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8-23 15:18:52
차세대 조커라 불리던 '배리 케오간'
아일랜드에서 피습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에서 소름 끼치는 연기를 선보이며 차세대 히스 레저로 꼽히기도 했던 배우 '배리 케오간'이 <이터널스> 개봉을 앞두고 피습을 당했다고 할리우드 통신 "The wrap"이 전했습니다.
배리 케오간은 아일랜드의 서부 도시인 골웨이에 방문했다가 변을 당했는데요. 아일랜드 신문사인 “Sunday World”에 따르면, 케오간은 골웨이의 한 호텔 앞에서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곧바로 골웨이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베인 상처 등을 치료한 뒤 퇴원했다고 전해지는데요. 할리우드 배우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얼굴 부상에도, 그는 사건에 대해 별다른 기소 없이 넘어간다고 밝혀 화제 되고 있습니다.
배리 케오간은 2017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각인시켰는데요. 최근,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A24 작품 <그린 나이트>에서 다시 한번 씬스틸러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습니다.
케오간은 <그린 나이트> 이전까지 휴식기는 중요치 않다는 듯, 마블과 DC 영화에 동시에 캐스팅되며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그는 ‘클로이 자오’ 감독이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더욱이 기대를 모으고 있는 MCU의 <이터널스>에서 드루이그 역을 맡아 ‘길가메쉬’ 역의 마동석 배우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며, 10년 만에 돌아온 배트맨 실사 영화 <더 배트맨>에서는 스탠리 머클 역을 맡아 블록버스터 양대산맥에 모두 출연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배리 케오간 배우의 쾌유를 빌며,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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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SYNOPSIS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 도경을 잃고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난 명지, 같은 사고로 동생을 잃은 지은, 단짝 친구와 이별한 해수. 남겨진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상실의 슬픔 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따뜻한 희망의 이야기. 김애란 작가의 동명 소설 원작.
PROGRAM NOTE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문학적 기품을 바탕으로, 언어가 중요한 영화다. 이는 설혹 원작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작품을 접한 관객일지라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바, 중심인물들부터가 글쓰기 혹은 책과 관련된다. 하지만 그들조차 좀처럼 언어화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편지라는 형식으로나마 그들이 가까스로 발화에 이르는 과정이 영화의 얼개를 이룬다. 여기에 마비 내지 부동의 자세에서 활강에 성공하기까지 점증하는 신체들의 이미지가 대구 된다. 허리께에서 시작해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발진 역시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이처럼 일견 관념적으로도 느껴지는 이야기의 배경으로 광주와 바르샤바라는 구체적 지명과 풍경이 제시되고, 마침내 인물들의 트라우마가 발화되는 순간이 도래한다. 지난 10여년 간의 한국 상황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특정한 어느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터, 관객과 영화 속 인물들 간의 연결이 감정이입을 넘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장소와 시대와 디에게시스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트라우마들의 아픔을 공유한다는 감각이 뚜렷하게 환기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태양을 바라보는 인물들이 교차편집되며 서로 간 동시성이 확보되고 이를 목도하는 관객 또한 그들의 애도와 회복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연대라는 것은 이렇게 생겨나는지도 모른다. [이유미]
명지(박하선)가 사는 아파트로, 두 개의 소음이 동시에 날아든다. 전화를 알리는 휴대전화의 진동 소리와, 아파트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도난 경보음. 경고음과 함께 들려온 소식은 부고를 알렸다. 경고음은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소리 또한 인생에 갑자기 날아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지금까지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전혀 다른 곳이 되게 한다.
남편의 생명을 삼킨 물을 욕조에 받았다가 흘려보내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챙겨주시는 반찬은 냉장고에 그냥 쌓이기만 하면서, 명지의 세계 또한 달라져 있다. 영화 초반의 이러한 장면들은 짧은 호흡으로 뚝뚝 끊긴다. 이것은 상실 이후의 일상과 닮아 있다. 긴 호흡으로 뭘 하기 어렵다. 아니, 그냥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조차 긴 호흡으로 하기가 어렵다.
아주 작은 연결고리만으로 일상이 툭툭 끊어지기 때문이다. 잔뜩 삭아버린 실처럼. 초코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함께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어떤 날을 떠올리고, 테이블 모서리만 어루만져도 따뜻한 기억을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 내내 명지의 아파트 조명은 꺼져 있어, 따뜻한 빛으로 가득했던 과거와 더욱 대비된다. 불이 꺼져버린 집처럼, 영혼 어딘가의 불이 꺼진 것처럼.
조금이라도 연결고리가 적게 느껴질 곳으로, 명지를 불러낸 사촌언니의 다정한 초대를 받아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하지만, 명지가 가는 모든 곳에 명지의 상처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날아들었던 비보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원인불명의 발진이 몸에 붉게 자라난다. 우리 삶에 원인불명으로 찾아오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면 원인을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것이야말로 놀라운 일 같지만, 우리는 또렷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더욱 괴로워한다.
그 괴로움 속에서, 가장 황홀한 꿈은 그만큼 가장 슬픈 꿈이 된다. 부재한 누군가가 등장하는 꿈은 다 그렇다. 그런 세상에서는, 잘 지내냐는 짧은 말이 아프게 다가올 수도 있다. 전화를 해보자는 별 거 아닌 말이, 작고 유쾌한 말이 폐부 깊숙한 곳을 푹 찌를 수도 있다.
이들의 세상은 지독한 상실의 아픔에 둘러싸여 있어서다. 이건 어쩌면 물에 빠지는 것과도 비슷해서, 머리칼 올올이 깊숙한 곳까지 온통 나를 적시고 도저히 숨을 쉴 수 없게끔 괴롭힌다. 도경과 지용이 떠난 세계에 남겨진 이들은, 도경과 지용의 마지막을 앗아간 것과 비슷한 고통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인물들은 움직인다. 모든 단어에 추억이 묻어 있고, 딱 그만큼의 슬픔이 묻어나는 세상에서도. 명지가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났듯, 지용을 잃은 지은과 해수도 자기 자리에서 힘차게 움직이려 애를 써본다. 인물들이 이처럼 상실 너머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호흡이 조금씩 길어진다. 해일처럼 밀려와 관객을 덮는다.
왜 하필 폴란드 바르샤바였으며, 왜 하필 광주였나?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 도시. 죽음을 잘 기억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상실 이후의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임을 잘 아는 사람들의 도시. 충분히 위로되지 못한 슬픔은 끝까지 그 눈을 뻣뻣하게 부릅뜨고 살아 나를 따라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아버린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의 무수한 슬픔에 시선을 보내는 곳.
그곳에서 만난 현석(김남희)과 명지 사이, 덩그러니 질문 하나가 놓인다. “그때 그 손을 놓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 같이 있을까?” 현석이 명지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명지가 도경을 생각하며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원인불명의 상황에서, 남겨진 이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말 중에 이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은 웅덩이가 되어, 인물들이 겪은 제각각의 상실이 여기에 고인다. 그리고 거기서 이들은 만난다. 명지는 이 질문이 도경과 지용 사이에도 놓여 있었음을 깨닫는다. 놓친 손이 있지만, 또 힘차게 움직여 닿으려고 애쓰는 손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편지를 통해 지은과 명지의 손이 마주한 순간, 명지도 손을 움직여 메일을 써 본다. 부치지 못해도 괜찮다. 너무 어려워도,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조금은 괜찮다. <벌새>의 영지 선생님처럼 말해 본다.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지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시리가 남긴 그 새삼스러운 질문은 어쩌면, 말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끝에서, 명지는 마침내 햇빛을 마주본다. 밖에서 들어오는 흐릿한 불빛 외에는 좀처럼 밝아지는 일 없는 어둑한 집에서, 오렌지색 노을과 눈을 마주친다. 슬픔은 여전하겠지만, 명지의 아파트가 이전처럼 밝고 따뜻한 빛으로 차오르려면 한참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몸으로 마음으로 상실을 겪어내고 있는 지은도 명지도, 살아서 그 빛과 눈을 마주한다.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추고,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또 손을 뻗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23.08.27. 16:00-17: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3관 (상영코드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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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viction of Everyone, 영화 <브이 포 벤데타>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해 주던 친구가 있었다. 영화 초반에 나오던 독백을 적어서 편지에 적어주면서. 추천받으면 제때 보지 않는 이상한 습관이라도 있었던 건지, 한참이 지나고 이제서야 봤다. 이비의 목소리로 Remember, Remember the 5th of November로 시작되는 대사를 들으면서 그 친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라고 했을까 궁금해졌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그 친구를 마음 한 켠에 두고 시작되었다.
유쾌한 사이다 영화다. 이상적인 전개지만 배경은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미래의 국가이지만 익숙하다. 역사는 패션보다는 좀 더 큰 주기로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리라. 세계대전과 테러, 질병을 겪으면서 등장한 전체주의 국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질병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2차 세계대전은 강렬하며, 생체실험은 저 멀리 일제강점기까지 떠오르게 한다. 히틀러를 떠올리게 만든 것 같은 미래엔 서틀러가 있고 언론을 포함해 수많은 통제가 있다. 늦은 밤엔 통금이 있고, 하나가 되기 위해 다양성은 배척된다. 서틀러와 크리디는 일부러 질병을 퍼뜨려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넣었다. 생화학무기를 만들겠다던 생체실험은 본래 목적 대신 유일무이한 질병을 만들고 치료제를 갖고 있다가 적시에 풀고 이익을 얻는데 쓰였다. 얼마나 짜릿했을까. 온 나라를 내 손에 넣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기분이란. 또 얼마나 불안했을까. 조금씩 틈이 생기는 게 보일 때마다. 그래서 자꾸 통제하게 되었겠지.
사람들은 서틀러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불만은 있지만 그들에게 서틀러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차악이다. 다시 고통받고 두려워하며 살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도 그냥 듣고 있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면서 그런대로 산다. 때 되면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TV도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허전하다면 그건 사람들의 어딘가 결핍된 표정 때문일 것이다. 미술과 음악 등 예술은 물론 음식까지 제한했다니 서틀러는 정말 고약하기 짝이 없다. 예술은 자유롭게 자신을 비판하는 게 싫어서 그랬던 모양이고, 본인 입에만 넣으라고 있는 버터가 아닌데.
그때 나타난 게 브이다. 이비를 포함해 사람들이 가면을 쓴 그를 마음에 담게 된 건 그는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놓고 이 나라는 뭔가가 제대로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권력자들이 가장 큰 잘못을 했지만, 사실은 거울 속에 비치는 당신들이 가만히 있었던 걸 되돌아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놀라워서 귀 기울인 건 아닐까. 당장 나와 함께 하자고 하지 않고 1년 후에 함께 하자는 그 말에 사람들은 미친 사람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궤변론자나 과대 망상가라고 평가받지 않게 되는 건 정말 세상이 문제가 있고, 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을 때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억압적으로 느껴질수록 브이에게 설득력이 생긴다. 누군가에겐 그럴듯하고, 누군가에겐 헛소리가 되어버릴 땐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이상하지, 하나가 되자고 할수록 하나같이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게.
브이의 '11.5 선언'은 묘하게 교훈적이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밉상일 때도 있는데 이상하게 수긍이 가는 건 그는 사람들과 다르게 도전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그 방송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판소를 시원하게 폭파하면서 1812 서곡을 들려주었고, 언론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정규 방송을 차단하고 비상 방송을 장악해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였다. 방송국에서는 황급히 그를 검거한 것처럼 내보냈지만 이미 사람들은 믿지 않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내년 11월 5일을 기대하게 만든 것이다. 1년 후 11월 5일이 다 되어선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렸다. 모든 집에 자신과 똑같은 가면과 망토를 선물하면서 사람들은 거리에 나올 준비가 되었다. 그 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치고 한마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며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정이 지났을 때, 400여 년 전 가이 포크스의 생각처럼 시원하게 국회의사당을 날려버렸다.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해 준 건물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잃었을 때 쓸모를 다 한다. 국가나 정부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이쯤 되면 다가오는 느낌을 알다마다. 뭔가 술술 풀리는 게 좋으면서도 불편하다. 음악과 함께 펑펑 터지는 건물에 하늘 위를 수놓는 폭죽은 속이 다 시원하다. 그러면서도 그 광경이 잠잠해지면 이비가 처음 브이를 만났을 때 경계했던 생각이 그대로 소환된다. 이상은 어디에나, 누구의 마음속에나 있었지만 왜 우리의 현실은 늘 그러지 못했을까? 한바탕씩 뒤집어지면 이제는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다가도 다시 보면 제자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다시 사람들은 무기력해질 것이고 누군가는 권력이나 이익을 위해 기상천외한 일을 벌일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신념(이데아, Idea)에 답이 있다고 하는 건 안도해야 할 부분인지 모르겠다. 개인의 마음속 신념은 절대적일지 몰라도, 사람들 사이에 신념은 너무나 다른 의미다. 각자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거나 빼앗기까지 하며, 그럼에도 그 신념은 끈질기게 살아있다. 인간이 때론 신념의 숙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내가 잘 사는 것과 우리가 잘 사는 방향은 다를 때가 많다. 국가나 정부가 있는 한 그 부분이 충돌하는 문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나 정부 없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혼란과 변화 속에서 안정을 찾고 싶어 할 테니까. 둘 다 우리를 공포와 무기력에 잠식하게 만들기는 충분하다.
또 다른 불안감의 원인은 브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후에 브이처럼 이렇게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해 줄 존재가 있을까? 브이는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불렀지만 영화 속의 그는 적잖이 멋진 영웅이었다. 위트가 넘친다. 문학은 셰익스피어, 영화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좋아하며, 총보다 칼을 선호하고, 재즈를 즐겨 듣고, 자신만의 갤러리를 갖췄다. 심지어 앞치마를 곱게 두르곤 아침엔 몰래 구한 버터에 계란 넣은 토스트도 만들어주지 않나. 이비에겐 첫 만남부터 핑거맨에게 붙잡혀 있는 걸 구해줬을뿐더러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만큼의 온갖 V를 가져와 언어유희를 펼쳤다.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전신이 불타 있는 걸 알고도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면 왜일까? 흔들리지 않는 신념 혹은 그 신념을 내뱉는 깊은 목소리의 덕일까? 부정하지 말자. 브이는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만큼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다만 팬텀이 크리스틴에게 한 것처럼 이비에게 소유욕을 보이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물론 브이 역시 팬텀 못지않게 몹쓸 구석도 많다. 애초에 이비를 이 모든 사단에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처음 만났는데 재판소를 터뜨리는 그 자리에 데려가서 공범으로 만들지 않았나. 이비가 일하고 있는 BTN 방송국에서 때마침 '11.5 선언'을 하면서 건물을 장악했고, 이비가 그를 구해주자 예상에 없던 전개인지 고민을 하다가 자신의 집에 데려와 안전하게 내년 11월 5일까지 나갈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 이비의 신분증을 제 것처럼 훔쳐서 자신의 복수에 이용했고 두려움을 없애주겠다는 이유로 그녀를 고문하고 별로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기에 고문을 해줬어. 머리를 밀고, 물에 집어넣었지. 왜 그렇게 오래 고문했냐고? 네가 굴복하지 않았잖아. 용서를 바라진 않지만 넌 덕분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되었다면서. 가만 보면 상당히 뻔뻔하다.
영화에서 조금 아쉬운 건 고문 장면 이후에 이비가 브이를 쉽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둘 사이에 애틋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서 좀 더 시간을 할애하며 전달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제삼자가 보기엔 방금 전까지 자신을 고문했던 브이를 이비가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에라도 걸린 것처럼 사랑에 빠진 느낌이었다. 물론 무슨 의미인지는 안다. 초반부터 이비는 모두가 11월 5일을 기억하지만, 자신은 한 남자, 브이를 기억하겠다고 할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한다. 그날이 다가올수록 사랑도 깊어졌다. 심지어 두려운 게 없다던 브이는 막판에 이비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들은 통했다.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이 확고한, 단단한 존재가 되었다. 11월 5일 전날 밤 그들은 마지막으로 Cry me a river을 듣고 춤을 추었다. 사랑을 느낄 수 없으리라고 했던 브이에게 이비는 그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그렇다고 브이가 이비를 고문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진 않는다. 둘이 애초에 결사단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넘치던 증오가 갑자기 진정된다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사랑을 전하려 했던 발레리의 편지가 아니었으면 이비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장담할 수도 없다. 둘이 애틋해지는 걸 보고 함께 100퍼센트 애틋해지진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브이가 이비를 무척 아꼈기 때문에 고문까지 했겠다 싶다. 브이는 왜 그녀에게 빠져들었을까. 그가 우연을 믿지 않아서는 아닐까. 브이로 현란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이 이비(Evey)라는 이름에 v가 들어가서? 혹은 E-V라고 생각하니 너무 인연처럼 느껴져서? 마침 재판소를 터뜨리러 가는 저녁에 Eve라는 뜻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혹은 그녀에게 고마워서는 아닐까? 마침 방송국에서 위기의 순간 이비가 자신을 구해줘서?
혹은 얄팍하게도 그의 곁을 먼저 떠나서는 아닐까. 브이가 복수를 위해 그녀를 미끼로 썼을 때,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도망쳐 일하던 방송국의 PD 고든에게 찾아갔다. 고든은 묘하게 브이와 닮았다. 재즈를 틀은 채로 계란 넣은 토스트를 해주고, 집에 자신만의 위험한 갤러리가 있다. 그가 자신이 브이라고 장난칠 때, 왠지 그게 장난이 아닌 것도 같았다. 좀 더 평범하고 힘이 세지 않다고 해서 그가 브이와 다른 것은 아니다. 고든은 간판 프로그램의 PD고 무슨 바람인지 갑자기 말도 안 되게 풍자적인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브이에게 고든과 그의 결정적 차이점은 이비가 고든의 집에서는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단 점은 아닌가? 고든이 프로그램 내용으로 붙잡혀 가고 나서 도망치던 이비를 붙잡아 고문을 시작한 걸 보면, 지극히 공적인 이유만으로 고문을 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궁금했겠지. 그에게서 도망치고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지 않을지 확인하고 싶었을 갓이다.
Ideas are bulletproof.(My turn!)
고문 후에 이비가 브이를 떠난 걸 보면 브이가 준 교훈과 별개로 이비가 다행히(?) 완전히 그를 용서한 건 아닌 듯싶다. 이비와 브이는 복수라는 지점에서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복수를 하는데 피를 흘려야 하는가. 이비는 자신의 온 가족을 이 나라에 빼앗기고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영화를 보고도 복수에 눈이 멀어 외면당한 메르세데스가 안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만약 브이가 복수할 대상이 마침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그때도 우리는 지금처럼 브이를 공감할 수 있었을까? 그가 복수할 대상들이 이제는 힘을 잃은 약자가 되었다면 애초에 그는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도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죽였을 것이다. 그들의 힘을 빼앗고 모든 것을 정상화하는 방법이 브이에겐 죽음뿐이었다.
한 가지 더 아쉬웠던 건, 이비가 그저 브이를 기억하는 어느 특별한 누군가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만약 그 고문이 이비가 자신을 대신할 또 다른 브이가 될 수 있는 걸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해도 설득력은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이비에게 집과 심지어 10년을 넘게 노선을 깔고 만들어놓은 지하철 폭탄을 넘기는 걸 보면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브이는 복수가 삶의 목표였지만, 이비는 복수가 목표인 사람이 아니다. 그녀에겐 이름처럼 삶이 있고, 그 삶은 국회의사당이 폭파된 이후에도 이어진다. 원작에선 실제로 이비가, 이후에는 도미닉이 브이를 이어간다고 하는데 그 부분이 살아났어도 좋았을 것이다.
20년을 걸었던 도미노
영화는 브이의 원맨쇼이자 이비와 브이의 콤비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팀워크였다. 그래서 더더욱 반드시 브이라는 '한 남자'를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브이였고, 브이이며, 브이가 될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이제서야 그 영화를 보게 된 게 현실과 무관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우리의 과거는 지구 상 어딘가에서 되풀이된다. 그 과거는 누군가의 현재이자 미래다. 조금 가깝고 먼 나라들에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억압에 맞서 저항하려 하지만 영화처럼 속 시원한 모습은 보기 힘들다. 브이는 피의 복수에 성공했지만 현실엔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흐른다. 마음이 아파서 영화를 통해서라도 대리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역시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초인적인 힘을 가졌던 영화 속 브이를 찾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건 브이가 아닌, 이비, 발레리, 핀치 경감, 고든 PD, 그리고 안경잡이 소녀다. 이비가 브이가 방송국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돕지 않았다면, 발레리가 고문당하면서도 모두를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당에 27년이나 충성해 온 핀치 경감이 이 나라가 권력을 위해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걸 알고 이비가 레버를 당길 때 말리지 않았다면, 고든 PD가 사람들에게 코미디를 가장해 서틀러를 풍자하지 않았다면, 안경잡이 소녀가 브이의 상징을 스프레이로 그리지 않았다면, 술집과 식당, 집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치고 한 곳에 모여있지 않았다면,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1812 서곡이 그렇게 통쾌하게 들릴 리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끝까지 브이와 이비를 뒤쫓다가 걸음을 멈췄던, 모든 걸 알고 밤잠을 설쳤던 핀치 경감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 그의 촉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고, 언제 총을 내려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V가 들어가는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남는 건 모두(everyone), 그리고 신념 혹은 유죄(conviction)이란 단어다. 신념이자 유죄라는 뜻을 가진 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반드시 처벌을 받는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더라도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유죄다. 신념 없이 살아서 유죄가 되기도 하고, 신념이 있더라도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유죄가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특정한 정치체제나 사상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목격한 건 통제와 억압 사이에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었다. 어떤 해결 방법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영화도 무조건적인 답을 주진 않는다. 브이 역시 완전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느 누구도 완전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가 남긴 말들 중 스스로에 마음에 남았던 말을 기억하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뭔가가 제대로 잘못되었을 때, 그 말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으면 된다. Voil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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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 영화 대전, 과연 승자는?
한국 개봉 3주 만에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하며, 극장 전반을 견인한 <분노의 질주 9: 더 얼티메이트> (F9)가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6월 25일 북미 개봉을 앞둔 '분노의 질주' 시리즈 제9편은 5월 19일 전 세계 최초 개봉 이후 총 2억 5천만 달러 (한화 약 2780억 원) 를 벌어들였는데요. 특히, 중국 매출이 2억 300만 달러로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고무적입니다. 블록버스터 중에서도 특히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어야 하는 시리즈인 만큼, 당연히 손익분기점 돌파를 위해 이를 뛰어넘는 북미 수익을 기대해야 하는데요. 개봉 전 북미 외 기타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북미 시장도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을 거라 기대됩니다.
모두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할리우드의 경우,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켜낸 파라마운트 사의 <콰이어트 플레이스 2>를 제치고 개봉 버프를 등에 업은 또 다른 공포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가 1위를 차지하였는데요. <컨저링 3>는 북미 3,102개의 극장에서 2400만 달러 매출을 올리며, 많은 이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기록을 세우며 극장 박스를 지켜냈습니다. 이는, 워너브라더스의 <컨저링 3>가 이미 HBO Max에서 ‘추가금’ 없이 공개되었기에 더 놀라운 기록이기도 합니다. 현재, 워너브라더스 측은 <컨저링 3>의 HBO Max 시청 수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제작비 4000만 달러의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이미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올리며 시리즈 (스핀 오프 포함) 전체 수익을 18억 달러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컨저링 3>로 인하여 잠시 2위로 하락했던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북미에서 올린 경이로운 수익 8800만 달러를 포함하여 전 세계 총 1억 38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요. 아직 시들지 않은 인기를 보이고 있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다시 <컨저링 3>를 제치고 weekly 박스오피스 1위가 될 거라는 전망입니다. 이러한 북미 흥행에 힘입어 아직 개봉하지 않은 한국 시장을 포함한 기타 시장의 흥행까지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의 공포 명작 <여고괴담>과 같은 주에 개봉하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얼마나 많은 박스를 차지할지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공포 영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여타 지역과는 다르게 중국 시장에서는 디즈니의 <크루엘라>가 개봉일인 일요일 하루에만 약 20억 원을 벌어들였다고 하는데요. 이는 팬데믹 이후 개봉한 디즈니 영화 가운데, 개봉일 수익 850만 달러를 기록한 <뮬란>에 이은 2위의 기록이며,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과 <소울>보다 앞선 기록입니다. 워너브라더스와 마찬가지로 디즈니 또한 현재 디즈니 플러스 내 시청 수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보도를 통해 현재 <크루엘라>를 향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고 전했습니다.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디즈니는 곧바로 <크루엘라> 속편 제작을 발표했는데요. 올 7월 개봉될 디즈니-마블의 <블랙 위도우>까지 가세한다면 디즈니의 주가가 조금은 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연,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바 있는 <캐시트럭>이 개봉하는
이번 주 박스오피스 순위는 어떻게 될지! [씨네픽]을 통해 예측해보시길 바라면서!
영화로운 한 주의 시작 보내시길 바랍니다 :)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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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티넬> 아픔이 단지 수단으로 소비된 결과물
<상티넬> 아픔이 단지 수단으로 소비된 결과물
넷플릭스 <상티넬> 리뷰
1. 중동에서 특수 부대 '상티넬'의 일원으로 군사 작전에 나선 '클라라(올가 쿠릴렌코)'. 현지인들과 직접 대화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테러리스트를 체포했다고 판단한 찰나에, 그녀는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한다. 자신의 실책으로 인해 동료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집과 가족의 품도 그녀를 예전처럼 편안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어느 날 불안 속에서 상티넬의 임무를 지속하던 클라라는 동생 '타니아(마릴린 리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은 그녀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중동에서처럼 평화에 균열이 생겼음을 깨달은 그녀. 그렇게 그녀는 다시금 총을 든다.
영화 속 액션씬은 두 개의 관점으로 감상할 수 있다. 하나는 액션씬 그 자체의 완성도다. 맨손 격투, 카 레이싱, 추격전과 같은 액션이 얼마나 정교하고 연출되었는지, 촬영 방식은 액션의 질감을 얼마나 잘 담아내고 있는지, 액션의 구성은 얼마나 독창적인지 등을 따질 수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 액션 연출이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의 그것보다 발전했다는 평가나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 속 슈퍼맨과 조드의 싸움이 액션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극찬은 이 관점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액션씬의 전후 맥락에서 느껴지는 상황과 감정적 측면이다. 아무리 액션씬이 화려해도 등장인물들이 왜 싸우는지, 그들에게 이 장면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면 그 장면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외계인이 지구로 침공한 상황도 같고, 전투 시퀀스의 스케일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어벤져스> 시리즈와 달리 전투에 임하는 비장함과 승리의 기쁨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이유다. 이러한 맥락에서 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상티넬>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액션 영화다.
2. <상티넬>은 분명 짧은 러닝타임과 액션 영화의 조화에서 기대할 법한, 끊임없고 박진감 넘치는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합이 잘 짜인 현란함보다는 손에 잡히는 대로 쥐고 싸우는 처절함에 중점을 둔 맨손 격투는 복수심에 불타는 클라라의 심경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중동에서의 작전 수행 시퀀스처럼 총의 조준경이나 망원경의 화면을 그대로 활용해 전투나 액션이 시작되기 직전의 사실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몰입도를 끌어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액션 영화로서 좋은 장면을 보여주는 것과 별개로 <상티넬>의 뒷맛은 결코 시원하지 않다. 오히려 찜찜하다. 영화의 주제와 소재가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도구로서 소비될 뿐, 그 도구가 갖는 무게감에 대한 고찰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클라라와 타니아 자매의 트라우마 극복으로, 크게 두 가지 플롯으로 펼쳐진다. 우선 영화는 언니인 클라라의 트라우마를 조명한다. 중동에서 대테러 작전팀인 상티넬 소속으로 일하던 그녀는 현지인의 자살 폭탄 테러 징후를 미리 눈치채지 못해 동료를 잃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로 인해 귀국한 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그녀는 여전히 근무 중 평범한 가방을 폭탄물로, 후드를 쓴 행인을 테러리스트로, 부모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를 자살 테러를 시도하는 아이로 오해하며 힘겨워한다.
다른 한편에는 동생의 트라우마가 있다. 클럽에서 만난 한 남성으로 말미암아 성폭력을 당한 타니아는 가해자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소송이나 수사로 인해 자신의 개인사가 공개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며 적극적인 저항을 거부한다. 이러한 동생의 트라우마는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 통제력을 잃어가던 클라라가 개인적인 복수에 나서게 되는 촉매제로 작용하며 서로 다른 두 플롯을 하나로 묶는다.
3. 문제는 자매의 트라우마를 연관시켜 복수극을 풀어나가는 시도가 클라라의 행적에 설득력을 부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선 둘 간의 직접적인 관련성이 보이지 않아서 직관적인 이해를 돕지 못한다. 타니아가 성폭행을 당한 것에 클라라는 책임이 없으며, 자신이 마주했던 테러 집단이 동생을 공격한 것도 아니고, 순찰 근무 중 불안 증세가 범죄의 원인이 된 것도 아니다. 그나마 PTSD로 인한 불안정성이 무모한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 하지만, 짧은 러닝 타임에 슬로 모션이 빈번하게 등장하다 보니 이러한 심경의 흐름을 전달할 기회도 잡지 못한다. 그 결과 영화의 서사는 클라라의 내적 고통과 동생의 복수, 둘로 나뉜 듯 느껴지며 어느 것도 제대로 완결 내지 못한 찜찜함을 떨치지 못한다.
또한 하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써만 다른 쪽의 트라우마가 존재한다는 것도 문제다. 클라라는 가해자를 쫓아 사적 복수를 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난다. 이때 그녀는 피해자의 심경과는 관계없이 그저 자신의 책임이라는 스스로의 부담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범인을 쫓고, 직접 사살을 시도한다. 타이나를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동생을 대신해 일방적으로 실천에 옮긴다. 그렇게 피해자는 자신의 능동성과 의지가 모두 제거된 채 주인공의 행적에 어떻게든 정당성을 보여하려는 도구에 불과해진다. 그 결과 피해자의 아픔과 선택에 대한 고찰이 결여된 상태에서 맞이한 주인공의 해피 엔딩은 마치 향이 나지 않는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같다.
4.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발단이자 주된 플롯을 책임져야 할 클라라의 트라우마에 대한 묘사나 설명이 충분히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실 전쟁 트라우마를 지닌 군인, PTSD로 괴로워하는 군인은 더 이상 새로운 영화적 장치가 아니다. 전쟁 영화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1917>은 물론, 액션 블록버스터인 <6 언더그라운드>를 포함한 수많은 창작물에서 전쟁의 고통, 살인에 대한 죄책감, 전우를 지키지 못했다는 회한 등에 휩싸여 있는 군인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상티넬>처럼 중동 현지에서 대테러 작전 시행 도중 혹은 전투 중에 상해를 입은 군인의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을 필두로 문화적 이해 없이 중동 문제에 개입했던 서양 국가들의 행태에 대한 자기반성을 보여주는 영화적 장치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참전한 군인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개봉한 <고스트 오브 워>는 SF적인 상상력과 호러 영화의 문법을 동원해 미군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과정을 그려낸 바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버지 아들 군인>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한 부자의 모습을 다루며 그 트라우마가 대를 이어 유지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한다.
5. 하지만 <상티넬>은 전쟁 당시의 상황을 거듭 떠올리며 약물 중독에 가깝게 고통받는다는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는 묘사 외에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묘사함에 있어 그 어떤 도전적인 시도도 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영화가 제각기의 방식으로 참전 군인과 그 비판 의식을 다양한 캐리터와 장르 안에 풀어냈는데도 그저 관성적인 묘사를 보여주는 데 머무른다. 얼마나 개성 있게, 자신만의 비전을 가지고 빚어내느냐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가 좌우되는 와중에도 악수를 둔다. 그렇게 넷플릭스 <상티넬>은 보기에는 좋지만 알맹이가 없는 평범한 액션 영화로 남는다.
D(Dreadful, 끔찍한)
총격전과 맨몸 격투 사이로 휘발되어 사라진 두 피해자의 고통
* 본 콘텐츠는 브런치 DAY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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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 형사와 함께 펑펑 터져볼래?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범죄도시 2>가 개봉했다! 1편이 거의 나의 취향저격이었기 때문에 2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목 빠지게 기대하고 있었다. 이 시리즈 1편이 처음 개봉할 때는 영화를 지금같이 딥(?)하게 파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알던 정도였다. 근데 분명하게 알던 건 마동석 배우 특유의 캐릭터였다. 2015년에 <부산행>과 2016년 <베테랑>이 개봉했다. 여기서 나왔던 마동석 배우는 모두들 알다시피 싸움 잘하는 아저씨였다. 근데 싸움만 잘하냐? 아니다. 그 마초스러운 이미지에 귀여운 애교까지 장착하기 시작했다. 외적으로는 이랬고 또 배우의 본업 내적으로도 성과가 좋았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부터 <부당거래>까지 든든한 조연으로 필모그래피를 하나, 둘 씩 쌓아놓고 있던 터라 그가 잘 되는 건 그냥 시간문제였다. 아무튼, 이 영화 <범죄도시>는 이 배우의 유명세에 기름을 부은 작품이 됐다. 나 역시 마동석표 액션이 재미있다. 이런 사람들의 기대치에 힘입어 이 작품은 대박이 났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나 하얼빈의 장첸이야!!!!'나 '어 싱글이야'같은 유행어들이 우리나라를 강타했다는 건 아마 모두들 기억하실 것 같다. 나도 영화가 한참 유행할 때 보진 않았음에도 그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중에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된 나. 요즘에서야 책도 어느 정도 읽었고 영화도 보고 있지만 내가 나의 취향을 어림잡을 수 없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한국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저씨>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최애까진 아니더라도 '마음에 든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나이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시리즈의 후속작을 엄~청 기다렸고, 정식 개봉일인 19일보다 며칠 일찍 극장에 가게 되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K-슈퍼히어로였다! 2008년의 대한민국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 일이 있고 4년 후
장첸과의 한바탕이 있었던 4년 후. 금천구 강력반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경찰 업무를 하고 있다. 그렇게 공을 세웠는데도 뭔가 처우가 개선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 금천구에 사건이 일어났다. 정신병동을 탈출한 남자가 여대생 하나와 가게 주인을 데리고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홍석과 상훈, 동균은 상황에 어쩔 줄 모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석도의 행방을 찾는 금천구 강력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쿵쿵 걸으며 마석도가 등장했다. 흉기를 휘두르는 남자를 손쉽게 기절시킨다. 그런데 기절시키다 못해 일이 벌어졌다. 남자가 주먹 한방 맞고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은 것이다.
전일만은 금천구 강력반의 반장이다. 상관에게 불려 가서 와장창 깨졌다. 윗동네 어르신들에게 들었던 업무 지시사항을 마석도에게 전하게 된다. 그 지사사항은 '베트남에 가서 범죄자 하나를 인도해와라'였다. 듣자 하니 무슨 자수를 했다고 한다. 오케이. 그럼 휴가 쓰는 셈 치고 가지 뭐. 전일 만과 마석도는 더듬더듬 영어실력과 함께 베트남 비행기에 탑승한다. 어렵지 않게 베트남 영사관 쪽 담당자와 연결하고, 그 자수했다던 놈을 심문하기 시작하는 둘. 둘은 베트남에서도 진실의 방을 만들며 하나하나씩 정보를 얻기 시작한다. 뭔 베트남에서 베트남에서의 연쇄살인사건과 강해상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기 시작한다. 장첸과는 다른 부분으로 악랄한 강해상. 이 강해상은 극악무도한 범죄수법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하는데,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나쁜 놈을 때려잡는 마석도의 이야기가 영화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데 익숙해서 웃겨
5년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신작이다! 그 이유인지 전작에 대한 오마주가 몇 개 보인다. 초반부 마석도가 등장하고 칼을 휘두르는 남자를 제압하는 장면의 구도만 봐도 1편를 차용한 느낌이 난다. 또 예고편에서 나왔던 장이수 캐릭터 활용법도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또 정인기 배우의 지역 경찰 계급 서장 캐릭터나 휘발유가 다시 등장하는 부분도 전 편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팬서비스 차원에서 만족할만하다. 엔딩부도 왠지 익숙한 느낌이 날 것 같다.
근데 이런 전편에 대한 오마주가 단순히 캐스팅에서 짠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사실 어찌 보면 뻔하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알고 봐도 웃기다. 예고편에도 나오지 않나? "넌 뭐야?" "까불인데요" "까불고 있어"식의 말장난이 극에서 자주 나온다. 이런 유머 방식은 1편에서 많이 쓰였다. "혼자 왔니?" "어 싱글이야"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 이런 유머 포인트가 1절 만하고 딱 끝나는 선이 아니라면 좀 식상해지기 쉽다. 그냥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같은 패턴의 유머를 반복해서 하는 사람을 보면 딱 느껴지지 않나. 진짜 재미없어서 말도 걸기 싫어진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뭐 말장난식 유머만 재밌는 게 아니다. 초반부 반장의 존재 유무도 재미있다. 또 반장이 서툰 영어를 구사하는데, 이거 2007년에 <무한도전>에서도 봤던 유머인데도 웃긴다. 뻔뻔하게 재미있는 영화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근데 또 막상 웃기기만 한건 아냐
이 영화가 단순히 웃기고 재밌고 이런 것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다른 강점 중 하나는 촬영이다. 이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장면에서 영화는 베트남의 풍광을 묘사한다. 베트남에서의 이야기와 한국에서의 이야기는 무게감이 살짝 다른데, 어쩌면 난잡해질 수도 있는 영화의 톤을 나름의 영상미로 풀어내는 것이 인상 깊었다. 해외 로케이션을 경제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타지의 모습과 범죄의 잔혹성이 매치가 잘 되니 연출의 승리였다. 그냥 자연스러운 풍광만 예쁜 것이 아니다. 베트남의 한 경찰서, 협소한 아파트, 봉고차 안, 식당까지 그냥 단순히 인물이 거기에 있어서가 아닌 소재를 활용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적절한 촬영은 베트남에서만 적용되는 부분이 아니다. 가령 중후반부의 마석도 혼자 걸어가는 장면, 최후 반부의 특정 신은 감독이 이 장면에는 '관객이 이런 걸 느껴야 해!'를 생각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아. 촬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롱테이크 신이 있다. 이 부분은 그냥 직접 보시라. 아마 올해의 베스트 신 TOP 3 안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당연히 액션이다. 액션 연출이 좋았다. 초반부 마석도가 흉기를 든 남자를 제압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마석도기 주먹으로 때리는 장면을 보면 무슨 돌로 사람을 머리 찍는 소리가 난다. 난 이걸 처음 들을 때 솔직히 작위적이라고 생각한다. 뭐 내가 적응을 해서인지 이 사운드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가 전개될수록 맞은 인물들의 리액션이 나오는데, 이거랑 잘 맞는다. (이거 외엔 할 말이 없다. 극 중에서 마석도가 성장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퍽 퍽 때리는데 역시 뛰어난 연출이 극의 생동감을 부여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사운드 연출이 아니더라도 맨몸 액션 자체가 확실히 보는 재미가 있었다. 초반부를 지나 한 30분쯤 됐을 때 마석도의 액션신이 나오는데, 뭐 사람 하나몇 대 연속해서 때리지 않아도 이 사람이 얼마나 센지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맨몸으로 두들겨 패기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장소마다 지형지물을 잘 활용하는 모습까지 있으니 몰입에 도움이 된다. <이터널스>의 길가메시보다 인물 연출이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마석도 캐릭터만 액션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강해상 캐릭터의 액션 연출도 탁월했다. 강해상 (일당)은 민첩성이 좋다. 이 인물은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람을 습격하는 방식의 캐릭터다. 앞에서 썼던 소리 연출이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조용하다가 쉭쉭 나타나서 공격하는데 그냥 간단하게 인물 액션만 보여주고서는 이런 디테일을 살릴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인물 설정을 십분 발휘했던 액션신도 기억에 남는다. 이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요 재미 포인트는 무서운 빌런이 한몫할 텐데, 장첸과는 다른 연기 역시 보는 맛이 있었다. 주인공과 악역 액션 설정만 좋았냐? 아니다. 예고에서도 나왔던 장이수의 카체이싱, 다른 경찰 캐릭터들의 액션까지 전작 1편에서 너무 마석도에게 집중되는듯한 분량을 인물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방식을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역시 이상용 감독이 인물에 대한 사려 깊은 고민을 한 흔적이 난다.
사실 손석구 배우 작품 처음 봅니다
요즘 <나의 해방 일지>인가? 손석구 배우의 인기가 엄청나다고 들었다. 드라마는 사실 손이 잘 안 가는 나. 그의 활약상을 잘 보지 못했다. 목소리도 아예 처음 들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좀 놀랐다. 이 배우가 엄청나게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물론 지금도 충분히 잘 나가고 있는 배우지만 이 사람은 <베테랑>의 유아인처럼 여기서 폭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장첸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빌런이었다. 뭐 강해상 역시 감정을 참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뭔가 절제하고 여유 있는 살인마였다. 이때의 강해상이 입에 품고 있는 미소 + 왠지 모를 자신감 + 꼼꼼한 성격까지 다방면의 특성을 가진 인물을 소화해냈다. 전작에서 윤계상-김성규-진선규 세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임팩트가 커서 아마 이 셋의 악역을 지울 수 있을까 싶은 분도 있을 텐데, 아마 이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셋의 존재감을 캐릭터 설정과 좋은 연기로 잘 틀어막았다.
통통 튀는 조연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조연들이다. 물론 마동석의 마석도, 손석구의 강해상의 카리스마는 탁월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 둘이 빛나기 위해 조연들이 배경을 깔아주다시피 했다. 인물들은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며 이야기에서 적지 않은 위치를 차지하는데, 감독의 인물 설정을 알맞게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가 빛났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전작 1편에서 장이수 캐릭터가 살짝 허무했다고 생각한다. 흑룡파 3인방이 돋보여야 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개성을 줄였다고 하면 사실할 말은 없다. 물론 극에서 장첸에게 한방 먹이기에는 성공하지만 이것 말고는 좀 끌려다니는 느낌이 강했다. 가리봉동의 대표 조폭 아니었나? 장첸의 카리스마에 찍소리도 못하는 게 사실 좀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장이수가 2편에서는 단순히 유머 소재로만 쓰이지 않는다. 이 인물이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쌓아놨던 성격과 서사가 극에서 경제적으로 잘 쓰인다. 이런 인물 설정은 다른 조연들에게도 적용된다. 전일만-오동균은 전편이나 지금이나 마석도의 응원단장 같은 느낌이다. 사실 당연할지도 모른다. 장첸이나 강해상이나 싸움 자체는 잘한다. 그래서 이 둘과 전면전을 붙으면 영화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각각의 특정 시점을 지나가면서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앞에서도 언급했듯 홍석-상훈 둘에게 액션신을 준 것도 이 둘이 그냥 나이가 비교적 어리고 무력이 약하다고 해서 소모적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둘은 다른 부분에서도 주체적으로 활약한다. 그리고 한 특정 인물에 대해 쓸 수는 없지만, 이 시리즈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입체적인 인물이 등장했다. 후반부는 거의 이 인물 덕에 극이 전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리즈에서 생각할 수 없었던 캐릭터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가 좋을 것이다.
그냥 재밌는데 어떡해
사실 길게 이 영화의 장점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 영화는 그냥 재미있다. 한 줄 요약. 잘 만든 영화다. 코로나19 여파로 우리나라 기대작들이 개봉이 많이 밀렸다. 이제 6월이 되고 나서야 한국영화 기대작들이 하나, 둘씩 잡히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이 레이스의 좋은 스타트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친구들이랑 삼삼오오 놀러 가서 봄 극장 나들이 하기 딱 좋은, 그런 잘 만든 킬링타임 영화다. 부럽다! 안 본 사람이 있어서! 이 시리즈의 3,4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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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야 할 건 mp3가 아니라 자기연민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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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겨울이다. 늘 그렇듯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다. 그 여름밤이 차라리 뜨거웠더라면 구릿빛으로 탄 피부와 사진 몇 장 정도라도 남겠으나, 여름밤 최선을 다해 놀지 않은 이들에게 겨울은 허무와 함께 찾아온다. 내가 올여름에 뭐 했더라.
그렇다. 올여름엔 코로나에 걸렸다. 너도나도 다 걸릴 그때 코로나로 격리하고 나니 처서였다. 여름이 끝났다는 신호. 여름에 실컷 놀지 못해서 이렇게 덥썩 찾아온 겨울이 꼭 날강도 같다.
지금은 2022년이다. 창밖에는 겨울이 오고 있다. 며칠간 이상하리만큼 더웠는데, 소설(小雪)에 접어든 오늘은 어쩐지 쌀쌀하다. 저녁에는 비가 온다고 했다.
<창밖은 겨울>이 상영되는 동안 지금이 2022년인지 2002년인가 싶었다. 레트로 감성이 아니라 지독히도 옛날의 문법인 것이다. <무진기행>에서부터 홍상수로 이어지는 늙은 소년의 성장담. 찌질한 남자의 자기연민.
한때는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고향 진해로 내려가 버스기사로 일하는 공석우. 버스 운전하고, 동료들과 점심 먹고, 탁구치는 거 구경하고, 퇴근하는 성실하고 밋밋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터미널에서 낡은 mp3 하나를 줍는다. 유실물 보관소 담당 직원 영애는 유실물에 큰 관심이 없다. 잃어버린 첫날에 찾아가지 않으면 결코 주인이 나타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우는 mp3 주인이 찾아왔는지 연신 유실물 보관소를, 영애가 일하는 매표소를 들락거린다. 잡담도 없고 사담도 없이, 오직 '주인이 나타났는가'에만 관심이 있다.
영애는 그런 석우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마침 유실물 보관소를 직원 휴게소로 전용하느라 유실물들을 비워야 하는 상황. 석우는 mp3를 고치려고 진해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영애는 그런 석우를 따라다닌다.
석우의 주장은 mp3가 잃어버린 물건이므로 주인이 곧 찾으러 올 것, 영애의 주장은 버린 것이니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식처럼 mp3와 전 여자친구와의 추억이 상기된다. 아침 7시 라디오를 듣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이유로 헤어짐을 고한 전 여자친구.
예술하는 사람 중 일부의 바이오리듬은 직장인들과 완전히 다르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엉금엉금 작업하다 밤을 꼴딱 새우고, 또 오후쯤이나 일어나 엉금엉금...의 반복. 아침형 인간이 무조건 훌륭할 수 없고, 올빼미형 인간이 게으르다 말할 수 없다. 다만 성향 차이일 뿐이다.
석우의 전 여자친구는 그렇게 떠났다. 그리고 석우도 영화를 그만둔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전 여자친구는 여전히 영화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영애가 한때는 탁구선수였다는 것. 이러한 사실들은 너무도 가치 없게 지나가버린다.
영애는 발군의 탁구 실력을 보여준다. 석우를 따라다니다 별안간 대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석우도 별안간 복식조로 대회에 나가자고 한다. 영애가 대회에 나가기로 한 건, 중학생 때 아버지를 피해 그만둬버린 탁구에 미련이 남아있는지, 후회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중요한 탁구대회를 석우는 전 여자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때문에 망쳐버린다. 물러터진 인간이여.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따위의 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영화감독을 그만둘 때도 석우는 그러했으리라 짐작된다. 전 여자친구의 이별선언에 그렇게 중요했던 꿈을 망쳐버렸을지도. 전 여자친구의 말처럼 아침 7시 라디오를 듣는 직업을 선택하고, 전 여자친구가 잃어버린 듯한(원래는 자기 것이었던) mp3를 주워다 동분서주하고. 사실 제일 중요한 건 눈앞의 탁구대회였는데 말이다.
잃어버린 mp3가 표상하는 석우의 꿈(과 영애의 탁구 살짝), 버린 것이라는 영애의 태도와 잃어버린 것이라는 석우의 태도에서 꿈과 과거에 대한 미련 따위는 가볍게 은유된다.
영화에서 석우는 영화감독 되기에 실패하고 낙향한, 그러나 버스기사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누군가 잃어버려서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mp3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남자다.
전여자친구는 무엇인가. 석우를 자극하는 존재다.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아를 흔들고 버스기사로 안정적인 삶을 일구는 석우를 흔들어놓고 사라지는 존재. 갑자기 나타난 mp3 같은.
영애는 무엇인가. 갑자기 석우에게 관심을 가지는 자다. 별 맥락도 없이 석우를 졸졸 따라다니고, 같이 탁구를 치자고 하고, 귤을 나눠 먹고, 영애 본인에게 너무나 중요했던 탁구대회를 완전히 조져놓은 석우에게 일언반구 하지 않는 사람.
마지막으로 어머니까지. 석우를 기다려주는 홈 스위트 홈이자 영화와 관련된 짐을 정리할 때 마지막까지 석우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는 자.
모든 여자는 석우를 위해 존재한다. 석우를 좌절시키고, 석우를 위로하고, 석우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력자다. 전 여자친구의 사정, 영애의 사정, 석우 부모의 사정은 딱히 중요하지 않다. 하물며 아버지와의 졸혼을 선언한 어머니마저도 졸혼선언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석우의 잃어버린 사랑과 잃어버린 꿈, 그럼에도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석우를 응원해야 하는 104분이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결국 현실을 선택해야만 했던 우리네 남성들의 회한.
버려야 할 건 잃어버린 mp3가 아니라 예술하는 이의 자기연민이다. 영화를 소개하는 "아주 보통의 청춘들의 자화상"이라든가, "다 괜찮아!" 등의 문구와 자기연민을 어떻게 떼어놓을 수 있을까. 물론 긍정은 좋고 청춘도 너무 좋은 말이긴 하지만...
영화에서 좋았던 점이라면 각종 매체에서 극화하는 경상도 사투리를 정말 본토발음으로 구사했다는 점이다. 지역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내가 나고자란 지역의 말이 매체의 필터를 투과하지 않고 나오는 모습, 꾸며지지 않은 사투리 그 자체를 듣는 즐거움이 있었다. 대충 동향인 분들이 영화를 보며 제법 즐거워하시리라 기대된다.
결말은 영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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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은 겨울(When Winter Comes)
감독 : 이상진
출연: 곽민규, 한선화
상영시간: 104분
*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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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탈옥풍운> 메인 예고편
제한 시간 단 10분, 완벽한 계획
두 명의 보스 세력이 지배하는 극악무도한 교도소에
억울한 누명을 쓴 건축사가 신참으로 입소한다
양쪽 보스의 표적이 되어 매일 구타를 당하는 신참에게
아픈 엄마를 둔 고참이 탈옥을 제안한다
제한 시간은 10분, 빈틈없는 감시망을 돌파하기 위해
완벽한 계획과 도구를 하나씩 준비하는데…
목숨을 건 탈옥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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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피치 오브 타임 극장판> 메인 예고편
친구 윤오의 연락을 받고 한국에 도착한 피치.
그렇게 날 반갑게 맞아준 윤오가 사실은 귀신이라고?!
25년째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떠돌이 태국 귀신 마리오를 만난 피치는
윤오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박령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악귀가 되지 않고 무사히 환생하려면
죽은 날로부터 49일안에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풀어야 한다!
도대체 윤오가 그토록 원하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함께 버킷리스트를 찾아가면서
서로를 향한 마음은 점점 커져가고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