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당시 런닝맨에 나와 어리버리한 매력을 뽐냈던 이동휘. 그 기억에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 <어린 의뢰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제목이 '어린 의뢰인'이어서 이동휘가 변호사고 의뢰인이 어린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의뢰가 아동학대일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어린 의뢰인> 시놉시스
“제가 동생을 죽였어요”
당신에게 찾아온 뜨거운 질문! “당신은 이 아이를 외면하시겠습니까?”
인생 최대 목표는 오직 성공뿐인 변호사 정엽. 주변에 무관심한 그에게 다빈과 민준 남매가 자꾸 귀찮게 얽힌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대형 로펌 합격 소식을 듣게 된 ‘정엽’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살 소녀 다빈이 7살 남동생을 죽였다는 충격적인 자백 뒤늦게 미안함을 느낀 정엽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다빈의 엄마 지숙에게 숨겨진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어린 의뢰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무서웠던 어른들
영화 <어린 의뢰인>을 보면서 가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빈과 민준이의 주변에 있었던 어른들이었다. 남매가 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집 문을 열고 들어가 말리는 이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애를 심하게 잡네. 또 시작이네. 남의 집일에 신경쓰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말하며 그저 외면을 하고, 다빈이 동생을 죽였다 하여 경찰에 잡혀 갈 때도 어느 누구도 다빈이의 편에서 걱정해주는 이가 없었다. 다빈이는 이에 "어른들은 믿는거 아니야."라고 킹콩 인형에게 말을 하고, 재판에 가서도 어른들을 믿지 못해 입을 닫는 상황이 펼쳐지고 만다. 그저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참혹한 광경을 방관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그 주변 사람이었던 선뜻 나설 수 있을까 반성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방관자의 얼굴과 내 얼굴이 겹쳐지면서 남매에게 굉장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들의 시각을 엿보다
아동학대에 관련된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관객을 방관자적 시각으로 거나 가해자의 시각으로 두게된다. 관객은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욕설이나 폭력적인 장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시에 등장하기에 그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게끔 연출이 대부분 이뤄진다.
하지만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는 계모의 결정적인 증거로 인형 속의 카메라를 제시하면서 피해 동의 입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계모의 얼굴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단시간 내에 보여준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직접적인 연출 뿐 아니라 정엽과 함께 햄버거를 난생 처음먹는 남매의 모습을 통해서도 학대아동의 슬픈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 엄마는 어떤 느낌이에요?” 그저 순수하게 묻는 것 같지만 결국 계모로부터 엄마의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사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호기심이 넘치는 말투로 물어봐서 더욱 가슴이 저렸던 부분이었다.
내게 찾아온 어린 의뢰인은 없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고 계모의 행동에 화가 나고 무관심한 주변 어른들에 분노하다가 이른 결론은 혹시 나에게 찾아온 어린 의뢰인은 없었을까?였다. 내 주변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모르는 척 넘어간 일이 없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특히 마지막 크래딧이 올라갈 때 한 해 아동학대 피해 신고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고, 영화를 보고 있는 지금도 학대받는 아동이 있다는 문구를 읽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졌다. 더는 방간하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내 일이 아니라는 핑계로 무시하진 않았는지 살펴보게 되는 영화였다.
영화 <어린 의뢰인>은 학대 아동의 초점에서 영화를 풀어내 어른들의 반성을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광활한 두만강을 홀로 건너는 안중근, 그는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만국공법에 따라 동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풀어 주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그 일본군의 역습에 독립군은 궤멸되고 안중근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된다. 여기서 그의 깊은 고뇌는 시작된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길을 잃었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었으니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내 목숨은 죽은 동지들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안중근(현빈)/하얼빈
1년이 지난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독립군들은 하나둘씩 안가로 모여든다.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하는 독립군 동료들 앞에 안중근은 약지를 잘라 자신의 결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창섭(이동욱),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 최재형(유재명) 등의 독립군들은 ‘늙은 늑대’를 처단하기 위해 힘을 보탠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생각일 수가 없다. 굳은 신념으로 갖는 난관을 극복하고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는 이도 있지만,
밀정으로 배신하는 동료가 있기도 하고, 지지부진하기만 한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마적단 두목이 된 사람도 있다.
“김형, 독립이 되겠소?” 우덕순(박정민)
“일본의 역사로 남으면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요.”김상현(조우진)
그 이후 영화는 하얼빈에서의 거사를 완성하기까지 7일간 벌어지는 여정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밀정을 이용해 턱밑까지 추격해 오는 일본군과 이를 방어하기 위한 독립군의 치열한 수 싸움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그 과정에서 말을 타고 광활한 만주 벌판을 달리는 장면, 작은 창에 드리우는 빛에 의존하여 골방에 모여 거사를 논의하는 장면, 폭약을 실은 마차를 방패 삼아 일본군과 총격 다툼을 하는 장면, 하얼빈역을 향해 달리는 기차 안에서의 긴장감 흐르는 추격 장면 등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비장감과 영상미를 스크린에 꽉 채워 보여준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영화 <하얼빈> 스틸컷
드디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하얼빈의 거사에서 영화는 정점에 이른다. 그러나, 예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대사나 장치를 동원하지 않는다.
마지막 안중근의 독백을 폭발시키기 위해 극도로 감정 노출을 자제하는 듯하다. 그러기에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가슴에 꽂혀 날아든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내년에 다시 도전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어이 앞에 나가고,
뒤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 나가고,
미리 준비하고 뒷일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안중근(현빈)/하얼빈
그렇게 영화 <하얼빈>은 오늘의 '안중근'을 소환해내고 있다.
어떤 역사가는 1945년 우리나라의 독립은 미완이라고 말한다. 처단되지 않은 친일파가 그렇고, 분단된 조국의 현실이 그러하다.
그리고, 2025년 암울한 오늘의 현실이 더욱 그러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