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eepless2021-11-18 11:36:46
중국의 포용일까, 포섭일까?
할리우드 장기 상영
중국 영화 당국이 11월 17일 수요일, 할리우드 개봉작인 <듄>과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지역 극장에서 한 달 추가 상영하기로 결정하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2달 내내 세계 최대 영화 시장에 걸려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10월 22일 개봉작인 <듄>은 12월 22일까지, 10월 29일 개봉작인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12월 29일까지 상영될 예정인데요. 세계적으로 극장이 살아나는 연말 상영이 확정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중국 시장에서 영화들은 기본 한 달 동안 상영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흥행이 보장된 영화의 경우 두 달까지 연장될 수 있는데요. 그 이상의 장기 상영은 '선전 영화'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2020년 7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약 3달 동안 상영되었던 할리우드 대작들 덕분에 중국 시장도 한 숨 돌릴 수 있었 던 건 사실인데요. 이 시기에 할리우드 영화들이 중국 시장 매출 회복에 도움이 된 것이 이번 연장 상영에 기여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듄>과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팬데믹 이후 할리우드 첫 연장 상영작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2021년 5월 이후 그 어떤 영화도 중국 시장에서 1달 이상 상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데요. 심지어 지난 5월 21일 개봉한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중국 시장에서 2억 400만 달러를 벌어들였음에도 불구하고,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영화 상영을 위해 한 달 만에 극장에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8월 말 개봉한 <프리 가이> 역시 9,48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충분한 흥행 성적을 달성하였음에도, 10월 1일 국경절로 인하여 극장에서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세계 최대 시장이 된 중국 시장에서 할리우드 대작들이 연장 상영을 따낸 것이 제작사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임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듄>과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연장 상영 기간동안 기타 중국 영화들에 밀려 충분한 스크린 수를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큰 매출 상승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현재까지, <듄>은 중국에서 세계 매출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인 3,900만 달러 (약 2억 4900만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경우, 전 세계 매출 7억 달러 중 6,290만 달러를 중국 시장에서 벌어들였는데요. 이는 중국 시장에서 각각 흥행 수입 영화 7위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향후 더 커질 가능성이 큰 중국 시장인 만큼, 할리우드 대작들이 중국 작품들 사이에서 얼마나 큰 팜을 가져갈 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바입니다.
위드코로나와 함께 다양한 영화들이 극장을 찾아주고 있는 요즘
극장 영화들과 함께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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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남겨지는 사진과 사라지는 기억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시사회 참석해 관람한 작품입니다.
[토마스 회프커와의 사진여행 스틸컷 / 출처: 씨네랩 제공]
토마스 회프커 작가님의 커리어와 시대의 흐름까지사진에 문외한인 나로써는 처음 들어봤지만 “매그넘 포토스”라는 유명 사진 스튜디오에 소속되신 역사적인 사진작가분의 다큐멘터리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과거 사진들을 보여주는데, 무하마드 알리 옆에서 동행하며 사진을 찍으셨던 일화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 계셨던 분인지 실감했다. 또한 영화의 스토리가 작가님의 마지막 사진 여행임과 동시에 작가님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다보니 중간중간 작가님이 지금까지 찍어오신 많은 사진들이 나온다. 그래서 마치 영화를 보는 것과 동시에 사진전을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이전에 비비안 마이어 전시를 보러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는 보지 않고 갔다가 전시회 먼저 보고 영화는 나중에 봐야지 하고 미뤄둔 적이 있었다.이번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니 작가님이 전시회를 하신다면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참에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영화 속에서는 작가님의 지금까지 커리어에 대해서 차근히 말해주곤 하는데, 처음 포토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당시 찍었던 사진들이 보여진다. 아무래도 저널리즘의 특성상 미국 내에서 이뤄졌던 다양한 사건과 역사가 등장하고 현 시점의 미국이 대비되면서 나타난다. 이러한 영화 흐름은 마치 작가님의 커리어를 비춤과 동시에 미국의 역사를 함께 보여주면서 시대적인 흐름과 변화도 보여주었다.사진 작가라는 직업이 사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 이야기까지 함께 그려내는 직업이라는 점이 영화에서도 보여지는 것이다.이후 그의 사진이 변하는 과정을 보여진다. 처음에는 사건에 집중하던 모습에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분위기를 담아내는 것으로 넘어가고 마지막에는 자연을 찍은 사진까지 등장하면서 마치 나이를 먹어감과 비슷한 커리어를 보인다. 그것이 실제로 작가님이 나이를 들어가심에 따라 가지게 된 변화인지 단순한 우연인지, 편집에 의한 연출인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마지막 사진 여행을 떠나는 지금의 모습에 너무 어울리는 서사로 다가왔다.마지막 여행과 사진작가의 삶작가님은 알츠하이머를 3년 간 앓으면서 많은 기억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마지막 여행을 떠나신다. 이전에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제는 떠나버린 사람들을 추모하지만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하시는 장면들이 나온다.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이제는 떠나간 이전에 친했던 동료 “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작가님은 아내와 함께 폴을 추모하지만 끝내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사실 그가 찍은 사진은 기억이 나지만, 그에 누군지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이 대화는 이전에 아침을 먹으면서 했던 대화와 묘하게 연결되는데, 사진이라는 것은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억을 잃어가면서 사람은 잊혀지기도 하지만 그가 찍은 사진만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작가님이 지금 알츠하이머로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많은 것들을 기억 못하겠지만 찍으신 사진만큼은 우리에게 남아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또한 사진작가라는 직업조차도 사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그 사진을 찍은 작가님들은 기억에 남지 못한다는 점이 이 다큐멘터리가 그러한 인물을 그리고 있음과 동시에 그 인물의 기억도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남은 것과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반복되는 이야기를 남기는 것만 같았다.<토마스 회프커와의 사진여행>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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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억 달러를 향한 질주
5월 19일 국내 개봉 이후 6주간 총 2,275,323명의 관객을 모으며 2021년 국내 박스오피스 매출 1위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긴 기다림 끝에 찾은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개봉 3일 동안 7000만 달러 (한화 약 791억 원)을 모으며 팬데믹 이후 최고 수익 경신은 물론, 2019년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이래 최고 수익을 기록하였습니다.
개봉일이었던 6월 25일 당일에만 4,179개의 극장에서 3,000만 달러를 끌어모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 제 9편은 이전까지 북미 박스오피스 수익 1위를 달리던 공포 스릴러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기록을 큰 격차로 따돌리게 되었는데요. (<콰이어트 플레이스 2> 북미 오프닝 스코어 : $47,547,231)
이 기록에 대해 시리즈의 제작자이자 주역인 빈 디젤은 CTAOP(Charlize Theron’s Africa Outreach Project) 행사에서 “가장 좋은 점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극장이 돌아왔다!”라고 말할 수 있어 기분이 정말 좋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더불어 그는 극장 단독 개봉을 택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결정을 높이 샀는데요. 그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 동시 개봉을 택한 다른 스튜디오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만, 유니버설은 매우 대담했으며, 이러한 극장 개봉을 지지할 것이다.”라고 밝히며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본 작품으로 시리즈에 귀환한 프로젝트 설립자 '샤를리즈 테론' 또한 분노의 질주의 '대박' 오프닝 기록에 대해 “엄청나다. 이번 작품이 시리즈 제 9편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현재 약 80%의 극장만이 가동되고 있는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은 ‘캐나다’ 극장이 아직까지도 대부분 닫혀있기에 회복되었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시리즈 제 9편이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이전작인 스핀오프 작품 <분노의 질주: 홉스&쇼>의 오프닝 스코어였던 6,00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기록을 세웠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분노의 질주: 홉스&쇼>가 북미 최종 수익 1억 7300만 달러, 전 세계 수익 7억 5900만 달러를 기록하였기에, 제 9편이 이를 뛰어넘는 기록을 달성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는데요. 이 가정이 사실이 된다면, 전 세계 박스오피스 총 매출 10억 달러를 기록한 팬데믹 이후 첫 영화가 탄생하게 됩니다.팬데믹 이후 15개월 동안 420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말 그대로 "닫혀있던"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이 즉시 회복되길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전 세계 영화 산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제작이 중단되었던 많은 작품들이 개봉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제한된 상황 속에서 개봉해주었던 고마운 영화들로 인하여 관객들의 꺼지지 않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기다림’이 막연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회복될 극장을 기다리며,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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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러진 황후를 위한 선물
6★/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이자 헝가리 왕국의 왕비.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왕족으로 손꼽힐 정도로 타고난 외모를 엄격하게 관리한 여인. 네 명의 자식 중 두 명을 병과 자살로 잃은 어머니. 모두가 우러러보는 권력과 외양을 가졌으나 누구도 겪고 싶지 않은 슬픔을 두 번이나 마주한 비극적 인간. 〈코르사주〉가 영화로 소환한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에 관한 대략적인 인물 개요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엘리자베트에게는 이중적인 면모가 있다. 한편으로 그는 순응하는 여성이다. 173의 큰 키임에도 평생 50kg 이하로 몸무게를 유지했다고 한다. 지독할 정도로 엄격한 관리가 동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는 대중이 생각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외모로 살기 위해 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황후를 맞이하러 나온 대중 앞에서 기절할 만큼 코르사주를 꽉 조일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엘리자베트를 21세기 영화의 주인공으로 소환할 이유로는 어딘가 부족하다. 엘리자베트에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녀에게 황후라는 지위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릴 기회이기도 했지만 자유를 옥죄는 구속이기도 했다. 엘리자베트는 폐쇄 정신병동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의 처우에 관심이 많았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유럽 정세에도 자신만의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의견 표명은 계속 제지당하기만 했다. 엘리자베트의 권위는 ‘아름다운 황후’라는 젠더화된 표상 속에서만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트는 제한된 자유는 거짓 자유임을 알았기에 억눌린 자아를 분출할 대상이 필요했다. 운동, 남자, 여행과 같은 것들 말이다. 영화에는 엘리자베트가 수영, 승마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이들은 모두 '어딘가를 향해 이동하는' 운동이다. 엘리자베트에게 필요한 건 운동이 주는 해방감이었을 테다(펜싱은 말할 것도 없다). 자유를 갈망한 엘리자베트가 몇몇 애인과 밀회를 즐기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이들조차 왜곡된 이미지에 가로막혀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거나 스캔들이 터졌을 때의 후환을 우려하는 등 ‘답답한 현실의 초월로서의 사랑’이라는 엘리자베트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다. 여행을 떠나서도 세간의 평가와 눈길을 떨쳐낼 수 없기에 완전한 자유를 느끼기는 어렵다.
역사 속 실제 인물 엘리자베트는 1898년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그러나 〈코르사주〉의 엘리자베트는 다르다. 마리 크로이처 감독은 비극적인 삶을 산 황후 엘리자베트에게 품위 있는 죽음을 선물한다. 여행을 하던 엘리자베트가 하녀에게 자신의 역할을 맡기고, 자신이 하녀로 변장한 후 설렘이 느껴지는 몸동작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 즉 상상력으로 빚은 역사를 선물하는 것이다. 엘리자베트가 그토록 열망했던 ‘자유’로 자신의 마지막을 결정할 수 있게끔 허락한 것이다.
〈코르사주〉가 아카데미 오스트리아 출품작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작품성은 분명 어느 정도 보장받는다. 그러나 〈코르사주〉와 비슷한 주제, 질감으로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삶을 다룬 〈스펜서〉와 비교하면 의견이 갈릴지도 모른다.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절제된 연출의 〈코르사주〉를 보면 〈스펜서〉의 극적인 요소가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반대로 〈스펜서〉에 비해 〈코르사주〉가 너무 밋밋하고 지루하다는 감상평 역시 가능하다. 비극적 삶을 차분히 응시하는 영화와 그 삶이 품은 아이러니를 극대화하여 터뜨리는 영화에 대한 가치 평가에 따라 두 작품 중 무엇이 더 우위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스펜서〉가 더 좋았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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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매운 맛에 대해 알려줄게
좋은 선생님이라는 말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인자한 얼굴과 다정한 말투 <죽은 시인의 사회>와<굿 윌 헌팅> 로빈 윌리엄스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삶을 가꾸어 나간다는 것. 미래를 꿈꾼다는 일이 아름답고 멋진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람. 선생님.
하지만 꿈을 이루어 가는 현실은 꽤나 팍팍해서 막연한 응원만으로는 내가 원하는 목표에 다다르기 쉽지 않다. 엄청난 노력과 숱한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일이 다 반사다. 인자하고 다정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 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꿈을 성취 할 수 있도록 강하게 밀어붙이는 조련자…아니 조력자인 선생님을 만나기도 한다.
영화 <위플래쉬>는 뉴욕의 명문 셰이퍼 음악학교에서 입학하게 된 ‘앤드류’는 1학년 가을학기에 ‘플레쳐’ 교수에 눈에 띄어 최고의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첫 연습에서부터 ‘플레쳐’ 교수의 모욕적인 폭력에 직면하지만, 밴드의 메인 드러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져 목숨을 걸고 독기를 품고 연습하게 된다. 영화의 초반 ‘앤드류’가 실력을 인정받아 밴드에 발탁되고, 호감이 가는 ‘니콜’에게 말을 걸고,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다. 밝고 에너지가 가득했다.
‘플레쳐’교수는 셰이퍼 음악학교의 교수로 학교 재즈 밴드의 지휘자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고, 최고를 추구한다. 평범하게 좋은 것은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재능있는 사람들의 잠재능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채찍질 하는 스타일이다. ‘플레쳐’의 비정상적인 훈육 방식 때문에 우울증을 겪고 자살한 제자까지 생겼지만, 자신의 가혹한 방식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다.
가혹한 교수법으로 제자를 몰아부치는 선생과 자신의 꿈에 대한 욕심으로 ‘앤드류’의 드럼 실력은 점점 성장하지만, 그에 비해 삶은 조금씩 피폐해져 간다. 버스를 타고 드럼영상을 보며 공부하는 중에 온 ‘니콜’의 문자로 흐름이 끊어지고, ‘니콜’의 존재는 꿈을 향한 여정에 방해물로 여겨진다.
가족은 실패하고 쓰러질 때면 안아주는 존재이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직접 도와 줄 순 없다. 아버지를 관객석에 앉혀 둔 적도, 아버지를 위해 연주한 적도 없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오롯이 혼자서 나아가야한 하는 ‘앤드류’에게 성과지향주의인 ‘플레쳐’는 좋은 선생이었을까? 무조건 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가 참 어렵다.
‘플레쳐’는 목적이 분명하며,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고 심플한 사람이다. 항상 시간을 지키고, 극한으로 몰아붙이지만, 제대로 해냈을 때 상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순수한 의도를 내세우면서 자신을 포장하면서도 자신을 쫓겨나게 만든 앤드류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는 사람이다. 천재음악가의 탄생을 기다리면서도 치졸하기 짝이 없는 이 인간을 욕하고 싶으면서도 ‘앤드류’의 마지막 연주를 보고 나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사실은 결국 ‘앤드류’의 성장은 모두 ’플레쳐’ 덕분인 것만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관객인 나는 억압에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이뤄내는 성장에 뿌듯한 함을 느끼게 되는 모순감정에 둘러 쌓이고 만다. 그리고 ‘플레쳐’의 말을 다시 생각한다.
“너희가 한계를 넘어서는 걸 보고 싶었어. 난 그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 세상에서 제일 쓸데 없이 해로운 말이 ‘그만 하면 잘했어’야.”
나도 한 때 원대한 꿈을 꾸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시간이 꽤 오래 지나 마음 깊이 묵혀 둔 그런 이야기말이다. 마음의 안심을 주는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 그리고 채찍질로 빠른 속도로 꿈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선생님. 둘 다 갖춘 선생님을 만나면 좋겠지만, 둘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나는 어떤 쪽의 선생님을 바랄까. 만약 ‘플레쳐’와 같은 선생을 만나서 채찍질을 당했다면 나는 지금 그 꿈을 이뤘을까? 그 꿈을 이룬 세상의 나는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 부질없는 가정을 해본다.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한다. 미래에 나의 아이들의 위플래쉬는 어떠해야 할지. 영화는 아마도 나의 위플래쉬를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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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고 있나요?
봄바람이 불어오면 삶의 속도를 생각한다. 지난겨울엔 걸음이 빨랐다. 옷깃을 여미고, 목도리를 꽁꽁 싸매고 어깨를 잔뜩 움츠려 내 몸에서 바람을 맞을 면적을 최대한 줄인 뒤,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따뜻한 기운이 섞이기 시작하면, 늘 비추던 햇빛도 더 따사롭게 느껴져 어깨를 펼치고 조금 느긋하게 걷게 된다.
“목련이 피기 시작했네, 여기 산수유나무가 있었어?”
봄의 따듯한 공기는 차가운 것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입김을 불며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던 겨울과 다르게 걸음을 늦추고, 천천히 변하는 계절을 즐길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빠르게 앞만 보고 달려가던 내 일상의 속도가 확연히 달라지는 순간이다. 쌩쌩 부는 겨울바람의 속도와 벚꽃이 내리는 속도의 차이처럼 말이다.
영화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이야기’ ‘ 우주비행사’ ‘초속 5센티미터’ 세 가지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1994년 도쿄를 배경으로 1년 차이로 전학 온 타카키와 아카리의 이야기다. 둘 다 전학생이었던 지라, 학교에서 조금 겉돌지만 둘 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서로 친해진다. 하지만,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헤어지고, 둘만의 특별한 추억만 남은 채 시간이 흐른다. 반년이 지난 뒤 아카리는 타카키에게 편지를 보내고 다시 둘은 연락하게 되며 만남을 약속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타카키가 아카리를 만나러 가는 그날, 폭설이 내린다. 열차는 계속 지연되어 약속시간을 훌쩍 넘겨 깊은 밤이 되어서야 도착한다. 하지만 아카리는 기다리고 있었고, 그리고 마침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2부는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인 ‘타카키’ 이야기다. 보내지 못하는 메시지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타카키는 여전히 아카리를 그리워하는 듯하다. 그런 타카키를 처음 만난 중2 때부터 지금 까지 몇 년을 혼자 짝사랑해 온 카나에. 진로도 정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하나씩 가능한 일부터 하자고 마음먹는다. 카나에가 서핑을 하는 여름바다와 우주선이 쏘아 올려지는 여름 밤하늘이 아름답다.
3부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카리와
도쿄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는 타카키의 30대를 보여준다.
“그냥 일상생활만 해도 슬픔은 여기저기에 쌓인다.”
타카키의 집은 엉망이고, 일상은 공허함과 무기력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창문 밖엔 벚꽃이 흩날리는 봄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열세 살의 둘은 언젠가 다시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어릴 적 소망처럼 함께 벚꽃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벚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으로 남을 두 사람. 영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더 나아가 관계와 삶의 속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화는 무표정하게 ‘요 몇 년 동안, 앞으로 나아가고 싶고, 닿을 수 없는 것에 손을 대고 싶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향하는 건지도 모르고 거의 협박 같은 마음이 어디서부터 끓어오르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무작정 일을 했고 문득 나날이 탄력을 잃어 가는 내 마음이 몹시 괴롭게 느껴졌다.’ 고 독백하는 타카키의 얼굴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만의 속도를 찾아 프리랜서로 일하며 책상에 내려앉은 벚꽃을 보고 산책을 가는 길에 입가에 살짝 지어진 미소로 바뀌는 미묘한 변화를 보여준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너는 ‘나’ 일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나’를 만나고, 진짜 ‘나’로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초속 5센티미터로 생각해 보는 오늘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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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기억은 그 자체로 기록이 된다
당신은 매일 40개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마치 모국어인 것처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한다. 그러니 우선 외워야겠지. 시험공부하듯 어디에 적을 순 없고, 머리에 담아 조그맣게 읊조리는 정도만 가능하다. 종일 외우는 데에 집중할 환경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설거지나 재료 준비 등 주방 일을 하며, 당신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머리를 굴려야 한다. 잠들기 전 시간을 이용할 수도 있겠다. 기도문을 외듯 나지막이 웅얼거리는 당신을 핀잔할, 당신과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수백 명의 질타를 견디면서.
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제2차 세계대전, 나치 수용소, 그리고 페르시안으로 위장한 유대인. 세 가지 키워드로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영화 초반부의 방점은 '페르시안'에 찍혔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상황은 나치 수용소로 잡혀간 한 유대인이 페르시아인인 척하며 독일군 장교에게 알려줄 페르시아어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정확히는 '만드는' 과정. 그는 페르시아어를 할 줄 모르지만, 순간적인 기지는 뛰어났다. 거대한 거짓에 그럴싸한 작은 사실 몇 개를 섞으면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보인다던가. 앞으로 그가 겪을 일과 딱 맞는 말이다.
자, 어떻게 매일 40개의 단어를 만들며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도망가는 건 방법이 아니다. 지뢰밭에 발을 디디거나 독일군의 총을 맞거나. 죽음으로 향하는 길은 살고자 하는 당신이 택할 게 못된다.
다행히 영화의 주인공, 그리고 실화를 기반에 둔 소설의 주인공은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갈 때다.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타오르는 불. 불길에 그을리는 종이. 종이 위 까만 글자들이 사그라진다. 그 위로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이름과 역할이 생겼다 사라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한다. 암전. 이윽고 숲처럼 보이는 탁 트인 공간. 꼭 맞는 나무의 대칭 가운데,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절뚝이는 것도 같고, 무언가 위태로운 느낌이다.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커다란 코트를 짊어지고서. 걸음은 투박할지언정 무너지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한다. 영화가 끝나고, 본 것을 되새기면서 깨닫겠지. 복선 그득한 장면들이었단 걸.
'페르시아어 수업' 타이틀이 뜨고, 익숙한 풍경이 시야에 맺힌다. 덜컹대는 트럭 안,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 다만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눈빛들. 키 큰 남자가 옆 사람과 작게 조잘거린다. 남자의 무미건조한 눈빛은 옆 사람이 샌드위치가 있다는 말에 마구 반짝인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아주 유서 깊은 책을 줄 테니, 이거랑 교환하자고. 엄청난 값어치의 물건을 얻는 거라며. 눈망울이 큰 남자가 샌드위치를 내밀자 키 큰 남자는 제 몫을 제외한 남은 샌드위치를 책과 함께 넘긴다.
페르시아어로 된 책. 키 큰 남자가 샌드위치를 욱여넣으며 말한다. 훔친 거라고. 그건 유대교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도적질 하지 말라
지적하자, 대수가 아니라는 듯이 남자는 마저 씹어댄다. 눈망울이 큰 남자, 그러니까 영화의 주인공 '질'은 뒤이어 딴지를 걸지 않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별 수 없다고 받아들였을까. 훗날 자신도 율법을 무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도적질 하지 말라의 다음 37, 거짓증거 하지 말라.
트럭이 멈추고 독일군의 명령으로 안에 있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우르르 내린다. 소지품을 한 곳에 내려놔. 가방이 툭툭 바닥에 떨어지고 총살이 시작된다. 이때 우리가 아는 액션 영화 같은 드라마틱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 즉 우리 관객들이 보는 화면은 고정되었다. 정적인 프레임. 비명이나 절규가 나올 새도 없이 모든 일은 끝난다. 단 한 사람, 질을 제외하고.
그는 품에 있던 페르시아어로 된 책을 내밀며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군인들이 믿을 리 없는 소리다. 그러나 많고 많은 언어 중 페르시아어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로 그들은 혹한다. 페르시안이라니. 장교 '코흐'에게 데려가면 포상으로 통조림 열 개를 받을 것이다. 아니면, 죽이면 되고.
불신, 권위에 대한 자존심과 자긍심, 똑똑하다는 자만심. 이 모든 성질을 뭉쳐 사람으로 빚으면 코흐가 만들어지려나. 아니다. 이건 독일군 사령관도, 다른 장교들도, 다른 군인들도 충분히 될 수 있다. 다만 코흐만 가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간절함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동생이 있는 이란으로 넘어가 식당을 열 생각으로 그득하다. 독일을 벗어날 생각을 한다는 건 그가 당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무엇보다 독일의 패배를 예상하는 것이다.
질이 자신을 책의 주인인 '레자'라고 거짓말했듯 코흐 또한 자신의 속내를 숨기며 당에 충성하는 척 해왔다. '거짓증거 하지 말라'는 큰 틀에선 그들은 차이점이 없는 듯했다. 코흐도 결국 전쟁 통에서 살고자 했을 뿐 아닌가? 각자의 배경과 상황은 제각각이므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무언가를 어기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한다.
매일 이어지는 교습. 하루에 4개로 시작했던 수업은 갑자기 하루 40개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질은 패닉 한다. 끝이라는 생각에 도망치려 든다. 그러나 도망갈 곳이 없기에 제 발로 돌아온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며, 최선을 다한 거짓말로.
여기, 또 변수가 생긴다. 코흐가 명부 작성을 담당했던 '엘사'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질을 앉힌 것. 엘사와 달리 질의 글씨체는 명필이기도 하다. 그의 일터는 이제 주방이 아니라 명부가 펼쳐진 책상 앞이다. 질에게 주어진 건 45분의 시간, 명부, 만년필과 잉크, 그리고 독일어 40개가 적힌 종이 한 장. 질의 머릿속은 온통 단어 만들 생각뿐이긴 하나, 코흐가 시킨 일부터 하는 게 순서다.
펜촉에 잉크를 묻혀가며 꾹꾹 종이에 눌러 적다가 문득, 기시감을 느낀다. 눈앞에 보이는 건 글자들. 독일군의 철저한 관리 하에 수감번호로 불리는 이름들. 이름은 곧 단어다. 그 이름들을 조금만 변형하면 금세 새로운 단어가 탄생한다. 이거면 살 수 있다. 질은 들뜬 마음으로 '페르시아어'를 조합해간다.
시간이 쌓일수록 몇몇 군인들은 질이 불만스럽다. 특히 주방을 감독하는 일로 쫓겨난 엘사와 그리고 처음부터 질이 유대인이라고 확신한 '맥스'가 보기에. 위계가 엄격하기에 그들의 농간에도 질은 레자로서 목숨을 이어나간다. 교묘한 줄타기가 잘해가던 레자. 실수로 페르시아어 수업 첫날에 말했던 '빵'을 '나무'와 똑같은 단어로 발음한다. 그리고 끝난 줄만 알았던 레자는 사경을 헤매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건 코흐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그러니까 레자가 만들어 낸 페르시아어였다. 거짓에 거짓을 더하자 더할 나위 없는 견고한 진실로 변모한다.
코흐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레자를 변호하며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라고 명한다. 내키지 않아도 그를 친근한 호칭으로 부르던 질, 아니 이제 레자라는 명명이 우리의 눈과 귀엔 더 익숙하다. 모든 것이 엇비슷하게 뒤섞이던 순간, 전환점을 맞이한다.
독일군은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단체로 이송하고, 그럴 때마다 레자는 코흐의 보살핌으로 농장에 피신한다. 그는 마치 독일군의 아군 같다. 텅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코흐의 맞은편 침대는 이탈리아 형제가 차지했고, 저도 모르게 레자는 그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형제 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레자를 지켜낸다. 그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어쨌든, 레자는 목숨 하나를 직접적으로 빚진 느낌이다.
레자는 그 죽음들을 지켜보며 가라앉는다. 진짜 페르시안이라서 죽임을 당한 사람과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죽은 남자.
이 대목이 코흐와 그의 차이를 보여준다. 레자는 자신의 생존으로 직간접적으로 죽은 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 또한 죽음으로써 모든 잘못을 짊어지려 한다. 죽어 마땅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애석하게도, 코흐는 제 부하들을 총으로 위협하면서까지 죽음을 목전에 둔 그를 끄집어내어 곁에 둔다. 그에겐 아직 레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드디어, 독일의 패색이 짙어진다. 코흐가 그토록 바라던 독일에서의 탈출 시기다. 처음 수용소에 왔을 무렵 질이 꿈꿨던 일이기도 하다. 아마 잡혀온 초반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그는 홀로 도망치지 않았을까. 도망갈 기회가 생기자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듯이.
수용소 내 모든 문서들은 활활 타오른다. 레자의 손으로 적힌 무수한 이름들도. 이름의 주인들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글자가 사라지면 모든 증거가 사라지는 셈이다. 피해가 없어지면 가해 또한 잿더미가 된다.
코흐는 혼란스러운 수용소에서 레자를 빼낸다. 자신은 공항에 가서 테헤란으로 넘어갈 거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레자를 등진다. 레자는 뒤돌아 자신 앞에 놓인 광경을 본다. 눈으로 뒤덮인 곳. 길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만들 모든 발걸음이 곧 길이 될 테다.
당연히 코흐는 국경을 넘지 못한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벨기에인 행세를 하려 들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그의 눈동자는 마구 흔들린다. 하지만 꿋꿋하게 가짜 페르시아어를 모국어처럼 익숙하게 말한다. 그는 알 수 없었을 테지. 단순히 속은 게 아니라, 그가 말한 것들은 모조리 사람의 이름이었다고.
마지막.
질은 영국군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수용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느냐고. 수천 명이라는 답. 살아남은 다른 생존자들 또한 쉬이 답할 질문이다. 질문은 이어진다. 그중에서 기억 남는 이름이 있냐고. 기대가 담기지 않은 물음이다. 살아있는 게 기적인 그들에게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에게는 있다. 2,840개의 가짜 페르시아어. 2,840개의 이름들. 2,840명의 사람들이. 그는 머릿속에 빼곡한 명부를 읊는다. 천막 안이 점점 고요해지며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린다. 공간은 그의 목소리와 빠르게 놀리는 펜촉 소리만 들린다.
죄책감, 고통, 미안함, 고마움, 공포, 안도. 뒤섞인 감정은 눈물이 되어 뚝 뚝 떨어진다. 그래도 그의 입은 계속 단어들을 뱉는다. 살기 위해 빌렸던 단어들에게 진실을, 원래의 이름을 돌려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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