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10-21 16:32:26
할리우드 그리고 디즈니의 변화
<이터널스>
지난 20일 수요일, 넷플릭스 본사 앞에선 트랜스 인권과 관련된 대규모 행진이 열렸고, 그 이틀 전 같은 도시에선 새로운 장을 연 행사가 열렸습니다. 바로, 곧 개봉할 대작 <이터널스>의 시사 현장이었는데요. 할리우드 내에서 어쩌면 가장 보수적일 수도 있는 디즈니도 변화의 길을 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오는 11월 4일 개봉하는 모두가 기다려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영화 <이터널스>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영화 <이터널스>의 이터널스 중 한 명인 '파스토스'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이 캐릭터는 마블 영화의 첫 게이 슈퍼히어로가 될 예정인데요.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배우가 연기한 '파스토스'는 올림푸스 12신 중 불과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로 알려진 인물로, 이터널스 중, 가장 사고력이 뛰어나며, 코스믹 에너지로 설계한 기계들을 응용하는 이터널입니다.
마동석 배우의 출연으로 한국에서도 큰 기대를 얻고 있는 마블의 <이터널스>는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 레드카펫 행사를 가졌는데요. 클로이 감독을 비롯하여 안젤리나 졸리, 마동석, 리차드 매든, 셀마 헤이엑, 젬마 찬, 배리 케오간 등 주연 배우들이 총출동한 행사에서, 마블 스튜디오의 사장 '케빈 파이기'는 북미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이전에도 코믹북엔 동성애자 슈퍼히어로들이 있었다"고 말하며,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이터널스>에서 젬마 찬 배우가 맡은 '세르시'역의 남자친구 '데인' 역을 맡은 키트 해링턴 배우는,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버라이어티지는 <이터널스>와 같은 영화에 LGBTQ 캐릭터가 슈퍼히어로로 등장한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전하며, 파스토스의 파트너를 연기한 '하즈 슬레이만' 배우의 말을 옮겼습니다. "이건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자라면서 이런 것들을 보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정말요. 퀴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자살에 이르기도 하는 어린 퀴어들이 이제 이런 걸 볼 수 있게 되다니, 이건 정말 훨씬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터널스>의 제작진은 이에 덧붙여, "국적부터 성적 지향성, 인종, 연령에 이르기까지, <이터널스>가 지니고 있는 다양성은 전례가 없었을 뿐더러 너무 오래 걸린 일"이라고 전했습니다.
'셀마 헤이엑' 배우가 맡은 '아작' 역은 마블 코믹북에서는 원래 남자였는데요. 이에 헤이엑은 "저는 제가 50대의 나이에 멕시코인 슈퍼 히어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 배우 역시, "우리가 모두 함께 걸어 나왔을 때, 이것이 그렇게 새롭고 멋진 일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항상 이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걸까요? 기분이 정말 좋네요"라고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각장애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리들로프 배우 역시, '막카리'라는 역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는데요. 리들로프는 "오늘 밤, 사람들은 <이터널스>에서 또 다른 종류의 슈퍼히어로를 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양성을 담아낸 영화 <이터널스>는 오는 11월 3일 국내 극장에서 개봉하는데요.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낼 영화를 기다리며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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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가족 | 차분하나 팽팽하고 부조리한 가족드라마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돈만 벌면 된다는 태도로 반성 없는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형 ‘재완’(설경구)과 공정함과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자상한 소아과 의사 동생 ‘재규’(장동건). 전처와 사별한 재완은 필라테스, 요가 등 여러 자격증을 따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지수'(수현)와 재혼하고, 재규는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녀 교육, 시부모의 간병까지 빈틈없이 해내는 ‘연경’(김희애)과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누린다.
어느 날, 평온하던 이들의 가정과 일상이 돌연 깨진다. 재완의 딸 '혜윤'(홍예지)과 재규의 아들 '시호'(김정철)가 학원을 째고 놀다가 길거리에서 노숙자를 폭행해 중상해를 입힌 현장 CCTV 영상이 뉴스로 보도된 것. 재완과 연경은 즉시 혜윤과 시호를 지키려 하고, 재규는 시호의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면서 가족 간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하지만 재완이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하면서 네 가족의 갈등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영화관에서 봐야 되는 가족 드라마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관객들 사이에서 익숙해진 표현이 있다. '영화관에서 봐야 되는 영화.' 비싸진 영화 티켓을 구매해서라도 스크린으로 봐야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이맥스나 돌비시네마로 보면 더 좋고, 특별관이 아니더라도 영화관이라는 환경에서 봐야만 그 감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 <탑건: 매버릭>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이 표현이 붙는 작품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아이맥스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작품 또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기대할 만한 블록버스터 영화인 경우가 많다. 전자는 <오펜하이머>, 후자는 <듄: 파트 2>인 셈이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 혹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작품들은 '영화관에서 봐야 진가가 나온다'와 같은 평을 받지 못했다.
허진호 감독의 9번째 장편 영화이자 제48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공식 초청작인 <보통의 가족>은 다르다. 겉보기에는 평범하다. 일단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할 법한 작품은 아니다. 등장인물은 줄이고 활동반경을 넓힌 <완벽한 타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의외로 <보통의 가족>은 영화관에서 봐야 진가가 드러난다. 스크린 가득한 배우의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음향을 느껴야 비로소 맛이 사는 가족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차분하나 팽팽하게
<보통의 가족>은 제목에 충실하다. 미디어에서 흔히 묘사되는 한국 가족의 전형이 집약되어 있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 누가 어머니를 어디에 모실 지를 두고 갈등을 빚는 형제. 며느리 간의 갈등. 입시 때문에 학원 뺑뺑이에 시달리는 아들. 부모 몰래 탈선하는 딸까지. 많은 주인공 중 어느 누군가에게는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밖에 없는 판이다.
이는 양날의 검이다. 자칫 주말이나 아침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막장극으로 흐를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보통의 가족>은 절묘하게 균형점을 잡는다. 가족의 특성을 활용했다. 누구든 부모이기에, 또 자식이라서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이 있다. 영화는 그 감정을 최대한 끄집어내면서 상황이 급작스럽게 반전되더라도, 입장이 달라져도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다.
극장에서 보는 <보통의 가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난다. 수시로 바뀌는 주인공들의 심경을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배우들의 연기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자기가 폭행한 노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죄책감이 없는 혜윤이를 보면서 재완은 충격에 빠지는 순간이 대표적이다. 같은 소식을 들은 재규가 병원 구내식당에서 밥과 반찬을 입에 쑤셔 넣는 장면도 그의 심경을 꾸밈없이 전달한다.
사운드도 인상적이다. 갈등이 극에 달해 분노가 터지는 순간 적막만이 가득한 식으로 음향을 역이용한다. 재완이 혜윤과 사무실에서 상담하는 장면에서는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 그 덕분에 그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혹은 내렸는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재규와 연경이 차에서 말싸움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정보를 선택적으로 주면서 온전히 각 인물의 감정선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허진호 감독다운 심리 묘사가 빛을 발한다.
흥미롭고 야심 찬
더 나아가 전개도 흥미롭다. 두 형제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는 과정이 극의 핵심이다. 타락한 변호사 같던 재완과 정의만을 추구하던 소아과 의사 재규. 그들의 자녀 혜윤과 시호가 노숙자를 폭행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고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둘의 입장은 뒤바뀐다. 재완은 어른의 부모의 도리를 하자고 동생을 설득한다. 반면에 재규는 오직 자기 아들과 가족만 살리는 게 중요하다며 폭주한다.
특히 두 형제의 직업이 꽤 의미심장하다. 변호사와 의사. 한국에서 오랫동안 문과와 이과를 각기 상징하는 전문직. 어찌 보면 한국의 대표적인 엘리트 직업이다. 이는 <보통의 가족>이 자칫 작위적이라고 느낄 만큼 다양한 사연을 한 가족에게 쑤셔 넣은 이유와도 이어진다. 그저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보여주는 메타포로써 활용하려는 야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통의 가족>은 마치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한국의 부모 세대, 더 넓은 범주에서는 한국의 엘리트들이 어떻게 가족을 대하며 다음 세대를 길러내고자 하는지를 묻는 셈이다. 즉, 자라나는 미래 세대를 봤을 때 과연 한국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미래 세대가 겪는 아픔과 문제를 눈 감고 넘어갈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고쳐야 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물론 거시적 관점에서는 대답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보통의 가족>은 미시적 차원에서 거시적 문제를 다루기에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의사 동생을 활용해 딸의 봉사 실적을 꾸미는 식으로 아이들을 닦달한 결과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채찍질에 지친 아이들에게 잘못의 책임을 온전히 돌릴 수 있는지. 그들이 자기 자녀일 때 공정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 한국 사회의 난맥상이 한 가족의 모습에 한가득 담겨 있다.
솔직하나 겸허하게
그래서일까? <보통의 가족>은 허무한 듯 놀랄 만큼 솔직한 결말로 놀라움을 안긴다. 재완과 재규는 마지막까지 평행선을 달린다. 공정한 정의를 추구했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듯 보이는 아들 때문에 생각을 바꾼 동생. 가족만 바라보다가 죄책감도,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딸을 보며 정의를 쫓기로 결심한 형. 결국 동생은 형을 문자 그대로 들이박는다. 미래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현상을 유지하자는 생각으로.
재완과 재규의 선택마저도 한국 사회를 닮았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없어서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지 아무도 답을 주지 못하는 사회가 두 형제에게서 보인다. 흥미롭게도 <보통의 가족>은 이 상황에서 단언하여 답을 주거나 대단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오프닝과 결말이 이어지는 묘한 수미상관으로써 두 형제 모두에게,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꼬인 실타래의 책임이 있다고 암시할 뿐이다.
상업영화로서는 이 선택이 실망스러울 수 있다. 숱한 갈등을 열린 결말에 가깝게, 싱겁게 해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 메시지를 함께 고려하면 오히려 인상적이다. 답을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하고 겸허하게 보여주는 용기가 억지스럽지는 않으니까. 다 같이 웃는 가족사진을 보여주면서 진정으로 행복한 가족과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를 묻는 에필로그가 신선하지는 않아도 여운을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리하나 안이한
그러나 <보통의 가족>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가족 구성원 중 일부의 시점이 부재하다는 것. 바로 아이들의 시점이 찾아볼 수 없다. 철저히 부모의 시선으로, 기성세대의 시점에서 젊은 세대와 아이들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예를 들어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는 클리셰처럼 쓰이고, 시호의 학교 폭력 문제는 발단부터 해결까지 중요성에 비해 지나치게 간단히 짚고 넘어간다.
물론 이 소재들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도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은 맞다. 다만 다른 어른들을 보여주는 세밀한 묘사에 비해서는 아이들이 지나치게 기능적으로 사용된다. 그 결과 혜윤과 시호는 알 수 없는, 그저 악의만 지닌 평면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시호는 눈앞의 상황만 벗어나기 위해 부모도 손쉽게 속일 수 있는 전형적인 비행 청소년이고, 혜윤은 사이코패스일 뿐이다.
결국 메시지도 무뎌진다. 가족 드라마에 빗대어 한국 사회 문제를 보여주려는 게 <보통의 가족>의 의도다. 그런데 그 의도가 정작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바라보는 고정관념 섞인 시선을 드러낸다. 젊은 세대를 잘못 자란, 이해할 수 없는, 악마화된 존재로 그리면서 한국 사회가 겪는 갈등을 입체적으로 풀어낼 기회를 놓치고 만다. 예리한 야심과는 달리 <보통의 가족>의 끝이 평범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cceptable 무난함
차분하나 팽팽하고, 솔직하나 겸허하고, 예리하나 안이하게 담아낸 한국이라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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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라는 말없이 사랑을 드러내는 방법
본 글은 헤어질 결심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없이 사랑을 드러내는 방법
진정한 사랑은 모두 해피엔딩일까?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에서는 사랑에 빠진 두 인물이 고난 과 역경을 이겨내 함께 행복한 미래를 맞이한다. 이와 같이 사랑이 진정하다면 결국은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완성되어야 하며, 완성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일까? 이 물음에 <헤어질 결심>은 아니라한다.
<헤어질 결심>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과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서래’의 이야기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해준’이 용의자 ‘서래’에게 관심을 느끼며 일어나는 일이다. <헤어질 결심>은 전형적인 로맨스의 틀에서 벗어나 수사극의 틀을 사용한다. 사랑의 동기와 사랑의 행위를 담기보다는 사건의 동기와 사건의 전말을 담는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통해 사랑을 전달하지 않는다. 행동과 선택, 이별로 사랑을 표현한다. 결국, 둘의 사랑은 이어지지 못하며, 완성되지 못하는 미결의 형태로 남는다.
그럼에도 관객은 <헤어질 결심>을 보며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런 <헤어질 결심>은 ‘해준’과 ‘서래’의 사랑을 강렬하면서도 안개처럼 모호하게 표현한다. 사건 같으면서 사랑같은 일들이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멜로 장르와 수사 장르의 시너지
<헤어질 결심>은 수사물과 멜로물이 겹쳐있다. 두 장르의 결합은 둘의 사랑을 모호하게 만들 면서도 입체적으로 만드는 포인트였다. 영화는 초반부터 수사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형사와 살인사건 그리고 용의자로 구성된 전통적인 수사물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조사하고, 취조하는 과정을 따른다. 이와 동시에 멜로물도 진행된다. 멜로물에서는 두 인물이 만나 서로를 알게 되며 사랑에 빠진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형사 ‘해준’과 용의자 ‘서래’가 만나 취조와 조사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며 사랑에 빠진다. 수사물의 구조와 멜로물의 구조가 겹쳐 진행되며 둘의 관계를 깊어진다.
‘해준’은 올곧은 형사이다. 부하에게 존경을 받으며,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이지구’와의 취조에서 알 수 있듯 신사적인 모습을 유지한다. 이런 형사이기에 용의자인 ‘서래’를 계속 의심한다. 여기서 멜로물의 주인공이기도 한 해준은 ‘서래’를 의심하며 계속 생각한다. ‘서래’를 감시하며 ‘서래’에 대해서 상상한다. 동시에 범인일 가능성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기도수’ 사건이 마무리되고 ‘서래’와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가던 때라도 월요일 할머니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이는 올곧은 형사로서의 태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형사의 태도로 결국 ‘서래’의 범행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해준’은 ‘서래’를 체포할 수 없었다. 이전까지 지켜오던 올곧은 형사의 자부심보다도 ‘서래’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래’를 지키고, 형사인 자신의 붕괴를 선택한다. 형사로서 자부심 있는 사람이 사랑으로 붕괴되는 모습은 말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이 큰 사랑은 단순 멜로물이 아니라 중반부까지 수사물로 쌓아온 형사 ‘해준’의 캐릭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형사 ‘해준’이 보여주던 수사극의 틀은 영화 초반부터 주 장르로 이어지며 존재감을 보였다. 하지만 ‘해준’의 사랑이 이를 엎고, 수사를 망치게 되며 멜로의 존재감이 더욱 커진다.
두 장르를 활용해 사랑을 보여준 것은 ‘해준’만이 아니다. 이포에서 이루어지는 2부에서는 ‘서래’가 수사물에서 용의자의 역할로 사랑을 보여준다. 부산에서의 ‘서래’는 미스테리한 인물이었다. ‘서래’는 자유를 위해 살인을 하고, 범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형사인 ‘해준’의 마음을 이용했다. 목적한 바를 이룰 만큼 똑똑하고 강한 인물이다. 그런 ‘서래’가 이포에서는 ‘해준’을 위해서 살인을 벌인다. 부산에서의 ‘서래’는 수사물에서 악의 축인 범인의 역할을 완벽히 해낸다. 심지어 수사를 빠져나왔다. 그런 ‘서래’가 사랑을 느끼고는 다시 수사망으로 걸어간다. 사랑으로 수사물의 캐릭터가 멜로물의 캐릭터에게 밀려난 것이다. 이포에서는 ‘해준’이 다시 형사 로 돌아오려고 했다. 하지만 ‘서래’와의 취조와 조사를 통해 다시 멜로물의 주인공으로 바뀐다. 의심하고 경계하지만, 호미산에서의 ‘서래’의 고백과 스마트워치 녹음본을 들으며 ‘해준’은 ‘서래’를 놓지 못한다. ‘해준’이 형사로 사건을 알아감에 따라 ‘서래’의 사랑을 찾게 된다. <헤어질 결심>의 요소들은 따로 보았을 때는 멜로 이야기로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사랑의 동기, 행위가 아닌 사건의 동기와 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인물이 서로를 위해 수사물 속 자신의 캐릭터를 붕괴시키고, 희생하는 모습이 결합하여 사랑으로 보기 어렵던 요소들은 사랑으로 이해된다.
진정한 사랑, 거울 구조와 이항대립
<헤어질 결심>은 1부 부산에서의 ‘해준’의 사랑과 2부 이포에서의 ‘서래’의 사랑을 거울 구조로 보여준다. 1부에서는 사건 발생, 관찰, 사랑, 진실 순으로 진행된다. ‘기도수’의 사건으로 ‘서래’를 알게 되고, ‘서래’를 관찰하며 스마트워치에 녹음한다. 그러다 ‘해준’은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그 후 진실을 알게 되고 이별을 맞이한다. 2부에서는 ‘서래’가 ‘해준’의 거울처럼 반대로 이어간다. ‘서래’는 진실을 말하는 ‘해준’의 모습을 보며 사랑에 빠진다. ‘서래’는 ‘해준’처럼 스마트워치를 통해서 ‘해준’에 대해 기록하고, 이포에서 ‘해준’을 관찰한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해준’과 ‘서래’는 거울 구조로 서로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구조는 ‘해준’이 말한 것처럼 ‘해준’과 ‘서래’가 동족임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해준’이 ‘서래’ 를 사랑했던 것처럼 ‘서래’도 ‘해준’을 사랑하고 있음을 서사 구조의 유사함으로 드러내고 있다. 닮아 있는 둘을 보여주면서 사랑한다는 말 하나 없이도 그들이 서로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가장 쉽게 사랑을 드러낼 방법은 베드신, 결혼과 같은 요소일 것이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은 일부러 더 어려운 방법을 선택했다. 완성된 사랑과 스킨십, 결혼 대신 미결인 사랑과 범인과 용의자의 관계, 불륜이라는 관계를 내세웠다. 어려운 관계의 사랑은 사랑을 표현할 때 조심스럽게 만든다. 잘못 다룰 시에는 얕은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헤어질 결심>은 더욱이 ‘사랑’이라는 단어와 섹슈얼한 연출을 사용하지 않고, 거울 구조를 통해 ‘해준’과 ‘서래’의 사랑을 드러냈다. 거기다 둘은 관찰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서로의 스마트워치 녹음본을 듣는다. 서로의 관찰을 다시 바꾸어 듣는 모습은 단순히 닮은 것이 아닌 서로를 바라보며 닮아가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해준’과 ‘서래’의 관계와 다른 인물과의 대비로 <헤어질 결심>의 사랑을 드러내기도 한다. 정안과 ‘해준’의 관계와 ‘서래’와 ‘해준’의 관계는 섹스로 대조된다. ‘정안’과 ‘해준’은 무슨 일이 있어도 관계를 가지기로 약속했다. ‘정안’은 그 약속에 만족감을 느끼고, 관계를 통해 ‘해준’과 행복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안’은 섹스가 서로의 관계가 문제없음을 보여준다고 느낀다. 그런 ‘정안’은 ‘해준’과 대화에서 서로에 차이를 이야기한다. 정안은 이과이고 살인과 피가 없어도 행복하지만, ‘해준’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에 비해 ‘해준’과 ‘서래’는 단 하나의 키스신 외에는 섹슈얼한 연출이 드러나지 않는다. 둘은 대화와 시선을 통해 관계를 드러낸다. ‘해준’은 ‘서래’에게 같은 동족인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둘은 유사한 점이 많다. 말씀보다는 사진,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한다. ‘해준’은 ‘서래’와의 대화를 위해 중국어를 배우는 모습도 보인다. ‘서래’는 ‘해준’의 사건에 관심을 가져준다. 함께 사건 이야기를 하거나 ‘해준’의 일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처럼 두 관계는 대조됨을 알 수 있다.
육체와 정서의 대조뿐 아니라 완성과 미결의 대조이기도 하다. 정안은 ‘해준’과 결혼한 사이이며, 섹스하는 사이이다. 결혼과 섹스는 로맨스 장르에서 사랑의 완성, 이어짐을 상징한다. ‘서래’는 결혼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육체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해준’은 두 관계 모두 파괴되지만, ‘서래’와의 관계를 우선했다. 두 관계의 비교로 <헤어질 결심>이 드러내고자 하는 사랑이 정서적인 사랑임을 알 수 있다. 정서적인 사랑만 있을 때보다 이항 대립 되는 관계를 통해 말하고자 한 사랑을 돋보이게 했다.
‘서래’의 관계에서도 <헤어질 결심>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서래’의 2명의 남편은 ‘서래’를 존중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위해 ‘서래’를 희생하도록 만든다. ‘기도수’의 경우에는 ‘기도수’의 소유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문신을 하게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위해 ‘서래’를 폭행한다. ‘임호신’의 경우는 ‘서래’의 흡연을 금지시킨다. 호통치며 나가서 피라고 하는 ‘임호신’의 모습은 설득이 아닌 일방적인 금지이다. 이처럼 ‘서래’는 2명의 남편에게 희생되었다. ‘서래’는 그 두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해준’은 ‘서래’를 존중한다. ‘서래’의 흡연을 금지시키지 않으며, ‘서래’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준’은 ‘서래’를 위해 희생했다. 평생 지켜오던 형사의 자부심을 버리고 ‘서래’를 지켜냈다. ‘서래’는 그 순간 사랑을 깨닫는다. ‘해준’과 ‘기도수’, ‘임호신’의 대조를 통해 <헤어질 결심>이 보여주고자 하는 희생적인 사랑이 보인다.
이렇게 <헤어질 결심>은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두 가지의 개념을 통해 <헤어질 결심>이 전달하고자 하는 사랑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인간의 정신은 상반되는 것들의 관계, 즉 이항 대립을 통해 차이를 쉽게 인식할 수 있다. <헤어질 결심>이 제시하는 대립을 통해 ‘서래’와 ‘해준’이 선택한 정서적이고, 미결인 사랑에 대해 인식하게 만든다. 최종적으로 마지막엔 ‘서래’의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을 통해 이전에 사건들을 회상하게 만든다. 그 후 녹음본을 통해 이전부터 인식되던 사랑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사랑의 징조
<헤어질 결심>은 ‘사랑’을 사용하지 않고, 은유적으로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체계적으로 짜인 영화이다. 또 수사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복선을 통해 촘촘히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복선은 사건의 인과관계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월요일 할머니의 “월요일이 되길 바라면 가끔 정말로 월요일이 빨리 와”는 ‘서래’가 사용한 트릭에 대한 복선이었다. 거친 ‘서래’의 손, 함께 맞춘 월요일 할머니와 ‘서래’의 폰도 복선으로 역할 한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복선을 통해 ‘해준’과 ‘서래’의 사랑을 보여줬다. 사랑한다는 말대신 인물의 습관과 화면전환을 통해 인물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면, 아내와 관계 후 ‘해준’의 모습은 곰팡이, 엑스레이 화면이 전환되면서 다시 보인다. 곰팡이의 위치와 ‘해준’의 엑스레이 화면이 겹치는 부근은 심장 근처이다. 대사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해준’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또, ‘해준’이 가진 ‘서래’에 대한 마음은 ‘해준’이 ‘서래’ 남편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복선 중에서도 '해준'이 '서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에 가깝다. ‘해준’이 무의식적으로 ‘서래’의 남편들을 따라 하며 ‘서래’의 남편이 되고 싶은 상태를 보여준다.
질곡동 사건으로는 <헤어질 결심>의 두 주인공의 결말을 암시하기도 했다. 질곡동 사건의 범인 '홍산오'는 '오가인'을 너무 사랑했기에 살인을 저지른다. '홍산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감옥에 가는 일을 결심하고 벌인 일이다. '홍산오'는 결국 잡히기 직전 죽음을 택한다. '홍산오'는 죽음으로 ‘해준’을 피했고, 결국 ‘해준’은 사건을 완결시키지 못했다. 또한 '오가인'과 '홍산오'의 사랑도 완성도, 실패도 아닌 모습으로 남겨졌다. 이런 '홍산오'의 모습은 ‘해준’과 ‘서래’ 둘과 닮았다. '홍산오'의 행동으로 이포에서의 ‘서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죽을 만큼 사랑하는 ‘해준’을 위해 ‘서래’는 살인을 벌이고, 사라짐으로 ‘해준’에게 해결되지 못한 사건으로 남겨진다.
촘촘히 짜인 미결
<헤어질 결심>은 거울 구조와 이항 대립 관계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미결의 사랑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복선을 통해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1부와 2부로 나뉜 사건들을 연결한다. 장르를 결합하여 서사를 강화한다. 심층에 깔려있는 촘촘한 구조들로 관객이 살인 사건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사랑을 느끼게 만든다. <헤어질 결심>의 구조는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계속 대칭되고 대조된다. 관객이 <헤어질 결심>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랑’이라는 표현 대신 상황을 통해 ‘해준’처럼 고민하게 만든다. ‘진실된 사랑일까?’, ‘이게 맞는 행동일까?’, ‘서래와 ‘해준’은 같은 마음일까?’. <헤어질 결심>은 이렇게 이어진 생각을 결말에서 ‘서래’의 대사를 통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사랑이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이라는 명확한 말을 앞세우지 않고 안개처럼 흐릿하게 사랑을 찾아다니게 한다. 둘의 대화와 마음을 사랑이라고 확실히 말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흐릿함 속에서 무엇이 대조하고, 대칭시켜 사랑이라는 존재를 서서히 드러낸다. 이런 영화의 구조는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와 비교할 때는 새롭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 사랑과 비교하면 새롭지 않다. 사랑은 다양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현실의 사람들은 영화의 구조처럼 끊임없이 대조하고 내면의 구조를 따라가며 사랑을 찾고자 한다. ‘서래’처럼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해준’처럼 고민하기도 한다. 둘의 사랑처럼 사랑이 ‘헤어질 결심’이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헤어질 결심>은 사랑이라는 개념에 가장 대표적인 기표 ‘사랑’을 가려서 우리가 계속 찾아다니던 사랑의 의미를 들여다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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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립 투 그리스> 오디세우스의 두 발자국을 쫓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국 유명 배우 '스티브(스티브 쿠건)'와 '롭(롭 브라이든)'은 ‘옵저버’ 매거진의 제안으로 6일 동안의 그리스 여행에 나선다. 터키 아소스를 시작으로 이타카에 이르기까지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르는 둘은 동시에 레스보스 섬에서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의 유래, 델포이 신전에서는 신탁을 받는 방법, 아테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그리스 비극과 희극의 차이 등 온갖 주제로 인생과 예술, 사랑에 대해 토론과 농담을 나눈다. 이처럼 유쾌하던 여행은 스티브가 아들의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고 롭이 아내의 빈자리를 절실히 느끼는 찰나에 뭉클한 인생 여정으로 변모한다.
2010년 <트립 투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트립 투 이탈리아>와 <트립 투 스페인>을 거쳐 2021년 <트립 투 그리스>로 이어지는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트립' 시리즈는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작품이 아니다. 마치 <꽃보다 청년> 시리즈를 영화관에서 보는 듯한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보는 풍광과 즐기는 음식,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는 때로는 극적으로, 때로는 그들 바로 옆에서 함께 여행을 즐기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인 <트립 투 그리스>도 다르지 않다. 여름날 에게 해의 바다를 수영하는 행복, 다 무너져가는 델포이 신전에서 안개 낀 그리스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벅참과 허무함, 그리스의 자랑인 꿀술에 곁들인 다양한 해산물과 육류 요리의 향연은 당장 영화관을 박차고 그리스로 날아가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여행지에서의 로맨스와 예상치 못한 만남은 이 모든 경험을 더욱 화려하고 다채롭게 즐기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이국적인 도시와 매력적인 레스토랑, 맛있는 음식 뜨거운 태양과 푸른 바다의 향연만으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알쓸신잡> 마냥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스워즈,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셸리,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와 같이 특정 인물을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전작들처럼, <트립 투 그리스> 역시 터키 아소스에 위치한 트로이 유적지로부터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를 대표할 수 있는 수많은 인물들과 영웅들 중 굳이 오디세우스를 여행의 나침반으로 선정한 것은 <트립 투 그리스>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자타공인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인 헤라클레스와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의 시조 테세우스를 비롯해 아르고 호의 원정을 이끈 이아손의 행적을 따라가더라도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부분의 장소를 둘러보는 데 사실 아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의미심장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두 주인공이 겪는 서로 다른 모습의 삶에 담겨 있다.
성공에 대한 야망이 가득해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던 스티브는 어느새 성인이 된 아들로부터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한다. 즐거운 여행과 로맨스를 즐기다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빠진 스티브에게 이제 그리스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그리스인들이 저승세계의 입구로 여겼다는 동굴 안에서 그는 자신이 마치 아버지 대신 스틱스 강의 뱃사공 카론이 모는 나룻배를 타는 듯한 불길한 느낌을 받고, 밤에는 영혼들이 영원히 떠돌아다닌다는 아스포델 들판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악몽까지 꾼다. 결국 마지막 목적지인 이타카로 향하던 중 부고를 접한 스티브는 급히 아들이 있는, 20년 전에 이혼한 아내와 함께 살았던 집으로 돌아간다.
한편 편안한 여행을 추구하는 롭은 일주일 간 여행을 떠난 것에 불과한데도 끊임없이 가족을 그리워한다. 낮과 저녁을 가리지 않고 딸에게 영상통화를 거는 그는 자신만이 그리스의 미를 즐기는 것이 불편하고, 잠시 집을 떠난 사이 더욱 커지는 아내의 빈자리를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스티브가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는 아내를 마지막 목적지였던 이타카로 불러 멋진 재회를 즐기고, 그녀와 함께 여행을 계속하며 그토록 바라던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을 영위한다.
이러한 스티브와 롭의 이야기는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를 구성하는 두 모티브를 각각 나누어 재해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집으로 가고 싶은 지친 여행자이면서 호기심 가득한 열정적인 여행자라는 두 개의 모티브가 겹쳐진 영웅이고, 그래서 선역도 아니고 악역도 아니며 매우 입체적이고 인간적이기에 가능한 해석이다. 우선 오디세우스는 지친 여행자다. 단순히 트로이에서 10년을 보내고, 바다에서 10년을 떠돌았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 끝에 다다른 항해 중 잠시 들른 저승에서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의 혼을 만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깊은 슬픔에 빠지기 때문이며, 갓난아기 이후로 보지 못한 아들 텔레마코스가 자신을 대신해 가족을 지탱해야 했던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작중 스티브는 이러한 오디세우스를 닮았다.
동시에 오디세우스는 열정적인 여행자다. 그는 키르케와 칼립소가 제안하는 안정적이고 죽지 않는 삶을 마다하고 바다로, 이타카로, 아내를 향해 끊임없이 항해한다. 어떤 괴물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어도 그리워하던 아내 페넬로페를 만나고, 그녀를 괴롭히던 모든 구혼자들을 죽이고 행복을 누릴 때까지 결코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탐구함과 동시에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이 오디세우스는 유머와 호기심으로 무장한 채 스티브의 여행까지 이어받은 롭의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중요한 것은 스티브와 롭의 서사로 나뉜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하나로 합쳐서 들여다볼 때, <트립 투 그리스> 속 주인공들이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디세우스가 그리스의 모든 영웅들과 가장 다른 삶을 추구한 영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그를 그리스인 중 최초의 현대인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이고, 그렇기에 그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삶을 일주일 간의 여행으로 축약시키는 이 영화가 본보기로 삼기에 가장 적합한 그리스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다.
그가 다른 그리스 영웅들과 목표가 다르다는 사실은 아킬레우스와의 만남과 이후 그의 행동에서 엿볼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저승에서 만난 아킬레우스에게 살아생전에 가장 위대한 전사였고 그 이름은 죽은 후에도 세상에서 영원히 빛난다고 위로를 건넨다. 이에 아킬레우스는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영광스런 오디세우스여! 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라고 답한다. 이러한 아킬레우스의 한탄을 들은 후 오디세우스는 옛 전우의 말대로 살아간다. 칼립소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며 인간으로서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귀향하여 페넬로페와 함께 이승에서의 시간을 행복하고 값지게 살아나간다.
이때 '칼립소(kalupso)'라는 이름이 그리스어로 '감추는 자'라는 뜻임을 고려하면, 오디세우스가 영원히 살되 세상에서 잊히고 자신의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거부했음을, 대신 아킬레우스가 말한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삶의 의미로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불멸의 명성을 추구하던 그리스 영웅들과는 달리 지금 당장의 삶의 아름다움에 주목했고,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발버둥 친 영웅인 것이다. 그 결과 오디세우스는 완전무결해 보이는 신화 속 인물들과 달리 인간적이고 소박한 면모를 가졌고, 그 어떤 영웅들보다 현대인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따라서 두 주인공이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르는 건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여행 중 현재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여행의 끝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며, 결국 각자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가장 먼저 경험한 그리스인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트립 투 그리스>는 오디세우스의 인간적인 삶을 답습하는 것을 벗어나서 그의 여행을 현실적인 범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스티브가 영화 촬영 당시 자신을 도왔던 스태프를 만나 난민 캠프로 가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머나먼 남의 땅에 와서 기약 없는 생활을 지속하고, 지중해 온갖 곳을 표류하며 집 없이 전전긍긍하며, 정착할 수 있는 집으로 가고 싶어 하는 난민들의 모습은 수천 년 전에 살았던 한 남자를 닮았다. 이때 대본 없이 실제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현지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원터바텀 감독의 연출은 그리스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영화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 스며들도록 유도하면서 더 크고 짠한 울림을 남긴다.
물론 <트립 투 그리스>의 모든 점이 좋지는 않다. 차 안에서 서로 자신이 가성을 더 잘 쓴다면서 '그리스'의 테마곡 'Grease is the word'를 부르는 장면처럼 두 배우의 상황극이나 농담이 과하게 길어지는 순간에는 극본 없이 배우들의 역량을 믿는 윈터바텀 감독의 스타일이 성공과 실패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듯 보인다.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기는 하지만, 또 그렇기에 안정된 형식의 부재가 낳는 태생적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그리스 신화나 비극, 역사 등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에 대한 관심의 차이에 따라 만족도가 널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점들이 그리스 여행이라는 코스 요리를 즐기는 것 그 자체의 즐거움을 가리지는 못하기 때문에, 두 배우의 여행과 대화가 선사하는 낭만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그리스 최초의 현대인을 따라 걷는 그리스의 과거와 현재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트립 투 그리스>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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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2025년에 예정이었던 개봉이 연기되어 많은 팬의 걱정을 불러일으켰던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스파이더버스>가 새로운 적임자를 찾았습니다. 해당 시리즈의 초기부터 창작팀의 핵심 멤버로 활약해 왔던 밥 퍼시케티와 저스틴 K.톰슨이 감독으로 확정되었습니다.
퍼시케티와 톰슨은 공동 성명에서 “마일스의 여정을 처음부터 함께하며 마지막 이야기를 연출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흥분됩니다. 프로젝트의 모든 순간에 담긴 창의성과 세심함은 정말 영감을 줍니다. 우리는 만족스러운 결말을 만들었다고 느끼며, 팬들이 이를 경험하게 될 날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퍼시케티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아카데미 수상 감독팀의 일원이었으며, 2편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에서는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습니다. 톰슨은 <뉴 유니버스>의 프로덕션 디자이너로서 혁신적인 비주얼 스타일을 개발했으며, 2편에서는 감독팀에 합류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차기작 <The Dish>
각본가 데이비드 코엡에 따르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차기작 <The Dish>는 SF 장르에 속하며, 스필버그의 초기 작품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The Dish>는 내년 2월 뉴저지와 애틀랜타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며, 조쉬 오코너, 에밀리 브런트, 콜린 퍼스 등이 캐스팅되어 있습니다. 스필버그의 오랜 협력자인 야누스 카민스키가 촬영감독으로 참여합니다.
스필버그가 직접 구상한 오리지널 스토리를 바탕으로 코엡이 각본을 작성했으며, 영화는 UFO를 다루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으나, 그 외 구체적인 줄거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에메랄드 펜넬의 <폭풍의 언덕> 북미 개봉일 확정
워너 브라더스가 에메랄드 펜넬의 <폭풍의 언덕> 북미 개봉일을 2026년 2월 13일로 확정했습니다.
<폭풍의 언덕>은 제이콥 엘로디와 마고 로비가 주연을 맡았으며, 2025년 1분기에 촬영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폭풍의 언덕>이 원작 소설의 17세기 영국 배경을 유지할지, 혹은 현대를 배경으로 재해석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초 이 영화를 차지하기 위해 워너 브라더스와 넷플릭스 간의 경쟁이 붙었지만, 극장 개봉을 중점에 둔 펜넬이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차기작 <Sgt. Rock>
2024년 <챌린저스>와 <퀴어> 두 편을 연달아 선보이며 바쁜 한 해를 보낸 루카 구아다니노가 또다시 신작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애프터 더 헌트>의 촬영을 마쳐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는 구아다니노의 다음 프로젝트는 DCU 영화인 <서전트 록>이라고 합니다. 데드라인에 따르면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서전트 록> 제작은 내년 가을 시작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서전트 록> 영화는 수십 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제작을 시도해 왔습니다. 1980년대에는 프로듀서 조엘 실버가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주연으로 고려했으며, 2000년대에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감독 제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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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일 | 맛을 알 수 없는 매튜 본표 스파이 비빔밥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상과 현실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첩보 소설 '아가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엘리'(브라이스 D. 하워드).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그녀에게도 고민이 하나 있다. 새로운 책의 마지막 챕터가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는 것. 이에 그녀는 머리도 식히고, 꼼꼼한 독자이자 조언자인 엄마 '루스'(캐서린 오하라)의 아이디어를 들을 겸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기차 안에서 습격당한 엘리는 돌연 나타난 조력자이자 현실 스파이인 '에이든'(샘 록웰)에게서 자기가 만든 스파이 '아가일(헨리 카빌)'을 겹쳐 보기 시작한다. 간신히 목숨을 지킨 엘리는 그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의 소설이 실제 사건을 예견하는 바람에 여러 차례 물 먹은 첩보 조직 '정보국'이 그녀를 노리기 시작했다는 것. 그렇게 엘리는 상상만 하던 첩보물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아가일>, 실패한 스파이 비빔밥
비빔밥. 한식의 대표주자다. 기내식으로도, 해외 한식당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식이섬유까지 한 번에 섭취할 수 있어서 웰빙 음식으로도 잘 알려졌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집에 남은 여러 반찬을 활용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기는 '조화'로부터 나온다. 밥, 나물, 고기 등을 단순히 섞었다면 사실 특별한 맛이 아니다. 각 재료의 맛이 날 뿐이다. 그런데 소스가 더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고추장이나 간장 베이스 소스가 여러 재료 사이에 일체감을 형성한다. 공통의 맛 안에서 각 재료의 맛이 더 다채롭게 살아나기도 한다.
매튜 본 감독의 신작 <아가일>은 첩보물의 비빔밥이 되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재료를 한 데 섞었다. <007>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설정과 주인공, <제이슨 본> 시리즈를 차용한 이야기를 더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느낌이 강한 팀 액션도 간간히 등장한다.
문제는 재료를 조화롭게 섞지 못했다는 것. 매튜 본 특유의 B급 연출은 위 재료를 아우르지 못한다. <킹스맨>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신선하지 않고, 안일하며, 과하기 때문. 그렇게 <아가일>은 이도저도 아닌 실패한 비빔밥이 되어 버렸다.
제임스 본드의 창조자를 재해석하다
<아가일>에서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재료는 <007> 시리즈다. 매튜 본의 전작을 고려하면 놀랍지 않다. <킹스맨> 시리즈에서 이미 제임스 본드의 클리셰를 비트는 연출로 자기 역량을 뽐낸 바 있으므로. 보드카 마티니를 고집하는 고급스러운 젠틀맨 스파이라는 이미지를 역이용하면서.
매튜 본이 재해석한 <007>의 핵심은 '환상의 공유'에 있었다. <킹스맨>의 주인공인 에그시. 그는 귀족도 상류층도 아닌 평범한 노동 계층 청년이다. 그런 그가 제임스 본드 같은 젠틀맨 스파이로 거듭나고, 세계를 구하며, 스웨덴 공주와 결혼까지 한다. 관객이 마음 한 편에 품고 있을 신분 상승, 계층 상승이라는 환상을 건드렸기에 <킹스맨> 1편은 강렬했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아가일>의 접근법도 유사하다. "평범한 내가 알고 보니 첩보원?"이라는 환상을 건드린다. 환상을 풀어내는 방식도 비슷하다. 제임스 본드로부터 에그시를 만들었듯이, <007> 시리즈 원작자 이언 플레밍을 본 따 엘리를 만들었다. 이언 플레밍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실제로 영국군 첩보부에서 근무한 바 있다. 이처럼 매튜 본은 실전 경험이 있는 첩보물 작가의 성별만 바꿔서 자기만의 이언 플레밍, 엘리를 창조한 듯 보인다.
제이슨 본의 발자취를 뒤쫓다
이에 더해 매튜 본은 엘리를 '제이슨 본'의 세계에 빠트린다. 1편 <본 아이덴티티>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시리즈의 핵심은 기억과 정체성이었다. 자기가 CIA 비밀 프로그램 소속 첩보원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던 제이슨 본. 그는 기억을 하나 둘 찾아가며 양심의 가책에 빠진다. 그는 자기가 죽인 사람들의 유가족을 찾아가 진심 어린 사죄를 건넨다. 더 나아가서 비윤리적인 작전을 허가한 조직의 수뇌부에게 복수한다.
엘리는 제이슨 본의 행적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가상의 스파이 아가일의 활약상을 그려낸 첩보 소설 '아가일'을 집필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는 엘리. 하지만 그녀의 소설 내용을 눈여겨본 첩보 조직 '정보국' 국장 '리터'(브라이언 크랜스턴)는 그녀를 악용할 음모를 꾸민다.
리터의 계략으로 인해 목숨을 건 추격전을 펼치기 시작하는 엘리. 그 과정에서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다. 난데없이 나타나 그녀를 도와준 요원 에이든이 과거 연인이었다는 것. 기억을 잃은 제이슨 본에게 조력자 니키 파슨스가 있었듯이. 더 나아가 본인 역시 엘리트 스파이였고, 여러 악행을 저질렀다는 기억도 되찾는다. 이에 그녀는 CIA를 무너뜨리려 한 제이슨 본처럼 리터에게 복수하기 위해 정보국에 잠입하기로 결정한다.
달리 말해 <아가일>의 이야기는 <제이슨 본> 시리즈 속 주인공의 성별만 바꾼 결과인 셈이다. 물론 그 맛을 희석시키려는 노력이 곳곳에 엿보이기도 한다. 자기 조직 내에 적이 있다는 첩보물의 대표 클리셰를 또 한 번 활용한다.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를 장식하는 액션의 경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처럼 팀원들의 호흡이 빛나는 대목이다.
비슷한 맛이 반복된다
문제는 상이한 재료에 공통의 맛을 더해줘야 할 소스다. 맛이 특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맛 자체도 심심하다. 일단 <아가일>은 매튜 본의 대표작인 <킹스맨> 시리즈의 그림자 안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떨치지 못한다. 액션이 대표적이다. 엘리가 스케이트를 타고 펼쳐 보이는 격투씬은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에서 주인공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라스푸틴과 펼친 액션과 겹쳐 보인다.
구체적인 액션 연출도 다시 보기 같다. 리타의 수하들과 복도에서 펼치는 액션 시퀀스는 진행 과정부터 카메라 구도에 이르기까지 <킹스맨> 1편을 똑 닮았다. 로맨스 음악에 과장된 액션을 더한 B급 감성 연출도 '위풍당당 행진곡'에 맞춰 사람들 머리가 터져나간 명장면의 하위호환에 불과하다. 이미 경험해 본 맛을 고집하다 보니 굳이 이 비빔밥을 먹어야 할 이유를 찾기가 퍽 어렵다.
그렇다고 혀를 사로잡을 만큼 맛이 강렬하지도 않다. 12세 관람가이다 보니 매튜 본 특유의 유혈 낭자함이 사라졌다. 매튜 본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장면을 경쾌하게 풀어내는 데 특출 난 감독이다. 잔혹한 상황과 유쾌한 연출의 간극이 커질수록 이율배반적 쾌감이 극대화되는 구조다. <킹스맨> 1편 속 교회 액션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아가일>에서는 정작 그 맛을 찾을 수 없다.
재료도 잘못 배합했다
소스도 특별하지 않은 가운데, 재료 배합도 호평을 받기는 어렵다. 영화가 구조적으로 균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가일>의 핵심은 두 개의 반전이다. 그런데 첫 번째 반전이 영화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다 보니, 그때까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힘이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엘리가 새 책을 좀처럼 쓰지 못해 고민에 빠진 도입부, 스파이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는 초반부의 템포가 유독 떨어지는 느낌이 강하다. 엘리는 조력자 에이든에게서 자기가 만든 캐릭터 아가일을 겹쳐 본다. 이는 작가 엘리의 현실과 첩보원 엘리의 현실 간의 가교를 만들려는 시도지만, 매끄럽지는 않다. 기차 내부 액션이나 런던 추격전을 그 일환으로 활용하지만, 상술했듯이 본 작의 액션은 임팩트가 약하기 때문이다.
매튜 본은 <킹스맨> 시리즈를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 이미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킹스맨: 더 트레이터 킹>과 <킹스맨: 골든 서클>의 속편인 <킹스맨: 블루 블러드>가 제작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킹스맨을 등장시키는 <아가일>의 쿠키 영상만 놓고 보면 이 작품은 <킹스맨> 세계관을 보강하기 위한 퍼즐 조각 아닌가 싶기도 하다. <킹스맨> 시리즈는 20세기 중반을 다루지 않았는데, <아가일>이 이 빈틈을 채우기 위한 프로젝트의 시작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아가일>을 보고 나서는 매튜 본의 큰 그림이 불안할 따름이다. <아가일>의 속편이 나와도, <킹스맨>과 연계가 돼도 다르지 않다. 같은 맛만 반복해서는, 단골 장사도 쉽지 않아 보이니까. 심지어 그 맛이 익숙해질 뿐만 아니라 약해지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Poor 형편없음
이제는 <킹스맨>을 벗어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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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영화 <117편의 러브레터>
죽음에 대해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던가.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한다는 거라고. 내 식대로 하자면 이렇게 적을 수 있을까. 죽는다는 건 더 이상 영화를 보지 못하는 거라고.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일 것이다. 죽음에 관한 문장에서 내가 내 삶을 유지해야 할 유용한 근거 하나를 얻게 되는데, 결국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하므로 나는 살아야 한다.
그렇게 미클로시(밀란 쉬러프)는 살았다. 자신의 생명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듣고도. 누군가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직 사랑하는 힘이 자신의 삶을 이끄는 추동력이었으므로. 시한부라는 진단을 듣고서 곧바로 117명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그가 아직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장면이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의 간절한 편지에 응답한 여인은 열일곱 명. 미클로시는 자신이 사랑할 사람을 한 명 선택한다. 릴리(에모크 피티)라는 여인이다.
미클로시가 릴리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친구 해리에게 그는 왜 자신이 릴리에게 마음이 가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알파벳 b를 우리 엄마처럼 써.” 미클로시는 덧붙인다. “그리고, 아프대. 나도 아파.” 이 장면은 흥미로운 논리학 하나를 우리에게 던져주는데, 너의 ‘있음’이 나의 ‘없음’을 채워줄 거라 기대하며 너에게 매혹당하는 것이 욕망이라면, 사랑은 나의 ‘없음’이 너의 ‘없음’을 알아볼 때 발생한다는 것. 미클로시와 릴리 둘 모두의 ‘없음’은 단연 둘이 앓고 있는 폐결핵과 신장 질환일텐데, 이것은 사랑의 성사를 방해하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촉진시키는 둘의 매개물이라는 것. 신형철은 이 점에 대해 유려하게 이미 표현한 적 있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6쪽)
이렇게 느낀 건 릴리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 ‘새벽의 열기’에서 릴리는 미클로시의 편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클로스는 글씨를 정말 예쁘게 잘 썼다. 아름다운 글씨, 우아한 세로획. 단어들 사이에는 다시 숨을 쉬는 데 필요한 만큼 여백이 머물렀다. 편지를 다 쓰면 그는 봉투를 찾아내서 집어넣은 다음 봉인하고, 머리맡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에 기대 놓았다.” (피테르 가르도시, 새벽의 열기, 12쪽) 릴리는 미클로시의 편지에서 아름다운 글씨체만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 빈 공간을 찾은 것이다. 릴리도 미클로시의 첫 편지에서 그의 ‘없음’을 알아차린 거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미클로시와 릴리, 둘 사랑의 이행과정이 편지, 목소리(전화), 얼굴이라는 점은 필연적이다. 편지부터 시작한 것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이겠지만, 또 편지여서 사랑이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편지는 너의 부재를 더욱 감각하게 만드니까. 그래서 나는 너의 빈자리에 내 사랑을 하나씩 채운다. 자주 얼굴이라는 너의 현존에서부터 시작하는 오늘날의 사랑이 가닿을 수 없는, 아득한 사랑의 깊이다. 우리의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이정식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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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진중한 연기도 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롭고 따뜻하게 볼 수 있어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니 주변 관계들을 생각하며 보시면 더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전체 영상을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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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가르침을 새기며 이 악물고 버텨 온 60년.
이제 일흔을 앞둔 임선빈 악기장은 다른 한쪽 귀의 청력마저
잃게 될 거라는 비보를 접하고,
어린 시절 처음 들었던 그 북소리를 담은 대작을 만들기 위해
23년을 아껴 두었던 나무를 꺼낸다.
그러나 날씨도, 몸도, 전수자인 아들 동국과의 협업도 마음 같지만은 않은데...
60년 동안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첫 북소리의 울림.
그 울림이 담긴 북을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