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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2025-07-1134 views

[천하제일 로맨스 영화 대회] 사랑을 구성하는 것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테리

연구원

세상의 모든 만남은 우연이자 동시에 운명이라고 믿어왔다. 어떤 우연은 간악하게도 사랑이라는 탈을 쓰고 운명으로 둔갑하곤 한다. 냉소적인 태도로 보이겠지만, 개인의 경험을 반추하여 세상만사를 진단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은 달콤한 만큼 잔인하다. 서로를 운명이라고 굳게 믿던 사랑은 권태를 느낄 때마다 "너도 우연 중 하나에 불과했구나"라며 비정한 태도로 돌변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츠네오와 조제의 첫 만남 또한 우연으로 묘사된다. 츠네오는 마작가게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다 밤마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할머니에 대한 소문을 듣는다. 새벽에 퇴근 츠네오는 그 할머니를 만나고, 유모차에 마약이나 돈이 들었을 거라던 손님들의 추측과 달리 그 안에는 다리가 불편한 여성이 타고 있었다. 그들의 첫 만남은 그야말로 운명 같은 우연이다.

 

돌이켜 보면, '로맨스'로 분류되는 숱한 영화들 대부분이 내겐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정석적인 남녀의 사랑, 약자 여성을 구원하는 강자 남성이라는 일방적 구도, '정상적인 사랑'의 형태가 무엇인지 설교하는 미디어의 폭력. 이런 요소들이 끔찍이 싫었기 때문이다.

 

<귀여운 여인>이 성노동자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싫었고, <이프 온리>가 대중에게 사랑의 판타지를 주입하는 획일성이 싫었고, <노트북>이나 <어바웃 타임> 같은 영화도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좋지는 않았다.

 

그러한 반발심은 어느 순간 취향으로 자리 잡았다. 언제나 비정상으로 낙인 찍힌 자들의 사랑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 지금도 로맨스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캐롤>, <가위손>, <셰이프 오브 워터>, <펀치 드렁크 러브> 같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 이야기들이다.

 

 

 

이 영화를 츠네오와 조제의 달콤한 로맨스로 기억하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츠네오가 "내가 도망쳤다"라고 고백하며 끝나는 엔딩은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 가슴 시린 이별 회고록으로 보이게 한다. 

 

요지는, 내게 이 이별 회고록이 가장 진진한 사랑의 고백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조제에게서 도망친 츠네오는 변명하지 않는다. 관계에 권태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구차한 이유, 우연이 아닌 운명으로 착각했다는 핑계 따위를 늘어 놓지 않는다. 그래서 두 인물이 사랑을 나눴던 시간은 더 진실하고 소중한 것이다.

 

츠네오가 조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소문의 유모차를 만나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일지, 알고 보니 조제가 장애인이어서 연민이 생겼을지, 이를 떠나 진지한 사랑의 감정을 느껴서일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그것을 논하는 일은 정말 무의미하다. 사랑을 구성하는 것은 이 모든 신비로운 감정의 총합이므로.

 

 

 

지금까지 가장 오래,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장면은 조제가 가고 싶어하던 수족관이 휴관으로 문을 닫았던 장면이다. 내내 자신을 업고 다녔어도 힘든 내색하지 않은 츠네오에게 조제는 버럭 짜증을 낸다. 이 다음에 츠네오와 함께 수족관에 갈 일은 또 없을 것이기에, 조제는 오늘이 아니면 안됐다.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된 건 '모두의 사랑 이야기'로 다가와서가 아닌, '나의 이별 이야기'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이별을 예감한 상대가 조제처럼 짜증을 내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땐 몰랐던 짜증의 이유도 조제의 마음을 아는 지금은 고스란히 이해한다.

 

 

 

우에노 주리가 연기한 카나에의 캐릭터를 좋아한다. 사회복지사를 꿈꾸면서도 조제의 장애를 희롱하는 위선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카나에는 기본적으로 착한 모범생에 가까워 보이지만, 츠네오와의 관계로 인해 질투를 느껴 조제를 때리기까지 한다.

 

나는 성선설도 성악설도 믿지 않는 편이다. 카나에의 악한 면모는 우리 모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평범함이다. 어떤 상황이 한 사람의 선하고 악한 모습의 단면을 드러낼 뿐이라고 생각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사랑은 다른 로맨스 영화처럼 아주 로맨틱하지도, 뜨겁지도 않다. 잔잔하고 조용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좋아한다. 사랑을 극적으로 묘사하며 환상을 불어넣는 로맨스가 아니라서, 여성의 장애를 다루는 방식이 섬세하고 그대로 솔직해서, 둘의 무심한 이별이 내 경험과 닮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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