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1-12-20 00:15:04
홀리모터스
살아낸 그 삶 마저 연기였을까?
내 삶은 어디에..
실제의 삶과 연기하는 삶 사이의 간극은 그 안에서도 소모되는 오스카만이 남겨져있었다.
“20분안에 지난 20년을 다 돌아봐야해”
극장에서 자는 관객들, 리무진의 대화를 통한 시대변화
그럼에도 잊지 않겠다는 중간중간의 영화장면들이 인상적이게 다가온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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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마 다음 생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다들 연애들 많이 하고 산다. 시샘 반 부러움 반의 목소리 톤으로 혼잣말을 한다. 누구는 결혼을 해 애까지 낳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제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것 같기도 하다. 몇몇은 나이 차이가 꽤나 나는데도 연애를 한다. 나는 컴활 어려워서 졸업이 빡센데도 어느새 다른 사람들은 제2,3막의 삶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냥 나 할 일 하는 것도 바빴는데 다들 연애는 언제 했대? 인스타그램 속 피드 안을 들여다보면 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웃픈 거리감이 든다.
근데 사실 이것도 내가 야기한 것이라 할 말이 없긴 하다. 나의 인간관계는 거의 위기탈출 넘버원과도 비슷하다. '결별 플래그'라고 하면 이상하려나? 아무튼 이런저런 사람과 다방면으로 틀어져봤기 때문에 요즘도 이불을 발로 뻥뻥 걷어차곤 한다. 허튼 마음을 품지 않았는데도 상대방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만한 행동을 해서 언팔로우당한 적도 있고. 내가 가진 마음이 돌이켜보면 짝사랑이었던 적도 있었으며 그 사람도 나를 어쩌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이 있기도 했다. 뭐 그거 아니어도 은근히 폐쇄적인 나라 친구도 새로 사귈 기회가 없는 건 맞지만 거의 대부분의 나는 '와 나 진짜 미친놈이었구나' 싶기도 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누구와 새로운 인연을 싹 튀워서 행복하게 사는 청사진을 그리기엔 난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아이. 지금 카페에서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앞자리는 솔로인데 옆자리는 커플이다. 저 혼자서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는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펀치 트렁크 러브>처럼 사랑의 힘을 받고 성장하는 미래가 머릿속에 있을까? 여자 없이 잘 살고 있는 나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삶에서 그런 요소들이 있으면 더 풍요롭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 아쉬움을 채워주는 대리만족이 영화인 거지 뭐. 알고 보면 사랑 영화 잘 만드는 폴 토마스 앤더슨이 이런 솔로들을 위한 신작을 갖고 온 듯하다. 정식 개봉일은 2월 16일인데 나는 개봉날 전에 미리 볼 수 있었다. 1970년대, 10대와 20대 청춘들이 돌고 돌아 마주한 사랑 이야기를 극장에서 보도록 하자.
1. 어떤 것에 대한 영화인가요?
15살 남자 주인공 개리. 아마 한국 나이로 치면 중학교 2학년쯤 됐을 것이다. 학교 졸업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잘 나와야 한다. 그렇게 사진사가 학교에 왔고 그 조수인 여직원도 촬영장에 도착했다. 개리는 그 사진사의 조수 여직원을 보고 반하게 된다. 그 조수의 이름은 알리나다. 알리나는 25살이라고 한다. 15살 개리는 무작정 알리나에게 대시하기 시작한다. 저랑 데이트 어때요?부터 시작해 얘가 대체 무얼 알고 하는 말일까? 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무려 10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받는 관심에 '너 데이트할 돈은 있니?'라고 응수하는 알리나. 그렇게 개리를 애 취급하는 알리나지만 왜인지 데이트 신청은 받아들였다. 한 식당에서의 대화에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개리는 지금 아역배우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또 집안도 잘 산다고 한다. 그뿐인가? 자기 이름으로 된 사업체도 있는 CEO다. 심지어 배우 일이 자기 천직이라고까지 말한다. 보기 드물게 자기 확신과 자존감이 높은 10대인 셈이다. 다음 알리나는 그 반대다. 25살이 됐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고 꿈도 없다. 집안이 잘 사는 건 아니다. 그냥 평범한 집에서 나고 자란 알리나다. 둘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계급차에 알리나는 '나는 몇 년이 지나도 애들 사진이나 찍어주고 있겠지'라며 자조한다. 첫 만남은 나이 차이라는 격차 때문에 애 취급을 했던 알리나지만 정작 데이트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해보니 입장이 역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엇갈린 처지 때문에 개리는 알리나를 직원으로 고용하게 된다. 영화는 이 둘의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언제는 물 침대를 팔고, 또 언제는 핀볼 사업장도 하며 어떤 정치인의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자기의 마음을 알기도 하고, 질투가 느껴지게끔 다른 애인이 생기기도 하며 싸우고 화해하는 일이 반복된다. 영화는 이 것을 소재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코미디와 달달함(?)이 일품이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 잘 만드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한 땀 한 땀 장인정신 플롯 구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어떤 식의 장인정신이냐면. 영화 안에서 '오인'이라는 키워드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냥 철없고 발랑 까진 15살 소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금수저였고. 나랑 맞는 줄 알았던 남자가 알고 보니 큰 결함이 있었고. 내 마음을 확실하게 정의하지 못해 방황하고. 이렇게 오인하고 오해하며 두 주인공은 서로를 사랑하는 과정 속에 놓인다. 근데 이게 사랑의 속성과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나는 극본이 이 영화의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속성이라. 한 200개쯤 되겠지만 그중에서 몇 개만 뽑아보자면 역시 짝사랑이 대표적일 것이다. 짝사랑이라고 하면 한 사람이 누군가를 혼자서 좋아하는 것을 뜻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랑은 이것이 선행되어야 이뤄진다. 이 짝사랑이 극에서도 나타난다. 남자 주인공 개리가 알리나를 짝사랑하기 시작하고 나서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닌다. 자기 동생한테도 말하고 다니는 둥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다. 그런데 이후로 바로 개리가 어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갈 뻔한 장면이 나온다. 사랑에 빠지고 난 다음, 오인으로 인해 감옥에 가는 것이다. 중간에 물침대라는 키워드가 숨어있긴 하지만 이 둘의 논리관계만 봐도 어느 정도는 사랑에 대한 키워드로도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짝사랑은 감옥에 빠지는 것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못 나와 사람을 영원히 가둬놓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유는 개리가 혐의가 없는 쪽으로 결론이 난 다음 알리나에게 가는 것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인식해서 용의자가 아닌 것을 알게 됨 - 바로 또 다른 감옥/사랑인 알리나에게로 향함'이라는 것은 왠지 감독 PTA가 두 사건을 동일시해서 배치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전적으로 나의 해석에 달려있긴 하지만, 영화는 이런 식으로 사랑에 대한 은유를 다양한 장면과 장소에 배치해놨다. 그 메타포는 결국 마지막 엔딩신에서의 알리나의 선택이 어떤 것을 근거하고 있는지와도 이어진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사랑의 속성을 비즈니스와 대인관계에서 탐구한 영화.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감독의 전작 <팬텀 스레드>는 조용한데 강했다. 마지막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압박하는 듯한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또 <마스터>의 경우에서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만 극에 나온다. 와킨 피닉스와 필세호의 퍼포먼스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둘은 뭔가 극이 무겁다. 그런데, 이 세 작품을 연출한 사람이 같은 감독이라고 하는 점은 놀랍다. 이 영화는 앞 두 작품과는 다른 통통 튀는 소소한 유머와 달달한 로맨스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장점은 2에서 언급한 사랑에 대한 은유다. 이게 쉽게 생각하면 '과연 사랑이 어떤 것일까' 결론 내리는 게 어렵지 않다. 근데 극을 두 번 세 번 생각하다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지점이 있다.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여러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구석이 많은 것이다. 세번째 장점은 색감이다. 내가 예전 영화를 자주 보던건 아니라서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색감이 70년대 영화를 본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코디의 느낌과 뒤 세트장의 조화도 좋았다. 또 빨강-초록이라는 색을 통해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은유한 듯 한데, 이런 연출도 효과적이었다. 네 번째 장점은 5에서도 언급할 것 같으니 5번으로 넘어간다!
4.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크게 어렵지는 않을 듯. 아. 난 영화 보다가 살짝 딴생각을 해서 잠깐 끊어진 부분이 있었다. 극에서 한국의 산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여러분은 집중해서 보길 바란다;; 난 왜 갑자기 저게 튀어나오지? 싶었다.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완전 초짜 배우들이다. 여자 주인공 알리나 하임은 그냥 본업이 가수다. 당연히 노래와 연기는 다른 분야다. 그런데 왠지 배리 키오건을 연상케 하는 '얼굴이 시네마'를 잘 구현해냈다. 그렇게 예쁜 편도 아니고. 성격이 엄청나게 착한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평범한 20대 중반 청춘의 사랑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결론 낸다는 것은 배우의 본인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 다른 주인공 개리 역을 맡은 쿠퍼 호프만 역시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동글동글한 비주얼로 무작정 들이대지만 자존감은 높은 10대 청소년을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앞에서 쓴 바와 같이 전적으로 평범한 두 남녀에 대한 이야기다. 근데 이 둘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배우들이 호연도 이유가 되겠지만 감독 PTA의 디렉팅도 탁월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외에도 브래들리 쿠퍼의 코미디 연기는 반짝반짝 빛났으며 숀 펜의 액션 연기도 훌륭했다. 베니 샤프디와 마야 루돌프도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물 같은 느낌이 있다.
6.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무조건 알아야 하는 것들은 아니다. 사실 모른다고 해서 크게 이해에 무리가 있지는 않다. 첫 번째는 주인공 개리 역의 쿠퍼 호프만이 PTA의 페르소나 필립 셰어 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또 제목 <리코리쉬 피자>의 의미가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작품에서 나왔던 가게 이름이라는 점이나 인물들이 죄다 실존인물이었다는 것도 알고 가면 좋긴 할 듯. 근데 뭐 앞에서 쓴 바와 마찬가지로 꼭 무조건 알아야 이해가 쉬운 것은 아니다.
7.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이게 상영관이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킹메이커>를 보고 <나이트메어 엘리>를 대기하고 있으며 <더 배트맨>을 기대하기 이전에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들이라면 추천하고 싶다. 깔끔하게 볼 수 있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다. 킬링타임 용으로도 제격이라는 뜻이다. 또 나와 같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연애세포가 깡그리 죽은 사람들은 이것이라도 봐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우리 이거라도 보면서 분발해야 한다;; 아무튼 관객 분들은 어디에도 없는 사랑이야기에 흐뭇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사랑을 위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분들도 좋은 영화가 될 것 같다.
우리 근데 언제 연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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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선이 아닌 연대
<나의 올드 오크>(2023)는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4), <미안해요, 리키>(2019)에 이은 영국 북동부 배경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기존 무대였던 뉴캐슬에서 더럼의 어느 폐광촌이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지역으로 옮겨간 영화는 마을의 유일한 펍 '올드 오크'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과 난민 이주자들 간의 갈등을 다룬다. 켄 로치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잠정적 은퇴를 선언한 만큼 빠른 판단일 수도 있겠으나 이 영화는 켄 로치 감독의 마지막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영화에서는 전작들보다도 직접적이고 직선적인 화법이 두드러지며 그와 대조되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주는 대비가 인상적이다.
소란스러운 다툼 소리를 배경으로 흑백 사진이 연속되는 오프닝부터 영화에서 카메라의 존재감이 종종 눈에 띈다. 시리아 난민들이 버스를 타고 와 마을에 내리고 마을 주민들은 이를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본다. 그러던 중 마을 주민 중 한 사람이 자신들을 찍던 야라를 발견하고, 그녀의 가방에서 카메라를 몰래 꺼내 마음대로 사진을 찍다가 떨어뜨리면서 카메라는 망가트리고야 만다. 꽤나 강렬한 이 오프닝 씬은 카메라의 기능에 대해 상기시키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목격과 기록의 카메라. 피사체는 촬영자의 시선에서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담긴다. 오프닝에서 연속된 사진과 다투는 소리를 통해 우리는 야라의 눈에 비치던 당시 상황을 상상하며 야라의 시선에 좀 더 기울어 영화를 보게 된다.
마을의 유일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는 마을 사람 중에서도 난민들에게 비교적 호의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펍에 손님으로 와 그들에 대해 적대적으로 말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나서지는 않는다. 단지 작은 단체 안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생필품과 같은 것을 챙겨주고 관심 가질 뿐이다. 선한 소시민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어쩌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일부를 제외하곤 그들 대부분은 난민들을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보며 적대시하지만 특별히 그들을 괴롭히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괴롭히는 이들을 막거나 크게 나무라지도 않는다.
그랬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난민들을 경계하게 되는 것은 자신들의 공적 대화의 공간이자 쉼터였던 올드 오크가 난민들에게도 열리게 되면서부터다. 이전까지는 TJ를 비롯해 난민들을 챙겨주는 이들이 탐탁지 않던 이들이었으나 그에게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TJ가 자신들에게는 빌려주지 않던 펍의 내부 공간을 난민들과 함께하는 행사의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이에 반기를 들고, '올드 오크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것이 마을의 뜨거운 화두가 된다. 노동자의 입장에 대해 주로 찍던 사회주의 감독이 난민과의 갈등 속에서 또 다른 약자를 차별하는 노동자의 양상을 그려낸 것은 다소 이례적인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난민 집단 간의 이분법 갈등 구조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켄 로치 감독은 비록 차별하고 적대하는 이들일지라도 결국 잘못된 선택에까지 이르게 되는 이들의 모습을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정부의 난민 수용지는 왜 하필 우리 마을이어야 하며, 우리도 살기 힘든데 당장 나와 관련도 없는 난민을 왜 도와야 하는지 불평하는 이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난민 수용에 대해 찬반의 입장이 갈려 토론하는 모습까지 지켜본 뒤에는 결국 이들의 입장과 사정까지도 이해하도록 만든다. 보통의 사람이 문제에 부딪힐 때, 그 구조를 따라가며 전체를 파악하기란 힘들기 때문에, 내 삶조차 여유가 없어 타인에게 눈 돌리기란 어렵기 때문에 구조의 모순을 바라보기보다 당장 눈앞의 걸림돌을 비난하는 게 쉽다.
이런 모순은 TJ의 개 마라와 관련된 일화와도 상통한다. 마을 사람 중 누구도, 심지어 TJ까지도 그런 결말이 벌어질 걸 과연 한순간도 예상하지 못했을까. 흥분했을 때는 주인조차 통제 불가능한 대형견을 불완전한 목줄 하나 채워 돌아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상황. 이를 보며 주의를 주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더 안전한 방식으로 개를 기르는 것이 견주의 의무는 아니다. 국가의 권력과 체제 아래에서 국민은 상대적 약자로서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상승하는 물가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최저임금, 고용난 등의 최악의 환경에서 약자들은 그들 간 우위를 겨루며 자신보다 취약한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며 분풀이를 한다. 물론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반복될 때는, 어느새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방치하다시피 한 그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차별과 혐오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화해의 방법은 '연대'다. 해결책이 당장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연대와 공감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선한 인간성이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용기를 가지고 함께 연대하며 저항하기.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쉽게 행하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감독의 전작들도 사회상을 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편이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사회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다가오면서도 소위 말하는 치트키 장면은 적은 감이 있다. 당장 앞선 두 영화의 가슴을 울리던 장면들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누군가는 이 영화를 충분히 밋밋하게 느낄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제시하는 해결책이 누군가에게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처럼 다가올지도 모른다. 모두가 당연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회 영화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를 지킨 켄 로치 감독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영화는 그가 마지막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진심을, 여전히 남아있는 연대의 가능성을 다시금 되돌아볼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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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를 털고 능숙하게 벼려 밝힌 영화라는 여명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2021 | 스티븐 스필버그 | 156분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허드슨강과 리버사이드파크, 서쪽으로는 센트럴파크를 옆에 낀 뉴욕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Upper West Side에는 미국 역사의 곡절이 담겨있다.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19세기 후반 산업화 시기 노동 계급의 거처, 20세기 전쟁의 풍파로부터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혹은 생활고를 피해 희망을 찾고자 정착한 이민자의 터전으로 발전한 이곳은, 도시 재개발로 자본과 사람이 유입해 문화와 예술이 발흥하는 뉴욕을 대표하는 부촌이 되었다. 지금의 멀끔하고 반듯한 건물과 거리, 햇볕을 쬐고자 바깥에 나온 느긋한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기 전, 그러니까 약 60여 년 전 도시 재개발로 링컨 센터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막 뜬 그때 삶을 일궈 온 사람들은 떠나야 할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백인 하층 노동 계급 지역 할렘 Harlem과 중남미 이민자의 거리 산 후안 힐 San Juan Hill을 배경으로 생존과 반목을 넘은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았다.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뮤지컬을 영화화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61년 동명의 작품은 뮤지컬 영화의 고전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이 영화를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에 영화 애호가들은 기대와 (주로는) 우려가 엇갈렸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 만들어 낼 첫 뮤지컬 장르라는 관심과 함께, 우리는 이미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 오래된 이야기를 지금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시 선보일 것인가에 관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감독에게는 잘 돼야 본전, 망치면 원작을 경험한 관객의 실망만 커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컸으리라. 그렇지만 노련한 거장은 결국 고전의 향수와 창작자의 정체성, 그리고 현재의 시선에서 영화 매체에 마침맞은 재구성을 이루어냈다.
셰익스피어의 오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파벌 간의 갈등 속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주제인 이 뮤지컬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과 제롬 로빈스(제리 라비노비츠)의 안무가 결합해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다만 1960년대 당시의 기술력이나 연출을 고려하더라도, 원작의 배우와 무대, 소품이라는 세트피스가 완벽하게 합일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유명한 오프닝 씬이나 체육관의 댄스파티 속 뮤지컬 넘버와 안무의 조화는 지금 보아도 훌륭한 장면이지만, 비교적 정적인 카메라 시선과 배우들의 대사 처리 등 뮤지컬 실황에 영화적 기법을 첨가한, 60년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과도기적 흐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과 영화의 차이가 시각 매체로써 특히 공간의 무한한 변화 가능성 유무에 있다고 한다면 2021년 영화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라는 한 지구地區를 통째로 배경 삼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America〉는 도시 전체를 무대 삼아 거리를 누비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포인트인 〈Gee, Officer Krupke〉에서는 경찰서의 소품들로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거기에 〈Cool〉에서의 부서진 폐건물을 중심으로 ‘토니’(안셀 엘고트)와 ‘리프’(마이크 파이스트), 제트파 사이의 갈등과 신경전, 체육관에서의 댄스파티 등 뮤지컬 넘버를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일조한 카메라 워킹도 빼놓을 수 없다.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는 발레와 라틴댄스 기반의 춤의 역동성을 부각한다. 공들인 정교한 합과 역동적인 집단 군무가 스크린 앞 관객에게 화려하고 멋진 장면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된 이유다. 관객은 현실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을 날 선 갈등과 비극을 춤과 노래를 통해 어느 정도 희석된 버전의 모습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영화는 음악만큼이나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극적 상황을 조성하는 장치로 적절하게 사용한다. 체육관 뒤편에서 토니와 마리아(레이철 지글러)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 건너편 틈 사이로 빛이 스며오는 장면이나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장면이 사랑에 빠진 몽롱한 분위기를 더 살렸다고 생각하지만) 제트파와 샤크파의 패싸움이 벌어지는 소금창고 양편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움직이며 겹치면서 발생하는 명암의 대비로 두 파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을 연출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원작이 주차장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을 조명 삼아 펼쳐지는 발레 대결이라면 리메이크된 작품에서는 훨씬 실감 나는 대전이 벌어진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오래된 성당에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동안 모자이크 사이로 비치는 아름다운 빛이나, 밤과 낮이 교차하며 달라지는 빛의 분위기도 눈여겨보게 된다. 연출을 위한 소품의 적절한 사용도 눈에 띈다. 앞서 제트파가 경찰서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퀀스에서 주변 소품을 활용한 앙상블은 재기 발랄하며 맹랑한 캐릭터에 잘 들어맞는다. 토니가 싸움을 말리러 갔지만 결국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를 죽인 후 마리아의 방 창문으로 들어와 바람에 날리는 커튼 사이의 장막을 사이에 둔 만남이나, 사랑을 위해 토니를 감싸주는 마리아에게 분노하는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와의 듀엣에서 집에 걸어 둔 천으로 흔들리는 마리아의 감정을 표현하는 등의 장면들은 원작과 비교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메이크작을 관람하기 전 관객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뮤지컬을 어떤 방식의 영화로 만들 것인가.이고, 두 번째는 이 오래된 서사를 21세기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다. 링컨 센터 공사를 위해 곳곳이 헐린 50년대의 맨해튼에서는 불안한 젊은이들의 방황과 분노가 담겨있다. 오히려 원작의 멀끔한 세트보다 이 불안한 10대들의 감정이 잘 드러나도록 설계한 2021년의 영화는 기존의 원작을 유지하면서도 작금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며 원작에 담긴 불쾌한 지점, 혹은 지나쳤던 지점을 부각하고 교정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한다. 시나리오와 노래에는 십 대 청소년의 일탈과 사회 갈등, 이민자 사회의 대립과 빈곤, 재개발 문제가 담겨있다. 그러나 당대 인식의 기반에 깔린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 등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갈등의 중심부에 두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 원형을 일부 유지한 채 스코어의 가사들을 윤색함과 동시에 넘버를 일부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효과를 준다. 감독은 원작에서 지나쳤던 미국 사회(이지만 사실 모든 사회에 통용될)에 고착된 차별과 갈등을 이야기의 모티프나 브릿지로 만들어 시의성을 높인다. 원작에서는 ‘우리의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 집단을 별종 혹은 외부 집단으로 설정해 그들의 유입으로 두 파벌의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현재의 갈등이 발생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경찰을 비롯한 어른들조차 백인 소년들의 편에 서서 이민자들을 향해 차별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리메이크작에서는 맨해튼이라는 지역의 역사의 흐름에서 자본에 밀려 탈락한 백인 하층 노동자 집단과 중남미 이민자 집단이라는 두 비주류 집단 간의 반목과 대립을 명시한다. 경찰로 상징되는 기존의 기득권 엘리트 집단의 눈에는 두 파벌 모두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골칫거리인 것이다. 여전히 미국 정치 지형에 대입할 수 있는 상황을 명확히 설정했음은 스페인어에 따로 자막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영어가 제1 언어인 미국이나. 두 언어에 익숙지 않아 그들의 자막 설정을 따라가야 하는 한국의 관객 관점에서 불친절할 수 있겠으나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그만큼 확고히 보여주는 설정도 없다. 이는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주류 사회 분위기에 편입하려는 당시 이민자들의 노력을 보여주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들의 언어가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표식과도 같다.
주인공인 토니와 마리아를 중심에 두면 영화는 대립적인 집단 간 젊은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하지만, 청소년들의 일탈을 대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들을 외곽으로 내모는 사회에 눈을 돌린다면 또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상 복지서비스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젊은이들을 어떻게 죽음으로 내모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본다면 이들의 파국에 사회와 기성세대의 책임은 없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여기서 두 파벌의 중립지대인 가게(약국)의 주인인 ‘독’을 대신해 원작에는 없던 인물인 ‘발렌티나’(리타 모레노)를 추가한 점은 익숙하며 낡아 버린 서사에 새로운 결을 터 주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 발렌티나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몇 안 되는 어른 캐릭터이자 아직 어린 청년들의 치기와 감정의 골을 봉합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설정상 독과 사별한 부인이며 유대인이자 코카시안과 결혼한 푸에르토리코인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그에게 복합적인 감정선과 서사를 부여한다. 인종과 문화 등 다층적인 차별과 분노가 폭발하는 공간에서 발렌티나는 인종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위치하기 어려운 인물을 연기한다. 배신자 소리를 듣기까지 하는 아픔에도 이 이야기 속 유일한 ‘어른’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지점은 발렌티나가 1961년 원작에서 아니타 역할을 맡았던 리타 모레노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원작 속 아니타의 넘버였던 〈Somewhere〉를 사실상 원곡자인 발렌티나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이 넘버는 61년 작품의 아니타의 감정과는 다른, 한 노인이 끝내 안온한 삶을 바랐으나 여전히 이루지 못한 현실을 향한 회한의 노래이자, 분열로 극한 대립을 벌이는 현대 사회를 향한 기약을 알 수 없는, 하지만 이뤄야 하는 목표의식으로 변한다. 또한 여기서 그는 하나의 배역을 넘어 원작과의 가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영화의 테두리를 넘어 확장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니타는 제트파에게 마리아의 전언을 일러주려 발렌티나의 약국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한다. 원작은 이 상황을 극화된 리듬과 안무를 부여해 단지 서사의 변곡점 역할로 넘어갔지만, 정황상 아니타가 강간을 당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독은 상황을 종결시키며 충동적인 청년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넘어간다. 폭력의 피해자인 아니타에게 누구도 사과와 위로는 없었다. 그리고 60년이 지나. 과거의 악몽이 그때의 아니타이자, 지금 발렌티나의 눈앞에 재현된다. 영화는 과거 리드미컬한 연출로 재현된 끔찍한 장면을 다시 보여주면서도 상황의 극화 없이 정확히 직시하는 연출로 기이하며 끔찍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에게 지금의 상황이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또한 원작과 달리 제트파와 함께 있던 백인 여성들이 성폭력의 현장에서 함께 아니타를 보호하기 위해 항의하고, 남성들에 의해 쫓겨나는 장면은 이 사건이 단순한 인종 혐오가 아닌 더 큰 차별적 관념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황을 발견한 발렌티나는 제트파를 제재하고 아니타를 내보낸 뒤 범죄를 저지른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노려보며 “너희들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장면은 결국 60년 전 어린 아니타가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때의 사건과 가해자들을 기억하며, 자신은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은 채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사실을 일갈하는 장면이다. 그는 60년 전 그 날에 갇힌 피해자에서, 이제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젊은 남성들을 단호히 ‘강간범’이라고 호명하며 여성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를 대변하는 어른으로서 말이다.
그밖에도 영화는 원작의 애니바디(아이리스 메나스)를 피상적인 톰보이 캐릭터에서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로 설정해 제노포비아와 함께 성소수자 혐오로부터 집단 내에서 인정받는 서사를 부여한다. 처음에는 배제된 소수자에서 결국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애니바디는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제트파가 마련한 권총이 치노(조쉬 안드레스 리베라)로 이어져 발생하는 결말에 비중을 두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논쟁인 총기 규제 문제를 다루는 모습도 보인다. 허가받지 않은 자의 미숙한 총기 사용으로 노출되는 범죄의 양상은 작품 중후반에 꽤 자세히 다뤄진다.
관객은 공연과 영화의 차이를 알고,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이 만드는 뮤지컬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거기에 감독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소수자성과 대립에 주목하며 기존의 작품 속에 감춰있던 이야기를 발굴했다. 사랑과 생존 중 더 중요한 것을 묻는 발렌티나의 질문에 토니는 사랑을 택한다. 그러나 존엄한 삶의 소중함은 사랑과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한 채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남겨진 자들의 몫은 존재하고, 삶은 여전히 지속한다. 서로 같은 달빛 아래 다른 마음으로 밤이 오기를 바랐던 이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모두가 각자의 길을 떠나는 원작의 마지막에 2021년의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 남겨진 자들의 삶을 위로하듯 새벽이 밝아 오는 맨해튼의 도시를 보여준다. 비극 안에서도 삶은 소중하고,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드는 한 빛은 찾아온다는 사실.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생 사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말하던 이 명제를 살아남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기에, 그는 여러 우려를 감수하고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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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주] 달리는 것만으로도 재밌지만, 그 이상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문보다 재밌다’였다. 인친분들의 평도 많이 보았고, 실제로 지인들과 대화 중에 ‘탈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공통적으로 대부분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이 영화를 시사회에서 만났거나 최대한 빠르게 보았다면 지금 쓰는 이 리뷰는 달라졌을 것이다. 극장을 나오며 네이버 평점은 얼마인지, 소문보다 재밌다고 느꼈으나 어딘가 공허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했다. 이건 그에 대한 나만의 고민이자 리뷰다.
영화가 생각보다 흥미로웠던 첫번째 이유는 ‘늪지대와 달리기’ 전략 덕분이다.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하고 주인공이 생각을 멈추거나 행동을 느리게 하는 순간은 극히 일부 장면만 존재한다. 설령 캐릭터가 침착한 태도를 일관한다 하더라도 상황 자체가 급박하게 돌아가며 약간의 움직임을 눈치채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흐름에 이탈하기 쉬운 전개였다. 주인공이 탈주하고자 숨 가쁘게 달리다가 지뢰밭 앞에서 아주 천천히 움직인 것처럼, 영화도 동일하게 전반적으로 몰아치는 러닝타임 속에 몇몇 지뢰를 숨겨두고 지그시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략 중 늪지대라고 말한 이유도 동일하다. 늪지대에서는 달릴 수 없다. 달린다 하더라도 오히려 늪에 더 빨리 빠지는 멍청한 행동이다. 주인공이 탈주범이라는 사실을 관객은 시작과 동시에 알게 된다. 덕분에 다양한 상황에서 서스펜스와 스릴을 즐길 수 있지만, 오히려 빠른 전개와 반대하는 자체 브레이크 장치다. 관객이 이미 진실을 알고 있기에,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불안감과 무거운 압박감이 달리기를 짓누른 것이다. 스스로 발목에 쇠사슬을 묶은 죄수가 열심히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을 전략이라 판단했다. 꽤나 어렵게 결정했을 전략이었다.
두번째로 영화가 재밌었던 이유는 연출이다. 영화 내내 얼마나 장면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느껴졌다. 남쪽으로 탈주하려는 주인공의 입장을 대변하듯 화면 자체가 세로선 보다는 가로선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눈치채신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주인공의 처음 달리기와 마지막 달리기는 굉장히 대조적이고 결과에 대한 의도가 다분하다. 캐릭터들이 바라보는 방향과 시선 자체도 노골적인 수준으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었다. 한예종 영화과를 졸업하신 이종필 감독님의 날카로운 감각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감독님의 바로 전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일부분 TV에서 본 적 있으나 전체 관람을 못 했는데, 이번 작품으로 더 궁금해졌다. 다시 ‘탈주’로 돌아와 이야기를 하자면, 어딘가 유쾌하지만 무서운 연출이 능청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제훈, 구교환과 만나면서 꽃을 피운다. 아쉽게도 이 부분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부분이다. 하지만 시나리오상 두 배우가 꽤나 맛깔나는 수준 높은 연기를 선보인 것은 분명하다. 캐릭터와 캐릭터를 재창조하는 힘, 연출은 이 작품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존재한다. 앞서 설명했듯, 극장을 나오는데 어딘가 공허하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밤새 나를 괴롭혔다. 언제나 그렇듯 곰곰이 생각하니, 이 공허함을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었다. 첫번째는 평면적 캐릭터의 한계다. 영화 모가디슈가 나름 흥행한 이유는 군더더기 없는 속도감과 숨 막힐 듯 조여오는 압박감이 시원하게 터진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남북한 주인공 모두 이념이란 경계에서 생존이라는 공동 목표로 변하며 성격이나 행동이 입체적으로 변한다. 반대로 본 작품에서는 성격이나 행동, 목표가 변화하는 캐릭터는 없었다. 이것 또한 북한 정권의 획일성과 사고의 결핍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면 인정이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처음부터 독종이자 능청거리는 주인공과 어딘가 사이코패스 성향의 주연은 점점 익숙해지고 계속해서 더 큰 자극을 주어도 제자리에 우뚝 선 초소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죽음의 이지선다를 몇 번이고 운으로 지나가는데, 성격이나 행동의 변화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재미보다는 아이러니했다. 두번째는 떡밥은 미끼가 아니라는 것이다. 떡밥은 고기가 모이게 해주는 역할을 할 뿐, 고기를 낚으려면 바늘에 걸린 미끼를 고기가 물어야 한다. 초반부에는 작은 반전이란 떡밥을 구교환 배우님이 뿌리고, 중반부에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활약한 배우님이 깜짝 등장하며 뜬금없는 떡밥을 뿌린다. 결말부에는 다시 구교환 배우가 해외에서 만났을 인연(?)에 대한 알 수 없는 떡밥을 뿌린다. 애초에 처음부터 커다랗고 맛있는 미끼를 날카로운 바늘에 걸어두었지만, 어지러운 떡밥들 속에서 미끼는 가려질 뿐이다. 분명 쉬어 가는 타이밍도 좋지만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구교환 배우와 이제훈 배우의 과거 이야기를 다시 밟는 것이 나아 보였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필요한 서사인 피아노 형이 왜 피아노 형인지, 어린시절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으나 개인사, 가정사는 보아야 한다니.
이미 개봉한 국내 영화를 다 보진 못했지만, 그리 나쁘게만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흥행한다면 또다시 영화제에서 수상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제훈 배우와 구교환 배우의 합작이 성사됐다는 점에도 만족스럽다. 작년 이맘때 영화 ‘밀수’를 관람하고 한숨을 쉬고, 고개를 흔들었다. 당시에 ‘밀수’를 여러 번 재차 관람하시고 좋아하시는 분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본 작품을 관람하고 그분들이 떠오르며 공감했다. 어떤 사람은 영화 전체를 좋아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영화의 특정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색감, 향기, 서사를 좋아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마케팅 상품이자 거대한 자본의 역할이 아닌 예술로 남는 듯하다. 그런 생각과 고민으로 밤잠을 설쳤다. 결론적으로 둘 중 하나는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게 내 결론이다.
P.S 죽어 나가는 조연들 그리고 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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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직한 엔딩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엔딩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만약 영화의 마지막이 해피엔딩이었다면, 그 울림이나 묵직함은 이만큼 깊고 크진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을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존재가 나 자신이 아닌, 사회 공권력과 그것을 실무에서 적용시키는 자라는 사실을 자각하지만, 그들 앞에 무릎꿇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고자 애쓰는 블레이크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의외로 자존심이 내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 여기는 이들은 이 세상에 꽤 많다.
하지만 그들 또한 누군가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대상이 있음을 보면, 사회적인 서비스 체계 역시 그들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내가 가진 기술로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줍니다. 이러한 사회적 연결망은 서로가 서로의 도움이 되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지지와 의지처가 되어줍니다.
영화가 준 묵직한 울림이 스크린 안에만 머물지 않길 바라며 켄 로치 감독의 차기작 '나의 올드 오크' 이후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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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넷플릭스 신작
넷플릭스 2022년 4월!
신작 추천5편
안나라수마나라
버려진 유원지에 사는 마술사
힘겨운 현실 속에서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 고등학생에게 마법 같은 위로를 건넨다
절망적인 현실이 사라지고 희망이 다시 샘솟는 특별한 마술이 시작되는데...
크리에이터: 김성윤, 김민정
출연: 지창욱, 최성은, 황인엽, 지혜원 등
장르: 웹툰 원작, 드라마, 뮤지컬
공개: 5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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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성착취물을 제작하여 끔찍한 범죄를 일삼은 익명의 온라인 채팅방
그 운영자들을 끌어내리기 위한 추적
'N번방’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 기자, PD, 경찰 등
24명의 인터뷰를 통해 범죄의 실체를 밝혀나간다
감독: 최진성
장르: 다큐멘터리
공개: 5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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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을 달려봐
대학 입학을 앞둔 여름,
미스터리한 소년 일라이를 만난 모범생 오든
밤마다 일라이와 함께 이곳저곳을 누비며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분방한 10대의 삶을 맛보게 되는데...
감독: 소피아 앨버레즈
출연: 에마 파사로, 벨몬트 카멜리, 케이트 보즈워스, 앤디 맥다월 등
장르:드라마, 로맨스, 도서원작
공개: 5월6일
예고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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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캅스 인 파리: 더 테이크다운
절대 상극인 두 형사가 10년 만에 콤비가 된다
분열된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수사를 위해
다시 손을 잡은 두 남자
그곳에 도사리던 거대한 음모와 만나게 되는데...
감독: 루이 르테리에
출연: 오마르 시, 로랑 라피트, 이지아 이즐랭 등
장르: 액션, 코미디
공개: 5월6일
예고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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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
새 동네로 이사 온 말썽쟁이 소녀
야생마 한 마리와 친해진 소녀는 말타기 공연자였던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공통점을 발견하는데...
감독: 일레인 보건, 에니오 토레산
출연: 이사벨라 메르세드, 마세이 마틴, 매케나 그레이스, 월턴 고긴스, 안드레 브라우어 등
장르: 애니메이션
공개: 5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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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_#2] 사진과 CC 부부에게 영상이란? 📸 (with. 김수연&고중철 감독)
🎙️ Episode 2. 사진작가 김수연&고중철 편 00:00 인트로 03:10 프라이의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사진작가론 12:38 에그의 사진작가론 16:02 영상과 사진의 차이 22:43 에그의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 23:44 시와 사진의 상관관계 & 시에 대한 이야기 28:17 소통으로써의 예술 31:48 영상 일을 하게 된 계기 37:24 솔직한 감정이란? 45:22 음악에 관한 이야기 51:34 아기들은 왜 동요를 좋아할까? 54:48 힙한(!) 가족사진 57:07 사진에 찍힌다는 것 1:07:06 어떤 영상 일을 하시는지? 1:08:20 일을 대하는 태도 1 1:11:09 표현에 대한 니즈는 어떻게 채우는지? 1:19:19 사진에 집중하고 싶은 이유 1:20:59 영화 추천 'La jetee' 1:23:40 마무리, 앞으로의 각오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는 단편 영화 감독을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입니다. 영화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영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 김수연&고중철 감독 📍instagram @xssu_ @koko.graphy 📍작업 계정 instagram @thatsmywhere_ ◾️ 따옴표 필름 📍 instagram @ddaompyo.film 📍 YouTube @ddaompyofilm 📍 ddaompyofil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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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틴 아메리카의 등장, 그리고 2대 캡틴아메리카의 탄생기
#산돌구름 #팔콘앤윈터솔져 #2대캡틴아메리카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3. 23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1화 재밌게 봤나요?
00:36 새로운 캡(짭)틴 아메리카
01:14 US 에이전트, 존 워커
02:43 팔콘에게 주는 의미
03:48 이벤트 참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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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엘리트들: 못다한 이야기> 티저 예고편
[2021년 6월, 넷플릭스 공개]
《엘리트들》 시즌 4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봐야 할 게 이렇게나 많답니다! 《엘리트들: 못다 한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구스만 + 카예 + 레베
두 번째 이야기: 나디아 + 구스만
세 번째 이야기: 오마르 + 안데르 + 알렉시스
네 번째 이야기: 카를라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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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설강화> 하이라이트 예고편
정해인&지수의 [설강화 : snowdr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