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1-12-20 00:17:36
삶도 면허처럼, 드라이빙 스쿨.
이태경 배우님을 비롯한
여러 배우님들의 열연으로 더 빛났던
단편영화를 소개합니다.
삶도 면허도 뭔가 금방 해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그런 상황을 잘 표현한 영화인데요.
바로 드라이빙 스쿨 입니다.
적절한 거리와 너무 붙잡지 않아야 잘 나아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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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쥐려는 마음이 오히려 빠져나가게 만든걸까요
최선은 최선을 다하지만 모든 것을 쥘 수 없었습니다.
직업도, 연애도, 면허도.
마지막 기회로 이 모든 것을 다시 쥘 수 있을까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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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근도 양심도 꽉꽉 찼네
이 글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미천한 창작자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진출처:매일경제 TV
버젓이 방송에 나와 전세사기를 고백하는 것이 덤덤해진 시대가 와버렸다. 자신의 인생을 바쳐 모은 돈으로 계약을 했을 집이었기에. 피해자에게 주어질 보상금 정도로 그들의 다친 마음에 밴드 하나 못 붙여줄 것은 뻔하디 뻔하다. 잡혀야 할 사람들은 잡히지 않고. 피해자들은 이 모든 사태에 괴로워하며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생긴다. 그뿐인가. 인생으로는 모자라 영혼까지 끌어다 은행에 저당을 잡히고 들어왔을 집인데, 반드시 박혀 있어야만 했을 철근조차도 제대로 박혀있지 않단다. 어째서 피해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내 이야기는 아니고 뉴스에서 나오는 남의 이야기이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한숨을 몰래 내쉬어 보기도 한다.
영화는 정확히 이 시점에서 시작한다.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한국 사람이라면 폭발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온갖 미묘한 생각들과 서러움을 영리하게 이용하기까지 한다. 덕분에 영화 초반에 보여주는 아파트의 역사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동산의 가격이 폭주하는 것을 보여주는 불과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관객들은 자신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영화의 상황 속으로 순순히 빨려 들어간다.
덕분에 영화가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이 모든 아파트를 날려버리고, 덩그러니 황궁 아파트만을 중심에 남겼을 때도. 관객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이미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황궁아파트 속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근 뒤 이므로.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가 영리하다 못해 섬뜩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두 번째 지점은 바로 입주민회의다.
남은 주민들이 느끼고 있는 마음. 어떻게 보면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 못했을 뿐, 위기 상황이라면 그런 생각을 가진다 해서 욕할 수 없는 마음속 이야기들을 입주민 회의라는 형식으로 빌어 귀로 전달한다. 모든 아파트가 무너지고 달랑 자신들의 집만 남은 상황이지만. 이 무심하면서도 일상에 착 달라붙어 있는 상황 덕에. 여태껏 드림팰리스 주민들에게 받아왔던 차별들에서 오는 서러움을 얘기하는 장면들 조차 낯설지 않다.
자신들이 받았던 차별들을 오롯이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서도. 입주민이 아닌 다른 이방인들을 바퀴벌레라고까지 부르며 소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올라오지 않는다. 영화는 너무도 정확히 한국 사회가 집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까발리고 있고. 또한 쓸데없이 정의로운 인물을 대놓고 앞장 세워 교훈질을 하지 않는다. 그저 관객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경험들도 함께 끌어올려 저 말도 맞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렇게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바퀴벌레 소탕 작전을 시작한다. 본인들은 그것이 자정작용이라 믿었고 자신들은 이제 이곳에서 행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난리 법석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뚝 서 있는 황궁 아파트만큼. 자신들도 그렇게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아파트와 자신의 존망(Johnna 망함 아님)을 동일시한다.
사진출처:다음
아파트 주민들의 은은한 광기에 팔에 돋은 소름이 겨우 가라앉을 때가 되어서야. 그들이 간과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게 한다. 바로 모든 닫힌 시스템은 부패한다는 것.
이대로만 가면 남들이 죽건 말건 영원히 안전할 것만 같던 황궁 아파트는 고인 물이 되기를 자처하더니 그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씩. 천천히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파트 단지를 커다란 고름주머니로 만드는 것도, 그러면서도 가장 지키려 애쓰는 사람도. 바로 영탁(이병헌)이다. 그는 황궁 주민의 DNA가 전혀 없으며, 극우뇌를 가진 사람도 아닌 일명 "바퀴벌레"에 불과했지만. 주민들의 집을 향한 열망에 올라타, 실컷 가짜이면서도 진짜인 행세를 한다. 그것도 꽤나 훌륭하고 성공적으로.
어리바리했던 영탁이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로 변화하기까지 겪는 아주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를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정말 점진적으로. 하지만 이질감 하나 없이 절묘하게 이뤄낸다. 그 어떤 주민의 욕망보다도 강렬하면서 그 어떤 바퀴벌레보다도 맹렬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려 애쓰는 모든 모습을 보면서. 이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은 끝이 없겠구나. 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디스토피아적이지만 너무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들었던 영화 전체에 비해, 마지막 부분은 누가 보아도 희망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라고 말해준다는 점은 통상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뻔하게 헬기를 타고 온 구조대에 의한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나, 눈물파티를 하려는 시도조차 없다는 점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모든 껍데기들은 황궁아파트와 함께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한다.
황궁 아파트는 망했지만(?) 영화 자체는 마치 황궁 아파트와 같았다. 건축물로 치자면 아낌없이 들어갔어야 할 철근들이 제자리에 굳건하게 박혀있고. 모든 것이 설계도대로 맞아떨어져서 자아내는 탄성도 영화 중간중간 가감 없이 흘러나올 만큼 훌륭했다. 모조리 쓰러진다 해도, 저 멀리서도 보일 만큼 듬직하게 제자리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소한 이 영화만큼은, 철근도 양심도 꽉꽉 차 있는 셈이다.
[이 글의 TMI]
1.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아마도 시간이 된다면 한국영화 빅 4에 관한 이야기를 쓸 것 같다.
2. 다음 주부터 휴가 아아아악!!!!
3. 휴가비 받은 걸로 일단 책부터 사봅니다.
#콘크리트유토피아 #엄태화 #최신영화 #영화리뷰 #브런치작가 #이병헌 #박보영 #박서준 #김선영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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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란 | 해학으로써 얼기설기 묶은 임진왜란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 본래 양인으로 태어났으나 어머니가 노비였다는 이유로 노비가 된 천영은 마침내 양인이 될 기회를 잡는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무예 재능을 활용해 무술 실력이 좀처럼 향상되지 않는 종려를 훈련시키고, 그 대가로 면천을 요구하겠다는 것. 그렇게 천영과 종려는 매일 같이 몸을 부대끼고, 노비와 양반 사이에서는 우정이 꽃피운다.
하지만 시대는 그들의 우정을 허락지 않았다. 천영은 종려 대신 무과 시험에 합격하지만, 종려의 아버지는 약속대로 천영을 면천하는 대신 도리어 그를 창고에 가둔다. 그러나 한양에 왜군이 들이닥치자 종려의 노비들이 그의 일가족을 죽인 후 집에 불을 지르고, 천영은 그 틈에 탈출한다. '선조'(차승원)를 호종해 의주로 향하다가 뒤늦게 소식을 접한 종려는 천영이 사건을 주도했다고 오해하고, 복수심에 불타 그를 죽이겠다고 결심한다.
임진왜란의 재해석
한국 사극의 지향점은 크게 두 방향이 있다. 사료로부터 신선한 사건이나 인물을 찾아내는 게 하나다. 관심이 크지 않은 고구려 초기를 재구성해낸 <우씨왕후>가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기존에 잘 알려진 사건이나 인물을 재해석하는 방법이다. 한때 수많은 버전의 장희빈이 등장했던 것처럼. 근래에는 여말선초를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의 시점에서 제각기 관조하는 작품이 많았다.
임진왜란 시기를 다룬 <전,란>은 후자다. 사실 임진왜란을 다루는 방식은 정해져 있었다. 선조, 이순신, 류성룡, 광해군처럼 유명한 인물의 시점에서 전쟁을 조명하거나 잘 알려진 전투와 사건을 제각기 영상화하는 경우가 잦았다. <전,란>은 다르다. 임진왜란을 철저히 배경으로만 삼으면서 기존 접근법과는 다소 다른 길을 선택했다. 임진왜란 그 자체보다는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전,란>은 전쟁 전후로 변화한 사회상을 민속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추임새로써 공들여 표현한다. 이를 토대로 격랑을 헤쳐 나가야 했던 두 주인공의 감정선에 집중한다. 그 덕분에 <전,란>은 신선하게 일정 수준 이상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성공했다. 단지 짜임새가 '전쟁'과 '반란'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더 다듬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전쟁은 곧 기회
<전,란>은 오프닝에서부터 '정여립의 난'을 묘사며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다. 붕당의 갈등과 선조의 권력욕이 유발한 정쟁 정도로만 치부되던 사건이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력에 주목한다. 정여립은 '대동(大同)'이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왕통이 아니어도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란>의 오프닝은 그의 사상이 선조와 조선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줬는지를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그 이후의 전개 역시 대동의 기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임진왜란의 묘사가 대표적이다. <전,란>은 임진왜란을 조선과 일본의 전쟁보다 신분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낸다. 왜군이 한양 코앞까지 도달하자 종려의 가노들이 그의 부모와 처자식을 모두 죽이고 도망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백성들이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과 광화문, 육조거리가 불태우는 시퀀스가 전투 장면보다 큰 스케일로 공들여서 연출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전,란>은 사회적 혼란을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로 치환해 과연 대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천영은 면천되어서 본래 신분을 되찾으려 하고, 종려는 그런 천영에게 신분을 넘어서는 마음을 준다. 왜군의 침입은 이 우정을 어그러뜨리고, 두 친우는 갈라선 채로 자기가 믿는 가치와 신념을 위해 검을 든다.
두 주인공의 서사는 캐릭터가 강렬히 대조된 덕분에 특히 인상적이다. 플래시백 기법을 활용해 같은 사건도 서로 다른 시점에서 조명해 캐릭터성을 구축하는 게 대표적이다. 푸른 철릭을 입은 천영과 붉은 단령을 입은 종려를 대비시키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천영이 왜군을 벨 때, 종려는 임금을 호종하며 도리어 백성을 벤다. 이 장면은 시각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확실한 대비를 이루며 경복궁 화재만큼이나 뇌리에 각인된다.
보기 드물게 해학이 가득한 사극
물론 두 주인공을 대조하려다 보니 고증은 다소 실망스럽다. 임진왜란 초반 이후에는 관군 편제로 인계된 의병이 종전 때까지 남아 있고, 선조가 경복궁 재건에만 매달리는 묘사가 대표적이다. 특히 후자는 오히려 광해군의 모습과 흡사하다. 더 나아가 제아무리 사노비라 해도 어린아이를 회초리 쳐 죽이는 묘사 등은 조선 사회상을 악의적으로 왜곡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구조를 고려하면 <전,란>의 고증은 왜곡이라기보다는 의도된 과장처럼 보인다. <전,란>이 마치 한 편의 탈춤 같기 때문. 단순히 <전,란>의 시작과 끝은 봉산탈춤이 장식하거나, 중간중간 판소리의 소리가 삽입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란>은 두 악역의 행보를 탈춤 속 반동인물의 행적과 일치시키면서 탈춤에 녹아있는 해학의 정서를 살려내려고 노력한다.
왜군이 숨긴 보물을 찾아 경복궁을 재건하려 한 선조. 그는 항왜 '깃카와 겐신'(정성일)을 등용해 충신과 의병을 죽이면서까지 보물 궤짝을 찾는다. 하지만 간신히 찾아낸 보물함을 연 순간, 그의 주변에는 왜군이 잘라갔던 조선 백성의 코가 쏟아진다. 겐신의 행적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기를 저주한 무당을 비웃으며 죽이지만, 본인은 정확히 무당의 저주대로 최후를 맞이한다.
즉, <전,란>은 왕이 챙기지 않은 백성의 고통과 침략자의 만행을 그들에게 되돌려 주면서 웃음을 자아내고, 민심까지도 어루만진다. 이는 양반 등이 나사가 하나 빠진 비정상적인 인물로 등장하고, 그들의 어리석음과 무식함을 풍자하는 탈춤의 흐름과 정확히 부합한다. 더 나아가 비록 그 정도는 달라도 <전,란>이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이나 <평양성>처럼 해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에 잡아먹힌 '란'
그러나 <전,란>의 야심을 온전히 평가하기는 어렵다. '전(戰)', '쟁(爭)', '반(反)', '란(亂)'으로 나뉜 구조와 이야기가 미묘하게 불협화음을 낸 나머지 짜임새가 야망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과 '쟁'은 임진왜란이라는 사건을 통해 대동이라는 가치를 실감하게 만들고, 사회의 혼란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내 백성과 노비가 왜 한양과 집에 불을 지르냐는 반문에 담긴 양반과 기득권층의 안일함과 불합리성을 드러내는 단계다.
그렇다면 '반'과 '란'에서는 천영과 그의 동료들이 왕실과 양반, 그리고 종려에게 반기를 들게 되는 과정이 펼쳐져야 했다. '반'은 불만이 터지는 계기를 보여주고, '란'은 방점을 찍어야 했다. 문제는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 영화는 깃카와 겐신을 활용해 변주를 준다. 당연히 민란으로 이어지겠구나 싶은 순간마다 그가 등장해 갈등 구도를 늘린다. 예상과 다른 전개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하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이 선택은 도리어 역효과를 낸 듯 보인다. 깃카와 겐신, 천영, 종려 사이에 갈등선이 중첩되다 보니 정작 절정에 달한 천영과 종려의 갈등이 해소되는 후반부 전개의 응집력이 부족해진다. 자연히 스토리텔링이 전체적으로 허술해진다. 천영이 자기 가족을 몰살한 줄 알고 복수심에 가득 찬 종려에게 천영이 말 몇 마디로 해명하자 그대로 오해가 풀려 버리는 허무한 전개가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더 직관적인 쾌감을 추구하면 어땠을까 싶다. 깃카와 겐신은 천영과 의병의 활약상을 강조하는 도구로써 '쟁'이 일단락될 때 퇴장시키고, '반'부터는 천영과 종려와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다면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는 전개가 더 깔끔했을 테니까. 그만큼 '전', '쟁', '반'에서 착실히 쌓아 올린 복수심과 원한, 그리고 분노가 '란'에서 확실히 분출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함께 무너진 액션
구조와 이야기의 괴리는 액션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우선 규모가 애매하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정작 전쟁의 스케일이 느껴지는 시퀀스는 없다. 거리에서 펼쳐지는 소규모 난전을 제외하면 의병의 활약상도 볼 수 없다. 제목에 '전'이 적혀 있고, 의병들의 존재감이 적지 않은 이상 의병의 활약상을 강렬하게 보여줬다면 액션과 개연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검술 액션도 명암이 분명하다. 칼코등이로 칼몸을 받아내거나 칼등을 손바닥으로 미는 식의 구성은 색다르고 흥미롭다. 다만 천영이 왜군을 도륙할 때처럼 롱테이크로 촬영한 장면에서는 합을 맞추는 듯한 느낌이 들기에 박진감이 다소 부족하다. 이전 작품에서 강동원이 도포를 흩날리며 검을 휘두르는 액션이 익숙해진 만큼, 그 이상의 특별함은 없는 셈이다.
클라이맥스도 다르지 않다. 해변에서 세 주인공이 검술 액션을 펼친다는 콘셉트 자체가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을 연상시킨다. 셋이 각자 다른 이유로 서로를 적대한다는 관계성도 유사하다. 기시감을 없애려는 노력이 눈에는 띄지만,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해무를 활용해 시각적인 요소를 제한하는 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화면상으로 충분히 구현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종합하면 <전,란>은 야심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기존 사극과 다른 방향성으로 임진왜란이라는 사건을 재해석하려는 참신함이 돋보이기 때문. 특히 '한국적'이라는 표현을 의상, 배경, 세트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의 정서에도 녹여냈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밸런스를 잡지 못한 아쉬움도 크다. 물론 넷플릭스라서 이 정도 규모의 사극도 시도할 수 있었겠지만, 소재의 가능성과 엿보이는 잠재력에 비하면 평범한 OTT용 영화로 마무리된 것 같다는 안타까움이 적지 않다. 결국 천영의 반란처럼 <전,란>도 미완의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변주를 주려는 강박만 덜어냈다면 더 와닿았을 해학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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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렇게 산이 되었다
간만에 마이너한 영화를 보았다. 정말 러닝타임이 긴 영화였는데, 그만큼 여운도 긴 영화였다. 한 남자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을 넘어 중년을 향해 가는 나이까지를 그린 영화인 만큼 꽤나 대서사시인데, 영화는 고요한 분위기를 놓지 않는다. 마치 우리네의 인생의 대부분은 별일없이 흘러간다는 듯이. 별일 없이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고뇌의 끈을 놓지 않았던 주인공의 치열함은 결국 그에게 삶을 선사했다. 비로소 만족할 만한 사람도 얻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도 생기는 희노애락 말이다.
1. 어릴 적 친구에 대한 기억이란
나도 10대때의 기억을 점령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내 10대에 주된 기억에 그들이 남아있다. 내 생일 축하 파티에 놀러오던 그들, 가끔은 쓸데없는 기싸움을 하기도 하던 그들처럼 피에트로에게도 브루노는 유년 시절의 강렬한 기억이었다. 재미없는 도시가 아닌, 예상할 수 없는 일이 가득한 자연에서의 삶을 당연하게 여기던 브루노는 피에트로에게 신기하고도 대단한 아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과 산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피치 못하게 헤어졌을 때에도 꾸준히 서로에 대한 기억을 놓지 못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기억이 강렬했고, 서로를 좋아했고, 헤어짐이 아쉬웠기에 기억이 오래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2. 사람에게는 각자의 때가 있다.
피에트로는 브루노와의 갑작스런 이별 이후, 많이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석 엘리트 코스를 권하는 부모에게 반항을 하고, 내외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아버지의 죽고 나서야 집에 돌아온다. 그야말로 불효자가 따로없다. 그 이면에는 친우였던 브루노의 인생에 함부로 개입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는 불만도 있었을 것이고, 틀에 박힌 길을 가고 싶지 않은 그의 모습을 받아들여주지 않은 부모에게 본 때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이 브루노와 피에트로, 그 둘을 다시 연결시켜 주었는데, 둘은 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았던 산 속 집을 지으며 다시 새로운 우정을 쌓아나간다. 그 과정에서 브루노는 본래 자신의 터였던 시골, 자연과 함께하며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아낸다. 목장을 지어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들 생각을 했던 것이다. 참으로 그다운 생각이었다. 거침없이 자신의 뜻을 펼쳐내는 그를 보며 피에트로는 조바심에 사로잡힌다.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 친구에 대한 부러움 등이 그를 고뇌에 빠지게 하려던 찰나, 그는 브루노의 응원을 받고 다시 글을 쓴다. 그리고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찾아간 히말라야에서 사랑하는 여자도 만나고, 그의 인생에 화양연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참 인생은 간사하게도 피에트로에게 봄을 주면서도 브루노의 인생에는 겨울을 준다. 이번에는 브루노가 피에트로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간다. 그 교차점을 보면서 '인간은 다 자신의 때가 있구나'라고 느꼈다. 브루노의 화양 연화, 피에트로의 화양연화, 그 시기가 같을 수만은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보면서 괜히 씁쓸했고, 가슴이 아팠다.
3. 산에게 던진 각기 다른 질문
피에트로는 산에서 자아를 찾았다면 브루노는 산에서 살고 있지만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계 속 규칙에 맞춰 살려다 보니, 가랑이가 찢어져 버린 것이다. 둘 다 산에서 자신의 답을 찾았지만 산에게 묻는 질문이 달랐고, 그에 따른 답과 결과도 달랐던 것 같다. 피에트로는 산에서 아버지를 발견했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이해하며 자신의 한계를 뚫고 나갔다면, 브루노는 산이 만든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우물 안에서 허우적댄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도시 사람인 피에트로에게 산은 새로운 정답을 선사해 줄 수 있는 곳이지만 브루노에게 산은 고향이지만 자신이 뚫고 나가야 할 한계점이기도 했다. 브루노의 조상은 자연을 벗어나 본적이 없고, 도시 속 인간의 삶보다는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이 더 익숙한 사람들이었기에 브루노에겐 그것이 더욱 익숙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도 자급자족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기에 인간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브루노는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약간의 교육이 필요했고, 그 지점을 피에트로의 부모는 궤뚫고 있었지만 브루노의 아버지가 그 기회를 날린다. 그저 자연이 좋았던 어린 피에트로에게는 그런 부모의 행동이 브루노의 인생을 망친다고 생각했겠지만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엄연히 입장이 달랐던 점을 생각하면 그들의 부모는 오히려 현명한 판단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둘을 보면서 느낀 것은, 모든 사람이 같은 곳에 있어도 누군가는 오답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정답을 도출해 낸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오답을 발견한 사람은 영원한 실패자일까? 아니다. 그 사람의 답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피에트로의 답이 산에 있었던 것처럼 어쩌면 브루노의 답은 도시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4. 동네 산의 꼭대기를 정복해 산이 되어버린 브루노, 그를 기억하는 피에트로
피에트로는 브루노와 술을 마시면서 자신들의 아지트와도 같은, 그 오두막이 지어진 산을 정복한 자가 브루노고 자신은 그 산을 제외한 여덟개의 산을 정복한 사람이라면 둘 중 누가 더 우월할까를 대결한다. 이 대사가 이해될 듯 말 듯 했는데, 아무리 피에트로가 히말라야를 오르고, 명산에 올라도 그에게 있어 마음 속 에베레스트는 브루노와 놀고, 집을 함께 지었던 그 뒷산인 것이다. 그의 마음 속 에베레스트를 쥐고 흔드는 브루노는 다른 어떤 명산을 다녀온 그보다도 더 우월한 존재로 보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그는 다시는 그 뒷산을 올라가지 못하고, 다른 낯선 산들만을 해매고 다닐 것이다. 피에트로에게 그 뒷산은 곧 브루노이기에, 낯선 산들을 해매며 브루노를 향한 미안함, 슬픔을 게워낼 것 같다. 청년이었던 피에트로에게 아버지가 자아를 찾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면, 중년에 나이에 다가서는 피에트로에게 브루노가 그의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피에트로 마음 속의 에베레스트, 마음 속 중심이 되어 그의 남은 인생 산행의 별빛이 되어 길을 밝혀주고 길을 안내해 줄 것이다.
아, 이 영화는 산을 담아내는 카메라 무빙이 정말 장관이다. 보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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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뇌와 번민, 요괴로 재탄생하다
삶에서 고민이나 걱정거리는 항상 찾아온다. 평생을 살면서 이런 고민들이 없이 살아가는 시간은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그 무수한 고민들의 해답을 찾지 못해 우울하거나 절망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고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삶의 방향성을 찾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쉽지 않다. 불교에는 번뇌(煩惱)라는 말이 있다.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뜻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를 비롯해 발생하는 자신의 마음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 번뇌들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은 상태가 곧 열반의 경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모든 인간은 마음속에 찾아오는 다양한 번뇌를 각자의 방법으로 억누르거나 조절해가며 살아간다. 이것이 잘 조절되지 않거나 억눌러지지 않으면 그것은 번민(煩悶)이 된다. 마음이 답답해진다는 의미의 번민은 열반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속을 가득 채워 괴로움을 만든다. 어쩌면 과거의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번뇌를 해결하지 못해 번민이 가득해 더욱 우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엄청난 발전을 이룬 지금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마음의 갈등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번뇌와 번민에 대한 영화 <제8일의 밤>
영화 <제8일의 밤>은 번뇌와 번민에 대한 영화다. 불교의 개념을 가지고 와서 두 단어를 어떤 기이한 존재로 형상화했다. 붉은 눈과 검은 눈을 일종의 요괴의 눈으로 설정하고 과거 부처가 별도의 장소에 각각을 봉인하여 묻어버렸는데 현재에 그것의 봉인이 풀려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봉인이 풀린 붉은 눈은 검은 눈을 찾기 위해 사람을 징검다리 삼아 조금씩 검은 눈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면서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맨 첫 장면부터 산스크리트어로 설명되는 요괴의 봉인 과정은 꽤 흥미롭다. 마치 불교 삽화처럼 구성된 애니메이션이 현지어와 함께 설명되며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만든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묵언 수행 중인 스님으로 등장하는 청석(남다름)이다. 등장인물 중 가장 마음의 짐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며 순수해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큰 틀에서 보면 그가 요괴의 두 눈이 다시 만나는 것을 돕기도 하고 또 그 반대로 막기도 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꽤 중요한 인물이다. 그리고 과거 스님이었으나 지금은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인 진수(이성민)는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다.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번민하는 인물인데 그 과거는 청석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에서 진수가 가진 번민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지는 요괴와의 싸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 외에도 형사 호태(박해준)와 후배 형사 동진(김동영) 그리고 신비한 인물 애란(김유정)이 등장해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 애쓴다. 주요 등장인물 중 진수와 호태는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마음 한구 석에 큰 번민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둡고 심각하다. 요괴에게 희생당한 인물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쫓아가게 되는데, 진수는 그 이유와 막는 방법을 알고 요괴의 흔적을 따라가는 반면 호태는 이면에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모른 채 그 길을 따라가게 된다. 동진과 애란의 경우, 요괴와 연관성 있는 인물로 그들이 요괴가 지나가는 징검다리가 되는지 여부가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번민으로 가득 차 있는 인물 진수
관객의 입장에서는 사실 진수의 시선과 입장을 주로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는 태도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영화 초반 진수와 청석이 만났을 때는 거의 대화가 없다. 청석은 묵언 수행 중이며, 진수는 상대방과 별로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석이 자신이 생활하던 절에서 봉인된 검은 눈을 들고 내려온 후, 자신의 스승과 함께 생활했던 진수를 만나게 되는데 그 어느 순간에 청석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2년 넘게 하고 있던 묵언 수행이 중단된 이후 두 인물의 대화가 많아지고 교류가 시작된다. 그런 게 이렇게 대화가 많아진 이후 청석을 바라보는 진수의 눈빛은 더 큰 번민에 휩싸이는 듯 보인다.
결국 영화가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진수와 청석의 관계는 복잡해진다.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인물은 진수는 자신과 연관된 청석을 지켜야 하지만 그에 대한 분노가 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두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것을 영화는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영화에서는 어떤 영적인 속삭임을 통해서 전달되거나, 진수의 망설임과 표정으로 드러난다. 아마도 영화에서 가장 좋은 지점을 뽑으라면 진수와 청석의 애매한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들일 것이다.
영화가 가진 번뇌와 번민의 형상화는 꽤 독특하고 괜찮은 아이디어다. 그것을 실체화하고 살아 움직이게 하면서 불교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퇴마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영화 안에 퇴마사라고 불만한 인물은 없다. 진수가 그에 가장 가깝지만 완성된 요괴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요괴의 약점이 전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중간에 그에 대항하거나 싸우는 장면은 너무 일방적이어서 오히려 맥이 빠진다. 중간중간 요괴가 사람들을 옮겨 다니면서 요괴가 조종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기괴한 모습은 공포스럽지만 그 이외의 장면에서는 그런 긴장감이 연결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호태와 애란의 경우, 영화가 꽤 공들여 이야기 속에 등장시키긴 하지만 결국 그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영화는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는 추진력을 잃고 자꾸 뒷걸음친다. 이 두 인물은 아마도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반전을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고, 또 근본적으로 번뇌와 번민의 부득이한 희생자일 텐데 그들이 영화 말미에 하는 역할은 미미할 뿐이다. 결국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진수와 청석이며, 특히 진수가 가진 번뇌와 번민을 그가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느냐가 영화의 결말과 연결된다. 영화는 번뇌와 번민을 요괴로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그 요괴는 진수의 마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밀어붙이지만 아쉬움이 많은 영화
영화 <제8일의 밤>은 사실 1일부터 8일까지의 각 날짜가 중요하지는 않다. 대부분은 8일 밤에 벌어지기 때문에 그 전의 날들은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요괴가 이동하는 단계가 있지만 그것이 마지막 날짜를 제외하고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1일에서 7일까지 벌어지는 일들을 볼 때 이야기가 많이 늘어진다. 그래서 8일에 벌어지는 일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쉽지 않다. 8일 밤에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들에서는 꽤 긴장감 있는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요괴들을 상징하는 검은 연기나 그래픽들이 다소 어색해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이 영화의 감독인 김태형 감독은 <제8일의 밤>으로 각본과 연출 데뷔를 했다. 첫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주연 배우 이성민은 그가 가진 특유의 어두움과 과묵함으로 진수 역을 잘 소화하고 있다. 또한 창석 역을 맡은 매부 남다름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순수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어른 스님의 연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에서 단독으로 공개된 <제8일의 밤>은 극장보다는 집에서 불을 끄고 관람할 때 더욱 괴기스러움이 전달될 작은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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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일의 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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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레즈비언 축구팀의 이야기!
감독: 케테반 카파나데
출연: 조지아의 어느 도시의 레즈비언 축구팀
시놉시스
우리의 작고 친밀한 방이라는 이 영화는 레즈비언 축구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레즈비언들은 성소수자 혐오 단체에 맞서 싸우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자신들은 도덕주의자를 싫어하는 듯한데 아마도 유럽의 분위기가 진보적인 성향이 있다 보니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성적 취향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 듯하다.
이 레즈비언들은 축구팀을 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뽐낸다. 여자들로 이루어진 축구팀이라도 남자 축구팀보다 실력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이들은 자신이 성적 소수자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가끔씩 성적 취향에 대해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후반에 갈수록 점점 동성애에 대한 논쟁을 격렬하게 하며 성적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것에 무뎌진다.
어떤 한 축구팀 멤버는 자신이 여성이지만 보이쉬한 헤어스타일과 남자처럼 옷을 입으며 다닌다. 자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지만 그러한 모습을 추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레즈비언들이 서로를 안거나 키스하는 것을 보여준다. 담배도 거리낌 없이 피면서 술도 마시고 파티를 한다. 아마도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동성애자들을 다루지만 자신이 어느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싶다는 메세지를 주는 것 같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08/25(목) - 09/01(목)
2022-08-27 20:30 - 21: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2022-08-29 19:30 - 20: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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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런치패드(Disney’s Launchpad), 디즈니 플러스에 개봉하는 6편의 신작 단편 영화 예고편 선보여
디즈니의 새로운 영화 제작 프로그램인 디즈니 런치패드가 디즈니 플러스로 개봉하는 6편의 단편 영화 예고편을 공개했다. 각각 ‘발견(discover)’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6편의 단편 영화 모두 5월 28일 디즈니 플러스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이번에는 앤 마리 페이스(Ann Marie Pace), 아스카 알타프(Aqsa Altaf), 하오 정(Hao Zheng), 제시카 멘데즈 시케이로스(Jessica Mendez Siqueiros), 모시 펭(Moxie Peng) 그리고 스테파니 아벨 호로위츠(Stefanie Abel Horowitz) 총 6명의 감독이 연출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런치패드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디즈니의 다양성과 포용력을 책임지는 마힌 이브라힘(Mahin Ibrahim)은 “무슬림 방글라데시 여성으로서, 지역 사회가 신흥 영화 제작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우리의 목표는 영화 제작자들의 깊이 있는 개인적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것이며, 디즈니만이 가지고 있는 규모에 도달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디즈니는 두 번째 시즌을 위해 ‘연결(connection)’을 주제로 한 런치패드 프로그램을 지속할 계획이다. 5월 10부터 접수를 시작할 예정이다. 하단에는 시즌 1 단편 영화에 대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American Eid>
감독: 아스카 알타프(Aqsa Altaf)
개요: 향수병에 걸린 파키스탄 이민자인 아메나(Ameena)는 이드(Eid)가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잠에서 깨어난다.
<Dinner Is Served>
감독: 하오 정(Hao Zheng)
개요: 미국 명문 기숙학교의 한 중국인 학생은, 어떤 국제 학생도 지원하지 않는 리더 역할에 도전하게 된다.
<Growing Fangs>
감독: 앤 마리 페이스(Ann Marie Pace)
개요: 멕시코계 미국인의 반은 인간이고 반은 흡혈귀인 발 가르시아(Val Garcia)는 양쪽 세계에서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The Last of the Chupacabras>
감독: 제시카 멘데즈 시케이로스(Jessica Mendez Siqueiros)
개요: 한 외로운 멕시코계 미국인 여성은 자신도 모르게 어둡고 오래된 생명체를 소환하게 된다.
<Let’s Be Tigers>
감독: 스테파니 아벨 호로위츠(Stefanie Abel Horowitz)
개요: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한 아발론(Avalon)은, 4살 아이를 돌보는 하룻밤 동안 편안함과 위안을 얻게 된다.
<The Little Prince(ss)>
감독: 모시 펭(Moxie Peng)
개요: 중국 아이들인 가브리엘(Gabriel)과 롭(Rob)이 친구가 되었을 때, 롭의 아버지는 가브리엘의 여성적인 행동에 의문을 품게 된다.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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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이들의 뒤집기 한.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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