자연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꽤 오래 여운을 남긴다. 비록 원작의 재미와 신선함을 넘어서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영화가 왜 필요한지, 어떤 식으로 관객을 찾아야하는지는 알고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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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인 캐스팅에도 아쉬움을 남긴 원더랜드 / 눈과 귀가 즐거운 / 로맨틱 드라마 / 탕웨이 박보검 연기는 굿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원더랜드"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 전 재미난 쿠키영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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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날씨의 아이> 4K UHD 예고편
비가 그치지 않던 어느 여름날,
가출 소년 ‘호다카’는 수상한 잡지사에 취직하게 되고
비밀스러운 소녀 ‘히나’를 우연히 만난다.
“지금부터 하늘이 맑아질 거야”
그녀의 기도에 거짓말 같이 빗줄기는 멈추고,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빛이 내려온다.
“신기해, 날씨 하나에 사람들의 감정이 이렇게나 움직이다니”
하지만, 맑음 뒤 흐림이 찾아오듯
두 사람은 엄청난 세계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데…
흐리기만 했던 세상이 빛나기 시작했고, 그 끝에는 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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