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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2025-07-1039 views

[천하제일 로맨스영화 대회] 수많은 감정을 일축할 수 없기에 만들어진 단어, 사랑.

백록

연구원

나는 로맨스 작품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취급하지 않는다. 대개 로맨스가 장르에 포함된 작품들은 깊은 이야기나 사건 없이 단순한 상황과 원초적인 감정에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전 요소와 떡밥 회수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로맨스'는 내 마음 속에서 작품으로 취급될 수 없는 장르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러한 취향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졌는데, 오늘 이야기할 <오만과 편견>은 그 시기에 처음 만났던 영화다.

 

고등학생 시절, 우리들 사이에서는 드라마나 영화를 돌려보는 문화가 유행했다. 과제 때문에 언제고 USB를 한 몸처럼 지니고 다녔는데, 이는 유용한 거래 방식이 되어 주었다. 내 옆자리에 있던 친구는 나에게 문득 <오만과 편견>을 봤냐고 물어봤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타이틀 자체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당시에 즐겨 듣던 노래의 제목이기도 했으니까. 고전 작품이라는 건 두 말할 것도 없었고. 당장이라도 내 노트북에 파일을 넘겨 주려는 친구는 자신의 인생 영화라며 강하게 추천했다. 우리의 대화를 듣던 또 다른 친구가 끼어 들었다. 야, 난 그거 보다가 졸았어. 두 친구의 후기가 상반되는 순간 내 흥미가 생겼다. 이걸 보고 난 후 내 감상은 어떨까? 로맨스란 로맨스는 모두 배척하던 나에게, 널리 인용되는 '오만과 편견'이라는 흔한 단어의 조합 아래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지 호기심이 훌쩍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오만과 편견>은 나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매튜 맥퍼딘이 연기한 2006년작, 세상에 공개되고 십 수년 만에 마주할 수 있었던 작품은 나에게 지금까지도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사실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다. 결혼만이 여성이 할 수 있는 출세의 전부였던 시절, 다섯 자매의 가정에서 둘째로 자란 '엘리자베스'가 부잣집 자제 '다아시'를 만나 겪는 감정의 변화를 그렸을 뿐이다. 하지만 위 문장 속 '엘리자베스'는 '편견'으로, '다아시'는 '오만'으로 치환된다. 두 단어는 각 캐릭터를 상징하는 동시에 상대를 향한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오만한 태도로 대한다. 이 문장에는 긍정적인 단어가 하나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열렬한 사랑이 존재한다.

 

 

 

폭우 속에서 처음으로 인내심이 바닥나 애써 감추어 오던 사랑을 고백하던 다아시. 그리고 지금껏 자신의 비판 어린 판단을 드러내지 않았던 엘리자베스. 둘은 상반된 감정으로 자신이 참고 있던 서로를 향한 감정을 여과없이 쏟아낸다.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으로 삶을 대하던 둘이 예기치 못한 자극을 받아 솔직하게 모든 것을 내뱉는 장면은 처음 봤을 때 나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사랑해, 라는 말에 이렇게나 복합적인 감정이 담길 수 있던가? 나도 모르게 나는 무언가에 열렬해보고 싶었나보다. 이 장면만 보면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극의 화자이자 감정의 주체인 엘리자베스에게 관객으로서 가장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만이 결혼을 이룰 수 있고,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는 한없이 당차고 그들을 위하며, 감정을 절제하고 모든 상황을 논리적으로 타파하지만 정작 자신 앞에 놓인 감정적 문제들에는 서툰 모습을 보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바로, 다아시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점차 긍정의 모습을 띠게 될 때, 둘을 둘러싼 갈등과 우연이 모여 운명이 될 때, 광활한 대지에서 홀로 서 몰아치는 감정을 쏟아내는 듯한 그의 모습이다. 이 장면만의 먹먹함 속 벅참은 어떤 작품에서도 느껴볼 수 없다.

 

<오만과 편견>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금 리뷰를 써보고 싶다. 볼 때마다 새로운 부분이 보이고, 엔딩에서는 결국 눈물이 나는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에... 아, 절대 슬퍼서 나는 눈물은 아니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나아가 정의되지 않은 모든 감정들이 한데 모여 감정이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반응인 눈물로 나오는지도 모른다. 로맨스를 넘어 끝없는 감정의 폭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기에 짧게 적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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