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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 속의 눈동자와 빨간 자동차
  • ! 이 글은 영화 <나이트 크롤러>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감독) 댄 길로이 출연) 제이크 질렌할, 빌 팩스톤, 르네 루소 저널리즘, 미디어 윤리에 관한 논의들은 여러 콘텐츠를 통해 재생산 되고 있다. 카메라에 대한 담론이 카메라에 의해, 정확히는 카메라로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형성된다는 아이러니 속에서도 <스포트라이트>, <더 포스트> 등 저널리즘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져왔다. 영화 <나이트 크롤러> 역시 비슷한 궤를 공유하는데, 이 영화는 앞의 두 영화보다 직선적이다. 언론인의 감정적 고뇌, 내면적 성찰 장면이 나오지 않고, 하나의 길을 확신하며 나아간다. 따라서 관객은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의 동승자가 되어 그의 빨간 차에 몸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극 중 조수석에 앉아있는 릭(리즈 아메드)이 윤리적 제동을 걸 때마다 자동차는 멈추게 되며, 관객에게도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 차에서 내릴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영화는 구직 활동을 하는 블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협상 기술을 통해 일자리를 얻는 것을 시도하지만, 계속해서 실패한다. 그러다 우연히 사고 현장에 놓인 그는 취재 영상을 찍어 팔아넘기는 ‘나이트 크롤러’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의 눈은 번뜩인다. 작은 캠코더와 경찰 무전기를 사서 특종 현장에 달려가는 블룸. 그의 큰 눈은 마치 카메라 렌즈처럼 보인다. 사건 현장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 그는 다른 경쟁자보다 더 실감하는 영상을 얻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지역 보도국의 니나(르네 루소)에게 영상을 판매한다. 그리고 블룸의 손에 지폐가 쥐어지는 순간 그와 관객은 확신할 수 있다. 그는 ‘나이트 크롤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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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유무
  • <내 이름은 김삼순>이 흥행을 일으켰을 때 나는 고작 중학교 2학년이었다. 어린 내 눈에는 삼순이의 감정선을 따라기가 어려웠지만, 당시 어렴풋이 느낀 공포감은 이러했다. 30대 미혼여자의 삶은 삼순이처럼 곤욕을 겪는 일들이 많을지도 몰라 라는. 그 후로 20년이 지나 30대 중반이 된 나는 생각한다. 삼순이보다 벌써 4살이나 더 먹었지만 여전히 삼순이처럼 심장이 딱딱해지지 못해 마음이 아픈, 소녀도 여자도 아닌 그 어중간한 상태의 나를. 마음은 소녀 같지만 어른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면 앞서 닥칠 고난들을 막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매우 잘 아는 나이. 그러나 삼순이의 그 유명한 대사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라는 이 말을 끝내 다시 하고 말고야 사랑이란 것에 대해. 실력 좋은 커플매니저 루시는 자신이 성사시킨 커플의 결혼식에서, 신랑의 형인 해리를 만나게 된다. 유니콘이라 부를 정도로 외모, 재력 그 모든 것이 완벽한 그의 대시를 받는 루시. 그러나 같은 날 루시는 현실적인 문제로 결국 헤어지고만 전 남자친구 존과 마주하면서, 그녀는 사랑과 현실 앞에서 선택에 기로에 놓인다. 영화 <머티리얼리스트>는 사랑의 '속성'을 그린 영화이기보다도, '사랑'그 자체에 대해 다룬다. 뜨거운 키스를 나누면서도 해리의 아파트를 곁눈질하고 마는 루시를 미워할 여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여럿이서 함께 지내는 좁디좁은 아파트에서 젊은 날 뜨겁게 사랑하던 전 남자친구와의 재회는 애틋함보다도 반가움이 더욱 앞선다. 존과 헤어지고 나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루시는 엄연히 연애와 사랑을 구분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연애가 어떤 이행조건과도 같다면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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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프터 양>, <블레이드 러너>의 명상화
  • <애프터 양>, <블레이드 러너>의 명상화 <애프터 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누적된 기억들의 총합이 아니냐는 <블레이드 러너>의 질문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차이가 있다면 <블레이드 러너>가 질문을 던지며 끝나는 반면 <애프터 양>은 그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며 끝난다는 점이다. 코고나다는 비인간의 기억을 더듬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한 남자(제이크)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극의 초반, 제이크는 남편과 아버지로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미래의 운송 수단으로 추정되는 자동차 안에서 그는 가족과 하나의 프레임에 담기지 못하며 그들과 계속 단절된다. 대개 하나의 쇼트에는 하나의 인물 혹은 두 존재(딸과 '양'이라는 안드로이드)만 담기고, 차 안의 인물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보도록 편집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자동차의 좌석 구조가 마주 보고 앉아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실제로 마주 보고 앉아 있고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음에도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자기만의 쇼트에 갇혀 있는 것이다. 제이크는 인간이지만 어떤 안드로이드보다 기계적이다. 그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듯 시종 표정 변화가 없고, 느릿느릿 움직이며, 안드로이드가 그러하듯 잠을 자지 못한다(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다르게 그의 자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반면, 안드로이드 '양'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에서 가장 인간적이다. 제이크는 어느 날 오류가 생겨 양이 작동을 멈추자 그가 소중하게 여긴 하루의 짧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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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프터 양>, <블레이드 러너>의 명상화
  • <애프터 양>, <블레이드 러너>의 명상화 <애프터 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누적된 기억들의 총합이 아니냐는 <블레이드 러너>의 질문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차이가 있다면 <블레이드 러너>가 질문을 던지며 끝나는 반면 <애프터 양>은 그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며 끝난다는 점이다. 코고나다는 비인간의 기억을 더듬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한 남자(제이크)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극의 초반, 제이크는 남편과 아버지로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미래의 운송 수단으로 추정되는 자동차 안에서 그는 가족과 하나의 프레임에 담기지 못하며 그들과 계속 단절된다. 대개 하나의 쇼트에는 하나의 인물 혹은 두 존재(딸과 '양'이라는 안드로이드)만 담기고, 차 안의 인물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보도록 편집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자동차의 좌석 구조가 마주 보고 앉아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실제로 마주 보고 앉아 있고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음에도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자기만의 쇼트에 갇혀 있는 것이다. 제이크는 인간이지만 어떤 안드로이드보다 기계적이다. 그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듯 시종 표정 변화가 없고, 느릿느릿 움직이며, 안드로이드가 그러하듯 잠을 자지 못한다(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다르게 그의 자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반면, 안드로이드 '양'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에서 가장 인간적이다. 제이크는 어느 날 오류가 생겨 양이 작동을 멈추자 그가 소중하게 여긴 하루의 짧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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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을 말하지 않지만 가라 앉아 있는,
  • <애프터썬>은 스토리를 극적으로 만드는 핵심 사건도 없고, 캐릭터의 서사 자체가 극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언뜻 보면 작품 속 인물이 처한 상황과 관객이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기 쉽다. 그저 부녀가 튀르키예에서 함께 노는 시간을 순서대로 보여줄 뿐이기에 단적으로 말하면 다큐멘터리 같은 성질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 영화는 겉보기에는 ‘딸과 아빠’의 추억 속 한 장면을 깊이 파고들어 순간마다 존재했던 아빠의 딸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스토리를 지녔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감독이 ‘소피’와 ‘캘럼’, 둘의 ‘가족’이라는 보다 순수한 관계성에 빗대어 보편적인 인간에 해당되는 감정 자체를 다루고 싶어 했다고 본다. 원인은 제각각 다르지만 모두 동일하게 느끼는 감정들. 이에 더해 감각적인 편집과 감성적인 필름 화면으로 예술영화라는 정체성을 강렬하게 인식시킨다. 엔딩 직전, 소피와 캘럼의 여행이 끝나기 전날 밤 둘은 춤을 춘다. 모든 소리와 대사가 뮤트되면서 노래만 나온다. 빛이 점멸된다. 우리는 화면을 제대로 바라보기도 어렵다. 가사만 들린다. '우리 스스로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순 없을까?' 내내 소피에게 웃음만 지어 보였던 캘럼이 서럽게 운다. 자신에게 새겨진 상처는 보살피지 않고 덮는다. 아빠에게 늘 웃어 보였던 소피의 눈은 깊다. 캘럼이 몸을 맡겼던 어두운 바다보다 더. 장난스럽게 캠코더를 손에 들 때를 제외하고는 아빠보다도 의젓한 말과 행동을 보였던 소피는 이미 아빠를 집어 삼킨 밤바다를 직시하고 있었을 터이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슬픔들도 포용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물 속으로 잠식되고 있었을 것이다. 캘럼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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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세이와 비평과 사랑 • <더 웨일>
  • 게오르그 루카치는 비평은 에세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에세이란 수필 형식이 아니라, 비평이 제도적인 틀에서 벗어난 부유하는 글쓰기여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인아영 평론가는 비평은 사랑에서 출발한다고 썼다. 그렇지만 비판과 사랑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비평의 목표인 ‘더 좋은 삶 살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더 웨일>은 ‘에세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 초고도비만인 주인공 찰리는 실수로 잘못 움직여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집에 들어온 모르는 선교사에게 119를 부르는 대신 에세이를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내용은 <모비딕>을 읽고 쓴 감상이다. 찰리는 대학교 온라인 수업 글쓰기 강사이기도 한데, 무난하게 수업을 진행하던 그는 죽을 날이 가까워오자 학생들에게 전체 메세지로 ‘독서든 거추장스러운 에세이든 다 꺼져 버리라고 하고 정직한 글을 쓸 것’을 요구한다. <더 웨일>은 터부시 되는 것, 말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찰리도, 그의 딸도, 그의 전 아내도, 그를 돌보는 헌신적인 간호사도, 우연히 집에 들어온 선교사도, 하다 못해 피자 배달부까지도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찰리의 수강생들 중 몇 명은 이런 글을 제출한다. ‘부모님은 방사선기사가 되라는데,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른다’, ‘내게 흥미로운 삶이 펼쳐지지 않을 거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주제에 집중해야 하며, 고치고 고쳐야 더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도 맞지만 에세이의 제 1 원칙은 무엇보다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자기 자신부터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에세이는 구질구질한 삶 속에서 중요하고 반짝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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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벗어날 수는 없어도 견뎌내야 할 ‘혐오스런’ 인간의 굴레
  • ▷한줄평 :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의 비극, 그것은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굴레 ▷평점 : ★★★★★ ▷영화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嫌われ松子の一生, Memories Of Matsuko), 2006년 저명한 미국의 정신과 의사 스콧 펙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서두에서 “삶은 고해(苦海)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인생의 고통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성숙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수많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불행의 반대말은 ‘일상’이다”라는 말처럼, 특별한 일 없이 평온한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헤르만 헤세 역시 『데미안』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나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저 거기에 충실히 살아가는 단순한 일조차 수많은 난관과 힘겨운 고통이 따른다. 그렇기에 마츠코의 일생을 불행으로 가득 찬 어떤 한 특별한 여인의 이야기로 치부하기 어렵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녀의 불행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겪는 삶의 패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츠코의 ‘시시한 인생’은 바로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삶이 아니던가? 이 영화는 이런 우리네 삶의 부조리를 폐부를 찌르듯 정면으로 드러내 보인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우리 인생을 ‘시선투쟁’의 과정으로 설명했다.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내는 주체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권위와 규범, 관습 등의 사회적 폭력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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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상호 감독의 진짜 얼굴!
  • 연상호 감독이 돌아왔다. 염세적인 세상을 그리는 연상호 감독이 돌아왔다. <얼굴>을 보면 감독의 초기 애니메이션 작품인 <돼지의 왕> <사이비>가 생각날 정도로 지옥 같은 한국 사회와 그 안에서 양심과 도덕성을 버리고 오로지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부산행> 이후 종종 거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정작 놓쳤던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이 다시 살아온 듯한 느낌이랄까. 제작비도 2억원이 들었다고 하니 여러모로 기적 같은 영화다! 시각 장애인이자 국가가 인정한 전각 장인 임영규(권해효).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않았던 그는 세상을 본 적 없지만, 아름다운 글씨를 새긴 도장을 만든다. 더 대단한 건 40년 전 아내가 사라진 후, 홀로 아들 동환(박정민)을 키웠다는 것. 그 인생도 참 예술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촬영이 있었던 어느 날, 동환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사라진 엄마 영희(신현빈)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것. 그 자체로 놀라운데, 살해 가능성이 있다는 경찰의 말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 일을 알게 된 다큐 PD 수진(한지현)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알아봐 주겠다며, 동환과 함께 과거를 추적해 나간다. <얼굴>은 제목 그대로 얼굴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차례대로 진행되는 인터뷰 형식을 빌려 영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는데,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영희의 얼굴을 궁금해한다. 신현빈이 연기를 했지만, 정작 얼굴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감독은 관객과 밀당 아닌 밀당을 하는데, 그럴수록 그녀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못생겼다’고 말한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일가친척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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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자 리포트 | 방벌 대신 치료를 위한 복수극
  •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복수와 사적제재 재벌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다가 퇴사 위기에 몰린 기자 '선주'(조여정). 그녀에게 제보가 하나 들어온다. 11명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정신과 의사 '영훈'(정성일)이 인터뷰를 요청한 것. 만약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한 명을 더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특종을 따려는 욕심과 살인을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선주는 인터뷰를 수락하고, 호텔 스위트 룸에서 살인자를 만난다. 연인이자 형사인 '상우'(김태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주는 영훈에게 묻는다. 왜 사람을 죽였냐고. 영훈은 고백한다. 복수심 때문이라고. 강간 피해자였던 아내가 자살한 뒤, 영훈은 범인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범인이 교도소에서 이미 죽은 나머지 그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폐인으로 지낸다. 어느 날, 음주 운전자 때문에 가족을 잃은 환자가 그의 병원에 내원한다. 환자의 복수심을 발견한 영훈은 그에게 제안한다. 가슴에 사무친 복수, 자기가 대신해 주겠다고. 여기까지만 보면 <살인자 리포트>는 디즈니+ 시리즈 <비질란테>나 <베테랑2>처럼 사적제재를 다룬 작품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모종의 이유로 공권력과 사법 체계를 불신하게 된 주인공. 그는 자기 복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복수도 대신하기 시작한다. 그의 행동은 갑론을박을 낳는다. 누가 그에게 범죄자를 처단할 권리를 줬는지, 그도 일반적인 범죄자처럼 처벌해야 할지 등. <살인자 리포트>의 특이점 하지만 <살인자 리포트>는 그다음 대목에서 차별화된다. 영훈은 자신의 살인을 치료행위라고 설명한다. 근거도 확실하다. 음주 운전자를 죽인 뒤 시체 사진을 보여줬을 때 활짝 웃더니 정상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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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게 가족일지라도
  •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게 가족일지라도. <비밀일 수밖에>는 너무나 가깝지만 먼 사이인 가족들의 숨겨진 비밀을 은근히 까발리는 작품이다. <철원기행> <초행>을 통해 가족이라는 관계를 관찰해 왔던 김대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흔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모른 척하는 이들의 민낯을 영락없이 보여준다. 춘천의 중학교 미술 교사인 정하(장영남)은 항암 치료를 앞두고 휴직한다. 휴직하는 그날,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 아들 진우(류경수)와 여자 친구 제니(스테파니 리)가 그녀를 찾아온다. 그리고 둘이 결혼할 거라는 말을 듣는다. 정하는 축하를 하지만, 의사인 제니에 비해 변변한 직장 없이 유튜버가 되겠다는 아들이 못마땅하다. 이런 상황에서 동성 연인 지선(옥지영)이 집을 찾아오고, 캐나다에 있어야 할 제니의 부모까지 갑작스럽게 춘천에 도착한다. 엉겁결에 이 모든 사람과 낯설고도 불편한 동거는 시작되고, 각자 숨겨둔 비밀로 집안 분위기는 점점 미묘해진다. 김대환 감독의 작품을 본 이들이라면 <비밀일 수밖에>의 이야기가 그리 낯설지 않다. <철원기행>처럼 환경적 제약으로 가족이 모이는 상황은 이 작품에서도 연출된다. 다른 점은 한 가족이 아닌 두 가족이라는 점. 처음에야 예의를 차리고 배려하며 지내지만, 불편한 동거가 오래되면서 부딪히고 싸우고 으르렁거린다. 주인공은 정하는 오랜만에 만난 아들 진우와 여자친구 제니의 만남에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데, 여기에 제니의 부모님과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그 감정이 증폭된다.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고, 아들에게 지선과의 관계를 알려야 하는 부담감이 겹치면서 평화롭던 그녀의 삶에 갑자기 풍파가 몰아친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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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미야케 쇼, 2022)에 관한 단상
  • 우리는 감각하고 그녀는 투쟁한다 미야케 쇼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따뜻하다”일 것이다. 후끈한 열기라기보단 딱 체온 정도의 따스함. 세상을 향한 의심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때, 마음의 온도가 식었을 때라면 혹은 그런 누군가를 만난다면 미야케 쇼의 영화를 찾고 싶어진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필자가 본 미야케 쇼의 영화 3편(<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보는 내내 ‘케이코’(키시이 유키노 분)의 투쟁을 지켜보면서도 스크린이 그 생동감 넘치는 세계의 따뜻한 온기를 관객에게 실어 나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각: 흐르는 이미지와 부산한 사운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극장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영화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청각장애인 복서의 드라마를 따라가지 않는 이야기, 관객은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다루는 영화 속 시간의 케이코만 만날 수 있을 뿐 그녀의 전사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카메라는 필요 이상으로 케이코에게 다가가려 하지도 않고, 때론 그녀의 아주 개인적인 부분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케이코를 계속 지켜보지만,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읽을 수가 없다. 이야기 자체도 그렇지만, 이미지와 사운드 측면에서도 다르다. 작품의 배경은 분명 도쿄다. 그러나, 우리가 ‘도쿄’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번화가의 이미지가-이를테면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 같은- 아니라 케이코가 냄새난다고 했던 강변과 평범한 골목길,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은 복싱 체육관이 주 무대다. 16mm 필름의 따뜻하고 생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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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끼리는 그곳에, 나는 이곳에.
  • 대구를 떠나 부산으로 진학했을 때가 떠오른다. 주변 친구나 선생님들, 심지어 진학에 크게 압박을 주지 않으셨던 부모님조차 의아해했던 결정. 나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내새웠지만 돌이켜보면 도피였다. 웃긴 점은 특정한 환경 때문에 벗어나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향에서도 힘든 일은 딱히 없었다. 다만 여기를 벗어나면 조금은 더 성장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막연한 생각은 충동으로 번지고, 이내 나를 먼 곳을 가게 했다. 물론 후회는 없다. 부산에서 새로운 인연과 사건들이 끊임없이 지나쳤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레 잊고 있던 그때의 기대도 어느정도 충족되었다. 하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왜 대구를 벗어나려 했을까. 그곳에서도 인연과 사건들은 충분하다 못해 계속 재생산되지 않는가.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의 주인공은 4명이다. 이들은 각자 사연을 품고 있다. 친구를 우발적으로 죽였다거나, 원조교재 사실이 학교에 퍼졌다거나, 요양원에 끌려가게 생겼다거나, 자신의 잘못으로 친구가 눈 앞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등. 누구도 쉽게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지극히 보통의 사람들이 짊어진다. 사회는 더욱 잔인하다. 사회는 보통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의 대가를 치루면서 형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의미 없는 논의처럼 사회는 사람보다 서순이 앞서는 건 물론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복지로 사람의 인생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는 반면 큰 대가를 요구하지만 울타리는 쇠창살에 가까운 부조리한 사회도 있다. 영화의 감독 후보가 묘사하는 중국 사회는 후자에 가깝다.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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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이 내게 꽃을 내밀 때
  • DIRECTOR. 마이크 리 CAST. 마리안 장 밥티스트, 미셸 오스틴 외 SYNOPSIS.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할 말 다 하는 '팬지'. 집, 길거리, 마트... 그녀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트러블이 생긴다. 그런 그녀를 유일하게 보듬는 사람은 여동생 '샨텔'뿐, 남편과 아들은 귀를 닫은 듯 그저 무심할 뿐이다. '어머니의 날'을 맞아 '팬지'와 '샨텔'의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 '팬지'가 무슨 말을 할지 조마조마하던 가족은 그녀의 뜻밖의 반응에 당황하는데... POINT. ✔️ 70년대부터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온 거장 마이크 리 감독의 컴백입니다. ✔️ 특히 <비밀과 거짓말>을 함께한 명배우, 마리안 장 밥티스트와의 조우! 마리안 장 밥티스트의 연기가 너무 훌륭합니다. 연기를 통해 팬지의 얼굴에서 그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다 가늠해 보게 만듭니다. 역시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네요. ✔️ 보고 나면 세상에 친절한 마음으로 꽃 한 송이를 내밀고 싶어지는 영화 ✔️ 특히 K-장녀들에게는 꽃을 다발로 주고 싶어지는 영화... ✔️ 가족 상담 사이코드라마로 써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비전공자 비전문가 주제에) 해보았습니다. 당신은 팬지의 가족 중 누구에게 가장 마음이 가나요? 당신을 화나게 혹은 슬프게 하는 인물이 있나요?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1. 가족 상담의 사이코드라마 이 영화는 러닝타임의 상당 시간을 할애애 팬지가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준다. 방을 지저분하게 해 놓은 아들에게, 남편에게, 마트에서 장 보다 마주친 여자에게, 치과 의사에게... 팬지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대개 고슴도치 같다. 팬지는 신랄한 말투로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도끼날처럼 떨어지는 말을 가만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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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의 시대, 낭만의 밴드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슈퍼소닉>은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무명 시절부터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 밴드의 결성 이야기부터, 1996년 무려 25만명의 관객이 모였던 전설적인 넵워스 공연까지의 3년간의 기록을 담아낸다. 갤러거 형제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텍스트로만 단편적으로 접했던 이야기를 실제 영상으로 확인하는 건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로 무대 밖 행적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니 '리암 갤러거'와 '노엘 갤러거'라는 사람을 훨씬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는 반가운 오아시스 원년 밴드 멤버들도 함께 등장한다. 저마다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오아시스라는 밴드를 한층 더 깊이 알아갈 수 있게끔 돕는다. 특히 요즘엔 보기 드문 저화질 캠코더 영상을 기반으로, 콜라주처럼 구성된 짤막한 애니메이션, 시점을 넘나드는 가족과 관계자들의 인터뷰 등이 계속해서 교차하는 연출이 흥미로웠다. 다양한 방식이 뒤섞이면서 서로를 보완하는 형태로 영화는 지루할 틈 없이 다채롭게 흘러간다. 여기에 갤러거 형제들의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욕설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오히려 활력을 얻는듯하다. 다큐멘터리는 밴드의 시작부터 그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오아시스는 우연한 기회로 유명 레이블 사장인 앨런 맥기의 선택을 받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어찌 보면 이들이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리암과 노엘의 노력이 있었다.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던 리암이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음악에 엄청나게 몰두하는 모습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노엘은 내 생각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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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촉각으로 그려낸 고독의 세계
  • 두 소년이 함께 춤을 춘다. 주인공 치히로와 그의 친구 나오야가 함께 추는 춤. 이들의 춤은 일반적인 것과는 다르다. 정형화되지 않은 이들의 몸짓.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접촉’이다. 선생은 말한다. “움직이지 말고 파트너가 움직이게 하라”. 두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지도 몸을 맞대지도 않고 서로간의 호흡을 맞춰나간다. 그들의 춤만이 비접촉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대체로 접촉을 기피한다. 특히 주인공 치히로가 그렇다. 아버지를 잃고 이복형에게 맡겨진 치히로. 치히로는 형의 손장난조차 피하는 인물이다. 나오야와 함께 추는 춤으로 단련된 탓일까. 치히로는 비접촉에 능하다. 나오야의 여자친구 또한 나오야의 손길을 거부한다. 나오야는 평소와 같이 친밀함을 표하는 손길을 내밀지만, 이별을 결심한 그녀에게 그 손길은 불편한 침범이다. 원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거리를 지켜서라도 곁에 머물고 싶다는 나오야를 두고 그녀는 떠나간다. 그러나 실은 두 사람도 접촉을 원하는 인물들로 보인다. 영화의 중간 중간 치히로는 아스팔트 거리에 얼굴을 맞댄다. <아사코>의 한 장면이 스쳐간다. 아사코와 바쿠는 도로 한복판에 누워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본다. 두 사람에겐 서로가 있다. 그러나 치히로는 혼자다. 그래서 치히로는 손을 잡은 상대를 바라보는 대신 바닥에 안기듯 온몸을 접촉시킨다. 접촉을 기피하는 치히로의 기질은 이별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으로 유추된다. 이복형과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사는 치히로는 자신이 당신들의 짐이 되는 것이 아니냐 직접적으로 묻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갑자기 혼자가 된 치히로는 또다른 이별을 두려워한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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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룻밤의 시간이 전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사랑
  • 영화 <비포 선라이즈>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주연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제시와 셀린. 알 수 없는 감정에 끌린 두 사람은 아무런 일정도 없이 기차에서 하차한다. 그리고 단 하루, 꿈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난 우리가 지금 마치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짧은 하루의 우연은 영원이 된다. <비포 선라이즈> 속, 파리로 향하고 있던 학생 셀린이 대뜸 말을 건 옆자리 남자, 제임스(제시)를 따라 파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차에서 내린 이유는 단순하다. 그 순간, 제시에게 이끌렸기 때문에. 호텔 숙박비도 없이 하루 동안 거리 곳곳을 오가면서 그들에게 벌어지는 사건은 딱히 스펙타클하지 않다. 갑자기 지갑을 도난당한다거나, 마약 밀매 사건에 휘말린다거나,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거나, 그런 '영화 같은' 사건은 없다. 이들은 오로지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할 뿐이다. 나이 든 노파와 같은 셀린과, 열세 살 꼬마와 같은 제시가.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화 속 사랑이 정말 영화 같다고, 그리고 운명 같다고 느낀다. 제시는 셀린을, 셀린은 제시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이들이 아는 건 이들이 각자 털어놓은 '이 순간'의 정보들 뿐.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감정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그리고 꽤나 대담하게 행동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 또한 잘 모르는 이곳에서. 순간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 감정을 이끈 상대와 함께. 와인잔을 몰래 가져오고, 앉아 있다 손금 점을 보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두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옛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커다란 사건 없이도, 그리고 상세한 정보 없이도 그들은 '지금 이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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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위기의 영화
  • 조희영의 영화에는 분위기가 있다. 배경은 길거리일 때가 많고, 인물들은 계속 대화를 나눈다. 또 그들은 자주 걷는다. 미장센은 적당히 세련되어서 감독에게 특유의 미감이 있다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극에는 줄거리가 있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 미세한 감정과 은은한 대화의 흐름,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이야기 설명 속에서 종종 길을 잃더라도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 이 영화에 그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 혹은 느낌이 자연스레 솟아서다.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차분한 호흡과 정돈된 미감이 주는 영화의 안정감에 땀 흘리는 순간, 생활의 순간, 노동의 순간이 부재해서다. 의도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속 인물들은 일하는 중이거나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명상하듯, 산책하듯 연기한다. 그래서 조희영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조금씩은 붕 떠 있는 것만 같다. 구체가 아닌 추상의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이어지는 땅〉에 이어 홀린 듯 끌려가면서도 조금은 거리를 두며 영화에 들어갔다. 멀리서 흘긋거리며, 끈에 묶여 허공을 날아다니는 느낌으로. 영화에는 정호와 관계 맺은 세 여자가 있다. 먼저 수진. 그림을 그리는 그녀는 정호의 애인이지만 현재 자기가 책 표지 그림을 그려준 시인과도 만나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인 인주는 병원에서 의사에게 어쩌면 심각한 병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정호를 향한 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러 캐스팅에 도전 중인 배우 유정은 정호의 전 애인이다. 유정에게는 그녀와의 결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애인이 있는데, 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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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걸 주었지만 끝내 하늘에 닿지 못한 생에 대하여
  •  과거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에는 물론 코미디가 주되지만, 그 안의 미묘한 슬픔과 비애도 엿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특히 영화 <모던타임즈>를 관람하면 이를 더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찰리 채플린의 분장을 떠올려본다면 우리가 왜 그의 유머에도 슬픔을 발견할 수 있는지 깨닫는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표정 그리고 축 처진 눈과 입은 광대를 모티프로 삼은 캐릭터라기엔 '광대스러움'이 묻어있지 않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의 눈물>을 생각한다. 분명 웃는 듯한 그녀의 눈망울엔 눈물이 고이다 못해 한 방울 떨어지고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가득한 전체 배경에 눈물의 푸른색은 대비되어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전체 배경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전체 속 무언가의 존재는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배경이 행복과 환희에 가득 차 있는 반면 슬픔과 비극이 서려 있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각종 빛과 환희, 사랑과 환락이 넘치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상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세계관 속 비극이다. 비극을 조명하면서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는 희망에 집중한다. 인생에 있어 희망과 빛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말한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선택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선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선택할 수 없는 필연(必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는 유달리 빛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보통의 작품들은 관객의 눈 피로감을 위해 빛의 양을 설정하거나 조명하고자 하는 부위에만 빛을 쬐는 등 조절한다. 그러나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해가 뜬 오전이나 오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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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사랑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 순수한 사랑에 대한 낭만은 멸종해 버렸다. 사람들은 더는 사랑의 애정과 열정을 순수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2000년대 초 같은 로맨스 코미디 영화를 요즘 극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랑 노래도 자기 성장보다 연애를 우선시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낭만 서사가 되었다. 사랑에 대한 낭만은 한심한 환상 따위로 치부되는 현재가 도래해버리고 말았다. 나이를 먹으며 주변 사람들은 점차 앞으로 다가올 연애에 조건, 배경을 따지기 시작했다. ‘나 정도면 이 정도 조건의 사람을 만나고 싶어.’ ‘결혼하려면 이런 배경의 사람이면 좋겠어.’ 이렇게 사랑에 조건이 더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어른의 현실인 걸까? 순수한 사랑은 어린아이의 상상에 불과할까? 이런 고민이 한참이던 때, 셀린 송 감독이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Materialists>를 들고 나타났다. 지난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2024)를 선보임으로써 ‘사랑’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었던 셀린 송 감독이 이번에는 <머티리얼리스트>를 가지고 나타났다. 지난 영화는 과거의 아련히 반짝이던 사랑에 대한 향수를 갖게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를 과거로써 빛나는 채 남겨둘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번 영화는 오늘날 현대인이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사랑에 대한 욕망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본 콘텐츠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머티리얼리스트>의 한국판 포스터와 주인공 루시 (C) 소니픽처스코리아 영화 <머티리얼리스트>는 뉴욕의 잘 나가는 중매 회사 커플매니저인 주인공 루시(다코타 존슨)가 동시에 나타난 두 남자 사이에서 갖게 되는 고민을 그린다. 한 남자는 연봉도 높고, 키도 크고 잘생긴 해리(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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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의 언덕에 묻어든 솔직한 성장통
  • 비밀의 언덕에 묻어든 솔직한 성장통 영화 <비밀의 언덕> 리뷰 감독] 이지은 출연] 문승아, 임선우, 장선, 강길우, 장재희 시놉시스] 초등학교 5학년 반장인 명은은 시장에서 젓갈을 파는 부모가 부끄러워 자신의 집안 내력을 숨기며 친구들에게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예민한 소녀이다. 글짓기 대회에서 예상치 못한 인정을 받지만, 거짓말은 점차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이 커지고 만다. 그러던 중 전학 온 솔직한 쌍둥이 자매와의 만남은 명은의 내면을 흔들며 자신의 비밀과 마주할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스포일러 유의# 거짓말 속에 숨은 유년의 불안과 성장의 그림자 영화 비밀의 언덕은 초등학생 명은의 시선을 통해 유년기의 불안정한 자의식을 매우 사실적으로 포착해낸 작품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스스로를 조금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작은 거짓말을 하곤 하는데, 영화는 바로 그 ‘작은 거짓말’이 어떻게 눈덩이처럼 커지며 아이를 압박하는지 집요하게 따라간다. 명은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부모가 창피해 친구들 앞에서 사실을 숨기고, 결국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집안’을 꾸민다. 그러나 이 거짓은 일시적인 안도감을 줄 뿐, 점점 자신을 옥죄는 굴레가 되어 돌아온다. 관객은 명은의 불안과 고립, 그리고 들킬까 두려워하는 긴장감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학창 시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포장하거나 감추려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작품은 특정 세대의 이야기를 넘어,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타인의 기대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래서 명은의 거짓말은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불안과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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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Trailers

Awesome trailers from cinLab
    • 영화 <부고니아> 메인 예고편
    • "이건 미친 짓이에요." 위기의 지구를 지켜야 하는 기묘한 블랙 코미디 [부고니아] 메인 예고편 공개✨ [부고니아] 11월 극장 개봉🐝 #부고니아 #BUGONIA #엠마스톤 #EmmaStone #제시플레먼스 #JessePlemons #알리시아실버스톤 #AliciaSilverstone #요르고스란티모스감독 #YorgosLanthimos #지구를지켜라
    • 영화 <미러 넘버 3> 메인 예고편
    •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 작품 원소 3부작 완성작 파울라 베어 주연 · 2025 칸영화제 초청작 '미러 넘버 3 (Miroirs No. 3) 25년 10월 1일 개봉
    • 영화 <보스> 2차 예고편
    • 빈틈 없는 BOSS급 웃음 타율💥 #보스 2차 예고편 공개! #영화보스 #추석대개봉 #조우진 #박지환 #정경호 #이규형 #오달수 #황우슬혜 #정유진 #고창석 그리고 #이성민 #라희찬감독 #하이브미디어코프 #Hivemedia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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