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_image

댓글 신고

  • 현대사의 어느 구전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 [연출: 김동령, 박경태 | 제작: 웃음과바늘, ㈜시네마 달 | 배급: ㈜시네마 달 | 출연: 박인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미군 ‘위안부’ 출신 박인순이 스스로 자신의 복수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저승사자들에 맞서는 오드 판타지 영화다. 김동령, 박경태 감독이 <거미의 땅>(2013)에 이어 기지촌 미군위안부 박인순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나는 사전에 이 영화가 극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구분하는 일에 꽤나 애를 먹었다. DMZ국제다큐영화제에 초청되었다고 하니 다큐멘터리인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허구의 인물들이 나와서 가상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라 극영화로 볼 요소도 다분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두 감독은 아마 관객과 평단, 영화를 받아들이게 될 이들의 혼란을 일부러 유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군 위안부와 달리 기지촌 미군위안부는 우리나라 정부에 의해 자발적으로 벌어진 국가폭력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이들의 보다 많은 이야기를 접하기보다 새어나오는 일부의 선택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영화도 이러한 점을 지적하듯 기지촌 미군위안부 박인순의 이야기를 더 많이 보여주려는데 애쓰기보다 오히려 허구의 이야기를 씌운다.

     

     

    영화가 파격적인 형식을 통해 관객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 까지는 유효했다. 장르 자체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모호한 구분을 유영하지만 이야기 역시 기존의 문법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질서에 의해 왜곡되어야 했던 기지촌 미군위안부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데 있어서 들어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력적이지 못한 이야기 자체의 문제와 연기에서의 아쉬움이 이 모든 형식적 도전을 영화에 착 달라붙지 못하게 하고 표류하게 만든다.

     

    우선 난해한 구성의 이야기는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빨아들이지 못한다. 뚜렷한 기승전결이 없고 박인순 주변의 등장인물들도 별다른 역할 없이 흩날려버린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가 제목이지만 영화에서 별 의미가 없고, 박인순이 모든 저승의 관문을 통과하는 후반부도 뜬금없게만 여겨진다. 거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지나치게 인위적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에 놓인 영화의 불균질함이 잘 드러나서 오히려 좋아할 사람도 있겠으나 내게는 그저 인내하고 보기 어려운 연기들일 뿐이었다.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얼마나 주류 중심적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신선한 형식적 시도를 장착했다. 그러나 이 창의적인 현대사의 어느 구전(口傳)은 이야기로서의 매력이 부족하다. 영화가 영화 자체의 만족도를 주지 못할 때 그 작품이 지닌 메시지의 가치도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도발적이지만 표류하고 만 형식적 시도 앞에 그래서 더 아쉬운 마음이 크게 느껴진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자세히 보기 +
  • 내가 한국영화를 사랑하게 된 이유
  • 떠나려 하네. 저 강물 따라서. 익숙한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그 시간들도 다시 돌아오진 않아. YB의 윤도현이 부르는 노래다. 난 YB의 음악을 좋아했다. 내가 10대 때에 TV 프로그램이 있었고 거기에 YB가 나왔다. 당시 주류였던 아이돌 음악을 별로 안 좋아했던 나.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이유는 없지만 아이돌의 음악을 그렇게 좋은 음악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26살의 나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 4만 번 이상을 생각했다. 물론 시간은 기차처럼 뒤로 돌아오지 않는다. 행복했던 시간. 후회되는 과거.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하는 미련. 만약과 가정은 잔인하게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근데 그런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터닝포인트는 보통 한 번만 찾아오지 않는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 아닌가? 한번, 두 번, 세 번 계속 일어나서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강물 따라 비행기를 타 한국을 떠나도 그 안에서 계속되는 루틴이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이게 잠깐 들고 끝나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웬만하면 흑역사는 누적되니 괴롭다. 난 21살 때 이 누적되는 흑역사들이 참 싫었다. 엄마, 아빠에게도 병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우울함에 장식되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에 점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할 때, 새로운 취미에 눈 뜨고 싶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게 됐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팬이 됐다. 나에게 이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니 만큼 여러분에게도 권하고 싶다.

     

     

     

    1. 무엇에 관한 작품인가요?

     

    처음 시퀀스를 보면 익숙한 느낌이 들 것이다. 어딘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 남자 영호.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일행들의 마이크를 뺏어 노래를 부른다. 노래도 부르다 말고 갑자기 철로 위로 올라가는 영호. 갑자기 만난 사람이 느닷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한 명을 남기고 다른 친구들은 트로트 음악에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선로 위에 올라간 영호.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한 채로 영호는 기차에 몸을 던지기로 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비명과 함께.

     

    영화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영호의 과거를 좇는다. 그가 어떤 과정을 겪었기에 그런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격동의 한국사를 천천히 살펴본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정통으로 맞은 영호. 그렇게 자기의 선택지를 고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회의 희생양이 된 인물이 영호다. 이 영화는 왜 사회에게 상처를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얼마나 한국사에 상처가 많은가'와 '당신이 돌아가고 싶을 만큼 행복한 때는 언제인가'라고 묻는다. 이 영화는 그런 작품이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세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상처. 역사. 공감. 상처는 인물의 상처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역사는 우리 한국사회의 과정과 인간의 삶이 큰 관련이 있단 걸 보여주기 때문에. 공감은 감독 이창동이 해결책이 아닌 절규로 인물의 최후를 묘사했다는 것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설루션이 아닌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세 가지 키워드로 보여준다.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근데 한국적이다. 이게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전부를 관통하는 장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엔딩을 서두에, 오프닝을 결론부에 배치하는 거야 그렇게 찾아보기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분명하게 구분되는 차이점은 이런 내용을,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건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보장한다. 뭐랄까. 이 영 호라는 인간이 질이 구린 인간인 거야 초반부만 봐도 느껴지는데, 어쩐지 모르게 이 인물에게 느껴지는 공감이 있다. 근데 그 기분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다. 세상에게 상처를 받는 이유가, 어쩌면 그가 피할 수 없는 어떤 요인들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 때문일 수도 있다. 또, 그 아픔을 겪고 나서 보여주는 리액션이 우리의 인생과 그렇게 멀지 않음도 그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질이 구린 인간에게 느껴지는 연민과 위로'는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역사에 좌절하는 인간이 보여주는 리액션'은 우리나라 사람이기 때문에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이 이창동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탁월한 완성도도 그 특이함과 장점을 경험할 수 있다.

     

    4)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영화가 어렵지는 않다. 근데 보는 건 좀 힘들 수도 있다. 감독이 연출을 잘 만들어 인물에게 이입을 잘하게 만들었다.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설경구. 문소리. 작년 2021년에 활동했던 배우들이기도 하다. <자산어보>와 <세 자매>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인 두 사람이기도 하다. 이 둘의 신인시절이 담겨 있는 영화다. 후에 <오아시스>로 재회하는 둘이지만 '뇌성마비에 걸린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보다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안에 거대한 화와 상처를 품고 있는 영호. 대놓고 감정연기를 하는 것보다 내면에 화를 품었다는 걸 드러내기가 어렵지 않나? 정말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아픔이나 결핍을 알기 어려우니까. 배우 설경구는 주인공 영호의 심리상태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끔 아주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걸로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 평단의 인정을 받았단 뜻도 될 듯. 문소리도 <오아시스>만큼이나 고난도는 아니었겠지만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감독 이창동이 이런 쪽으로 배우의 연기를 뽑아내는 걸 잘하는 것 같다. <밀양>에서의 송강호 배우나, <버닝>에서의 스티븐 연의 연기나 뭐랄까 우리 주변에 실제로 있을 법 한 인물을 잘 설정한다는 느낌이다.

     

    6) 줄거리 외의 부분은 어떤가요?

     

    보통 이 부분에 대해 쓸 때는 미장센에 대해 썼다. 근데 사실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미장센이 두드러지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상미가 안 좋은 뜻은 결코 아니다. 그냥 평범한 영화 같다는 뜻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미장센이 어쩌고는 신경 쓰이지 않는다. 플롯 연출이 워낙 탁월해서 조용히 영호의 마음에 스며든다. 

     

    7) 이 영화를 보기 전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아마 10대 때 한국사 과목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IMF, 5.18 광주사태 등등. 우리나라 국민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실들을 상기시키기만 한다면 될 것 같다.

     

    8)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반복되는 상처에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 생의 끝까지 왔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어떤 삶이든, 당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 박하사탕을 먹고 조금이라도 더 눈물을 쏟았으면 좋겠다.

     

     

  • 자세히 보기 +
  • 장점을 잃어버린 리부트
  •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음모를 접한다. 초현실적인 공포스러운 존재부터 시작해서 정부나 기업이 어떤 음모로 세상에 나쁜 짓을 한다는 식의 여러 가지 떠도는 이야기들을 접한다. 그런 이야기는 일단 흥미롭고 재미있다. 우리는 어떤 일 이면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확한 증거나 자료가 있지 않으면 그 이야기의 빈 곳을 채워 넣으려 노력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야기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음모다. 작은 추정으로 시작한 그 이야기는 조금씩 세밀해지면서 음모론으로 점점 발전한다. 사람들은 이런 음모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소설을 좋아한다. 무서운 공포 이야기보다는 조금 더 사회의 어두운 면을 꿰뚫어 본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거리를 던져준다는 점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 요소가 된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라쿤시티>는 좀비물과 음모론을 뒤섞어 만든 액션 스릴러다. 주인공 클레어(카야 스코델라리오)와 크리스(로비 아멜) 자매는 부모를 사고로 잃은 후 라쿤 시티의 고아원에 맡겨진다. 제약 회사인 엄브렐라가 깊이 개입하여 관리되는 라쿤 시티에서 자란 자매는 함께 지내다가 클레어가 그곳을 이탈해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어 따로 생활한다. 영화는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클레어가 다시 라쿤 시티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포 액션 게임을 다시 리부트 한 영화 <레지던트 이블:라쿤시티>

     

    클레어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졌던 인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의심이 많은 인물이고, 진실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오빠인 크리스조차 클레어를 완전히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가장 소외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다시 어린 시절 아픔이 있는 도시로 돌아간다는 것은 고아원에서 경험했던 미스터리를 확인하러 가는 것이기도 하고 자신의 오빠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도 있다. 그저 외면하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엄브렐라라는 거대한 제약 회사가 운영했던 라쿤 시티의 음모는 그를 더욱더 빠르게 그곳으로 끌어들인다. 

     

     

     

    영화에는 다른 인물들도 등장한다. 경찰서 신입인 레온(애번 조지아)과 베테랑 형사 질 발렌타인(해나 존 케이먼), 웨스커(톰 호퍼) 등이 크리스와 함께 경찰 팀으로 등장한다. 사실 이 인물들은 모두 1996년부터 출시되고 있는 게임인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 등장했던 인물들이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게임  [레지던트 이블]은 공포물과 음모론으로 이야기 뼈대를 만들고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특성을 결합시켜 만들어진 인기 시리즈다. 당연히 각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레온, 질, 크리스, 클레어는 꽤 인기가 많은 캐릭터들이고 이번 영화에서 모두 등장하여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준다. 

     

    캡콤에서 제작된 이 게임 시리즈는 최근까지도 각종 게임기의 콘텐츠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좀비물이 좀 더 대중화된 인기를 끌면서 액션과 미스터리를 함께 즐기려는 게이머들은 계속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2002년에 개봉했던 <레지던트 이블> 은 원작 게임의 분위기를 적절히 살리고 앨리스(밀라 요보비치)라는 새로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 영화였다. 게임 원작의 첫 번째 영화였던 1편은 게임의 팬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게임을 접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1편의 성공으로 시리즈는 6편까지 이어졌고 앨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시리즈는 막을 내렸다. 

     

    마지막 시리즈인 <레지던트 이블:파멸의 날>이 2017년에 개봉한 이후, 여전히 게임 시리즈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이 게임 시리즈의 영화화가 계속되는 것은 이 시리즈를 영화적으로 즐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영화화가 게임 속 주인공들을 주변 인물화 시켰다면 이번 리부트 작품은 게임의 주인공들을 실제 영화의 주인공으로 택했다. 또한 영상의 분위기와 음악을 게임과 거의 비슷하게 넣어 좀 더 원작 게임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원작 게임을 잘 살렸지만, 기존 영화 시리즈에 비해 아쉬운 완성도

     

    음모의 단서를 찾아가는 클레어를 중심으로 각기 흩어져 있는 인물들의 서사를 각각 보여주면서 이들이 결국 한 곳에 모이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화는 이전 영화 시리즈에 비해 액션의 양을 대폭 줄이고, 미스터리와 공포 효과를 좀 더 극대화시켰다. 이 부분도 사실은 좀 더 원작 게임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함으로 보인다. 과장된 액션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액션 장면들이 화면에 그려진다. 

     

    이렇게 원작 게임의 분위기에 거의 맞추려는 노력은 이 영화 시리즈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없애버렸다. 화려한 볼거리인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사라졌고, 한꺼번에 모두 등장하는 중심인물들은 각자가 가진 서사를 보여주긴 하지만 이들이 어떤 인물인지 알기도 전에 죽음을 맞거나 제대로 묘사되지 못한다. 또한 영화가 숨기고 있는 엄브렐라의 미스터리도 이미 모든 관객들이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이기 때문에 음모론으로는 영화적 긴장감을 지속시키기는 어렵다. 게임에 등장하는 좀비 괴물이나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괴생명체들은 게임에 등장하는 보스의 모습을 그대로 화면으로 옮겼다. 하지만 이들과 벌이는 대결이나 액션 장면은 너무 밋밋하고 단순해서 무척 대단한 외모를 그저 보여주기용으로만 소비하고 만다.

     

    영화에서 클레어 역할을 맡고 있는 배우 카야 스코델라리오는 이전 시리즈인 밀라 요보비치에 이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을 맡았다. 그는 직전 작품인 <크롤>에서 악어와 대결을 벌리고, <메이즈 러너> 시리즈에서도 좋은 액션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레지던트 이블:라쿤 시티>에서 그는 액션을 거의 보여주지 않고 그렇다고 엄브렐라의 음모를 완벽하게 파헤치지도 못한다. 그만큼 그의 연기가 빛날 수 있는 장면도 전혀 없다. 그 외에 다른 인물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인물이 없다. 

     

    영화 속 좀비의 모습은 기존 모습과 다소 달라졌다. 어눌하게나마 언어를 구사하고, 아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만약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과거 영화 시리즈처럼 액션이 보강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만약 다음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모든 인물을 중심에 서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들에 집중하여 서사를 풀어간다면 좀 더 흥미롭게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리뷰> 

     

    https://youtu.be/0SrI0P6D5fk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기 

    영화리뷰쓰기 클래스유 강의 수강신청

    Rabbitgumi Links

  • 자세히 보기 +
  • #특송 / Special Delivery, 2020
  • POSTER

    흐릿하지만, 포스터에 보이는 차량만으로 "제이슨 스타뎀"이 나왔던 <트랜스포터2002-09>가 연상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특송>과 비교하여, 운전을 잘한다는 공통분모가 존재하는데요. (성별과 머리카락의 유무만 다를 뿐...)
    굳이,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베이비 드라이버2017>만으로도 "운전자"가 기깔난 운전으로 경찰들을 따돌리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컸습니다.
    그리고, 이는 국내 박스오피스 1위라는 결과표로 증명되었습니다만...

    주말을 기점으로 다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게 다시 1위를 내주며, 그 기간을 5주로 늘려나갔습니다.
    전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와 경쟁한 <경관의 피>, 개봉일에 1위를 했으나 누적 관객수 37만명(주말 관객수: 26만명)으로 이내 2위로 밀리고 말았는데요.
    <특송> 역시, <경관의 피>와 다를 바가 없지만 누적 관객수 23만명(주말 관객수: 16만명)으로 큰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물론, "오미크론 변이"에 따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성적만 두고 본다면 아쉬움이 남는데요.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특송>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STILLCUT

    우체국에서 받지 못하는 물건을 비롯해 사연 있는 물건들을 배송하는 "은하"는 이 분야에서 특출난 실력자입니다.
    그날 밤도 여느 날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는데, 정체불명의 수하물과 함께 "은하"는 경찰과 국정원의 타깃으로 지정되는데요.
    과연, 그녀는 이 모든 일을 정리할 수 있을까?

    핸들링 좀 볼까?

    1. 잘하는 것을 두고서, 왜?
    앞서 말했듯이 영화 <특송>은 연상되었던 <트랜스포터2002-09>시리즈와 <베이비 드라이버2017>와 비교해도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시작을 보여줍니다.
    범죄자들을 자신의 차량에 태워 현란한 핸들링과 발재간으로 관객들의 애간장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시가전 레이스'는 몸까지 움찔하게 만듭니다.
    어찌 보면, 뻔하디 뻔한 장면이지만 저를 포함해 <특송>을 보려는 관객들에게는 이것을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점에서 <특송>은 제 기대치에 걸맞은 장면으로 그 활약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근데, 어째 헛도는 느낌이지 말이야

    그리고 앞서 제시한 <트랜스포터2002-09>시리즈와 <베이비 드라이버2017>처럼 이번 <특송>도 예상치 못한 인물과의 관계를 제시합니다.
    <트랜스포터2002-09>시리즈와 <베이비 드라이버2017>의 주인공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끌려 향후 일에 차질을 빚게 만드는 전개처럼 <특송>은 "은하"와 "서원"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이처럼 <특송>의 전개도 앞선 두 작품과 다를 것이 없지만, 받아들이는 느낌은 앞선 두 작품과 정반대입니다.

    STILLCUT

    STILLCUT

    2. 2개밖에 못해요.
    영화 <특송>은 '범죄자들을 태우는 운전자'와 '예상치 못한 관계'라는 '클리셰'로 <트랜스포터2002-09>시리즈와 <베이비 드라이버2017>로 큰 차이를 두지 않으며, 이에 묶을 '공통분모'에 둡니다.
    그렇기에 받아들이는 느낌도 다르지 않아야 하지만,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헛헛함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이런 이유에는 상대적으로 늦게 나와 "신선함"이 덜할 수도 있겠지만, "서드(3번째) 피치"의 부재가 있습니다.

    3번째 구종은 뭐야?

    이에 '굳이, 3번째 구종이 있어야 하나?'싶겠지만, <트랜스포터2002-09>시리즈와 <베이비 드라이버2017>를 생각해 봅시다.
    먼저, <트랜스포터>는 가만히 있어도 불편한 "정장"으로 멋들어진 액션을 선보였고, <베이비 드라이버>는 자신만의 선곡 리스트로 익숙한 장르에 "차별화"를 두었습니다.
    무엇보다 <트랜스포터2002-09>시리즈와 <베이비 드라이버2017>의 러닝 타임이 평균 90분과 113분임을 생각하면, 108분의 <특송>에게도 반드시 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포터2002-09>시리즈와 <베이비 드라이버 2017>와 다르게, <특송>에게 '제3의 구종'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STILLCUT

    3. 잘하지도 못하면서...
    2개의 구종으로 4가지의 경우가 생긴다면, 3개의 구조만으로 9가지로 2배가 넘는 5개가 생깁니다.
    여기에 타자에게 넣는 스트라이크 존을 9개로 구분 짓는다면, 36개와 81개로 5개의 차이는 45개로 급증하니 관객들로써는 좀처럼 감을 잡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영화가 복잡해지니 이에 대한 항변으로 경우의 수를 차단하려는 것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냥 2개의 구종을 맘대로 "스트라이크존"으로 넣을 만큼 확실하다면 굳이 3번째 구종은 필요하지도 않을 거고요.

    근데, 미숙하네?

    하지만 <특송>은 2개의 구종 중 가운데, "은하"와 "서원"의 관계가 설득력을 주지 못합니다.
    보통 인물들이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데 있어 공통점을 제시하며 시작하는데요. - 특히, "인생이 힘들다"라는 '서원'의 대사로 미뤄볼 때 영화는 <레옹>의 '마틸다'를 의식했을 겁니다.
    그러나 보여주는 "서원"과 달리, "은하"의 이야기는 "텍스트"로만 진행되어 애초 시작부터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레옹> 혹은 "모자(母子) 관계"로 바라보기엔 무리였다는 것이죠.
    물론, 이런 문제가 <트랜스포터2002-09>시리즈와 <베이비 드라이버2017>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다만, 부각되지 않은 이유에는 "액션"과 "음악", 그리고 "카 체이싱"으로 장르적인 쾌감으로 단점보단 장점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STILLCUT

    4. 이걸 이렇게, 연결한다고?
    그렇기에 극 시작과 함께 보여준 "시가전"만 하더라도, 영화 <특송>은 "카 체이싱"에 뚜렷한 장점을 가진 작품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런 "카 체이싱"은 전무할 정도로 없습니다.
    물론, 이후 주차장과 폐차장에서 보여주기는 하지만 "카 체이싱"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야기에서의 아쉬움이 마지막 액션에서 개연성에 대한 의문이 드러납니다.
    앞서 "은하"의 이야기는 "텍스트"로만 진행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어느 부분에서 "액션"과 관련된 이력은 듣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주세요.

    그저, '피칠갑이 되어 탈출했다'라는 정도인데 이게 "전투력"과 연관되어 후반 전투신으로 보이는데요.
    이에 대한 퀄리티가 나쁘지만은 않지만,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 그냥 넘긴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이야기의 실패를 "액션"으로 급하게 막아보려는 느낌 같은데,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리고 악당에 있어서도 "연기"는 논할 수는 없으나 이야기를 쌓아나가는데, 자극적인 행동에만 집중되어 별다른 매력을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특별하지도 않았고 평범하지도 못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 마지막 쿠키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 자세히 보기 +
  • 기지촌 여성을 기리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작당질’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저승사자가 말하듯, 체계적‧조직적 (국가) 폭력이 부정되는 데는 몇 가지 순서가 있다. 먼저 ‘사실’이 부정된다. 희생자 숫자가 터무니없이 축소된다거나, 사건의 선후관계가 뒤죽박죽이 된다.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고, 없었던 일이 ‘실제’ 발생한 일이 되기도 한다. 사실이 무너지면 ‘증거’가 심문되기 시작한다. 증거 조작설이 돌기도 하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국가) 폭력의 증거가 명백함에도 그 부분만 떼내 사실을 부정하는 단서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증거 다음은 ‘이야기’다. 사실이 틀렸고, 증거도 틀렸으니 희생자의 목소리(이야기)도 거짓말이라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희생자들이 보상을 바라고 거짓말을 한다는 둥, 이념‧사상에 경도되어 말을 지어낸다는 둥의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마지막은 ‘믿음’이다. 처음에는 사실, 증거, 이야기를 믿던 사람들조차 의심의 대열에 가담한다. 그 일이 정말 있었던 게 맞는 건지 회의하며 사건에 대한 믿음을 회수하는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은 최근 (국가) 폭력을 부정하고 이를 반동적 기억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패턴이다. 광주 5‧18 민주항쟁을 부정하는 일부 보수 인사와 인터넷 커뮤니티의 행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명백히 존재했던 (국가) 폭력 사건이 ‘진위’ 여부를 따져야 하는 사건이 된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다. 성찰과 반성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고 ‘사실 그 자체’를 두고 다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독특한 연출로 미군 기지촌 여성의 문제를 조명하는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가 천착하는 지점이다. 미군 부대에서 성매매로 생활을 영위한 기지촌 여성들은 냉전이라는 국제질서가 추동하고 승인한 폭력적 체제를 몸으로 견디며 감당해온 자들이라는 점에서 (국가) 폭력의 명백한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몸을 팔았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관심받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기지촌 여성이 공적 영역으로 호명되는 건 ‘윤금이 피살 사건*’처럼 기지촌 여성이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존재로 독해될 수 있을 때뿐이었다.

     

      때문에 철거 및 재개발을 앞둔 기지촌 뺏벌에 사는, 이제는 노년을 앞둔 기지촌 여성 박인순이 죽은 동료들을 저승사자로부터 숨겨주고 거둬주는 행위는 우정 그 이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녀의 행위는 오히려 ‘사실-증거-이야기-믿음’의 순서로 무너져가는 기지촌 여성의 삶을 기억하고자 하는 저항에 가깝다. ‘이야기가 되지 못한 것들’, 즉 귀신이 되어 이승과 저승 사이를 부유하는 동료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갈무리하여 ‘믿음-이야기-증거-사실’의 사슬을 복원하고 피해자의 영혼을 위로할 합당한 공적 기억을 형성하려는 저항 말이다.

     

     

      흥미로운 건 주제를 전달하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방식이다. 기지촌 여성을 비롯한 (국가) 폭력의 피해자를 다루는 이야기는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다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진지한’ 태도로 폭력을 성찰하고, 피해자와 연대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조금 다르다. 다소 어설프고 귀여운 구석이 있는 저승사자, 때때로 ‘빈틈’이 보이는 구성을 더해 엄숙함뿐만 아니라 웃음과 해학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색다른 시도가 어색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나 역시 그랬다). 그럼에도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혁신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는 (국가) 폭력 사건의 현재적 중요성을 부정하고, 이를 ‘과거’의 일로만 치부해버리는 위험한 태도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알고 있다’는 오만이 여전히 발화되고 있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들고, 이를 과거에 박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독특한 연출이 빛나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문제를 재현하는 새로운 방식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는 태도’, ‘더는 논의할 것이 없다고 여기는 태도’를 거슬러 사건의 현재적 중요성을 복원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광주 5‧18 민주항쟁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아래와 같은 추천사를 썼다. 결이 다르긴 하지만,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도 비슷한 말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이라면 이미 나올 만큼 나오지 않았느냐고, 또 이런 추천사란 거짓은 아닐지라도 대개 과장이 아니냐고 의심할 사람들에게,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둘 다 아니라고 단호히 말할 것이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박인순이 대변하는, 박인순이 지키고자 하는 이야기를 계승‧전달해야 한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저승사자도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죽은 자가 많은 뺏벌에서, 저승사자를 골탕 먹이고 죽은 자의 이야기를 계승‧전달하려는 박인순의 노력, 즉 ‘산 자와 죽은 자의 작당질’에 더 많은 사람을 동참케 하려는 유의미한 시도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C%A4%EA%B8%88%EC%9D%B4_%ED%94%BC%EC%82%B4_%EC%82%AC%EA%B1%B4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자세히 보기 +
  • 뚝심의 그라운드 룰
  • 요즘 복싱의 길을 걷고 있다. 엉겁결에 시작했는데,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는 걸 느끼며 신나게 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 즐거움은 아주 뜻밖의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사람 얼굴을 때릴 수가 없는 거다.

     

    처음엔 링에 올라가서 “사람을 어떻게 때려요…” 하다가 “사람 얼굴을 어떻게 때려요…”로 바뀌었으니 나름대로 성장했다 할 수 있지만, 신나게 날리던 주먹이 사람 얼굴 근처에 가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멈추곤 했다. 복싱은 격투에 속한다는, 근본적인 지점에 걸려버린 내가 복싱을 계속할 수 있을까? 관장님께 “사람 얼굴을 못 때리는데 어떡하죠?” 여쭤보았다. 그럴 수 있다는, 하다 보면 나아진다는 원론적인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문득 한 마디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복싱은 스포츠니까요. 정한 룰 안에서 하는 거고… 기권이라든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룰 안에서는 그냥 최선을 다하면 돼요. 그게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해요.”

     

    세상에. 나는 복싱이 격투인 것만 모르는 게 아니라 복싱이 스포츠인 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다. 길 가다 괴한을 만나면 뚝배기를 깨서라도 이기고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정정당당한 룰이 있는 스포츠임을 잊고 있었던 거다. 거한 깨달음으로 그 날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며, ‘그라운드 룰’이라는 것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룰 안에서는 그냥 최선을 다한다는 거, 그건 뭘까.

     

    영화 <킹메이커>를 보고 돌아오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라운드 룰’은 무엇일까. 현대사의 실존 인물들을 모티프로 한 영화이고 정치인과 선거를 소재로 한 영화다 보니, 아무리 상상력을 얹은 픽션이라 한들 현실 재현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킹메이커>는 실화를 모티프로 활용하면서도 실화에 갇히지 않는 영리한 길을 갔다. 동시에 이는 ‘정치’ 영화 이전에 사람에 대한 영화다. 사람의 뚝심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

     

    * * *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이선균이 맡은 서창대와 설경구가 맡은 김운범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정치 활동의 시작점부터 궁극적 지향점까지를 한 수직선 상에 놓는다면, ‘선거의 승리’는 그 어디 쯤에 도시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제각각 답은 다르겠지만, 그 답을 어디쯤 내려놓는 지가 정치인 인생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분명 끼칠 것이다. 영화 <킹메이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영화는 ‘빛과 그림자’ 같은 두 인물을 내세운다. 이상을 품고 험난한 길도 우직하게 나아가는 정치인 ‘김운범’과, 정치판에 발을 들일 때에는 발을 진흙탕에 담글 수밖에 없다는 현실의 꾀를 가진 선거 전략가 ‘서창대’의 이야기다. 여당의 눈엣가시였던 야당 국회의원 김운범은 때로는 서릿발 같이, 때로는 인간미 있게 연설을 하며 자신의 이상을 그려 나가고, 서창대는 상식을 비집고 허를 찌르는 전략을 세워 그 뒤를 보좌한다. 내 편일 때는 든든하지만 남의 편이라고 생각하면 무서울 만큼, 정도(正道)가 아닌 길이라도 가리지 않겠다는 서창대의 전략은 자극적인 만큼 잘 먹혀 들었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설경구가 맡은 김운범이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그러나 정도를 우직하게 걷는 사람과 길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나란히 꽃길을 걸을 수 있을까. 동경하는 지점이 같기에 어딘가에서 만날 수밖에 없던 두 사람은, 동경하는 지점까지 가는 다른 길을 생각하기에 다른 어딘가에서는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에게 다 동의할 수 없지만 서로를 영 저버릴 수도 없는 이들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철저한 이상주의자와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정 반대의 길을 갈 것 같지만, 현실주의자는 이상을 동경하고, 이상주의자는 현실 감각을 필요로 한다. 거기서 내리는 이들의 선택이 다소 드라이하게 그려졌다면,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서로를 바라보았다면 이 영화도 그저 그런 정치 영화 대열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이 얽히는데 어떻게 아무 감정이 엮이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한 복잡한 마음, 자기 자신의 선 자리와 지나온 길을 바라보는 마음들은, 관객이 영화로 들어가게 문을 열어준다.

     

     

    일단 이 영화는 재미있다. 정치와 선거라는 소재, 짧지 않은 러닝타임… 얼핏 보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정작 들어가 보면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관객을 끌고 가면서도 딱 알맞은 정도로 친절하다. 정치를 소재로 쓴다고 해서 복잡한 대사로 사람 마음 어지럽게 하지 않고,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화면이 전환되는 잠깐조차 다채롭게 눈길을 끈다. 전작 <불한당>처럼 <킹메이커> 또한 사람을 홀리는 미장센의 힘을 한껏 발휘했다. 보는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김운범과 서창대를 상징하는, (그리고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더 많은 것도 상징할 수 있는)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연출도 친절하고 흥미롭다.

     

    오래 지나지 않은 현대사와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하고 있음에도, 그 실존 인물의 무게에 눌리지 않았다는 점 또한 놀랍다. <불한당>의 감옥은 실사 고증과 무관한 판타지의 공간이었는데, (한국 영화보다는 아이돌 뮤직비디오에 나올 것 같은 감옥이었는데 그 점이 좋았다.) <킹메이커>는 그보다는 현실에 가까우면서도 현실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는 데 성공한 듯싶다.

     

     

    실화를 모티프로 가지고 왔고, 소품 하나까지 얼마나 치밀하게 시대를 고증하고자 했는지 눈에 보임에도, 정작 실존 인물들의 존재감은 덜어낸 점이 좋았다. 70년대 정치사에서 아는 이름이 단 하나도 없는 관객이라 해도 영화를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다. (물론 알고 보면 더 재미있긴 하다.)

     

      

      

     

    여기에는 배우들의 형형한 존재감이 한 몫 했다. 모든 배우들이 동일한 무게감을 유지하고 있다. 모티프가 된 인물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자리에 서 있고, 캐릭터가 취하는 스탠스는 대사로도 드러나지만 많은 순간 눈빛에서 발산된다.

     

     

    * * *

    다시 복싱 얘기를 좀 얹어 보자면, 나는 아직도 사람 얼굴을 못 때리고 있다.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은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몸으로 끌어내지 못했다. 언젠가는 되겠지 하면서 하고 있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최선”이라는 말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각자의 최선은 다른 거니까. 그럴 때는 그라운드 룰을 보아야 한다. 폭력은 나쁜 거지만, 복싱이라는 스포츠에서는 타격이 필요하므로 사람 얼굴을 때리는 일도 필요하다.

    <킹메이커> 속 인물들도 저마다의 최선을 향해 달린다. 그들이 사는 정치 판은, 그라운드 룰조차 각기 다르게 정의되는 곳이니까. 다만 거기서 명확한 건 하나다. 뚝심. 명암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어지러운 명암의 경계에서, 결국 피어오르는 건 각자의 뚝심이다. <킹메이커>는 그 뚝심 끝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하게 만든다. 말을 약탈하지 않고 정치는 가능한가?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은 그 어떤 것이어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목적을 공유하지만 수단을 공유하지 못하는 두 인간은 어떻게 손을 맞잡을 수 있는가? 그렇게 손잡고 걸은 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영화 <킹메이커>는 사람의 마음에 이런 질문들을 풀어놓는,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생긴 물음표였다.

     

    👑 영화 킹메이커 메인 예고편 보러 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LWMUUYk5MfE&feature=youtu.be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하고 작성하였습니다.

  • 자세히 보기 +
  • <하우스 오브 구찌> 영화리뷰 - 아이러니한 구찌 가족의 흥망성쇠
  • <하우스 오브 구찌>는 최근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를 선보였던 리들리 스콧의 신작이다.

    국내에서 연달아 극장을 찾은 그의 이번 신작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리에게 익숙한 명품 브랜드 ‘구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아름다운 명품을 만드는 가문 뒤편에는 무지막지한 권력 다툼과 심지어는 살인 모략까지 있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진 적이 없다. 

     

     

     

     

     

    영화의 주인공은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레이디 가가). 그녀는 아버지의 트럭회사 사무실에서 경리로 일한다.

    아버지가 쓴 영수증을 정리하는 그는 아버지의 서명을 감쪽같이 따라 쓸 수 있을 정도로 눈썰미가 좋으며 유능한 감각을 지녔다.

    언제나 자신만만한 그녀는 어느 날, 클럽에서 우연히 마우리치오 구찌(아담 드라이버)를 마주친다.

    그의 이름을 듣고 그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파트리치아는 이후로 마우리치오의 주변을 맴돌며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시작한다. 결국 둘은 진심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마우리치오의 아버지 로돌포(제레미 아이언스)는 밝고 상냥한 파트리치아가 마음에 들면서도, 구찌의 격과 맞지 않는 그녀의 초라한 가문을 반기지 않는다. 로돌포는 아들 마우리치오에게 파트리치아와는 연애만 하라며, 절대 결혼은 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그런 아버지의 고루한 가치관에 동감할 수 없는 마우리치오는 그 길로 집을 나와 처가살이를 시작한다.

    시아버지의 트럭회사에서 일하며 평소보다 조금 부족하게 살아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은 어느 날, 로돌포의 형인 알도(알 파치노)의 연락을 받고 그의 생일잔치에 초대된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제목 그대로 구찌 가문에 관한 이야기이다.

    포스터는 레이디 가가가 연기한 파트리치아 레지아니의 강렬한 단독 스틸로 이뤄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토록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 된 한 명품 가문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스피디한 편집과 촘촘한 서사로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 파트리치아와 마우리치오의 불같은 사랑을 주되게 그리던 영화는 중반 이후부터 그들이 알도의 영향을 받아 구찌 사업에 동참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권력을 향한 욕구, 미신에 대한 집착, 상대에 대한 의심, 그리고 마침내 일그러진 사랑을 하나씩 그려나간다.

    마우리치오는 점점 파트리치아가 마치 ‘선을 넘듯이’ 구찌에 집착하는 것에 싫증을 느끼고 그러던 찰나에 친구였던 파올로에게 애정을 느끼며 파트리치아와 점점 멀어진다.

     

     

     

     

     

     

    영화는 속도감 있는 전개로 수십 년간 구찌 가문 내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일화를 그린다.

    그리하여 우리가 동경하고 사랑해 마지 않는 이 명품 뒤에는 얼마나 사람답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는지 톺아보면서,

    사실상 이들의 세계를 과도하게 풍자한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교도소에 오래 복역한 뒤 출소한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는 이 영화를 두고

    거세게 비난한 바 있다. 물론 구찌 가문 또한 이 영화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그려졌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자신이 만든 작품에 관한 생각을 바꾸지 않고, 이 영화의 이야기가 오로지 그들만의 개인사라고만 여겨질 수 없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반길 만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오락영화다.

    구찌를 비롯하여 즐거운 눈요깃거리의 화려한 명품들이 즐비하게 등장한다.

    톰 포드와 칼 라거펠드 등 저명한 디자이너들의 옛 모습도 잠깐 나타나기 때문에, 패션에 관심 있는 관객에게는 매우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또한 현재 오스카 레이스에서 여우주연상 부문의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는 레이디 가가의 도발적인 연기 또한 흥미롭다.

    최근 <아네트>와 <라스트 듀얼>로 계속해서 극장을 찾은 아담 드라이버 또한 반가운 얼굴이며, 제레미 아이언스, 알 파치노와 같은 훌륭한 배우들 또한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 자세히 보기 +
  • 소통이란 무엇인가?
  •  

     

    2019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대상을 탄 정우성. 사실 수상 당시까지 영화를 보지 않고 무성히 들리는 소문으로만 영화를 판단하고 있어서 과연 받을만했는가? 의심을 했던 수상이었다. 하지만 보고나니 왜 대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영화 <증인>이 어떠한 주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는지 잘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증인> 시놉시스

     

     

    목격자가 있어. 자폐아야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마음을 여는 순간, 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신념은 잠시 접어두고 현실을 위해 속물이 되기로 마음먹은 민변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사 순호.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할 수 있는 큰 기회가 걸린 사건의 변호사로 지목되자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를 증인으로 세우려 한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의사소통이 어려운 지우. 순호는 사건 당일 목격한 것을 묻기 위해 지우를 찾아가지만,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다. 하지만 그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우에게 다가가려 노력하는 순호,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지우에 대해 이해하게 되지만 이제 두 사람은 법정에서 변호사와 증인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증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연기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영화 개봉 직후 김향기와 조승우의 자폐 연기를 비교하는 리뷰들이 많이 올라와서 김향기가 그렇게 연기를 못했을까? 하는 마음에 사실 보기 꺼려졌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김향기는 증인 속 지우의 캐릭터를 정말 매력적으로 잘 표현해냈다. 천재성을 띠고 있는 자폐아적 성향을, 비장애인인척 노력하려는 자폐아의 모습을 굉장히 잘 표현하고 있었다. 과연 이 지우라는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신과함께에 나온 월직차사라고는 매칭이 안될 정도로 거의 다른 사람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정우성의 연기 역시 담백하고 정말 좋았다. 후반부에 갑자기 민변에서 같이 활동했던 수인과 연결되는 지점에서 캐릭터 붕괴가 온 것만 빼고는 굉장히 담담하게 변호사의 역할을 수행했고, 정우성이 선굵은 연기 뿐 아니라 이런 역할도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한 편의 소설처럼 마음에 와닿은 대사들

     

     

    영화 <증인>을 보고 나서 들었던 감정은 영화를 봤다는 느낌보다 잔잔한 감동의 소설책을 읽었다는 감정이 들었다. 그 이유는 마음에 와닿은 대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를 보면 대사 한 마디보다는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카메라 워팅, 특정 장면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머리를 깎는 장면이라던가 영화 <사바하>에서 이재인이 허물을 벗고 등장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런게 뇌리에 박히기 마련인데 영화 <증인>은 특정한 장면보다는 대사들이 많이 떠올랐던 작품이었다.

     

    지우 : 신혜는 웃는 얼굴로 나를 이용하고, 엄마는 화난 얼굴로 나를 사랑합니다.
    순호 : 괴롭히는 사람은 친구 아니야.
    로펌 대표 :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려면 적당히 때가 묻어 있어야 해.

     

     

    순수한 대사들도 많이 있었고,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정말 잘 보여주는 대사들도 곳곳에 있어서 순수함에 힐링받다가 순수함 속에 있는 날카로운 송곳에 찔리는 듯한 느낌이 들다가 현실에 찌든 대사에 탄식이 나오기도 했었다.

     

     

     

     


     

     

    다른 사람의 세계에 다가가다

     

     

    영화 <증인>을 한 마디로 요약을 하자면 ‘어떻게 다가가야 하죠?’라고 물었던 인물이 ‘제가 직접 가면 되죠!’라고 대답하는 인물로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지우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지우와 대화를 하기 위해 담당 검사에게 어떻게 자폐아ㅘ 대화를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물어보는 순호. ‘어떻게 합니까?’하고 물어보던 순호는 지우에게 선물공세와 퀴즈풀기를 통해 점점 친해지고 지우와의 대화에 성공한다.

     


    지우의 목격으로 인해 자신의 의뢰인이 실제 살인범이었음을 알게 되자 변호사자격을 걸고 재판에서 그 비밀을 폭로하며 지우의 증언이 재판에서 활용될 수 있게끔 한다. 그렇게 모든 재판이 끝나고 지우의 생일파티에 놀러 간 그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 지우를 엄마가 부르려 하자 ‘아닙니다. 제가 가면 되죠.’라고 말한다. 이런 순호의 성장을 통해서 타인의 세계에 직접 다가가는 것이 소통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잘 알려주고 있었다.

     

     

     

     


     

     

    영화 <증인>은 잔잔한 감동으로 힐링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 자세히 보기 +
  • 먼지를 털고 능숙하게 벼려 밝힌 영화라는 여명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2021 | 스티븐 스필버그 | 156분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허드슨강과 리버사이드파크, 서쪽으로는 센트럴파크를 옆에 낀 뉴욕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Upper West Side에는 미국 역사의 곡절이 담겨있다.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19세기 후반 산업화 시기 노동 계급의 거처, 20세기 전쟁의 풍파로부터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혹은 생활고를 피해 희망을 찾고자 정착한 이민자의 터전으로 발전한 이곳은, 도시 재개발로 자본과 사람이 유입해 문화와 예술이 발흥하는 뉴욕을 대표하는 부촌이 되었다. 지금의 멀끔하고 반듯한 건물과 거리, 햇볕을 쬐고자 바깥에 나온 느긋한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기 전, 그러니까 약 60여 년 전 도시 재개발로 링컨 센터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막 뜬 그때 삶을 일궈 온 사람들은 떠나야 할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백인 하층 노동 계급 지역 할렘 Harlem과 중남미 이민자의 거리 산 후안 힐 San Juan Hill을 배경으로 생존과 반목을 넘은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았다.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뮤지컬을 영화화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61년 동명의 작품은 뮤지컬 영화의 고전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이 영화를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에 영화 애호가들은 기대와 (주로는) 우려가 엇갈렸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 만들어 낼 첫 뮤지컬 장르라는 관심과 함께, 우리는 이미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 오래된 이야기를 지금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시 선보일 것인가에 관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감독에게는 잘 돼야 본전, 망치면 원작을 경험한 관객의 실망만 커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컸으리라. 그렇지만 노련한 거장은 결국 고전의 향수와 창작자의 정체성, 그리고 현재의 시선에서 영화 매체에 마침맞은 재구성을 이루어냈다.     

     

     


    셰익스피어의 오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파벌 간의 갈등 속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주제인 이 뮤지컬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과 제롬 로빈스(제리 라비노비츠)의 안무가 결합해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다만 1960년대 당시의 기술력이나 연출을 고려하더라도, 원작의 배우와 무대, 소품이라는 세트피스가 완벽하게 합일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유명한 오프닝 씬이나 체육관의 댄스파티 속 뮤지컬 넘버와 안무의 조화는 지금 보아도 훌륭한 장면이지만, 비교적 정적인 카메라 시선과 배우들의 대사 처리 등 뮤지컬 실황에 영화적 기법을 첨가한, 60년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과도기적 흐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과 영화의 차이가 시각 매체로써 특히 공간의 무한한 변화 가능성 유무에 있다고 한다면 2021년 영화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라는 한 지구地區를 통째로 배경 삼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America〉는 도시 전체를 무대 삼아 거리를 누비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포인트인 〈Gee, Officer Krupke〉에서는 경찰서의 소품들로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거기에 〈Cool〉에서의 부서진 폐건물을 중심으로 ‘토니’(안셀 엘고트)와 ‘리프’(마이크 파이스트), 제트파 사이의 갈등과 신경전, 체육관에서의 댄스파티 등 뮤지컬 넘버를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일조한 카메라 워킹도 빼놓을 수 없다.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는 발레와 라틴댄스 기반의 춤의 역동성을 부각한다. 공들인 정교한 합과 역동적인 집단 군무가 스크린 앞 관객에게 화려하고 멋진 장면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된 이유다. 관객은 현실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을 날 선 갈등과 비극을 춤과 노래를 통해 어느 정도 희석된 버전의 모습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영화는 음악만큼이나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극적 상황을 조성하는 장치로 적절하게 사용한다. 체육관 뒤편에서 토니와 마리아(레이철 지글러)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 건너편 틈 사이로 빛이 스며오는 장면이나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장면이 사랑에 빠진 몽롱한 분위기를 더 살렸다고 생각하지만) 제트파와 샤크파의 패싸움이 벌어지는 소금창고 양편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움직이며 겹치면서 발생하는 명암의 대비로 두 파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을 연출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원작이 주차장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을 조명 삼아 펼쳐지는 발레 대결이라면 리메이크된 작품에서는 훨씬 실감 나는 대전이 벌어진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오래된 성당에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동안 모자이크 사이로 비치는 아름다운 빛이나, 밤과 낮이 교차하며 달라지는 빛의 분위기도 눈여겨보게 된다. 연출을 위한 소품의 적절한 사용도 눈에 띈다. 앞서 제트파가 경찰서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퀀스에서 주변 소품을 활용한 앙상블은 재기 발랄하며 맹랑한 캐릭터에 잘 들어맞는다. 토니가 싸움을 말리러 갔지만 결국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를 죽인 후 마리아의 방 창문으로 들어와 바람에 날리는 커튼 사이의 장막을 사이에 둔 만남이나, 사랑을 위해 토니를 감싸주는 마리아에게 분노하는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와의 듀엣에서 집에 걸어 둔 천으로 흔들리는 마리아의 감정을 표현하는 등의 장면들은 원작과 비교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메이크작을 관람하기 전 관객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뮤지컬을 어떤 방식의 영화로 만들 것인가.이고, 두 번째는 이 오래된 서사를 21세기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다. 링컨 센터 공사를 위해 곳곳이 헐린 50년대의 맨해튼에서는 불안한 젊은이들의 방황과 분노가 담겨있다. 오히려 원작의 멀끔한 세트보다 이 불안한 10대들의 감정이 잘 드러나도록 설계한 2021년의 영화는 기존의 원작을 유지하면서도 작금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며 원작에 담긴 불쾌한 지점, 혹은 지나쳤던 지점을 부각하고 교정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한다. 시나리오와 노래에는 십 대 청소년의 일탈과 사회 갈등, 이민자 사회의 대립과 빈곤, 재개발 문제가 담겨있다. 그러나 당대 인식의 기반에 깔린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 등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갈등의 중심부에 두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 원형을 일부 유지한 채 스코어의 가사들을 윤색함과 동시에 넘버를 일부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효과를 준다. 감독은 원작에서 지나쳤던 미국 사회(이지만 사실 모든 사회에 통용될)에 고착된 차별과 갈등을 이야기의 모티프나 브릿지로 만들어 시의성을 높인다. 원작에서는 ‘우리의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 집단을 별종 혹은 외부 집단으로 설정해 그들의 유입으로 두 파벌의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현재의 갈등이 발생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경찰을 비롯한 어른들조차 백인 소년들의 편에 서서 이민자들을 향해 차별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리메이크작에서는 맨해튼이라는 지역의 역사의 흐름에서 자본에 밀려 탈락한 백인 하층 노동자 집단과 중남미 이민자 집단이라는 두 비주류 집단 간의 반목과 대립을 명시한다. 경찰로 상징되는 기존의 기득권 엘리트 집단의 눈에는 두 파벌 모두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골칫거리인 것이다. 여전히 미국 정치 지형에 대입할 수 있는 상황을 명확히 설정했음은 스페인어에 따로 자막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영어가 제1 언어인 미국이나. 두 언어에 익숙지 않아 그들의 자막 설정을 따라가야 하는 한국의 관객 관점에서 불친절할 수 있겠으나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그만큼 확고히 보여주는 설정도 없다. 이는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주류 사회 분위기에 편입하려는 당시 이민자들의 노력을 보여주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들의 언어가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표식과도 같다. 

     

     

     

    주인공인 토니와 마리아를 중심에 두면 영화는 대립적인 집단 간 젊은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하지만, 청소년들의 일탈을 대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들을 외곽으로 내모는 사회에 눈을 돌린다면 또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상 복지서비스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젊은이들을 어떻게 죽음으로 내모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본다면 이들의 파국에 사회와 기성세대의 책임은 없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여기서 두 파벌의 중립지대인 가게(약국)의 주인인 ‘독’을 대신해 원작에는 없던 인물인 ‘발렌티나’(리타 모레노)를 추가한 점은 익숙하며 낡아 버린 서사에 새로운 결을 터 주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 발렌티나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몇 안 되는 어른 캐릭터이자 아직 어린 청년들의 치기와 감정의 골을 봉합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설정상 독과 사별한 부인이며 유대인이자 코카시안과 결혼한 푸에르토리코인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그에게 복합적인 감정선과 서사를 부여한다. 인종과 문화 등 다층적인 차별과 분노가 폭발하는 공간에서 발렌티나는 인종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위치하기 어려운 인물을 연기한다. 배신자 소리를 듣기까지 하는 아픔에도 이 이야기 속 유일한 ‘어른’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지점은 발렌티나가 1961년 원작에서 아니타 역할을 맡았던 리타 모레노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원작 속 아니타의 넘버였던 〈Somewhere〉를 사실상 원곡자인 발렌티나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이 넘버는 61년 작품의 아니타의 감정과는 다른, 한 노인이 끝내 안온한 삶을 바랐으나 여전히 이루지 못한 현실을 향한 회한의 노래이자, 분열로 극한 대립을 벌이는 현대 사회를 향한 기약을 알 수 없는, 하지만 이뤄야 하는 목표의식으로 변한다. 또한 여기서 그는 하나의 배역을 넘어 원작과의 가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영화의 테두리를 넘어 확장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니타는 제트파에게 마리아의 전언을 일러주려 발렌티나의 약국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한다. 원작은 이 상황을 극화된 리듬과 안무를 부여해 단지 서사의 변곡점 역할로 넘어갔지만, 정황상 아니타가 강간을 당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독은 상황을 종결시키며 충동적인 청년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넘어간다. 폭력의 피해자인 아니타에게 누구도 사과와 위로는 없었다. 그리고 60년이 지나. 과거의 악몽이 그때의 아니타이자, 지금 발렌티나의 눈앞에 재현된다. 영화는 과거 리드미컬한 연출로 재현된 끔찍한 장면을 다시 보여주면서도 상황의 극화 없이 정확히 직시하는 연출로 기이하며 끔찍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에게 지금의 상황이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또한 원작과 달리 제트파와 함께 있던 백인 여성들이 성폭력의 현장에서 함께 아니타를 보호하기 위해 항의하고, 남성들에 의해 쫓겨나는 장면은 이 사건이 단순한 인종 혐오가 아닌 더 큰 차별적 관념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황을 발견한 발렌티나는 제트파를 제재하고 아니타를 내보낸 뒤 범죄를 저지른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노려보며 “너희들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장면은 결국 60년 전 어린 아니타가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때의 사건과 가해자들을 기억하며, 자신은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은 채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사실을 일갈하는 장면이다. 그는 60년 전 그 날에 갇힌 피해자에서, 이제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젊은 남성들을 단호히 ‘강간범’이라고 호명하며 여성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를 대변하는 어른으로서 말이다.

     

    그밖에도 영화는 원작의 애니바디(아이리스 메나스)를 피상적인 톰보이 캐릭터에서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로 설정해 제노포비아와 함께 성소수자 혐오로부터 집단 내에서 인정받는 서사를 부여한다. 처음에는 배제된 소수자에서 결국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애니바디는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제트파가 마련한 권총이 치노(조쉬 안드레스 리베라)로 이어져 발생하는 결말에 비중을 두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논쟁인 총기 규제 문제를 다루는 모습도 보인다. 허가받지 않은 자의 미숙한 총기 사용으로 노출되는 범죄의 양상은 작품 중후반에 꽤 자세히 다뤄진다. 

     

     

     


     

    관객은 공연과 영화의 차이를 알고,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이 만드는 뮤지컬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거기에 감독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소수자성과 대립에 주목하며 기존의 작품 속에 감춰있던 이야기를 발굴했다. 사랑과 생존 중 더 중요한 것을 묻는 발렌티나의 질문에 토니는 사랑을 택한다. 그러나 존엄한 삶의 소중함은 사랑과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한 채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남겨진 자들의 몫은 존재하고, 삶은 여전히 지속한다. 서로 같은 달빛 아래 다른 마음으로 밤이 오기를 바랐던 이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모두가 각자의 길을 떠나는 원작의 마지막에 2021년의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 남겨진 자들의 삶을 위로하듯 새벽이 밝아 오는 맨해튼의 도시를 보여준다. 비극 안에서도 삶은 소중하고,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드는 한 빛은 찾아온다는 사실.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생 사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말하던 이 명제를 살아남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기에, 그는 여러 우려를 감수하고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 자세히 보기 +
  • <엔칸토>, 대들 수 있는 자녀가 온 집안을 구한다!
  • # 뭘 해도 부족하기만 한, 전혀 특별하지 않은 자녀 

     

    <엔칸토 : 마법의 세계>가 제기하는 문제제기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어떤 자녀가 진짜 영웅이 될 수 있는가 
    자녀는 언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가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주인공,
    뭘 해도 늘 가족들 기준에 못 미치는, 가문의 '아픈 손가락', '미라벨'! 

    마법의 힘이 유전되는 '마드리갈' 패밀리 중에서 유일하게 마법 능력을 받지 못한 '미라벨'

     

    마법의 힘으로 만들어진 마을 '엔칸토'와 그 엔칸토를 이끌고 가는 '마드리갈 가문'.

    마드리갈 가문에 태어난 아이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모두 자기만의 '마법의 힘'을 갖게 된다. 

    이런 대단한 가문에서 유일하게 '마법의 힘'을 전해 받지 못한 '미라벨'.

     

    미라벨의 두 언니, 엄청난 힘을 가진 '루이사'와 손으로 온갖 아름다운 꽃과 식물을 만들어내는 '이사벨라'

     

    특히 미라벨의 친언니 '루이사'와 '이사벨라'는 특출 난 마법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미라벨의 비교 대상이 된다. 친언니들뿐 아니라 미라벨은 대단한 마법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엄마, 친척들과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며 집안의 아픈 손가락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멋진 미라벨! 언제나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씩씩하게 살아간다! 

     

    이렇게 씩씩하고 당찬 미라벨이 유일하게 눈치를 보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마드리갈 집안의 가장, '아부엘라', 할머니다! 

    마드리갈 가문의 가장, 할머니 '아부엘라'

     

    오래전 갓난아이 셋을 안고 남편과 함께 강을 건너 피난길에 올랐던 '아부엘라'(할머니). 

    도망가는 피난민들을 위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아부엘라의 남편이 군인들을 막아섰고,

    군인들은 아부엘라의 눈앞에서 남편을 죽인다. 

    절망에 빠진 순간, 아부엘라는 강에서 '마법'을 선물 받는다. 

    그 마법으로 '엔칸토'라는 마을이 세워지고, 그때부터 아부엘라는 마법의 힘으로 마드리갈 가문과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며 살아간다. 

     

    마드리갈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모두 특별한 '마법의 능력'을 받게 되었고, 

    마법의 능력을 받는 의식은 할머니 아부엘라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 의식에서 마법을 받는 것에 실패한 자녀가 바로 '미라벨'.

     

    할머니 눈에 미라벨은 '가장 약하고, 부족하며, 전혀 특별하지 않은 자녀'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할머니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미라벨은, 할머니 앞에만 서면 작아지곤 하였다. 

     


    # 강력한 권위에 유일하게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자녀! 

     

    그러던 어느 날, 마법으로 지어진 마드리갈 가문의 집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집에 금이 가면서, 가족들의 능력도 약해진다. 

    마법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집에 금이 가고 있다는 것, 마법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을 눈치챈 유일한 사람이 바로 미라벨!

    미라벨은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경고하지만, 아무도 미라벨의 말을 믿지 않는다.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머니는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미라벨을 비난한다. 

     

    하지만 마법은 정말로 사라지고 있었고, 미라벨만이 그 사실을 직시하고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미라벨이 가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일은 꼬이고, 집은 점점 망가져 갔다. 

     

    마법이 사라지면서 점점 무너지는 마드리갈 '집'과 '엔칸토'  

     

    할머니는, 마법이 사라지는 이유가 바로 '미라벨'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미라벨의 삼촌 '브루노'는 앞으로 일어날 안 좋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이 있었다.

    오래전 '브루노' 삼촌은 마법의 능력을 통해 언젠가 마드리갈 집이 무너지고, 

    그 무너지는 집 가운데 '미라벨'이 서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늘 안 좋은 소식을 전하며 미움을 사던 브루노도 그 예지를 본 이후 집안에서 사라진다.)

     

    그러한 <브루노 삼촌의 예지 + 미라벨의 설치고 다니는 모습>이 결합하여, 

    미라벨은 마법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여겨지며, 할머니의 비난을 받게 된다. 

     

    미라벨 때문에 집이 무너지고 마법이 사라진다고 믿는 할머니  

     

    할머니는 모든 것을 미라벨 탓으로 돌린다.

     

    벽의 금들은 너와 함께 시작됐어.
    브루노도 너 때문에 떠났어.
    루이사는 힘을 잃었고, 이사벨라는 통제불능이야. 너 때문에.
    네가 능력을 못 받은 이유는 모르겠다만,
    그게 가족을 괴롭힐 핑계는 안 되는 거야!

     

    할머니는, 미라벨이 자격지심으로 가족들을 괴롭힌다고 몰아세운다. 

    집이 무너지는 것도, 마법이 사라지는 것도, 다 미라벨 때문이라고!

     

     

    미라벨은 그때 깨닫는다!

     

    끝까지 제가 못마땅하신 거죠?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머니 눈에 루이사는 힘이 모자라고,
    이사벨라는 늘 완벽하지 않겠죠.
    브루노 삼촌도 할머니가 나쁜 면만 봐서 떠났어요.
    삼촌도 저도 우린 이 가족을 사랑해요.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건 할머니라고요.

     

    할머니는 늘 자녀의 '부족한 모습, 모자란 모습'에 더 집중했다는 것! 

    힘이 센 루이사도, 완벽한 이사벨라도, 나쁜 미래를 보던 브루노 삼촌도..

    가족을 위한다며 가족에게 행한 할머니의 행동은, 사실 진짜 가족을 위한 사랑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미라벨은 외친다!

    할머니가 집을 부수고 있어요. 기적은 할머니 때문에 죽어가는 거라고요!!

    그 누구도 할머니에게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말,

    어느 누구도 감히 할머니에게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말, 

    미라벨은 유일하게 할머니에게 대들었다! 

     


    # 부모의 잘못에 맞서고 다시 부모를 감싸안는 자리, 마법의 탄생! 

     

    집은 무너진다.

    철저하게.

    집도 사라지고, 마법도 사라진 후, 할머니는 깨닫는다. 

    그리고 미라벨에게 고백한다.

     

    난 기적을 받았다. 두 번째 기회라는 기적을.
    그걸 잃을까 봐 너무 두려워서 누굴 위한 기적이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얻었던 마법의 힘,

    그 마법의 힘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정작 그 마법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잊어버렸다는 고백.

     

    할머니는 깨닫는다.

     

    기적은 자녀들이 받은 마법이 아니라 바로 자녀들 그 자체라는 것.

     

     

    미라벨은, 할머니의 고백을 조용히 듣고 깨닫는다. 

     

    이제야 알겠어요. 할머니는 집을 잃고 모든 걸 잃으셨죠.
    모든 괴로움을 혼자 견뎌오신 거예요.
    우린 할머니 덕분에 구원받았고,
    할머니 덕분에 기적을 받았고,
    할머니 덕분에 가족이 됐어요.
    그 어떤 게 무너져도 함께라면 고칠 수 있어요.

     

    어느 순간 집안의 '빌런'이 되어버린 할머니,

    그러나 그러한 할머니는 혼자 모든 괴로움과 책임감을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왔으며,

    가족의 탄생과 유지, 평화를 지켜왔다. 

    미라벨은 할머니의 상처를 알아보고, 할머니의 마음을 위로한다.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할머니를 감싸 안는다. 

     

     

    마법을 잃은 마드리갈 가문은, 엔칸토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집을 세운다.

    그리고 다시 세워진 집에 미라벨이 문고리를 거는 순간, '마법'은 되살아난다!

     

    이것이 미라벨이 가진 진짜 마법의 힘이었다! 

     

    모두가 기존의 권위에 억눌려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유일하게 나서 그 강력한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부모의 잘못을 모른척하지 않고, 

    그 잘못한 것을 넘어서 감춰져 있던 부모의 진심을 알아차리고, 

    그 마음을 감싸안는 용기.

    이것이 가장 어렵고 힘든 마법.

     

    세상의 법칙이 가진 부정적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탓할 수 있는 용기,
    거기에 더해 그 너머의 긍정적 가치를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용기.

     

    미라벨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 마법은 무너진 한 집안을, 

    마을을, 

    세계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 자세히 보기 +
  • 각자 환경에 맞는 삶의 속도란
  •  

     

    사실 시놉시스만 보고 완전히 일본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시작 무렵 제작지원 항목에 너무나도 익숙한 한국기관의 이름들이 나와서 한국 기업이 일본 영화에 투자를 한 것인가 했다가 감독 이름이 박혁지! 한국이름이어서 굉장히 당황한 채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영화 <행복의 속도>. 순간 다른 영화의 시놉시스를 잘못 보고 들어온 것인가 혼란스러웠지만 아름다운 오제와 봇카에 대해 이야기가 바로 시작되어서 감독만 한국 사람이었구나 속으로 잘못 본게 아니구나 안도하며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 <행복의 속도> 시놉시스

     

     

    지금, 당신은 어느 길 위에 있나요?

     

     

    꽃, 바람, 새 그리고 나뭇길... 해발 1,500미터 천상의 화원 ‘오제’. ‘이가라시’와 ‘이시타카’는산장까지 짐을 배달하는 ‘봇카’다. 70~80kg의 짐을 지고 같은 길을 걷지만 매 순간 ‘오제’의 길 위에서 자신의 시간을 채워가는 '이가라시'. 반면 '봇카'를 널리 알리고 싶은 '이시타카’.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 건네는 이야기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행복의 속도>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

     

     


     

     

    아름다운 오제의 현장을 담아내다

     

     

    영화 <행복의 속도>를 보면 정말 어느 누구라도 감탄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4K가 얼마나 풍경을 잘 담아내는지 그 위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제의 광활한 풍경에서부터 조그마한 잎사귀와 꽃, 나비까지. 그 모든 자연을 하나하나 포착해서 담아낸 영화 <행복의 속도>는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작년까지는 계절의 변화와 그 계절의 아름다움에 대해 크게 감흥이 없었는데 유달리 올해 들어서 바뀌는 계절이 굉장히 예쁘고 사진찍는게 행복한 한 해였다. 그런 1년을 보내는 시기에 만난 영화 <행복의 속도>에서 바뀌는 계절의 색감을 너무나도 찬란하게 비춰주고 있어서 오제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날로그의 삶을 살아가는 오제

     

     

    일본에 있는 오제라는 국립공원은 디지털은 잘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정산은 수기로 이뤄지고 택배 시스템도 차량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걸어서 산장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봇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매일 70-80kg이나 되는 짐을 이고지고 산장으로 옮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걸을 때 스마트폰을 보거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세상에 대한 가십거리나 사회문제 혹은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오제에 사는 사람들과 봇카는 조금 달랐다. 평소보다 꽃이 빨리 시들었고, 어떤 식물이 예쁘게 피었으며, 누에고치가 언제 나비가 될 것인지 등 온통 자연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처음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솔직히 어색했다. 어딜가서 올해 꽃이 일찍 폈어! 이 얘기로 상대방과 이야기의 물꼬를 트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연의 변화에 무심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빠른 사회에 선사하는 느린 영화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현대사회와 완전히 대치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는 영화 <행복의 속도>. 요즘 영화들도 빠른 컷전환과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면 영화 <행복의 속도>에서는 느린 화면 전환과 아름다운 자연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그리고 빠르게 물건을 이송할 수 있는 헬기에 주목하기보다 몇시간이 걸리더라도 본인의 일을 묵묵히 하는 봇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속도에 대한 질문을 넌지시 던지고 있었다. 

     

     

    과연 빠르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물론 오제와 같은 자연환경이 아닌 빌딩숲에 둘러쌓이고 월급을 받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살아가라는 조언은 얼토당토하지 않다. 환경과 사회 자체가 다르니 말이다. 하지만 회사가 아닌, 개인의 삶 자체에는 그 이야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일상을 유지하는 방식이 회사와 사무를 처리하듯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치기 보다는 그 순간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지하철을 타며 노을지는 한강을 바라보며, 밤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며, 나의 속도대로 일상을 지켜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행복의 속도>는 꼭 봇카들처럼, 오제에 사는 사람들처럼 디지털을 다 버리고 아날로그의 세상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의 속도를, 자신의 페이스를 찾으라고 전달해주고 있어서 잔잔한 울림을 주었던 것 같다.

     

     

     

     


     

     

    영화 <행복의 속도>는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개개인의 행복의 속도에 대해 넌지시 알려주었던 작품이었다.

  • 자세히 보기 +
  •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봤던 아들과 동거를 시작했다.
  •  

    • 줄거리

    효진은 친구인 미란과 동네 작은 공부방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효진은 2년 전에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효진의 남편은 결혼을 해서 종욱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종욱은 친엄마가 죽고 나서 아빠의 애인과 함께 지내다가 할머니 손에 자라게 된다.

    할머니가 몸이 안 좋아지셔서 종욱이 오갈 데가 없어지고 효진은 종욱의 엄마가 되어달라는 당황스러운 부탁을 받게 된다.

    효진은 고민을 하다 피도 안 섞인 죽은 남편의 아들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 기억에 남는 부분

    종욱의 친구로 등장하는 주미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하지 못한 임신을 하게 된다.

    주미는 아이를 없애는 선택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하게 된다.

    때마침 엄마가 되고 싶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서영이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며 주미는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청소년이 임신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아이를 낳는 것, 근데 그 아이를 낳기만 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청소년들이 임신을 하게 되고, 이를 당연하게 책임지는 부분에 대해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오듯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하지만 키우지는 않고 아이를 낳자마자 보지 않고 아이를 필요로 하는 집에 보내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이러한 방법도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아쉽다고 느꼈던 점은 종욱이 서영의 통화 내용을 듣고, 주미의 아이를 서영에게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을 알게 된 종욱은 주미와 다투게 된다.

    나는 후에 주미가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좋은 가정을 선물해 주는 것이라는 대사를 하고 나서야 그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 장면을 보고 바로 이해가 되었다면 영화를 보는 입장으로서 어리둥절하지 않았을듯해서 전화 내용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나타났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느꼈다.

    마지막 부분에 효진이 장을 본 후에 짐을 들고 가는 것을 본 종욱이 효진에게 짐을 달라고 한다.

    영화 내내 종욱은 효진을 그쪽, 아줌마 등의 호칭으로 불렀었는데, 짐을 들어주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무 호칭 없이 짐을 자신에게 달라고 한다.

    나는 여태 서로가 불편한 사이였던 두 사람이 점차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소중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엄마라고 부르거나 하는 것보다는 아무런 호칭도 없지만 효진의 짐을 들어준다는 부분에서 서로가 가지고 있던 짐들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이 느껴졌다.

    • 명대사

    "누가 걔를 키워야 되냐고 물으면 그게 네가 될 수도 있어

    근데 걔를 키우지 말아야 될 사람을 꼽자면 그것도 너야"

     

    "누가 책임져야 하냐고 물으면 너희가 맞을 수도 있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키우지 말아야 할 사람이 누군가 따져보면

    그거 역시 너희들이야"

    파노라마_테디 에디터

  • 자세히 보기 +
  • 영화 <스왈로우> 리뷰
  •  

     

      영화 「스왈로우」(2020)의 주인공인 헌터(헤일리 베넷)는 남편인 리치(오스틴 스토얼)와 함께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되고 헌터는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먹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행복하리라 예상했던 결혼 생활은 답답한 생활의 반복이다. 리치의 가족으로부터 지극히 이방인으로 대우받고 단지 대를 잇기 위해 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헌터에게 가족 간의 유대감은 고사하고 어떠한 (감정적인) 출구도 제공되지 않는다. 탈출구 없는 결혼 생활과 원치 않아 보이는 임신으로 헌터는 이식증을 앓게 된다. 영화는 헌터가 겪는 이식증을 헌터의 생활과 맞물려 제시함으로 병을 앓는다는 느낌보다 신비로움에 이끌려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를 찾은 듯 보이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식증의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쾌락과 고통을 넘나드는 헤일리 베넷의 연기로 드러내며 스릴러적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영화는 이식증이 발병하기 전 공허하고 단조로웠던 헌터의 삶과 대비된 그 이후의 삶을 화려해진 집의 공간과 빠른 템포로 마치 안정적이고 건강한 헌터를 보는 듯한 정서를 불어넣어 관객이 안정감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도록 한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들이 이식증을 들킬까 마음을 졸이던 순간들을 그리 길게 끌지 않는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헌터의 이식증이 리치에게 발각된 이후 드러나는 헌터의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이식증으로 인해 받게 된 심리 상담에서 불현듯 그의 과거가 드러나며 영화는 관객에게 이식증을 앓는 헌터에 집중하기보다 선행해 존재하던 헌터라는 한 인간을 다시 처음부터 이해하도록 한다. 헌터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의 과거를 심리 상담가에게 말한다. 헌터의 엄마는 강간범의 소행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였고 종교적 이유로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았다. 헌터 자신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던 이 과거를 헌터는 ‘많이 생각하여’ 극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가 리치에게 밝혀진 이후 헌터가 보인 심각한 불안 증세와 이식증의 재발은 아직 헌터가 그 과거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헌터는 결혼생활 중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이식증이 발병되었다. 헌터에게 이식증은 주체성과 자율성을 증명하는 행위이자 억압적 상황에서 하나의 감정적 배출구로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원치 않던 임신을 한 후, 억압적 상황에 대한 반영이 이식증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에 주목해볼 수 있다. 임신의 과정에서 먹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헌터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는다. 부푼 배를 보고도 행복해 보이지 않던 그는 사실 자신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주체적으로 표명하지 못하는 억압의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거부감을 이식증으로 발병시키고 그 잘못된 쾌락에 더 빠져듦으로 일종의 투쟁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헌터의 엄마와 헌터의 통화 내용, 그에 따른 헌터의 반응으로 유추해봤을 때 헌터의 엄마가 (의도적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헌터의 동생을 헌터보다 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헌터의 엄마는 자신이 의지가 아닌 종교적인 이유로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았다. 헌터를 어쩔 수 없이 출산한 엄마에게 헌터는 자신의 딸인 동시에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제공한 강간범을 연상시키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엄마와의 관계에서 헌터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의 온전한 의지로 탄생된 필연적 존재’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자라났을 것이다. 따라 헌터는 자신의 존재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경험에 대한 결핍이 있었고 이 관계에 대한 집착이 낳은 결과가 리치와의 관계이다. 그가 자신 때문에 행복해했기에 그의 모든 선택을 따랐고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이 사랑의 관계는 결국 관계에서 헌터를 수동적인 존재가 되도록 했고 억압적이고 고립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다. 헌터는 혼자 지내게 된 모텔에서 리치에게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제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흘러가는 상황을 맞이한 헌터는 더 이상 이질적인 것(흙)을 삼켜내지 못한다.

      다른 가족에게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 헌터는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의 집으로 간다. 강간범의 흔적으로만 그를 바라보았던 타인의 시선에 대한 수많은 경험들은 헌터에게 헌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자는 자신을 탄생케 한 아버지였을 것이다. 마침내 헌터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권리로 그 물음을 던졌고 아버지라는 작자는 대답했다. 헌터는 헌터가 그를 닮지도 않았음을, 그가 가진 비열한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헌터는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드디어 확인받았다. 헌터는 누구의 흔적으로서도 아닌, 누구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도 아닌 ‘헌터‘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헌터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상황에서 내린 첫 번째 선택은 임신중절이다. 헌터가 가진 아이는 마치 헌터를 닮았다. 누군가의 간절한 의지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 헌터의 선택에는 배 속의 존재가 자신과 같은 운명을 반복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겼을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생기는 비극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헌터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스릴러적 분위기로 시작하였으나 곧 드라마로 전환되어 주인공인 헌터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닌 그의 삶에 주목한다. 헌터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여성이 겪는 이타적이고 고립된 결혼생활부터 임신중절 선택까지 현재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여러 상황과 정서를 영화에 반영했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한 여성이 과거를 극복하고 주체성을 획득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헌터의 출생부터 마지막 헌터의 선택까지 이 이야기는 중점적인 주제로서 임신중절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말한다. 헌터가 자신에 대한 결정, 통제권을 생물학적 아버지 앞에서 온몸으로 부르짖은 뒤 행했던 일이 임신중절이었다는 사실은 단지 임신중절의 선택권을 임신을 한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이가 행사했다는 의미를 가질 뿐이다. ‘현실의 반영‘인 영화는 임신중절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다루었고 더불어 ‘반영의 현실’인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 이야기를 모든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시키며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여성들을 말한다.

     

     

     

  • 자세히 보기 +
  • 소우주의 보존 가능성
  •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서로를 탐색하던 남녀는 연극을 끝내려고 한다. 영원할 것만 같은 미래를 기약하는 두 사람. 하지만 <얼라이드>는 연인이 공유하는 전형적인 에피소드를 예상보다는 적게 나열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지금부터다. 끝날 줄만 알았던 연극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징후가 포착되는 순간, 완전히 걷어낸 줄로만 알았던 베일이 몇 겹 더 남았다는 섬뜩한 사실에 직면한다. 마리안이 자신을 속여왔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흔적들에도 불구하고 맥스는 현실을 부정한다. 애초에 그에게 각인되어 있던 건, 감정을 연기하는 유능한 공작원의 스킬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숨결과 온기다. 그래서 맥스는 끈질기게 확인해야만 한다. 맥스는 마리안에게 우리 관계는 진실된 것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마리안은 그만큼 불투명한 인물이다. 단지 그녀가 첩보 공작에 능통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읊는 대사 한 마디 때문이다. 마리안의 말처럼 감정을 연기하는 일은 진실을 대체할 수 있을까. 서로 밀착한 채 숨소리를 속삭이고 입을 맞추다가도 슬며시 포옹하지만, 그 이면에는 끝내 지워낼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나도 상대를 속이고 상대도 나를 속이는 쌍방의 가면극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평생을 첩보와 공작 활동에 몸담아 왔던 두 사람에게 진실과 거짓을 구분 짓는 일은 일종의 숙명이면서 동시에 가장 진절머리 나는 장애물과 같다. 이들 세상엔 감상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건 의구심과 냉혹함이다. 마리안과 결혼하려는 맥스를 향해 동료들은 임무로 맺어진 인연은 위험하다며 회의감을 표출하지 않는가. 맥스와 마리안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사랑을 나누는 순간들은 그래서 온전히 투명할 수 없다. 순도 높은 진실 혹은 거짓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그런 불투명의 세상을 온전히 수용하는 일뿐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따지려 드는 순간,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이 모두 검열과 판단의 대상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소우주의 생성

     

    카사블랑카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나던 때가 떠오른다. 맥스가 어딘가를 바라보는 모습, 맥스의 시점 숏, 그리고 이어지는 클로즈업의 매혹적인 조합. 일찍이 접선 장소로 향하는 동안 연락책은 맥스에게 그가 만날 사람에 관한 두 가지 정보를 건넸다. 자주색 그리고 벌새. 맥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자줏빛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서 있다. 하지만 이내 여인은 프레임을 벗어나 버린다. 재밌게도 이 여인에 가려져 있던 다른 사람이 맥스의 눈을 사로잡는다. 역시 자주색 옷이다.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자줏빛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뒤태. 그리고 이어지는 숏에는 옷에 수놓인 벌새 그림이 있다. 그리고 카메라가 시선을 위로 옮기면, 그의 눈길을 알아챈 여인이 고개를 아주 살짝 돌려 곁눈질로 맥스와 눈을 맞춘다. 두 사람은 접선 장소에서 서로 만나야 하는 사람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고지 받았다. 맥스가 마리안을 확인한 뒤 미소를 살짝 머금으면 마리안도 따라서 미소를 지으면서 합의된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얼라이드>의 리듬을 재단하는 구간이 있다면, 바로 이 장면이다. 아니 정확히는 마리안이 맥스의 시선을 감지한 순간부터 두 사람이 위장 결혼 연기에 돌입하기 바로 직전까지의 시간이 아닐까.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를 향한 미약한 믿음과 기대감을 드러내야만 한다. 평생을 위태롭게 부유하는 스파이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음미하는 존재들이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차 안에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카메라는 아주 천천히 돌면서 두 사람을 응시한다. 이들의 시공간에 녹아들고자 하는 욕망이 반영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장면은 호흡이 긴 롱테이크가 아닌, 짧은 숏이 계속해서 분절적으로 이어 붙은 형태로 구성된다. 마치 이들의 관계를 형상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그들은 서로 감정을 나누고 있지만, 그들의 소우주에서 벗어난 외부의 시선이 개입되는 순간 이 불안정한 세계는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영화는 순순히 인정하는 셈이다. 그들의 관계 자체를 바라볼 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일은 중요치 않으며, 우리는 그들의 시선과 몸짓을, 그리고 그들 사이의 무드나 기류 등을 바라볼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는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이벤트가 발생하기 직전에만 감당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들이다. 말하자면 유예된 시간일까. 불현듯 팀 버튼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2016)이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맥스나 마리안과 같은 존재들이 등장하는 건 아닐까.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3년의 어느 날. 한 어린이집이 독일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파괴된다. 아이들을 보살피는 페레그린 선생님은 자신의 특수 능력을 이용해 타임 루프를 만들어낸다. 폭격을 맞아 집이 파괴되기 직전까지의 시각으로부터 역으로 24시간을 되돌린다. <얼라이드>의 스파이들은 팀 버튼의 판타지 설정에 노출된 존재들은 아니지만, 그들 역시 나름대로 ‘폭격 직전의 24시간’을 만끽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리안과 맥스가 그들에게 닥쳐올 운명적인 순간들 사이를 일종의 폭풍의 눈처럼 여기고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것도 개입될 수 없는 두 사람만의 시공간, 즉 둘만의 소우주로 변모한다.

     

    유능한 스파이들과 어린이집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소우주를 감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페레그린과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과를 실행하고, 폭격 시간이 가까워지면 뒷마당에 모두 모여 시간을 되돌린다. 그렇게 다시 살아갈 하루를 얻는다. 페레그린이 시간을 되돌리는 데 성공하면, 아이들은 마치 신년 행사를 즐기듯 환호하면서 유예된 시간의 입구에 들어서는 일을 기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폭격을 앞둔 환호라니! 전쟁이 가져오는 죽음의 기운과 삶을 보존할 수 있는 소우주의 생성이 충돌한다. 이 감정적 파편의 얽힘으로 인해 생성되는 무드가 <얼라이드>에서 다른 방식으로 변주된 듯하다. 물론 두 영화의 연결고리는 경력이 탄탄한 연출자(로버트 저메키스와 팀 버튼)가 같은 해에 내놓은 할리우드 영화라는 우연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두 영화가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상마저도 공유한다는 사실이 맥스네 가족과 어린이집 사람들을 이어준다. <얼라이드>에서도 어린이집이 직면했던 순간과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포탄에 맞아 작동 불능 상태가 된 독일군 전투기가 스파이 부부의 집을 향해 추락한다. 다행히 비행기는 두 사람의 집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다. 맥스와 마리안은 공포에 질려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그 찰나를 버텨낸다. 비행기는 집과 충돌하지 않았고, 그들은 생존했다. 어린이집 아이들은 살아남지 못했고, 페레그린은 시간을 되돌렸다. 그래서 <얼라이드>에서 중요한 건 카메라가 짧은 시간 동안 온갖 감정들이 스쳐 가는 가족의 얼굴을 분명하게 담아냈다는 사실이다. 운명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생성되는 소우주, 그 유예된 시공간이 뿜어내는 인상이 <얼라이드>를 매혹적인 텍스트로 만든다.

     

     

     

     


    의심과 균열: 경유하는 이미지들

     

    격추된 비행기가 두 사람을 공포에 떨게 했던 상황보다 훨씬 전부터 이미 균열의 징조가 감지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조그마한 불신이 개입되는 순간, 끈끈했던 관계는 급격하게 동력을 잃는다. 결국, 그들의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모호함을 안은 채 서로의 흐릿한 형상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얼라이드>는 묘한 영화다. 한편에는 감정선을 따라 들끓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박자를 타는 멜로의 텐션이, 다른 한편에는 진실과 거짓을 오가면서 상대를 교란하거나 교란당하는 난감함이 도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얼라이드>의 무드를 재단하는 건 불투명한 이미지들이다. 명징한 존재감을 피력하는 이미지가 아닌, 그 자체로 의뭉스럽고 부정확한 지점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는 이미지들 말이다. 매개물과 경유지를 거친 뒤 도달하는 불투명한 형상들이 영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맥스의 미소가 슬쩍 번지는 장면.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의 관록과 그가 연기하는 맥스에 들러붙은 캐릭터의 매력이 섞여 생긴 묘한 물성이 스크린 바깥으로 확장된다. 배우로 인해 맥스의 이미지가 형성되는 건지, 맥스로 인해 브래드 피트의 이미지가 재감각되는 건지 헷갈리게 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이건 마리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정체를 숨긴 자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아는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다. 영화 속 맥스와 마리안은 그만큼 투명하게 감각될 수 없는 의뭉스러운 인물이 된다. 모호한 속성의 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엷은 미소는 작전의 출발점이다. 이 미소엔 실수 없이 부부 연기를 무사히 완수하자는 공동의 의도 또한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또렷할 수 없는 <얼라이드>에선, 이 미소마저도 몇 겹의 베일로 섬세하게 둘러싸인 듯 적당히 흐릿한 감정을 형상화한다. 두 사람의 미소에 무엇이 배어 나올까. 매력 있는 상대를 봤을 때 묻어 나오는 자연스러운 호감일 수도 있고 상대의 정체를 단번에 꿰뚫었다는 스파이의 육감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 두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사실. 믿든 안 믿든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만나야만 하는 상대를 만나게 된 것. 두 스파이를 파고드는 이 운명론적인 무드가 불확실한 기운을 견뎌낸 채 보존될 수 있다.

     

    두 사람은 언제나 모호한 요소를 있는 그대로 수용한 채 서로를 응시한다. 이때 잘 보존되던 소우주에 자그마한 균열이 생기는 원인은 모두 인식의 오류로부터 비롯된다. 그런 맥락에서 <얼라이드>의 몇몇 구간들을 유심히 살필 때, 거울에 비친 형상과 반사된 이미지들이 자연스레 포착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마리안은 맥스에게 사람들을 어떻게 속여야 하는지, 어떤 착장과 말투로 파리지앵 다운 특성을 각인시켜야 하는지 상세히 일러준다. 이때 옷장 문짝에 달린 거울과 화장대의 거울에 맥스와 마리안의 형상이 편입된다. 문득 눈에 띄는 장면들이 있다. 임무를 위해 맥스에게 필요한 정보를 건네주는 마리안의 모습과 거울에 비친 맥스가 함께 담긴 투 숏, 그리고 맥스가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상황에서는 화장대 거울에 말을 이어가는 마리안의 형상이 부분적으로 담기는 구간들이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마리안이 맥스의 목에 목걸이를 채워주는 장면만큼은 자질구레한 대사가 없다. 여기엔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사실, 그리고 가까워진 거리를 의식하는 호흡과 시선을 잠시 교환하면서 생기는 묘한 긴장감만이 있다. 위장과 거짓으로 둘러싸인 거울 이미지들 틈으로 진솔한 감정의 텐션이 지배하는 물리적 감각 교환이 은근슬쩍 끼어든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맥스는 마리안이 뒤돌아 탈의하는 모습을 옷장 문짝의 거울을 통해 바라본다. 이때 맥스의 질문은 사실 후반부에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해 두 사람의 소우주를 뒤흔드는 어떤 흐름과 맞닿아 있다. 마리안은 흘긋 뒤를 응시하고 그 모습은 거울을 통해 맥스에게 가닿는다. 정체를 숨긴 마리안은 어쩌면 경유하거나 매개되는 이미지를 통해 처음부터 주장하는 것 같다. 맥스는 과연 마리안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었던 걸까? 애초에 거울을 거쳐서 불완전하게 응시할 수밖에 없던 건 아닐까. 과연 맥스에게 진실은 남아 있는 걸까. 의심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게 된다. 맥스는 그래서 세수를 한 뒤 거울을 통해 마리안을 바라보려고 한다. 똑바로 볼 자신이 없다는 두려움, 확신과 의심이 뒤엉킨 복잡한 속내는 바로 거울을 거쳐서 도달하는 시선의 불완전한 몸부림으로부터 잘 드러난다. 나도 상대를 온전히 응시할 수 없고, 상대도 나를 온전히 응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 어느샌가 두껍게 쌓인 베일을 건드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다소 극단적인 방식이다. 소우주를 유지하거나 파괴하거나. 타협이 있을 수는 없다. 그들은 이미 많은 기회를 놓쳐버렸다. 맥스든 마리안이든 두 사람에게 어쩌면 이건 필연적인 결말일 수밖에 없다.

     

     

     


    소우주의 파괴

     

    비행기 추락 이후, 맥스는 끝내 비극적인 운명에 한 발 더 다가간다. 진실을 파헤치는 그가 마주한 건 그들의 소우주가 더는 존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격추되는 비행기로부터 살아남은 순간이 진작에 그들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던 건 아닐까.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맥스는 경고를 받고도 소우주를 보존하려는 욕망 대신 깨부수려는 본능에 몸을 맡긴다. <얼라이드>는 맥스와 마리안의 세계에 관한 영화다. 그들의 소우주가 생성되고 보존되는 듯하다가도 끝내 균열을 수습할 수 없어 파멸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얼라이드>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요소는 그 어떤 장르 요소도 아닌, 바로 두 사람의 시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그들의 소우주는 필사적으로 지켜내야만 하는 의지로 지탱되지 않는다. 그저 운명의 흐름, 우연의 개입이 느슨해진 필연의 논리. 이 정해진 경로에서 인물들은 부유하고 진동하고 오인하고 방황한다. 그러다가 베일이 마침내 걷히는 순간, 두 사람은 각자 운명을 수용한다. <얼라이드>의 인물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온전히 곱씹은 뒤 관객과 작별을 고한다. 맥스의 이야기는 다시 의뭉스러운 베일 속으로 매몰된 채 딸에게 구전될 것이다. 그리고 마리안의 이야기는 내레이션과 함께 서서히 옅어져 갈 수밖에 없다. 끝내 관객을 파고드는 건 흑백 사진이다. 한 장의 사진마저도 역시 진실과 거짓의 판별이 불가능해진 어떤 소우주의 보존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맥스와 마리안만이 그 사실에 가장 가까이 있다.

     

     

     

     


     

  • 자세히 보기 +
  • 김종관 감독, 시네밋터블 그리고 조제
  • 시네필 박제욱

     

    1

     11월 11일 인스타그램을 보던 중 우연히 Cinemeetable(시네밋터블) 이라는 페이지에서 김종관 감독을 만날 기회를 가질 참석자를 모집하는 글을 보았다. 시네밋터블은 민용준 영화기자와
    그 주차의 영화 주제에 대해 탐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주연 미식기자가 영화로부터 모티브 얻은 레시피로 직접 요리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프로그램이다. 즉시 지원했으나 아쉽게 선착순에서 밀렸다. 하지만, 며칠 뒤 취소자가 생겼다는 연락이 왔고, 즉시 수락을 했다.

     11월 22일 오후 5시, 바람이 많이 불고 날이 조금은 추웠지만 그래서 더 운치 있었던 노들섬에 도착하였다. 다른 참석자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평소 김종관 감독이 즐기는 레시피로 만든 하이볼 칵테일을 웰컴 드링크로 마시고 있었다. 곧이어 민용준 기자와 김종관 감독의 인터뷰가 시작 되었다. 준비된 자료인 과거 김종관 감독의 영화들을 일부 클립으로 시청하며 김종관 감독에 대해 깊게 파헤치고 직접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12월 10일에 개봉하게 될 “조제” 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김종관 감독은 필자에게 특별한 감독이 되 었다. 막연하게 영화감독 을 지망하던 시기에 영화 와 시나리오 작성법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이 왔었 다. 책들을 사서 보고 영 상도 많이 찾아봤지만,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 다. 그 당시 ‘클래스101’ 이라는 사이트에서 김종 관 감독의 클래스가 오 픈 된 것을 발견했다. 그 때는 누군지 몰랐지만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더 믿어보고 싶었다.

     그 후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순으로 영화를 접하게 되었고, 그의 감성이 마음에 들었다. 특별 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도 이야기가 있고 상황들이 만들어 내는 재밌는 그림이 연출 되었다. 거창한 이야기만을 고뇌하던 시기에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이런 영화도 충 분히 매력 있어’ 라고 말하는 듯했다. 101클래스를 수강하던 중 접하게 된 김종관 감독의 단편영화 “하 코다테에서 안녕”은 나에게 큰 충격을 가져왔다. 오로지 내레이션으로만 스토리를 진행시켜나간 이 짧은 영화가 등장인물이 등장해야 만 한다는 편견을 깨주었다. 적은 자본으로도 영화를 시작하고 싶 은 상황의 사람들에게 아주 새로운 아이디어의 작품이었다.

     김종관 감독을 알게 되고 매력을 느끼고 난 뒤, 한국판 조제가 제작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 영화 제작 담당이 김종관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더 놀랐으며, 기대가 무척 되었지만, 걱정 도 되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국내에 어마어마한 팬덤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품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나름의 비난도 감수해야 될 일종의 미션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독립영화계에 계셨던 감독이 조제 리메이크를 통해 메이저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을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종관 감독의 작품을 다 본 사람으로 서 기대가 안될 수도 없었다. 그가 그려내는 조제의 모습이 궁금하다.

     

    2

     원작(원작 소설이 아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지 칭한다)의 특징은 더러운 사랑이라 고 생각한다. 감동적인 러브스토리 일 수 있지만, 각각의 등장인물들 이 숨기고 있는 더러운 내면, 단점 들이 있다. 그것들을 가리고 사랑 을 하다가 끝까지 담담한척 이별을 마주하는 작품이다. 극 후반부의 담담한 이별이 미치도록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저런 이별이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이 드는 찰나에 폭발해 버리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보여주는 엔딩이 이 작품이 많은 팬덤을 보유하게 된 이유라고도 생각한다.

     12월 10일 개봉과 동시에 영 화관에서 김종관 감독의 조제를 관람했다. 예상과는 다른 전개였으 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새로운 조제를 보았다. 판자촌 집과 그곳 에 사는 조제(한지민역), 그리고 우연히 조제와 인연을 갖게 된 영석 (남주혁역)의 캐릭터는 원작에서 대부분을 가져온 모습이었다. 원작의 조제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김종관 감독의 장점이다. 그 장점 은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조제가 사는 집, 집앞 눈쌓인 거리, 조제가 넘어진 골목 등 조제와 영석이 보내는 모든 공간들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지금 당장 마스크 쓰고 나가도 볼 수 있는 흔한 풍경 들이다. 하지만 이 공간들을 감독은 사건이 벌어지는, 우연한 만남이 있는 특별할 수도 있다는 듯이 툭하고 무심하게 보여 준다. 나열된 풍경 인서트는 위에서 말한 “하코다테에서 안녕”의 아이디어 를 재활용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거리는 김종관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 하는 요소이다. 감독님 스 스로도 사고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신다 하셨고 걸으면서 느낀 그 공간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주로 영화에 담아왔다. 원작 조제와 다르다고 느낀점은 엔딩이다. 결국 조제 커플은 서로의 차이에 속앓이를 하다 이별을 맞이한다. 이별을 맞이하고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며 마무리 되는데, 원작속 남자주인공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역)의 오열장면이 명장면으로 꼽힌다. 반면 원작 속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역)는 스스로 휠체어를 타고 마트를 다녀오는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 습으로 마무리 된다. 그렇다면 김종관 감독의 조제에서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영석은 자신을 좋아하 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분명히 조제를 추억하는 모습도 보여준 다. 이별 후 조제의 삶이 나에겐 다소 충격(?)이었다. 원작으로부터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에 조 제도 장애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적 도움이 많아졌다. (스스로 차도 몰 수 있다!!) 그런 기술적 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할머니의 유골을 안장하는 일도 하면서 대견한 나날을 살 아간다. 원작의 조제의 모습이 무기력해 보일 정도이다. 누군가의 도움만 바라는 성격이 아닌 조제 에게 어울리는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조제가 결국 스스로 스코틀랜드에 가서 자기가 원했던 위스키 양조장에 가서 영석을 추억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꼭 필요한 콘셉트였나, 꼭 필요한 장면인 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김종관 감독과 시네밋터블에서 식사를 하며 들은 이야기로는 리메이크 판 조제에서 조제는 보다 더 자기 취향이 확고한 성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성인 조제가 현실의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켜가며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담으로 위스키를 좋아하는 취향은 실제 감독님의 술 취향이 위스키라고 한다.

     영화 한 줄 평을 올리는 별스타그램에도 올렸지만 필자는 ‘원작만큼 담담하게 보다 더 당당하 게’라고 평가한다. 뭐가 더 명작이고 수작이라고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전달하고자 했 던 주요 메시지가 다르며 그저 조제라는 인물만을 빌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만큼 조제 위주로 전 개되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코로나 시기에 맞물려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제작사 사정으로 인 해 개봉 시기는 어쩔 수 없었다고 들었다. 기존의 김종관 감독 특유의 잔잔함에 상업영화에 길들여 진 대중은 지루함을 느낄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모습을 보니 원작에 마냥 못 미 치는 영화도 아니었다고 느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히려 조제라는 그늘에 가려져 대중도 감 독도 일정한 틀에 고립될 수 있지 않았나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리메이크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 다. 수많은 원작 팬덤, 어려운 시기 속에서 첫 메이저 영화를 당당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관철해내 려 한 김종관 감독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 자세히 보기 +
  • 발레와 드가가 녹아있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작
  •  


    언제나 한결같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책이 진리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영화는 꼬박꼬박 보며 실망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책에서의 그 심리와 스릴러를 영화에서는 쫄깃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안타깝지만 그래도 영화 <비뚤어진 집>은 발레와 드가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분석과 해석의 여지를 남겨준 작품이었다.

     

     


     

     

    영화 <비뚤어진 집> 시놉시스

     

     “나를 죽인 범인은 집 안에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 최고의 작품! 탐욕, 복수, 사랑… 진짜 살인 동기는?

     

    갑작스럽게 사망한 대부호 애리스티드 레오니디스. 타살임을 직감한 손녀 소피아는 사립 탐정 찰스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레오니디스의 대저택에 도착한 찰스는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고,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서 살인 동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곧 저택에서 두 번째 살인이 일어난다.  겉으론 우아하고 화려하지만 속은 전혀 알 수 없는 이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비뚤어진 집>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

     

     


     

     

    전형적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색을 볼 수 있었던 작품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한결같은 매력이 있다.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 심지어 조사를 나온 탐정까지 용의선상으로 올리게끔 구조를 짜서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구미를 당기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근데 이게 또 모든 사람을 의심하겠구나 하고 알고 보니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범인은 한 사람이 될테니(물론 오리엔탈 특급열차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초반 수사하는 장면들을 너무나도 지루하게 편집을 해 놓아서 아니 무슨 수사를 아무리 탐정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느긋느긋 모델하우스 구경나온 사람처럼 하는지 아주 졸음이 쏟아지던 초반부였다.

     

     

     

     


     

     

    드가의 '스타'와 발레로 이어지는 추리물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들이 모든 등장인물을 용의선상으로 끌어올리지만 이 작품은 그 형식을 지키면서도 유력 용의자를 둘로 추려낸다. 바로 큰손녀 소피아와 막내 손녀 조세핀이다. 영화 <비뚤어진 집>은 찰스가 저택에서 수사를 하기 위해 소피아의 집 소개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와중에 아버지를 인터뷰하면서 드가의 '더스타' 작품이 비뚤어진 채 걸려있는 것을 소피아가 발견하고 이를 조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드가의 '스타' 작품은 파스텔로 그려저서 역동적인 발레리나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지만 뭔가 불안정하고 분열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발레를 했었던 소피아와 발레를 하고 싶어했던 조세핀의 관계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아했던 소피아의 춤을 좋아했던 할아버지는 소피아가 발레를 하는 것을 응원했지만 막내 손녀 조세핀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를 한다. 비뚤어지게 걸린 드가의 작품은 그런 불안정하고 할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가진 조세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이를 조정한 소피아는 끝까지 자신의 동생을 보듬어주고자 했던 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복선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비뚤어진 조세핀의 마음

     

     

    할아버지를 죽인 조세핀. 자신이 좋아하는 발레를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지고 조세핀은 할아버지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린 유모를 죽이기에 이른다. 발레에 대한 집착적인 조세핀의 해동에는 평소에도 일반 신발이 아닌 발레 슈즈를 신고 다니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이 모두 완성되자 할아버지의 초상화 앞에서 발레를 선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해당 장면에서 선보인 장면은 지젤의 비극적인 시퀀스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와는 반대로 깔리는 배경음악은 굉장히 밝고 성공적인 느낌을 자아내서 그 모순이 굉장히 인상깊게 느껴졌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은 할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비뚤어진 조세핀의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도 했고, 어린아이가 저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을까 놀랍기도 했다.

     

     

     

     


     

     

    영화 <비뚤어진 집>은 발레와 드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분석하는 재미를 선사했던 작품이었다.
     

  •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