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12-14 17:00:41
스파이더맨 개봉 D-1, 톰홀랜드 필모그래피 in 넷플릭스
톰 홀랜드 필모그래피 모음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 개봉 하루를 앞두었습니다. ??
현재 오미크론의 이슈로 잠깐 주춤한 극장가를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의 티저 예고편이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기록을 이긴 결과로 보아
극장 스코어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씨네랩과 함께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의 주인공!
톰 홀랜드의 필모그래피를 보며 스파이더맨을 기다려 볼까요?
N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 안토니오 캠포스
Synopsis
그의 헌신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저 일어날 일이었을까.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 싶은 한 남자의 주변에 악한 자들이 들러붙는다.
도망갈 곳도 없는 작고 외딴 마을에서.
N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 - 존 왓츠
Synopsis
지구 구하는 일이 어디 쉽나? 슈퍼히어로에게도 휴식이 필요한 법.
학교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떠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
하지만 세상에 새로운 빌런이 등장해 여행을 망쳐놓는다.
어휴, 맘 편히 쉬는 꼴을 못 봐요. 못봐.
N 커런트 워 - 알폰소 고메즈-레종
Synopsis
희대의 라이벌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
그들이 각자의 파트너와 손을 잡고 전류 전쟁에 돌입한다.
2개의 전류, 4명의 천재.
전 세계 전기 공급을 책임질 이는 누구인가.
오직 한 사람만이 역사에 남는다.
N 스파이더맨 : 홈 커밍 - 존 왓츠
Synopsis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간 피터 파커, 세상을 위협하는 벌처의 등장에 몸이 근질근질!
애 취급은 그만. 거미줄 좍좍 뽑아내는 스파이더맨의 실력을 보여주겠어.
덤벼라 악당아!
N 잃어버린 도시 Z - 제임스 그레이
Synopsis
1900년대 초, 영국 탐험가 퍼시에게 들려온 믿기 힘든 이야기.
아마존 정글 어딘가에 알려지지 않은 문명 도시가 있다는 것.
아무도 본 적 없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도시.
미지의 그 곳을 향해 퍼시가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N 하트 오브 더 씨 - 론 하워드
Synopsis
고래가 고래잡이 배를 집어 삼켰다.
고래 정복의 단꿈에 빠졌던 선원들은,
이제 망망대해에 던져진 채 자연에 먹히지 않으려 몸부림치는데.
<모비딕>의 모티브가 된 실화.
씨네랩 에디터 Ria
Relative contents
-
- 듄: 파트 2 | 일말의 부조화까지 삼킨 모래 폭풍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황제'와 하코넨 가문의 모략으로 인해 멸문한 아트레이데스 가문. 하지만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폴'(티모시 샬라메)은 반란군 프레멘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와 사막으로 피신하는 데 성공한다. '챠니'(젠데이아)에게서 프레멘의 생존 방식을 배운 폴은 프레멘 전사인 페다이킨이 되어 '폴 무앗딥'이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그 이후, 그는 하코넨 가문에 대항할 테러 작전을 이끌어 나간다.
그런 폴을 보면서 프레멘은 그가 그들이 기다려 온 외부 세계의 구세주, '리산 알 가입'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비극적인 미래를 예견한 폴은 프레멘의 기대를 저버리려 하지만, 전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황제와 하코넨 가문이 잔혹한 암살자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를 보내 프레멘에게 잔혹한 반격을 가했기 때문. 이에 폴은 끝이 정해진 운명을 따를지, 새로운 길을 개척할지 기로에 선다.
<듄>을 지탱하는 두 축
소설의 영상화는 항상 두 가지 난관에 부닥친다. 제작자는 소설 속 세계를 어떻게 보여줄지 머리를 싸맨다. 독자의 상상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압도하는 광경을 보여줘야 하니까. 각색도 고민거리다. 주인공의 서사와 변화를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분량이 한정된 가운데 원작의 여러 장점 중 몇 가지에만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이 그 예시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호빗> 트릴로지는 중간계를 스크린으로 옮겼다는 극찬을 받았다. 반면에 아마존 프라임 시리즈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는 같은 시기에 방영한 <하우스 오브 더 드래곤>에 밀려 조용히 잊혔다. 시각효과는 환상적이었지만, 갈라드리엘을 비롯한 주요 인물의 서사가 원작으로부터 동떨어져있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듄>(2021)은 호사를 누렸다. 할리우드 대표 비주얼리스트 드니 빌뇌브가 사막으로 가득한 아카리스 행성의 온도, 습도, 채도까지 재현해 냈다. 원작 팬답게 핵심만 뽑아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데도 성공했다. '구원자가 되는 운명을 의심하고 경계하나 결국 몰락할 영웅 서사'의 기반을 착실히 닦았다. 그 덕분에 팬데믹 중에 개봉한 <듄>은 극찬 속에 월드와이드 4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듄: 파트 2>(이하 <듄 2>)도 마찬가지다. 외려 형보다 나은 아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볼거리는 더 화려해졌고, 폴의 이야기는 심오해졌다. 단, 의외의 문제도 있다. 확신 가득한 빌뇌브의 영상과 의심 가득한 폴의 서사가 간간히 충돌하기 때문.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협화음은 도리어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끌어올리고, 그렇게 <듄 2>는 막을 내린다.
절대 눈길을 뗄 수 없도록
<컨택트>와 <블레이드 러너 2049>로 비주얼을 인정받은 드니 빌뇌브. <듄 2>에서도 그의 솜씨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일례로 빌뇌브는 위성사진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구도를 애용하는데, 이번에도 같은 구도를 적극 활용해 전투씬처럼 인원이 많은 장면에서 스케일을 강조하고, 웅장함을 살려냈다. 한스 짐머의 서정적이고 장엄한 OST가 고막을 울리는 가운데, 아이맥스 스크린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의도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대상의 크기를 비교해 위압감을 극대화하는 구도도 인상적이다. 페다이킨의 스파이스 채취 기계 기습, 황제 군대와 폴 군대의 전면전, 황제의 아카리스 행성 도착 장면이 대표적이다. 앞에 서 있는 군인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하베스터, 모래벌레, 황제의 우주선은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여기에 템포를 한 두 박자 쉬고 상황이 전개되는 연출이 더해지면 순간 숨이 멎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
방대한 이야기를 압축해 제시하려는 노력도 독특하다. 일례로 페이드 로타는 '검은 해'가 뜬 검투장에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생존자들과 싸운다. 흑백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싸움은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넨 가문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정의와 신뢰를 중시하며 백성을 아끼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돈과 폭력으로 충성을 강제한다. 특히 후자의 잔인함과 야만이 흑백 화면 덕분에 더 날 것처럼 느껴진다.
클로즈업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듄 2>는 할 말이 많다. 예언을 둘러싼 폴, 챠니, 레이디 제시카의 삼각관계를 풀어내야 한다. 황제와 하코넨 가문의 대립과 베네 게세리트의 계략, 마지막으로는 폴과 황제의 전쟁도 보여줘야 한다. 이에 영화는 배우들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암시한다. 그 덕분에 주인공들의 표정 및 목소리 톤 변화만으로도 <듄 2>는 로맨스, 정치극, SF, 에픽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도화선에 불 붙이는 액션
<듄 2>의 러닝타임은 전편보다도 10분가량 더 긴 166분이다. 그런데 체감 길이는 전편보다 짧다. 템포가 느리고 진중한 분위기가 돋보인 전편과 달리, 대중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기 때문. 전편이 세계관과 설정을 설명하며 판을 깔아준 덕분에 <듄 2>는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는 듯하다. 전편이 기승전결 중 '기승'을 맡았다면, <듄 2>는 '전결'만 맡은 형국이다.
차이는 액션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정적이었던 전편에 비해 <듄 2>는 곳곳에 액션씬을 배치해 템포를 계속해서 끌어올린다. 당장 폴 일행과 하코넨 군인 간의 추격전이 시작부터 등장한다. 이 도입부는 빌뇌브의 전작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CIA가 밀수 땅굴을 이용해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제압하는 액션씬을 연상시킨다. 팽팽한 긴장감을 자랑하며 관객을 곧장 아카리스 행성으로 초대한다.
그 이후에 영화는 폴의 페다이킨 수련 과정, 프레멘의 테러 공격, 하코넨의 보복 작전을 연달아 보여주며 장작을 착실히 쌓아 올린다. 뒤이어 폴의 군대가 황제군을 급습할 때 장작에는 마침내 불이 붙는다. 폴과 그의 추종자들은 모래벌레를 타고, 또 모래 폭풍을 뚫고 돌격한다. 이 클라이맥스는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 시리즈의 전투씬에도 밀리지 않는 스케일과 박력을 자랑한다.
이때도 스펙터클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관객을 감질나게 하는 빌뇌브의 연출법은 유효하다. 일례로 전투 시퀀스는 의외로 짧다. 부대 차원의 전략적 움직임과 각 주인공의 활약상을 보여준 후 곧장 드라마 파트로 되돌아간다. 전투의 거대한 규모와 세밀한 묘사를 고려하면 분명 아쉬움이 남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순간의 임팩트는 극대화된다.
의심하는 영웅, 폴 아트레이데스
화려한 볼거리를 토대로 <듄 2>는 전편이 암시한 폴의 서사도 한층 구체화한다. 폴 아트레이데스는 신화적인 영웅상을 답습한 캐릭터다. 그에게서는 여러 영웅의 모습이 보인다. 예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자기 손으로 예언을 실현하고, 비극을 맛본다는 모티브는 오이디푸스와의 공통점이다.
뛰어난 영웅과 초인의 폐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다윗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억압받는 민족을 구해낸 후 왕좌에 앉은 메시아. 그는 주변 종족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왕국의 위세를 드높인다. 하지만 영광은 잠시 뿐. 구세주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추종자, 왕국마저 고통에 빠트리고 만다.
핵심은 그가 실패하고 몰락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점이다. <듄>의 분위기가 일반적인 판타지, SF 작품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예언 속 영웅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영웅의 인간적인 결점을 부각해도 이들의 활약상은 끝내 대체적으로 평화롭고 밝은 장조 화음으로 귀결된다. 반면에 예언과 초인을 경계하는 <듄>은 음울한 단조 화음과도 같다.
<듄 2>에서는 이 단조 화음이 더 또렷하고, 풍성해진다. 폴이 프레멘의 구세주로 거듭나는 순간만 봐도 그렇다. '생명의 물'을 마시고 '퀴사츠 해더락'으로 각성한 폴에게서는 음습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북부와 남부의 모든 프레멘을 휘어잡는 연설도 전율이 일지만, 불편하다. 개인의 복수와 공동체의 생존 사이에서 선틀 타며 숱한 죽음을 유발하는 독재자 같기 때문. 자연히 그의 승전도 마냥 즐겁지는 않다.
확신과 의심의 부조화
이처럼 <듄 2>는 영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두 톱니바퀴를 멋지게 구현해 냈다. 빌뇌브는 확신 가득한 붓칠로 머릿속 상상을 스크린 위에 펼쳐 놓았다. 메시아가 될 운명과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는 폴의 이야기도 더 명확해졌다. 그런데 이 두 축은 빌뇌브 특유의 스토리텔링 때문에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빌뇌브는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인물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누는 경우가 잦다. <듄 2>에서는 챠니를 모든 인물의 반대편에 위치시킨다. 챠니는 구세주가 아닌 인간 폴을 사랑하고 또 상징한다. 그래서 그녀는 종교적 광기를 퍼뜨리는 레이디 제시카와 폴의 추종자가 된 프레멘에게 유일하게 맞설 수 있다. 달리 말해 챠니의 관점에서 폴의 여정을 따라갈 때, 관객은 단순한 영웅이 아닌 폴의 고통과 선택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그 대신 챠니는 필연적으로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폴이 구세주로서 아버지의 복수를 완수하는 순간이 클라이맥스이기에 이질감은 더 짙다. 관객을 압도하는 연출과 시각효과도 챠니의 우려와 실망에 동조하기 힘든 분위기를 강화한다. 폴의 서사가 강조되고, 빌뇌브가 구현한 비주얼이 생생해질수록 챠니의 위치와 역할은 역으로 모호해지는 셈이다. 폴과 페이드 로타의 최종 결전에서도 그녀 때문에 분위기가 일순간 깨지기도 한다.
문제는 <듄 2>를 한 편의 독립적인 영화로 볼 때, 이 균열이 미처 가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폴과 챠니의 로맨스를 부각해 가교를 만들려는 노력도 충분치 않다. 이들의 로맨스가 그저 원작 내용과 전개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인상이 짙기 때문. 다른 플롯에 밀려서인지는 몰라도, 운명 외에 둘이 사랑에 빠지는 계기나 과정은 다소 간략하게 제시될 뿐이다. 배우 개인의 역량도 이 난점을 극복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아직 정점은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듄 2>의 부조화는 다음 이야기를 더 기대하는 원동력이 된다. 독립 작품의 관점에서는 완성도 문제이지만, 시리즈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장점이기 때문. 소설에서 폴은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 추방자가 된다. 이 전개를 따를 경우 <듄 2>의 미묘한 균열은 그 자체로 메시아의 패망을 암시하는 강력한 복선이다. 폴이 아니라 챠니가 엔딩을 장식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듄: 파트 2>는 속편이자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이행한다. 아카리스 행성의 사막 속으로 관객을 빠트리고, 메시아의 탄생을 목도하는 경외심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그의 몰락마저 기대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까. 운명을 피하려고 애쓰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는 폴 아트레이데스의 세 번째 서사시가 언제쯤 찾아올지 궁금할 따름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빌뇌브 표 묵시록의 변곡점. 정점 일보 앞에서 멈추다.
-
- 5월 1주 차, 위클리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지난 한 주, 국내외 영화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정리해 보는 '위클리 뉴스' 차례가 왔습니다!그럼, 지난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
.
국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전세계 최초 국내 개봉
ⓒ 네이버 영화
쥬라기 시리즈의 6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편인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이 전세계 최초로
내달 1일(수) 국내 개봉 확정 소식을 전했다. 영화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인간과 공룡이 최후의 사투를 담았다.
팝콘 허용하자, 영화관 관객수 37.5% ↑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팝콘 취식이 가능해진 4월 25일~5월 1일까지 총 관객 수가 96만 8722명이었다. 취식 허용 이전과 비교했을 때 약 53% 증가했다.
파라마운트+, 6월 중 국내 서비스 시작
ⓒ 파라마운트 공식 홈페이지 캡쳐
파라마운트+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서비스하게 됐다. 정확한 론칭 일자는 알려지지 않았고,
6월 중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정도만 밝혔다. 다만, 단독 론칭이 아닌 티빙 내에서 번들로 서비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녕하세요>, 25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김환희, 유선, 이순재 배우 주연의 휴먼 영화 <안녕하세요>가 25일 개봉을 확정하였다.
영화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반창꼬> 연출부에 있었던 차봉주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애프터 양>, 6월 1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파친코'의 코고나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애프터 양>이 6월 1일 개봉을 확정 지었다.
영화의 원작은 알렉산더 와인스틴 작가의 '양과의 안녕'이다. 또한,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애프터 양>은 예매 오픈 3분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한 바가 있다.
무주산골영화제, 10주년 기념 '토킹 시네마' 신설
ⓒ 무주산골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는 올해 10주년을 맞아 '토킹 시네마'를 신설했다. '토킹 시네마'는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해당 영화를 전문적이고 또 색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장건재 감독, 정성일 영화 평론가, 황석희 영화번역가, 박태훈 왓챠 대표 등
총 25명의 국내 영화 전문가가 참여한다고 밝혔다.
해외
<탑건:매버릭>, 개봉일 변경
ⓒ 네이버 영화
<탑건: 매버릭>은 원래 5월 25일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할 계획이었지만, 개봉 시기를 조율하다
결국 6월 22일 개봉으로 확정지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일 예정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
- 느리지만 특별한 궤적을 그리는 곤돌라
곤돌라 (Gondola, 2025)
느리지만 특별한 궤적을 그리는 곤돌라
개봉일 : 2025.04.23.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로맨스
러닝타임 : 82분
감독 : 바이트 헬머
출연 : 니노 소셀리아, 마틸드 이르만
조지아의 깊은 산맥, 곤돌라 두 대가 푸릇한 산맥 위를 천천히 가로지른다. 세월을 그대로 품은 거대한 바퀴가 일을 시작하면 케이블에 매달린 곤돌라가 천천히 움직인다. 곤돌라는 일정한 속도와 궤적을 유지하며 시작점과 정상을 오간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갔다 내려갔다. 안정적이고 느긋한 움직임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젊은 여성 ‘이바’는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이 느릿한 곤돌라에 몸을 싣는다. 그는 곤돌라 승무원이 되어 유일한 동료이자 사수인 ‘니노’와 함께 곤돌라를 운행한다. 두 대의 곤돌라와 두 명의 승무원. 탑승객은 몇 되지 않는 산골 마을 사람들이 전부다.
누군가 전원을 켜면 곤돌라는 돌아간다. 케이블이 있고 전원이 켜진 이상 곤돌라는 계속해서 같은 움직임을 반복해야 한다. 곤돌라와 우리의 삶은 닮아있다. 시작된 이상 마음대로 바꿀 수도 멈출 수도 없고, 멀리서 보면 매일 비슷해 보인다는 점에서 말이다.
실제로 영화 속 곤돌라의 움직임과 그 위에 올라탄 승무원들의 일상은 매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바이트 헬머 감독은 이 지루한 반복 위에 익살스러운 상상력을 얹어 특별한 궤적을 만들어낸다. 곤돌라가 왕복 운동을 마칠 때마다 새로운 추억이 그려지고 그것은 주인공 니노와 이바의 마음을 단단히 채우는 나이테가 된다.
<곤돌라>는 모든 게 풍부한 이 시대에 보기 힘든 영화다. 이 영화는 인물들이 대사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무성영화’고 그렇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 보기 어려운 영화이기도 하다. 누구도 속시원히 목소리를 내지 않는 스크린을 보며 속이 끓거나 또는 지루하다 싶은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잠시 힘을 빼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답답함이 전복되는 즐거움과 더불어 충만한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곤돌라’는 양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곤돌라는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대중교통이자 첫 경험과 죽음까지- 다양한 삶의 순간을 담는 특별한 그릇이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부당함을 견디는 수동적인 삶’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니노’는 권태로운 일상과 사장의 몰지각한 행동, 말도 안 되는 임금에 지쳐있는 인물이다. 그는 하늘로의 행복한 탈출을 꿈꾸며 항공사에 지원서를 넣는데 그때, 니노의 권태를 깨는 인물 이바가 등장한다. 차후 니노는 항공사로부터 답신을 받지만 끝내 하늘로 날아가는 것 대신 곤돌라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니노가 더 이상 하늘로의 탈출을 꿈꾸지 않게 된 이유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니노와 이바는 사장이 지시한 곤돌라 승무원의 역할(손님을 태우고 돈을 받고 곤돌라를 운행하는 것)만을 수행한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두 사람은 곤돌라의 문을 열고 연주하기, 곤돌라 꾸미기 등을 통해 매일 다른 하루를 만들어간다.
비행기, 버스, 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곤돌라의 겉모습과 누군가 정상에 도착할 때마다 모습을 바꾸는 체스판은 두 사람의 하루가 ‘단순한 반복’이 아닌 ‘작은 변화들’로 채워지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두 사람은 곤돌라에 다양한 삶의 순간들을 담으며 권태를 극복해간다.
니노와 이바는 곤돌라 위에서도 삶의 순간들을 즐기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부당함으로 똘똘 뭉친 인물. 그들의 사장이다. <곤돌라>는 두 종류의 탈출을 그린다. 앞서 언급한 권태로부터의 탈출, 두 번째는 반복되는 부당함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곤돌라 사장은 말 그대로 ‘나쁜 놈’이다. 여성 직원의 탈의 장면을 훔쳐보려 하는 건 기본이고 임금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며 지위를 이용해 애정과 관심을 갈구한다. 그리고 정당한 이유 없이 휠체어를 탄 남성을 차별하고 계단 아래로 밀어버린다.
니노는 얌전히 케이블을 따라 도는 곤돌라처럼 이 부당한 인물의 지시에 따라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해왔다. 하지만 이바가 등장하고 그와 상호 작용하며 천천히 사장이 정해둔 선을 벗어난다. 니노는 이바와 함께 곤돌라의 문을 열고 그다음엔 곤돌라를 멈추고 이후엔 곤돌라의 지붕까지 올라탄다. 그리고 마지막엔 함께 곤돌라를 탈출해 허공이 아닌 땅을 밟으며 당당히 걸어간다.
극 중엔 니노가 사장이 건넨 꽃다발을 곤돌라 밖으로 버리고 그걸 본 사장이 니노와 이바의 체스판을 엎어버리는 장면이 있다. 이때 체스판이 난간 쪽으로 엎어지고 받침으로 쓰이던 나무 박스만 남게 되는데 그 위에 검은색, 흰색 체스 말이 하나씩 남아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사장이, 부당한 사회가 아무리 큰 충격을 준다 해도 니노와 이바는 끝까지 함께 살아남을 것임을 의미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니노와 이바는 곤돌라를 운행하며 식료품을 배달해 주거나 장례식을 함께하는 등 주민들과 다정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두 사람은 이후 곤돌라가 추락할 때, 앞서 식료품 배달을 위해 깔아 놨던 짚에 안착하며 목숨을 건진다. 반대로 사장은 그 누구와도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하지 않았고 마지막엔 이성을 잃고 홀로 자멸한다.
‘다정한 이들은 아름다운 결말을, 욕심쟁이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한다’ 케이블이 끊어짐과 동시에 경로를 벗어난 곤돌라는 이러한 올바른 엔딩을 향해 마음껏 내달린다. 그리고 곤돌라의 충돌은 큰 통쾌함과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현실에선 여기저기 이어진 선 때문에 ‘인과응보’ 엔딩을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함께 탈출을 꿈꾼다면 언젠가는 이 부당한 선들이 모두 곤돌라 케이블처럼 뚝- 끊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는 그런 희망을 가져보고 싶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
- 귀농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리틀 포레스트>
- 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2018)
제작 : 한국, 드라마 │ 감독 : 임순례
출연 : 김태리(혜원), 류준열(재하), 진기주(은숙), 문소리(혜원母) 외
등급 : 전체관람가 │ 러닝타임 : 103분만인의 힐링 영화가 될 줄 알았지
리틀 포레스트.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영화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힐링 영화로 자리 잡게 되리란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소하고 슴슴한 맛의 이 영화를, 그래서 나도 무려 다섯 번이나 보았다. 언제 어느 부분에서 틀어도, 또는 배경으로 쭉 틀어놓아도, 모든 장면이 위안이 되는 그런 흔치 않은 영화이기에.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다섯 번이나 본 사람으로서 이 영화가 결코 달콤한 영화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도 어여쁜 시골의 사계절과 요리 장면, 세 청춘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관계 등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청춘들이 결코 시골에 와서 아무 걱정 없이 지내고 있는 것만은 아님을 느껴서다. 그래서인지 어딘가에서 이 영화를 두고 ‘귀농에 대해 미화하는 영화’라고 부르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다. 그 말은 오히려 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보았음에도 영화의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에.
그보단 청춘의 성장통을 그리는 이야기
주인공 ‘혜원’만 보더라도 그렇다. 임용고시에 실패 후 고향인 시골마을로 내려온 혜원은 도시를 떠나왔다고 해서 마냥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얼마간은 정말 순수한 힐링과 도피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곧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재하의 말대로 ‘그런다고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혜원은 시골에 정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러 내려온 셈이었다. 자신이 잘하고 있는 건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자신을 정립하기 위해서.
‘재하’도 마찬가지다. 도시에서 회사생활을 하며 상사의 폭언을 견디지 못했던 재하도 도피하듯 시골로 내려왔지만, 그렇다고 시골에 와서 마냥 이것저것 뚝딱 농사를 성공했던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그는 태풍으로 사과농사를 망치는 것이 얼마나 익숙한지 아주 덤덤하게 낙과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울에서 만난 여자 친구와도 시골로 오면서 이별해야 했다.
시골에만 붙박이처럼 있었던 은숙의 삶도 만만치 않다. 어르신들이 주를 이루는 은행에서 그녀는 여름이면 공짜로 믹스커피를 타다 바쳐야 하고, 아무리 작은 단위의 은행이라도 회식자리에서 부장을 위해 맘에도 없는 탬버린을 쳐야하는 비애는 똑같다.
과연 이들의 어떤 지점이, 귀농을 미화한다는 걸까. 이 영화는 시골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보여줌과 동시에 세 청춘의 쓰라린 성장통도 훌륭히 보여주고 있는 것을. 단지, 군데군데 자연이 내뿜는 푸르르고 여유로운 장면들이 배치되어 있어 그들의 성장통이 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 방식을 띈 작품들은 많다. 이를테면 <라라랜드>. <라라랜드>는 유쾌 발랄한 뮤지컬 형태를 띠고 있지만 결국 서로의 꿈을 위해 사랑을 포기했던 연인을 노래하는, 그러니까 사실은 ‘슬픈’ 영화가 아니었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도 마찬가지다. 막상 읽어보면 “청춘은 원래 아픈 거니까 쭉 아파라”라고 말하는 책이 아닌데도, 어쩐지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리틀 포레스트>도 그런 외형을 띈 영화가 아닌가 싶다. 혜원이 형형색색 아름다운 자연의 식재료로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시골의 풍부한 사계절을 뛰어난 영상미로 담아냈다고 해서, 이 영화가 시골생활을 가볍게 그리는 영화는 아닌데...., 들여다보면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 즉 청춘남녀들이 자신만의 작은 숲을 일구기 위해 자신의 삶을 아프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이야기에 가까운데, 외피만 놓고 오해하는 경우가 생겼던 게 아닐까.
작은 숲을 가꾸기 위하여
물론 나는 이 영화를 오해하는 많은 이들처럼, 혜원이 요리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얇은 튀김옷을 입힌 아카시아 꽃과, 무지개색으로 쪄낸 시루떡, 보기만 해도 달큼해지는 밤 조림, 꼬들꼬들 말라가는 주홍색 곶감을 보면서 정말 많이도 시각적 힐링을 했더랬다. 그렇지만 그런 요리를 하는 혜원에게 아픔이 있음 또한, 영화를 볼 때마다 여지없이 느낀다. 그러면서 나는 늘 혜원의 행복을, 그리고 혜원에 투영된 나의 행복을 빌었다.
영화는 혜원과 재하, 은숙 세 사람이 그래서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밝히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 혜원이 ‘자신의 작은 숲’을 찾았음을 암시하는 미소로 관객들을 안심시키며 끝이 난다. 영화가 그렇게 시시하게 끝났던 것조차도, 어쩌면 혜원이 찾은 숲이 ‘시골로의 정착’이냐 ‘도시로의 회귀’냐 하는 형식적인 문제가 아님을 시사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그 시시한 결말과, 처음부터 끝까지 소소하고 슴슴한 맛의 이 영화가 참 좋았더랬다.
청춘과 인생은 자연의 섭리를 많이 닮아있는 듯 싶다. 그래서인지 리틀 포레스트에는 ‘인생’에 대입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는 좋은 대사들도 많다. 긴 요리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어린 혜원에게 혜원의 엄마가 하는 말 “기다려, 기다릴 줄 알아야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어”라던지, 재하의 “겨울에 심은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라는 말이라던지. 기다림과 긴 긴 겨울에 대해서 자연은 늘 그렇게 단단한 통찰을 준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귀농을 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 없지만, 때때로 내 숲을 가꾸는 일이 힘들게 느껴질 때 다시금 이 영화를 찾는다. 혜원이 힘들 때 고향을 찾아가 위로받았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그렇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글쓰는우두미
INSTAGRAM https://www.instagram.com/woodumi/
BRUNCH https://brunch.co.kr/@deumji
-
- 소녀의 얕은 숨소리와 가족의 밥 씹는 소리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얕고 낮게 들려오는 가쁜 숨소리, 뒤이어 들려오는 남녀의 불안하고 높은 언성.
열두 살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 하나(김나연 분)가 매일 호흡하는 곳은 위태롭다.
매일같이 높은 언성으로 다퉈대는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며 가쁜 숨을 내쉬는 게 하나의 아침이다.
아이들보다 더 아이들처럼 다투고, 어쩌면 초등학생의 말싸움보다도 더 유치한 어른들의 언쟁.
이 전장 같은 곳에서 얕고 낮게 색색거리는 하나의 가쁜 숨소리에는 그 모든 고민과 상처, 난감이 담겨있다.
영화 <우리집>에서 (하나의) '우리집'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하나의 불안한 숨소리로 모든 걸 설명한다.
늘 품 안 가득 무거운 짐을 양손으로 안고 다니는 하나는, 어린 나이에 세상의 모든 짐을 떠안은 것처럼 보인다.
일찍이 걱정 가득한 얼굴을 가져버린 하나는 우리 가족이 이대로 사이가 완전히 나빠질까 봐 무섭다.
액자에 끼워져 있지 않았더라면 기억조차 희미했을 시절에 찍은 가족사진을 바라보는 하나.
우리 가족의 표정이 온전히 담긴 바다여행 사진이다.
'이날 이후로 우리 가족 다 같이 여행 간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하나, 엄마와 아빠에게 문득 이런 제안을 한다.
"우리 가족여행 가요. 바다로"
일곱 살 유진(주예림 분)이의 유일한 친구는 언니 유미(김시아 분)다.
그래서 언니는 친구요, 엄마이자, 언니 자체다.
엄마와 아빠는 일을 하러 먼 곳에 계신다고 했고, 이 자매를 보호할 수 있는 건 집과 그들 자신뿐이다.
그나마 전화로 잠깐씩 엄마 목소리를 듣는 건 작은 안심이다.
열한 살 유미는 유진이 배고프면 먹을 걸 줘야 하고, 사라지면 찾아야 하고, 울면 달래줘야 한다.
그래도 둘에게 조금 넓은 '우리집'은 왠지 막연하고 유일하게 그들을 영원히 보호해줄 것만 같다.
요 며칠 새 잦아진 주인아줌마의 부름.
우리집인데 자꾸 모르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방 안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우리집인데 우리집이 아닌 이 상황을 유진이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이미 여섯 번인가, 일곱 번 정도 이사를 해왔지만 이사는 늘 싫고 두렵다.
크고 작은 박스를 모으는 걸 좋아하는 유미는 집 안에 박스로 만든 또 하나의 집을 지을까, 생각한다.
"우리집은 진짜 왜 이러지?"
"내가 지킬 거야 우리집, 너네집도"영화 <우리들>로 아이들에 대해 우리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사려 깊은 시선을 보여준 윤가은 감독의 신작, <우리집>은 '가족'과 '집'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 위태롭게 다투는 엄마 아빠를 보며 불안을 삼키는 유미, 멀리 떨어진 엄마 아빠와 또다시 이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삼키는 유미와 유진.
세 소녀의 우연 같은 만남 이후, 하나는 가장 언니로서 우리집과 유미유진집(너네집)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명을 갖는다.
이 세 소녀의 시선, 그중에서도 하나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만 영화는 흘러간다.
윤가은 감독이 말하길, 이번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바로 카메라의 시선이라고 한다.
카메라의 시선을 아이들의 눈높이와 최대한 맞도록 하고, 그 아이들이 보지 않는 것을 굳이 따로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는 거다.
그 말은,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으로서 체험한 불안과 착잡이 곧 결국 아이들이 온전히 느꼈을 감정이란 말과 같다.
영화 <우리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어른과 가까워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보다,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예민하고 섬세하지 않을까.
그렇담 이 세상에 무뎌져 버린 우리보다, 그들에게 이 세상의 문제들이 눈에 더 잘 보이지 않을까
. 그래서 그만큼 그들이 세상의 문제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집>을 보고는 이 생각에 대해 확신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도 아팠고, 세상의 생채기가 무뎌질 때 즈음 나는 아이의 시선과 기억을 잃었다.
집이라는 세계
"그건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이에요"
"실례 좀 할게요"
서울에 상경하고 혼자 살 자취방을 구하러 다니는 일이 잦았다. 우리집이 아닌 우리집에 사는 일은 물론, 우리집이 아닌 우리집을 구하러 다니는 일은 더욱 고통이었다.
계약이 끝나가는 집을 중심으로, 집주인과 함께 타인의 온기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집을 둘러보는 건 왠지 모르게 (집주인이 아닌 집주인에게) 매번 죄송스러웠다.
게다가 그 집에 살던 이가 잠시 외출이라도 했을 때라면, 집주인은 고민 없이 마스터키로 집 문을 열고 대수롭지 않게 방에 들어와 구경시켰다.
'집주인이니까 뭐 어때..'라는 생각은 자칫 위험하게 느껴졌다.
또한 이사를 위해 역시 우리집이 아닌 우리집을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도 역시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이사를 가기 위해 누군가에게 우리집을 보여주는 것은 편치 않았다.
어색하게 정돈된 우리집 구석구석을 여러 명이 와서 버선발로 훑어보는 건 괜스레 이상하고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집은 세계다. 특히 아이들에겐 완전한 세계다.
가령 핵폭탄이 터져도 문 잘 닫고 침대 밑에서 이불 덮고 잘만 숨어 있는다면 안전할 것만 같은, 집은 날 완전히 보호해주는 세계인 것이다.
그런 세계를 침범하는 건 폭력적이다.
아이들에게 완전한 안전과 안정으로 느껴져야 할 집이 더 이상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 되어버린다면, 누구나 우리집 문을 활짝 열고 침범해올 수 있다고 느껴져 버린다면, 그것은 폭력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을 그런 집에 방치한 어른들의 무책임함이다.
"여기서 살자. 우리끼리만"
"근데 우리 뭐 먹고살아?"
더 이상 우리집이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 때, 세 소녀는 집을 벗어난다.
그리고 하나하나 조심스레 쌓아 만든 모형 집을 세차게 부순다. 새로운 세계로 날갯짓하기 위하여 기존의 세계를 짓부쉈던 <데미안>의 이야기처럼, 세 소녀는 용기 있는 걸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물론 과정은 맘처럼 되지 않고 어린 감정도 늘 서툴다.
그러나 무책임이란 역할을 맡아버린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은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에요."라 말하지 않는다.
우연히 하룻밤 머물게 된 안락한 공간에서의 세 소녀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따뜻하고, 편하고, 먹을 것도 좀 있는 공간에서 소녀는 농담처럼 뱉는다.
여기서 살자고, 그것도 우리끼리만.
각자의 허공을 응시하며 까르르 웃는 소녀들에게 이 순간은 가장 편안해 보인다.
불안해 보이지도, 두려워 보이지도 않는다.
어른들의 세계와 우리집이 아닌 우리집에서 벗어나, 오직 세 소녀만 있는 작고 우연한 공간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안전한 곳처럼 보인다.
여기서 가장 어린 7살 소녀 유진이 대답한다.
"근데 우리 뭐 먹고살아?" 그들은 다시 까르르 웃는다.
그들도 안다. 여기서 우리끼리만 살자는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완벽한 농담인지를.
내일이면 떠나온 세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 어린 소녀들은 각자의 맘 속으로 이미 알고 있다.
티 없는 해맑음이 유독 아프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가족'이라는 관계
"우리 밥 먹자. 든든하게 먹고 진짜 여행 준비하자"
우린 식구(食口)의 사전적 의미를 알고 있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영화 속 하나가 왜 이렇게 그토록 같이 밥을 먹고 싶어 할까 의문이 들었다면, 나는 '가족'의 의미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 오직 이 어린 소녀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밥 같이 먹자"는 말은 가족의 문제를 누구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본 하나가, 조금이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생각해낸 간절한 구호였다.
'가족여행'도 마찬가지다. 하나는 누구보다 바쁜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부탁이 철없는 어리광처럼 들릴 줄도 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철없는 어린 딸도 감수하는 하나의 모습은 영화 속 그 누구보다 성숙해 보인다.
물론 하나는 고작 5학년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어린 아이다.
아빠의 핸드폰을 비롯해 엄마의 여권 등 자신에게 골칫거리들만 모아놓은 상자처럼,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당연히 서툴고 무력하다.
그 무거운 상자를 언제나 양 손으로 짐처럼 품은 하나는 명백히 여린 소녀다.
그런 소녀가 자꾸 가족들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 것 또한, 이 가족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할 거란 걸 우리 모두는 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불안한 눈에서 느낄 수 있다.
가족이 한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는 게 어쩌면 하나에게 '가족여행'보다도 간절한 소원일 수도 있었겠다는 것.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잠시 이 식탁에서 만큼은 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 같은 것.
하나는 말한다. "든든하게 먹고 '진짜 여행'을 준비하자"고.
여기서 '진짜 여행'이란 말의 의미를 마치 온 가족이 각자 마음으로 알아챈 듯, 영화는 가족이 식탁에 앉아 말없이 밥을 먹는 소리만 남긴 채 떠난다.
영화는 하나의 얕은 숨소리로 시작해 네 가족이 말 한마디 없이 밥을 씹는 소리로 끝맺는다.
여기에 하나의 '진짜 여행'이란 말이 한 소녀의 깊은 체념을 담은 말처럼 느껴져 더 아팠다.
스크린에 담긴 순간은 끊겼지만, 그들은 어디선가 지금도 얕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을 것 같았다.
그 어느 것도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위태로운 공간에서 걱정스런 눈빛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크레딧이 올라가고는, 내가 이 여린 세 소녀들에게 그 무엇도 해주지 못하고 그 위태로운 세계에 남겨두고 와버린 듯한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약간의 생각 이후 든 생각은 죄책감보단 자책감이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항상 '우리집'이었을 테고, 그들은 원래 거기에 있었다. 항상 그곳에 남겨져 있었다.
나의 무뎌진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걱정스럽고 위태롭게.
그렇기에 죄책감보단 그들을 보지 못한, 그들의 시선으로 보지 못한 나에 대한 자책감이 괴로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책임을 떠맡게 돼 방치하는 어른들과, 뭐라도 행동하는 아이들이 이제 동시에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길 바랄 뿐, 마찬가지로 무책임을 떠맡은 어른에 가깝다.
누군가는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으면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라 말했다. 가족 하면 '화목'이 강제 덕목처럼 세뇌되었듯, 가족이란 모름지기 달큰한 사랑의 향이 풍겨야만 하는 것처럼 요구된다.
그러나 어린 소녀들의 시선으로만 봐도 이 시선은 무척 단편적이다.
현대사회에서 관계로 인해 생긴 다양한 숙제 중에서 가장 고질적이고 특수한 형태가 바로 가족이다.
너무 사랑하면서 동시에 너무 미워하기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을 실타래.
그렇기에 이 영화는 완전히 '가족영화'다.
영원히 풀기 어려울지도 모를, 그러나 영원히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가족의 실타래.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우리는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낸 시야로 세상을 봤을 뿐
이것이 바로 이 세상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진은영 <가족>
원글 주소 : https://brunch.co.kr/@3mon9/27
메일 주소 : wlstkdaud@naver.com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진상명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틱, 틱... 붐!>시계 소리의 강박에서 벗어날 노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0년 뉴욕,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존(앤드루 가필드)'은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8년 간 준비한 뮤지컬의 워크숍을 앞두고 마지막 작곡 작업에 몰두한다. 그런데 서른 번째 생일과 인생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공연을 며칠 앞두고 많은 일들이 갑작스레 몰려온다. 뉴욕이 아닌 곳에서 아티스트의 삶을 꿈꾸는 여자 친구 '수전(알렉산드라 십)', 꿈을 접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선택한 친구 '마이클(로빈 데 헤수스)'의 모습을 한 수많은 사건은 그를 전방위로 압박한다. 한정된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틱틱(tick, tick...)'거리는 시계침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가운데 존은 선택의 기로에서 그의 삶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틱, 틱... 붐!>은 천재 뮤지컬 제작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린-마누엘 미란다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이자, <렌트>로 잘 알려진 조너던 라슨의 자전적 뮤지컬 <틱틱붐>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1인극으로 만들어졌다가 라슨의 죽음 이후 3인극으로 각색되어 관객에게 공개된 바 있는 이 록뮤지컬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그려내고 있으며, 미란다 감독의 영화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존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는 정감 있고 심플한 발라드와 빠르고 직선적인 선율이 흐르는 록 음악의 만남에서는 청춘의 목소리만이 지닐 수 있는 남다른 호소력이 느껴진다.
그러나 <틱, 틱... 붐!>의 매력은 음악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제목에서부터 보이듯 끊임없는 시계 소리가 존을 시간의 압박 속에 던져놓는 가운데 그 압박에 대처하는 존의 이야기는 음악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영화의 감동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영화는 존의 일상 속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가난이라는 시계 소리를 보여준다. 존이 애써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 불현듯이 현실을 일깨우는 연체된 공과금 고지서가 대표적이다. 이 고지서는 'Sunday'라는 제목의 넘버로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노래는 더 빨리 음료와 음식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손님들의 제스처와 카운터의 소란, 레스토랑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 예약 전화가 울리는 벨소리의 압박을 유머스럽고 판타지스럽게 풀어낸다. 달리 말해 존의 일상에서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시간의 압박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실제로 마이클의 도움을 받아 얻게 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도 시간의 압력과 지각의 위험은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닌다.
이에 더해 존의 대인관계도 시계의 강박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다. 현대 무용가인 여자친구 수전은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댄스 학교로부터 강사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에 그녀는 어찌해야 할 찌 깊은 고민에 빠지고, 존에게도 그의 의견을 알려달라며 뮤지컬 워크숍 공연 외에 또 다른 기한을 존의 캘린더에 추가한다. 또한 사랑만큼이나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죽음의 문제마저 존을 더 옥죄어 온다.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 프레디가 응급실에 응원해 생사의 기로에 서고, 어린 시절부터 함께 배우와 뮤지컬 제작자의 꿈을 공유해왔던 절친 마이클이 에이즈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자 존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시계의 강박에 시달리며 피폐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른 번째 생일을 앞두고 지속과 포기 사이에 선 존의 커리어 역시 시계 소리에 에워싸여 있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직전인 존은 아직 작곡조차 다 마무리하지 못한 자신의 뮤지컬을 브로드웨이 스타들의 성취와 견주며 심한 좌절과 절망감을 맛본다. 이러한 존의 모습은 마치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자신의 나이를 비교하며 좌절했다는 일화를 떠올리게 하다. 그러다 보니 강렬한 열정의 소유자인 존도 내심 배우였다가 경력을 포기하고 잘 나가는 광고 마케터로서의 삶을 누리는 마이클을 부러워한다. 마이클의 아파트와 자신의 집을 비교하는 'No More'이라는 노래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보잘것없는지 그 처절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때 일상, 대인관계, 그리고 커리어까지 시계 소리에 의해 통제되는 존의 삶은 결코 낯설지 않으며 남일 같지 않다. 이미 현대인의 일상과 우리의 삶도 인간 본연의 생체 리듬과 해와 달의 움직임에 맞춘 시간이 아닌 시계가 정의한 시간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시계 밖의 시간>의 작가인 제이 그리피스에 따르면 시계로 측정하고 확인하는 '시계 시간'은 철저히 만들어진 개념이다. 산업화되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확립됨에 따라 노동력을 정확하고 규칙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핵심 도구로 시계가 적극 활용되었고, 그 결과 시계가 정밀해지고 시계 소리가 자주 들리면 들릴수록 사람들의 삶에서 자율성과 창조성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전적인 예술가와 안정된 회사원 사이에서 고민하는 존에게 시계 소리는 유달리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 또한 관객 입장에서도 그의 삶을 옥죄는 수많은 기한과 마감은 자연히 각자의 아침을 깨우고 스케줄을 일깨우는 알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존의 예술가로서의 도전, 열정, 그리고 노력에는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존의 귓가에 스치는 시계 소리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하려는 그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방증하며, 더 나아가 현대 사회를 사는 모든 이의 바람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노래에는 시계의 권력에 종속되기를 거부한 채 보헤미안으로서 자유로이 살고 싶어 하는 욕망과 절실한 소망이 가득하다. 이는 뮤지컬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악상을 떠올리는 수영장에서의 노래, 뮤지컬의 여주인공인 '카레사(바네사 허진스)'과 현실 속 여자친구인 수전이 같이 부르며 삶의 진짜 가치를 알려주는 노래, 무력함과 외로움이 극에 달해 홀로 무대에서 부르는 넘버까지도 모두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이유다.
이처럼 시계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채워나가자는 영화의 메시지는 서른 번째 생일을 대하는 존의 태도 변화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도입부에서 생일이 그저 엄청난 부담감을 간기는 마감 기한일 뿐이었다면, 영화의 끝에서 마주하는 생일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순간이다. 존 본인만이 만들 수 있는 인생의 경험이 모인 특별한 순간이자, "시계를 멈춰. 시간을 잡아"라고 말하는 첫 노래 가사의 내용을 직접 실천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워크숍에서의 성공적인 공연 덕분에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대신, 늘 그랬듯이 다시 시나리오를 쓰고 작곡을 해야 하는 존의 인생을 보여주는 전개 역시 인상적이다. 기계적인 시간과 기한에 맞춘 작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그 끝 이후에도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므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하자고 말하며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조너던 라슨의 뮤지컬을 영상화한 <틱. 틱... 붐!>은 그와 동시에 전기 영화이기도 하며, 그러다 보니 그의 실제 삶을 들여다볼 때 시계 소리에 시달리던 존이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이야기에는 더 큰 힘이 실린다. 라슨은 자신의 이름을 브로드웨이에 알린 뮤지컬 <렌트>의 초연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레 사망했다. 하지만 그의 사망은 그를 시간에 종속시키는 한계가 될 수 없었다. 그와 그의 작품들은 시간을 초월해 지금까지도 멋진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라슨의 인생은 그의 작품을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틱. 틱... 붐!>은 언제나 우리 귀를 괴롭히는 시계의 초침 소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주어진 인생을 사랑하며 누리자고 노래한다. 그 소망과 메시지 덕분에 <틱. 틱... 붐!>은 넷플릭스가 오랜만에 건져 올린 수작이자, 동시에 유독 뮤지컬 영화가 많은 올해 초겨울을 가장 아름답게 장식한 뮤지컬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시계의 노예에서 시간의 주인이 되는 꿈을 꾸다
-
- 🎬 탕웨이의 연기가 돋보이는 원더랜드 속 감정 🌟 #영화원더랜드 #탕웨이 #영화리뷰
안녕하세요! 레빗구미입니다!
🐰✨ 오늘은 김태용 감독의 신작 '원더랜드'에 담긴 세 가지 감정을 알려드립니다. 🎥🍿
이번 원더랜드의 평가가 좋지는 못한 상황인데요. 😢🔍
영화 속에 담긴 감정은 잘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저와 함께 영화 속에 담긴 감정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탕웨이 #영화리뷰 #원더랜드 #영화감성 #레빗구미 #감정분석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시고 레빗구미의 영화 감성과 함께 매력적인 영화의 세계로 빠져보세요! 🐰🌟🎬
네이버 프리이엄 콘텐츠 구독 :
-
- 미싱타는 여자들 리뷰 - 열둘, 열세 살 여공들의 울분에 대하여
*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2022년 1월 개봉예정인 작품 [미싱타는 여자들]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1970년대 평화시장에는 가난해서 혹은 여자라서 공부 대신 미싱을 타며 `시다` 또는 `공순이`로 불린 소녀들이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부푼 꿈을 품고 향했던 노동교실 그곳에서 소녀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를 하고, 희망을 키웠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청춘이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온 편지
-
-
- 영화 <수퍼 소닉2> 30초 예고편
최강 히어로VS수퍼 빌런?? 상상 이상! 예측 불가한 넥스트 레벨 어드벤처! 소닉과 너클즈의 대결이 궁금하다면 ❓ 4월 6일, 극장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